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발해에서 백두산에 보본단을 설치하고 제사지냈으며, 요(遼)나라에서도 사당을 세우고 박달나무를 심었다. 태조는 왕비와 같이 청우백마(靑牛白馬)로 삼신에게 제사지냈으며, 금(金)나라 대정(大定) 12년(1172) 12월 백두산 북쪽에 사당을 세웠다. 그리고 명창 4년(1193) 10월 ‘개천홍성제(開天弘聖帝)’라고 봉책하였다.
단군을 상징하는 나무가 박달나무인데 요나라에서 사당을 세우고 박달나무를 심는것을 보면 단군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삼국유사에서 보면 단군은 산신이 되었다고 나오니까..만주족들이 백두산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도 이것과 연관이 있다 생각합니다. 아니 애초에 왜 하필이면 백두산에 제사를 지냈을까? 생각하면 단군,환웅정도밖에 답이 나오지않네요. 백두산을 성산으로 하는 민족들(우리나라포함)이 왜 백두산을 숭배할까요? 그냥 높이가 높아서? 아니죠.. 단군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연관이 있다 정도는 확신할 수 있죠
해석이야 목에 걸면 목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인데,, 가설은 분분하나, 딱히 뭐라고 정확히 떨어지는건 없죠. 북방민족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나무들이 주로 자작나무, 박달나무(박달나무도 자작나무 종류라고 알고 있는데..), 버드나무가 있고- 이것들은 지금도 북만주 일대 기후에서 잘 자라는 나무들임.
만주족 신화에, 자기 조상인 포구리옹순은 백두산 천지에서 목욕하던 선녀가 마침 그 위를 지나가던 새가 떨어뜨린 열매를 주워먹고 임신한 아기라는.. 뭐 그런 전설이 있어요.
오히려, 이 해석대로라면, 이건 딱봐도 부여의 동명왕이나, 고구려 주몽설화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지.
딱히, 단군이라곤...
그리고, 박달나무를 단군과 연관있다고 보는 것은, 순전히 박달=배달민족할때 배달과 어원이 같지 않을까? 하는 추측때문인데, 특히 단군의 단이 박달나무 檀단이라서 연관을 짓는다지만,
한자는 표의문자라서, 음을 쓰는 글자가 아니기에, 원음대로 정확하게
과연? 고조선 당시에 단군을 뭐라고 불렀을지는 모르는거죠. 음차표기일꺼라고 생각하는데,
당시에, 과연 고조선인들이 한자를 사용했는지도 우리야 모르는거고,,
오히려, 무당을 의미하는 [당굴]이란 순수 우리말의 음차표기일꺼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지요. 또는, 몽골어의 [텡그리]와 연관되었을꺼라고 보기도 하구요.
무슨말인지는 알것 같은데 예전에는 제정일치사회였으니깐 무당들이 정치도 한거지 무당과 신녀가 전혀 다른개념이라는건 아닌거 같은데요?
단군역시 하늘의 직계후손임을 스스로 주장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위치에 있었다는게 조금 다르죠. 만약 한반도에 흩어져 있는 무당들이 단일신을 섬기고 지위고하가 생긴다면 단군은 그 수장쯤 되는 역할이 있다면 예를들어 카톨릭의 교황이나 티벳불교의 달라이라마 판첸라마같은 직급이 있다면 그 직급하고 비교하는건 어떻습니까? 그래도 거부감이 드시나요?
조선시대에 진짜 거의 완벽하게 재정이 분리되고 민심을 움직일수 있는 존재들의 권위가 땅바닥으로 떨어져서 그렇지 무당이라는 개념자체가 고대의 천녀,신녀, 혹은 제사장과 다르다고 주장하는건 조금 멀리간거같습니다.
프린켑스랑 아우구스투스- (국가의 아버지란 뜻의 명예 or 권위)를 뜻함.
임페라토르 칭호 - 최고 군사령권/호민관 특권- 원로원에 대한 거부권
최고 제사장 - 종교적 상징성.
이것들의 정치적 절차를 통해 부여받고 인정받고 나서야
황제로써 군주노릇을 할수 있는게 로마황제//
로마황제가 무당-사제다 하면, 다들 이상하게 본다? -.- 아니 누가요?
전혀 이상할게 아님.
실제로 로마 제 1의 제사장이기도 했습니다. 로마황제보고 제사장이라고 한다고 욕할 로마인 하나도 없었음.
말장난은 님이 하시는건 같다만? ㅋㅋㅋ
왕은 맞고, 제사장은 안됨? 아니왜???
뭔가 착각하시는거 같은데, ~이기도 하면서 ~이기도 하다.. 이건 걍 두 개념이 평등한거예요..
청나라 황제가 만주와 몽골 대칸이면서/ 중국황제이자/티벳의 전륜성왕의 화신
이 직위들은 서로 평등한 것입니다.
고조선을 떠나서, 근대에 망한 청나라 황제들도 제사장 역활도 했습니다.
