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만주는 한민족의 원류이자,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 고려로 이어지는 중요한 땅입니다
또한 한민족이 만주를 무대로 활동했었고, 만주와 한반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어느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런 부분을 부정하고자 쓰는 글이 아니라,
만주족들이 쓴 만주원류고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요지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굿잡스님께서
<신라 관점으로 고조선 고구려 발해 이후 만주역사에 대해 우리의
전통성이나 역사성이 없다는 논리가 합당한가?> 라며 말하시는데..
제가 신라관점으로 말해서 그들의 정통성이 없다고 말했다면,
제 자체가 우리의 역사를 부정하는 꼴이며, 이것은 중국넘들이
한국은 삼한의 후예로 신라만의 역사다!라고 주장하는 걸 제가
그대로 주장하는것이고, 이는 제가 역겨운 중국인이나 다름없다는건데...
전 죽어도 중국인이 되고싶은 생각이 없으며, 오히려 그들이 주장하는걸 혐오한다라고
분명 밝혔습니다. (전 자랑스런 대한민국인입니다!)
단지 전 만주원류고에 정작 중요한 고구려역사가 빠진걸 의문삼은거고,
이는 현 주류사학계가
18C판 동북공정론 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염두해두고,
만주원류고를 신뢰하지 않는것과 같습니다.(무조건 믿지 않는건 마음에 안들지만..)
그런데도 청나라의 동북공정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런일을 저지른
만주족은 비판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현 주류사학계가 일제식민사관의 제자들이라 단정짓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비판만 하고있지 않은지 곰곰히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은 우리의 주장은 다 거짓말이라 믿지못하겠고, 저들의 말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없이 무조건 신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요새 대수맥이라는분께 탈탈 털리는 초록불이지만,
그가 주장하는 만주원류고의 진실에 대해서는 곰곰히 생각해볼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생이분들도 이 두사람의 글이 절대적인건 아니지만, 역사지식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두개다 보고 균형잡힌 시각을 보셨으면 합니다.
대수맥의 하나가라 우리나라 블로그
http://blog.daum.net/nero1003
초록불의 잡학다식
http://orumi.egloos.com/
그리고 초록불이 주장하는 만주원류고에 대한 글. (대수맥님 글에서는 만주원류고를
인용하는 부분은 있지만 이에대한 반박하는 글은 안보이네요ㅠ혹시찾으시면 답글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7. 청나라가 건국되고 청 왕의 명령으로 씌여진 만주원류고 라는 역사서에는 신라가 만주에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근거없는 이야기. 애신각라가 신라를 사랑하라는 말이라는 해석과 더불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일뿐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천문학 연구 결과를 들어 신라가 양자강 중류 지방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아마 그 시대에는 양자강 중류지방을 만주라고 불렀나 보다.
이 주장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궁금했던지라 조금 찾아보았다. [만주원류고]란 청 건륭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1771년 아계阿桂라는 사람이 편찬. 문화 전통이 없는 만주족이 한족보다 나은 종족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가식적으로 만든 책이다. 자기네 역사로는 당연히 별로 할 말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사까지 죄다 자기네 것처럼 그 안에 집어넣었다. 말하자면 [만주원류고]는 청나라에서 행해진 동북공정이었다. 이제와서 재야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따라 만주족도 우리민족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잘못 만들어진 역사책이 두고두고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에 대한 좋은 본보기다. 여진족은 우리와 신화도, 언어도 공유하지 않는다. 물론 역사도 공유하지 않았다. 재야들은 공유한다고 목청을 높이지만... 이 책은 신라, 백제, 부여, 발해, 숙신, 말갈 등등 우리나라 및 만주의 제 국가들을 다 언급하고 있는데 고구려는 쏙 빼놓고 있다. 왜 그럴까?
본론으로 돌아가자. 위에 언급한 문제의 글은 이런 것이다. 표점은 내가 찍었다. (이런 일로 표점까지 찍으며 이런 글을 읽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주원류고 권 9 신라편 신라9주 조
謹案, 新羅始附庸於百濟, 後兼加羅 任那 諸國與百濟爲隣. 考其疆土, 東南並有今朝鮮之慶尙江原二道, 西北直至今吉林烏拉, 又西近開元鐵嶺. 唐顯慶以後, 又得百濟故地及高麗南境, 於是東西增九百里, 南北增千餘里. 開元以後, 渤海盛强其西北諸境, 盡爲所倂. 新羅所有僅鴨淥江以南.
