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는 B.C 18년 온조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 백제를 세웠으며, “온조왕 13년(B.C6) 7월 한산(漢山) 아래에 울짱을 세우고 위례성의 민가를 옮겼다. 8월 사신을 마한에 보내 천도할 것을 알리고 드디어 경계를 정하되 동으로 주양(走壤), 서로 대해(大海), 남으로 웅천(熊川), 북으로 패하(浿河)를 한계로 했다”라고 천도(遷都:도읍을 옮김)한 기록이 있다
천과 주양은 현재 어디인지 알 수가 없으며, 북쪽 패하는 패수(浿水)를 말하고, 서쪽 대해는 황하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이 지역을 100% 확실치는 않으나 황하북부 하남성 제원(濟源)시와 그 남쪽에 있는 맹주(孟州)시 사이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기록도 그런데다가 제원시의 글자가 백제의 제(濟)자와 근원 원(源)자라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고구리사초략>에는 온조의 백제 건국에 대해 “광명대제 3년(B.C17) 갑진 정월, 순노와 절노는 비류가 미추홀(彌鄒忽)에서, 관노와 계루는 온조가 우양(牛壤)에서 다스리게 했다. 7월 한남왕(汗南王) 온조가 입조해 위나성(尉那城)으로 도읍을 옮기겠다고 청해 윤허했다”라고 되어 있어 비류와 온조는 애초에는 고구리 광명대제(유리명왕)의 제후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온조의 천도년도에 대해서는 “광명대제 14년(B.C6) 을묘 7월, 온조가 한산(漢山)에 목책을 세웠다. 재사 공주를 온조에게 처로 주었다”라는 기록이 있고, “26년(7) 정묘 4월, 온조가 한산으로 거처를 옮겼다. 온조에게 병사와 식량을 보내주어 한(韓)을 정벌하는 것을 도왔는데, 3년을 계속했다. 27년(8) 무진, 온조가 한산으로 천도했다”는 기록이 있어 약간 다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