걍. 왕이면서 무당이예요.
무당이라고 한다고 왕의 권위에 흠집나는 것도 아니구요.
뭐, 대단한 근거가 있어서 님이 이런말 하는가? 싶었는데,
나의 상식에선 아니다?? - 이건 뭔지? ㅋㅋㅋ
님의 상식에서 벗어나면 틀린말인가요?기준이란게 너무 주관적인거 아닌가요?
그럼, 저의 상식에선 맞는말입니다만?
단군(檀君) 왕검(王儉)이 하늘에 제사 지내기 위하여 마니산(摩尼山) 산정(山頂)에 마련했다는 참성단(塹星壇).
조선 시대에도 인조 17년(1639)에 개수축하였고 숙종 26년(1700)에 또 개수축하고 비(碑)를 세우기도 하였으며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짐.
공서린이 아뢰기를, “예문을 무너뜨려서는 안 되는데 가산과 전토와 노비를 위해 후손을 세우지 않음은 크게 불가하고, 수의 후처가 스스로 후손을 세움도 마땅치 않습니다. 또한 소격서와 마니산참 초제는 부득이해서 하는 것인지, 신은 알 수 없으니 이런 제사들은 마땅히 혁파해야 하지 않으리까?” 하였다. ; 瑞麟曰 禮文不可毁也 爲家財田民 而不立後者 大不可 洙之後妻 不宜自立後也 且昭格署 摩尼山塹醮祭 其不得已而可爲者乎 臣未知也 如此等祭 無乃當革罷乎
[중종실록 권제26, 46장 앞쪽, 중종 11년 10월 21일(기사)]
무당이 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여러가자지 조선시대의 관념때문에 무당과 고대의 제왕들을 동일시하는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것 같은데.
무당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의장까지 겸임할수 있었던거지 임금이라서 제사장 신녀의 역할을 한게 아닙니다. 위에분 주장을 보면 본질을 거꾸로 알고 있는것 같아요. 마립간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 모두 제사를 주관하는 위치를 가지고 있었고 설령 제정이 분리된 사회였다 할지라도 흉년, 장마, 가뭄 등의 기근이 들면 그 책임을 왕에게 물려서 왕도 갈아치울수 있는 권한을 가진게 고대에 제사장,신관 신녀들 즉 무당이였습니다.
단어의 외연적 내연적, 의미 때문에 그러시는데
기능적으로 보면
제사장= 무당으로 보시면 되는 거겠죠
인간의 문화가 발전하면서
시간과 더블어
사회가 변하고
지도이념이 변하고
원시종교는 그 역할이 퇴화했습니다
역할이 퇴화한 만큼 그 종교의 수행자 대행자인 무당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 또한 하락했을 뿐입니다
유불선이 우리네 의식에 들어오면서
보다 보편적인 교리에 밀려
원시종교는 정치력을 잃어갔지만
아직도 대중들에게 무시 못할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 그 샤머니즘이 독단적으로 혹은 기독교 불교 유교와 결합해서 위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무당이 주로 여성인 이유는 모계사회적 전통 때문입니다
위 어느 분이 말씀하신 신라 천관녀나 화랑(낭도의 우두머리로서 여성임),여왕은
그런 모계사회적 전통의 흔적들입니다
지금도 남아 있지만 20세기 초만해도
무당이라 지칭될 수 있는 신관은
아프리카나 폴리네시아 남미 원주민 사회에서 추장의 역할이나 추장을 보좌하는 지위에서 막강한 권력을 누렸습니다
무당이라는 단어가 갖는 21세기의 외형에 연연하면
잡신을 섬기는 사람 천한 사람, 사기꾼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그런 인식은 불교나 유교에 밀려나면서 부터 생긴 이미지입니다
즉 왕 ,제후,군자나 선비, 3정승,당상관이라는 단어 혹은 그 지위에
밀리고 밀려서 현재의 무당이라는 외연적 의미가 만들어진것이지만
기능적으로 ,내연적으로 생각해보면
한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우리말
당구리 ....는 최고 귀족이며 신 혹은 신의 대행자의 역할을 한 귀족 걔급입니다
유교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한자로 무당"이라는 존재는 집단적 ,정치적 권력이 배제된
당구리...즉 하늘의 기운, 운세를 살펴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람입니다
즉 신의 계시를 받아 부족이나 국가의 미래를 점치던 계급이 불교나 유교가 더욱 보편적 지지를 받던 시대에 는 점점 밀려나면서 스님이나 선비, 관료에 밀려 개인의 행복과 안위를 점치는 스케일로 변화한것 뿐입니다
즉 한반도에 서식하던 거대한 공룡이 현재는 5센티 도마뱀의 모습을 하고 북한산에 남아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당연히 무당이라는 단어는 유교적 인식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니
유교적 질서에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물들어 있는 우리들에게
당연히 천하게 생각되겠지만
당구리라는 단어는 제정일치시대에 만들어진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엄한 지위를 지닌 자를 의미합니다
즉 신성한 존재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당구리와 무당은 그 지위와 귀천이 다르지만 기능적으로는 같습니다
광대와 톱스타 탈랜트 ?