우선 저기 첫대목에 나오는 [근안謹案]이라는 말에 주의하라. 이 책은 기존 사료에 있던 글들을 모은 다음에 청나라 학자들의 해석을 [근안]이라는 이름으로 붙여놓았다. 즉 이후에 나오는 말은 어떤 사료에 있는 말이 아니라 그냥 지네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바로 여기에 나와있는 이야기를 대단한 사료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다. 저 인용된 문구의 빨간 부분이 재야가 주장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대략 번역하면 이렇다.
삼가 살피건대 신라는 처음에 백제에 부용되었으나 후에 인근의 가라, 임나 백제 등을 겸병하였다. 그 강토를 살펴보면 동남으로 지금 조선의 경상 강원 2도요, 서북으로는 길림, 오랍에 이르고 또 서쪽으로는 개원, 철령 부근이다. 당 현경(656-660년) 이후에 백제 옛땅과 고려 남쪽경계까지 얻어 동서로 구백 리, 남북으로 천여 리를 얻었다. 개원(713-741) 이후에 발해가 강성하여 그 서북 경계를 모두 병합하였고 신라는 압록강 이남의 땅만 차지하였다.
이 글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하나 짚어보자. 우선 이 글은 신라가 통일 전쟁 이후 9주를 설립했을 때의 영토를 설명한 글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다음 [만주원류고]는 고구려를 의도적으로 뺐다고 했는데, 그에 맞춰 신라의 영토를 고구려의 영토까지로 확장해 놓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위의 문장을 보면 고구려를 병합했다는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역시 고의로 없애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고구려 이야기를 하면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졌고, 그곳에 안동도호부가 설립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말갈이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 결국 당(한족)에게 말갈(여진족)이 복속된 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 그것이 싫었기 때문에 고구려를 빼버리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땅은 발해가 당으로부터 빼앗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쓸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땅이 신라 것이 되었다고 쓰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조작을 대충 하다보니 [만주원류고] 안에서도 문제를 일으켰다. 신라9주 조의 마지막 항목에는 이런 구절이 들어있다.
至九州之設, 東至吉林, 西至廣寧, 跨海蓋而包朝鮮幅員式擴矣
앞의 문장과 무엇이 다를까? 길림이 앞의 글에서는 [서북]이었는데, 이번에는 [동]이 되었다. 방위가 왜 이렇게 들쑥날쑥할까? 윗 글을 쓸 때는 신라 입장에서 서북쪽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밑의 글은 고구려 영역을 모두 신라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작성한 것이다. 이런 황당한 사서가 [만주원류고]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만주원류고] 이외에는 이런 황당한 설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만주원류고 안에서 밝혀야 하는 것은 청황실이 왜 이런 사고를 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그들이 생각한 것을 가지고 고대사를 꾸며대는 일이 아니다.
36. 청나라 황제들의 성씨인 애신각라 는 신라를 잊지않고 사랑하겠다는 뜻이다.
아래 37번에 나오듯이 애신각라는 여진어로 "금족金族"이라는 뜻이다.
37. 애신각라를 몽골어로 읽으면 아이신 지료 라고 발음된다. 아이신은 금(金)을, 지료는 겨레(族)를 의미한다. 신라의 왕족은 금(金)씨이다. 청나라의 원래 이름은 금(金)나라 이다.
청은 본래 나라이름을 후금後金이라고 했다. 이것은 본래 아골타가 한 말에서 기인한다. 아골타는 [요遼]와 원수지간이었다. 요를 멸망시키고자 맹세하면서 요는 빈철=좋은 철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나라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는 아니다.) 그래서 쇠보다 강하고 변하지 않는 금을 자기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는 주장이 금사에 나온다. 그런데 금사 지리지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 금이라는 국호는 여진 완안부의 고향인 按出虎水에서 나왔다고 되어 있다. 여진어로 按出虎는 금이라는 뜻이다. 이 물에서 금이 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 것이다. 이것으로 나라 이름을 취했다고 한다. 신라 성씨가 거기에 왜 끼겠는가?
