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흐름이 아래와 같습니다.
말갈족 -> 여진족 -> 만주족
또한, 아래의 핵심 내용은 고구려 시대에는 존재 하지 않던 것이 남북국 시대(신라,발해)이후에 등장한다는 것 입니다. (역사를 가지고 장난 치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죠)
추가해서, 고구려시대때, 말갈의 유적 (물론 발해 이후에도 말갈의 유적은 없음) 이 남아 있지 않는 것에 대해서 역사학자들은 다른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고구려 멸망후 발해 멸망 때에도 남아 있지 않는 말갈의 유적들. 말갈은 고구려인이였으며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던 같은 민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잊혀질 때가 되면, 다음에는 (2)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말갈족이란 애시당초 없었으며, 말갈 족은 화랑제도와 같은 고구려의 조직이였다를 올려 드리겠습니다. (말갈은 지나족이 부른 것이며, 고구려인들은 고구려인이였지 말갈족이란 것은 없었다)
말갈족, 고구려와 발해의 거의 모든 군사력을 가졌고, 지휘 했던 말갈족,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독립 뿐만 아니라 고구려를 가질 수 있었던, 아니 이미 고구려와 발해는 말갈족의 군사 위에 있었다. 정말 말갈족이 이민족인가? 그들은 고구려인이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 ?수 없을까?
(역사서에 기록된 고구려인보다 강한 말갈인이 피지배자? 이건 기본적으로 말이 안된다고 봅니다.)
아래의 것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동북공정, 대한민국은 자주 독립국 아니다.
[발해의 주민 구성]
이원적 계층론의 문제점
발해의 주민 구성에 대해서,학계는 이원적 계층론과 일원적 계층론으로 나뉘어진다.예전에는 이원적 계층론이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원적 계층론에 결정적인 근거를 제공한 자료는 유취국사의 내용 및 발해 멸망 후 나타나는 발해인과 여진인의 두 민족적 구분이었다.
유취국사의 내용인..토인과 말갈인이 있는데 주민들 중 토인은 적고 말갈인이 오히려 더 많다.그런데 지방 부의 도독,주의 자사등 벼슬은 다 토인으로서 임명되었고 또 도독,자사 등 벼슬을 하지 않는 토인들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모두 그들을 수령이라는 존칭으로 볼렀다.라는 기록이다.
일본에서는 한국 학계의 남북국 시대론을 비판하고 있다.
단지,지배층이 고구려인이라고 해서 한국 역사가 될 수 있는가? 에 대한 문제와 삼국 사기에 신라가 발해를 북국이란 불렀던 것이,고려사에 고려가 요나라에 대해서 북국이라고 표현하는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등 남북국 시대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중국은 이원적 계층론을 적절히 활용하고 있으며,한국의 북국사를 자신들의 소수 민족사인 만주사로 둔갑시켜 중국사로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원적 계층론의 문제점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일원적 계층론을 지지한다.한규철 교수님이 제시한 이 계층론은 북한의 장학종 선생님도 박시형 교수님의 이원적 계층론을 부정하면서 이 학설을 인정,발해국의 주민 구성은 대부분 고구려인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이원적 계층론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송화강 유역의 사람들을 고구려 민족이 아닌 타 민족인 속말 말갈인으로 보는 점이다.그럼,고구려 민족 기원으로 돌아가 보자.고구려 민족의 기원은 예.맥 민족에서 시작된다.
예 민족은 지금의 송화강과 눈강 초원 지구에 거주하던 어렵부락이 예인이었으며,
혼강과 압록강 산간 지역에 거주하던 유렵부락이 맥인이었다. 특히,북부 예맥족은 부여국을 세운 민족이었다.
고구려.부여를 세운 민족이,그 앞에는 고조선을 세운 예족이 언제부터 다른 민족으로 둔갑하여 말갈인이 되었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이것은 한규철 교수님의 말씀대로 말갈인이라는 명칭은 중국측이 부른 타칭이라는 것이다.즉,고구려 동북부 지역의 사람들은 한번도 자신들을 말갈인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중국 지역에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구당서에 대조영을 고구려 별종이라고 부른 것은 대조영이 고구려인이지만,변방에 거주하던 고구려인이기에 별종이라고 했던 것이다.중심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다 보니 조금씩 다른 풍속.언어 등을 갖게 된 경우로서,이것은 현재 대한 민국도 지역마다
말이 조금씩 다르고 풍속도 다르다는 것과 동일한 셈이다.그러나 우리는 모두 한국인이다.별종이란 말은 이런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둘째, 고구려 시대에 등장하지 않는 이원적 계층론이 불과 30년 뒤에 건국한 발해 시대에 나타나는 점이다. 고구려 시대에는 이원적 계층론이 등장하지 않는다.그러면 고구려 멸망후 30년 사이에 말갈인의 인구가 갑자기 증가했다는 증거도 없다.
