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백과에서는 마치 요코이야기가 일부 사실일수도 있다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더군요.
이 책의 문제점은 순수왜곡이 아니라.. 일본의 침략과 만행에 대한 서술이 전제되지 않았다는
거라네요..
http://ko.wikipedia.org/wiki/%EC%9A%94%EC%BD%94_%EC%9D%B4%EC%95%BC%EA%B8%B0
음..
이 책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만주와는 달리, 일본 군경의 무장해제가 광복 이후에도 미군 진주까지 수주간 이루어지지 않아 한반도의 치안을 일본이 유지하고 있었던 점과, 저자가 생활했다는 이북의 함흥 일대는 대나무 숲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전쟁에 반대했다는 그녀의 아버지가 만주철도회사에 근무한 것이 아닌 시베리아에서 731 부대의 간부였으며 전범 혐의로 6년간 복역했다는 의혹이 있는 점 등을 들어, 이 책의 진실성에 의구심을 표시하고 있다.[2]
그러나 《요코 이야기》에서 언급됐던 연합군의 북한지역 공격은 7월 중순과 8월 초순 미 공군의 청진제철소 등 산업시설 공습, 8월 8일 소련군의 두만강유역 토리의 경찰주재소 공격, 일본군 제19사단 사령부가 있던 군사도시 나진에 대한 소련공군의 공습, 8월 13일 소련군의 나진과 청진항 상륙작전 등 사실로 확인되고 있으며 대나무 역시 아오모리 지방에 자생하고 있는 조릿대로 여겨지고 있다.[3][4][5] 이 밖에도 한국어판에 없는 원서의 서문에는 《요코 이야기》를 둘러싼 역사적 논쟁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6]
또한 제국주의 일본의 패망 후 소련에 무단 억류돼 시베리아유형생활을 겪었던 일본인은 전범이 아닌 전쟁포로(민간인, 조선인 포함)의 신분이었다. (무장해제된 일본병사의 귀향을 보장한)포츠담선언에 위반하는 불법적인 조치였던 시베리아억류는 1993년 일본을 방문한 당시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이 일본에 사과한 바 있다.[7][8] (대표적인 인물로는 11년간 억류됐던 세지마 류조 전 이토추상사 회장, 2년간 억류됐던 미즈하라 시게루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 감독 등이 있다.[9])
한편 《요코 이야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조선인에 의한 일본인 학살(p165~p166) 및 강간(p144~p145, p153~154) 피해 부분에 대해 일본의 일부 학계와 우익세력은 미군이 치안을 담당하지 않았던 38도선 이북의 한반도와 만주, 시베리아 지역의 일본인들이 38도선 이남으로 피난해 내려오는 과정에서 피해를 당했지만 정확한 피해수치는 확인할 수 없으며 38도선 이남에서도 미군이 진주하기 전까지는 일부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에게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10][11][5] (버섯박사로 알려진 귀화일본인 망절일랑 씨가 여기에 속한다.[12][13])
그러나 패망 직후 만주에서 38도선 이남까지 피난 중이던 일본인에게 한국인이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줬다고 증언한 후지와라 데이의 자전적 소설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1950년대 《내가 넘은 38선》으로, 2003년 《흐르는 별은 살아 있다》로 국내에 출간)도 있다.[14][15][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