38. 임진왜란 때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가 조선 선조에게 부모님의 나라를 침략한 쥐 같은 왜구들을 해치우겠다는 요지의 편지를 썼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청 태종이 인조에게 삼고구두배를 시킨 뒤에는 자신들이 부모의 나라라고 했다. 옛날 동아시아는 부모-형제의 관계로 나라 관계를 정립했었다. 힘이 약한 쪽이 자식 나라가 되거나 아우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것은 역사학의 기본에 속한다. 즉 기본도 모르는 소리인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저런 말을 했는지 근거를 제시한 원전을 보지 못했다. 조선왕조 실록에는 이런 소리가 있다.
선조 30권 25년 9월 17일 (갑술) 004 / 여진이 왜적을 정벌하는 데 돕겠다고 한 것에 대해 명나라 병부와 주고받은 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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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부(兵部)가 요동 도사(遼東都事)를 시켜 자문을 보내왔는데, 자문에,
“이번에 여진(女眞)의 건주(建州)에 사는 공이(貢夷)와 마삼비(馬三非) 등이 하는 말에 의거하건대 ‘우리들의 땅은 조선과 경계가 서로 연접해 있는데 지금 조선이 왜노(倭奴)에게 벌써 침탈되었으니, 며칠 후면 반드시 건주를 침범할 것이다. 노아합치(奴兒哈赤) 휘하에 원래 마병(馬兵) 3∼4만과 보병(步兵) 4∼5만이 있는데 모두 용맹스런 정병(精兵)으로 싸움에는 이골이 났다. 이번 조공에서 돌아가 우리의 도독(都督)에게 말씀드려 알리면 그는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좋은 사람이니 반드시 위엄찬 화를 내어 정병을 뽑아 한겨울 강(江)에 얼음이 얼기를 기다렸다 곧바로 건너가 왜노를 정벌 살륙함으로써 황조(皇朝)에 공을 바칠 것이다.’ 했습니다. 이 고마운 말과 충의가 가상하여 그들 말대로 행하도록 윤허함으로써 왜적의 환란을 물리치고자 하나 단지 오랑캐들의 속사정은 헤아릴 수가 없고 속마음과 말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더구나 저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들이니 선뜻 준신하기 어렵습니다.”
위 말에는 쥐새끼 운운이나 부모의 나라 운운은 보이지 않는다. 아무튼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근거를 좀 제시하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거라도 읽고 대체 청이 우리나라와 무슨 관계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치욕의 삼전도비 [클릭]
39. 금나라 역사서인 금사 를 보면 금 태조는 고려에서 왔다고 기록되어있다.
그렇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왜 미스테리일까? 이 주장은 금 태조가 고려에서 왔으니, 금나라는 우리나라. 그러니까 화북지방도 우리가 다스린 것이다라는 한심한 논리를 받쳐주기 위해 나온 이야기다. 왕의 출신에 따라 나라의 역사가 바뀐다는 멍청한 생각에 기인하고 있다. 영국 왕실은 독일에서 왔다. 그러면 영국은 독일땅인가? 노르만인 윌리엄이 영국왕이 되면 영국 역사는 노르만의 역사로 변하나?
그럼 발해는? 이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더라. 발해의 주민이 고구려계였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는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국내 발해전문학자들의 글 좀 읽어보고 나서 덤비기 바란다.
한가지 더 이야기해놓자. [고려사]를 보면 왕건의 조상은 당나라 숙종이다. 그러니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금나라는 커녕 고려사까지 중국에 바쳐야 한다. 고려는 당나라 후손이 세운 나라니 중국 것이고, 그 중국 것인 고려에서 금나라가 나왔으니 금나라도 중국 것이다. 또 이 사람들의 논리대로라면 일제가 강점한 기간동안은 한국사가 아닌 것이 된다. 이런 자들이 누구보고 친일파라고 짓까부는지 모르겠다. 대동아공영론에 동조동근론을 착실히 받쳐주고 있는 인간들이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건국 영웅은 외부에서 온다. [클릭]http://orumi.egloos.com/2972228
40. 청나라 황실 역사서인 만주원류고에는 금 태조가 나라 이름을 신라의 왕의 성씨에서 따왔다고 기록되어있다.
원문 제시라도 하면서 이런 주장을 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식의 주장은 마음만 먹으면 아무나 마구 해댈 수 있다. 내가 본 어떤 책에는 우리 조상들이 외계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 안드로메다 쯤에서 왔나 보다.
