홍산 유적이라던가 고기의 기록들을 보면 요동을 중심으로 해서 일정 세력들이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같습니다.
다만 그것이 어떤 형식을 띄고 있었는가는 애매한데
강력한 중앙집권이 었는지
부족연맹체였는지(부족연맹체라면 강렬한 연대의식을 가졌는지 아니면 느슨했는지는 모르겠음)
아니면 그저 군소부족들 난립해 있었고 그중에 특히 강한 부족이 하나 있었을뿐인지
어떤 형식으로 존재했는지는 모르겠군요.
본래 중앙아시아를 광범위하게 지배하던 다수의 민족군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중세후기 각지역 국가들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기전까지 기록에 남지 않은 수많은 민족들이 있었던 것은 재야,강단을 따지지 않고 아니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역사의 상식이죠.
신화를 분석해보면 아마도 우리민족은 그러한 민족중 하나가 상고시대에 요동지역에 정착하면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선발주자가 정착을 한 후 다른 어떤 민족도 오지 않을 이유는 없죠.
그 후로도 후발주자들이 계속 도착 했던것같은데 오로지 민족의 유입만 있었던것은 아니고
일부는 다시 중앙아시아로 돌아가고 일부는 정착을 하는등
만주 일대는 알타이민족(뭐 따로 뜻이 있겠지만 유라시아중부에 난립하던 유목민족을 통칭해서 임의 자의적으로 일단 이렇게 부르겠습니다)의 저수지와 같은 형상을 띄었을것같습니다.숙신,읍루,옥저,부여,동예등등 상고시대 부족이 난립했던 것과 그 후로도 여진,거란,돌궐,선비 등등의 부족들이 새로 언급되는걸 보면 그런 추측을 하게 되는군요.
그 중에서 가장 강렬한 문화적 정체성을 띈 민족이 있었던 것같은데 이 민족이 아마도 고조선의 모태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재야에선 환국이라 부르지만 본래 그런 국가가 있었는지는 모르겠고 환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문헌들은 강단사학에선 인정하지 않으니 공평하게 생각하더라도 명칭이야 어찌되었건 그런 민족집단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것같습니다.
이 민족집단에 대해서 생각하면 할 수록 아리안족과 계속 비교가 됩니다. 아리안족의 경우 어디서 어떻게 연유한 민족인지는 굉장히 불분명하죠. 하지만 그런 민족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또한 강렬한 문화적 색체를 띄고 독일,페르시아,인도등지로 흩어지면서 문화적 모태가 되었죠.
분명 다르기는하지만 언어적 유사성을 볼때 우리민족은 여진,거란등과 강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사실인것같습니다.중국이 이 계통의 민족과 분명히 구별되는 것과 비교하자면 말입니다.
어느분이 언어적으로 우리나라가 고립어니 어쩌니하는 얘기를 하지만
선발주자가 무려 기원전 수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가장 최근 후발주자가 겨우 천년 혹은 몇백년전에 만주지방에 도착한걸 생각해보면 한국어와 중국어의 관계처럼 완전히 뿌리가 다른 언어가 아닌이상 전혀 관계없는 언어라고 단정짓는것은 위험해보이는군요.
어느 배우인지 기억은 안나는데 만주지역에 촬영을 가서 만주어를 배우는데 너무 쉬웠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