아니면 북쪽의 흑수 말갈인들이 남쪽으로 내려 온 것일까? 고구려 인구는 멸망할 때 350만 내외였다.중국 지역으로 20만이 잡혀가고 (이는 330만이 동북지역에 있음을 의미 합니다)흩어진 상태였지만,고토 지역에는 많은 사람들이 남아 있었으며 치열하게 당과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을 통치하던 지배 민족인 고구려가 멸망했다면,말갈인은 오히려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 피지배 민족이던 말갈인은 당과 협력하여 고구려 민족의 광복 운동을 막아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대조영 세력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이유는 단지 대조영의 군세가 강하기 때문일까? 말갈 7부의 군사력 정도이면 충분히 대조영의 군대와 전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발해 건국 초기 급속히 세력을 규합하고 저항 세력이 없다는 것은 발해 건국 집단과 그 지역 주민들의 오랜 역사적 유대 관계 즉,같은 혈연 관계이기에 가능하며 지배.피지배의 종속적 관계가 아닌 것이다.
대조영은 요동 지역에서 나라를 건국했지만,상황이 불리해져 동쪽으로 이동하였다.송화강 출신의 말갈인이 어떻게 요동 지역 고구려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셋째,발해 멸망 후 나타나는 발해인과 여진인의 이원적 차이는 어떻게 볼 것인가? 멸망 후 나타나는 발해인과 여진인의 차이는 민족적인 구분보다,신분 계층적인 차이라고 생각한다.
즉,발해인이라고 일컫어진 사람들은 발해 시대때 지배 계층이던 사람 또는 후손인 것이다.이런 이유로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발해인이라고 자처하였다.하지만 여진인은 자신들이 여진인이라고 한 적은 없으며,예전 말갈인처럼 외부 사람들이그렇게 불렀던 발해 백성이었다. (도대체 스스로 고구려,발해인의 후예로 생각한 이들을 이민족으로 분류하는 조선과 현대 역사학자들의 정신 상태를 이해 할 수 없다. 조선이야 명에 대한 사대로 인하여, 명에 반하는 것은 반역으로 죽음을 피하고자 그랬다고 이해 할 수 있지만.... 현 역사학자들 또한 그러한 것은 도대체가...)
특히,발해 멸망 후 발해인은 여진인 또는 미개인으로 취급 받았는데, 발해가 멸망했다고 해서 그 지역의 사람이 바뀌는 것은 아니며,그 곳 사람들은 계속 생활하는 것이다.예전의 조선인이 현재의 한국인이 된 것이지,조선인과 한국인은 다른 민족이 아닌 것과 동일하다.
여러분도 대한 민국이 멸망했다고 해서 한국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넷쨰,고고학적 성과이다.
연해주 지역은 중국 사서에 전하는 것처럼 말갈 거주 지역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중국 사서에 등장하는 말갈 계통의 유물.유적이 발견되지 않고,고구려 계통의 유물,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위서]권100<물길전>에 보면..."성을 쌓고 굴 속에서 생활을 하는데 집 모양은 무덤과 비슷하다.입구는 윗쪽에 내는데 사다리를 이용하여 드나든다."라고 하였다.그 앞의 읍루 역시 이런 주거 형태로 사서에 나타난다.그런데 현재 그 곳에서 우리의 고유 주거 형태인 온돌이 발견되고 있다.중국측 사서대로 본다면 말갈인들은 온돌에서 생활하지 않는다.단지,흑수 말갈만이 다를 뿐이다.그리고 그 온돌을 쓰는 사람들은 지금 한국인이다.중국이나 일본은 온돌을 쓰지 않는다. 고구려.발해.금나라가 온돌을 사용했다면,우리가 고구려.발해.금의 후손인 셈이다.
최근,블라디보스토크 동북쪽으로 400km 지점 성터 유적 발굴에서 고구려 유적.유물이 발굴되었다.이 지역은 중국 사서에 말갈 거주지로 나타나는 지역이다.그런데 고구려 유적.유물이 발견된 이유을 중국측 사서를 참조했을때 설명할 수가 없다.온돌 하나만 가지고 모든 증거라고 할 수 없겠지만,유일하게 고고학이 일원적 계층론에 힘을 실어주기 때문이다.
엉성하지만 나름대로 이원적 계층론을 비판하였다.
먼저 말갈.여진에 대한 시각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또한 한국 역사와 민족의 원류.범위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다음 장에는 한국 민족.역사의 범위,발해의 계승국인 금나라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발해의 주민 구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한규철 교수님 홈페이지를 이용해 주기 바란다.일원적 계층론의 이론이 뒷받침 된 발해국의 주민 구성 논문을 꼭 참조하기 바란다.이 글 역시 한규철 교수님의 주장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규철 교수님 발해사 홈페이지
- 주 -
1)박시형,<<발해사>>,김일성 종합 대학 ,1979;송기호 해제,<<발해사>>,
이론과 실천,1989,p.55
2)이전복,손옥랑 공저,강인구,김영수 공역,<<고구려간사>>,삼성출판사,
1990,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