어떤 사람은 원문보여준다면서 한글로 자기 마음대로 써놓고는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대체 그런 수준으로 무슨 역사를 논한다고 하는지 이해할 길이 없다. [만주원류고]에서 뭘 보고 저렇게 이야기했는지 찾아냈다. 한번 보자. 괄호 부분이 청나라 학자들의 해석이다.
欽定滿洲源流考 卷七 部族 完顔
金史世紀 金之先出靺鞨氏 古肅愼地也…金之始祖諱哈富(舊作函普) 初從高麗來
(按通考及大金國志皆云 本自新羅來 姓完顔氏 考新羅與高麗舊地相錯 遼金史中 往往二國互稱不爲分別 以史傳按之 新羅王 金姓 相傳數十世 則金之自新羅來無疑 建國之名亦應取此 金史地理志乃云以 國有金水源爲名 史家附會之詞 未足憑耳)
흠정만주원류고 권7 부족 완안
[금사세기]에 금의 선조는 말갈씨에서 왔으며 옛 숙신의 땅이었다고 한다.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 생략) 금의 시조는 이름이 합부(옛날 기록에는 함보라 한다.)인데 처음에 고려에서 왔다.
(살피건대 [문헌통고]와 [대금국지]에는 모두 본래 신라에서 왔으며 성은 완안씨라고 나온다. 고찰해보면, 신라와 고려는 옛 땅이 서로 섞여 요금사 중에 종종 두 나라의 호칭을 분별하지 못했다. 신라왕은 성이 김으로 수십 대를 전해내려갔다. 즉 금이 신라에서 온 것은 의심할 것이 없다. 건국지명도 여기서 취한 것이다. [금사 지리지]에는 나라 안에 금이 나오는 물이 있어 이름을 삼았다 하나 역사가의 견강부회로 신빙성이 부족하다.)
다시 말하지만 [按-살피건대]라고 되어 있는 것은 청나라 학자의 생각이다.
그 생각 중에서 [금이 신라에서 온 것은 의심할 것이 없다]라는 말에 나오는 [금]은 [함보]를 가리키는 것이다. 함보가 신라사람이었는지, 신생 고려 사람이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는데, [만주원류고]에서는 별 근거없이 단정하고 있다. 또한 초기 기록인 [금사 지리지]를 근거없이 견강부회라고 몰아부친 뒤 자신들의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앞서 [만주원류고]에 대해서 말한 바 있지만 여기서도 고구려를 의식하여 의도적으로 고려에서 출자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에는 조선이 신라의 계승자라는 의식이 깔려 있다. [만주원류고]에서 삼한 및 신라, 백제를 모두 다루고 있는 것은 조선도 다 자기네 것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청나라의 동북공정 [만주원류고]에 홀딱 넘어가서 근거도 없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불쌍한 인간들이 바로 이들 재야라는 족속이다.
41. 송나라때의 역사서 송막기문에는 금나라 건국직전에 여진족이 부족국가 형태일때의 추장이 신라인이라고 기록되어있다.
39번, 40번과 동일한 이야기다. 추가로 한마디 하자면 [부족]은 [국가]가 될 수 없다. 저 용어는 김철준이 주장한 이후 역사학에 악영향을 끼친 대표적인 용어다. 오늘날 역사학에서는 전혀 쓰이지 않지만, 저 말을 배운 사람들이 여전히 쓰고 있어서 사라지질 않는다. 용어가 한번 잘못 쓰이면 얼마나 개념을 해치는지 보여주는 예다. [행성]을 [혹성]이라고 자꾸 쓰는 것과 비견할 수 있다.
역시 이 글을 참조하라. 건국 영웅은 외부에서 온다. [클릭] http://orumi.egloos.com/2972228
42. 현재 우리나라 부안 김씨의 족보에 금 태조의 이름이 나와있다.
39번, 40번과 동일한 이야기다. 우리나라 족보에는 공자를 조상으로 삼는 사람도 있으며, 중국의 유명 인물을 시조로 삼는 집안이 하나, 둘이 아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우리나라 사람은 다 중국인이었다는 말일까? 따지고 보면 고려사에는 왕건의 조상이 당나라 숙종이라고 나온다. 그럼 고려사는 중국사가 되나? 이것도 역시 이 글을 참조하라. 건국 영웅은 외부에서 온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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