다른가요?
tv와 미디어가 발전하면서 만들어진....
즉 여건이 변화하면서 이미지가 상승한 직업이죠
시골장터, 마당놀이패와 예술의 전당 ,유니버설 발래단이 뭐가 다른가요?
단군도 오늘날 민족 종교의 수장으로 지칭되지만 당시에는
샤만이었습니다
하늘의 이치와 의지를 인간에게 알려주는 주술사이자 최고권력자였죠
국가 통치사상과 민간 기복신앙 간의 차이를 이해하시면 쉽습니다.
단군의 경우 천손사상이 되겠군요.
하늘(신)의 자손으로서 하늘과 통하는 의식도 주재하고 해서 정치적 정당성을 입증 받았다는건데
이건 부족사회 단계의 샤먼이나 국가단계의 민간 샤먼이랑은 엄연히 그 지위나 의미, 역할이 다릅니다.
왕이 존재하는데 민간 샤먼이 "난 하늘의 자손이다"라고 떠들고 다니면 목이 날아갔겠지요?
우리 역사에 무당이란 말이 쓰인거 자체가 그리 오래된게 아닙니다.
애초에 무당이란 말 자체도 민간 기복신앙을 주재하던 샤먼을 지칭하던 거고.
(해서 신령이나 귀신 등과 소통한다는 수준이지, 하늘의 자손이라던가 대리자 라는게 아니지요.)
이런걸 구지 단군이란 호칭이 있고 엄연히 지위나 의미, 역할이 다른데
거기다 대고 무당 타령을 해대니 이해가 안가는거구요.
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겠습니다
씨족사회가 부족사회로 커지면 그 소속원들을 통합할 수 있는 더 큰 사상(종교나 이데올로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샤만에게는 뒷산 신단수보다는 백두산처럼 보다 대중에 공유되는 이미지가 필요한거지요 백두산보다는 하늘이 대중에게 더 설득력을 갖는 신적인 가치를 투여할 대상이 되겠지요
다른 씨,부족을 통치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내세운 셔먼이 단군입니다
님이 말씀하시는 국가 통치 사상라는 것은
즉....
씨족, 부족보다 훨씬 큰 연합체 ,,,,
즉 고대 국가가 출현할 때 , 그 규모를 통치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저 밑에 무당이 언제 만들어졌냐고요?
단군시대에 무당이라는 말이 존재한 증거를 대라하셨는데
단군시대에는 무당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단군시대는 갑골문자가 만들어지던 시대보다 700-1000여년 앞선 시기니까요
삼황오제보다 앞선시기입니다
단군이라는 단어 혹은 한자 명칭은 후일 한자음과 박달나무와의 연관성을 가지고 만들어진 假借입니다
즉 유교의 옷을 입은 샤먼입니다
님이 걱정하는 것처럼
단군을
무당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그 지위를 폄하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는 이유 역시
유교적 시각이 개입됬기 때문입니다
무당이 아니라 師巫라 하면 좀 더 편하실지요?
巫堂의 무자는
工 과 人으로 되어 있는데
인간들 사이에서 하늘과 땅 사이(-과 _)를 통찰하는 이어주는(i) 사람을 의미합니다
유교의 영향으로 무당이라는 단어가 천하게 인식되지만
무당의 巫자는 결코 천하지 않습니다
왜?
그 무자가 만들어지던 시기는 샤만이 굉장한 권력을 가진 시기였기 때문이져
한자의 기원인 갑골문조차 샤만이 점치다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늘의 기운과 운세를 알아보려는 행위에서 발전했던거죠
님의 결론 말씀중에
"구지 단군이란 호칭이 있고 엄연히 지위나 의미, 역할이 다른데
거기다 대고 무당 타령을 해대니 이해가 안가는거구요."(님이 쓴글을 붙여넣기 한것입니다)
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단군은 당구리의 가차입니다
단군시대에는 무당이라는 단어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무당이라는 말이 마음에 드시지 않는다면
사무(師巫)나 제사장, 샤만으로 하면 어떨른지요
파라오도 샤만이니 불만없으시겠죠?
무당이라는 말씀이 거슬리신다면
(그 거슬리는 시각 자체가 님이 유교적 시각에서 무당의 의미를 바라보거나
수백년간 만들어져 온 ,,, 쇠퇴해온 무당의 사전적이고 외연적 의미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극단적으로....
단군을 주체적으로 보려면 단군을 단군이라 부르면 안되는 것이죠
단군이 출현함으로서 개인기복신앙이 완전 단절되고 국가 통치사상만 출현하게 된것이 아닙니다
고대국가 출현상 거의 필연적 귀결이죠
국가 발달사적 측면에서 찬란한 고대문명을
가진 나라에서 출현하는 보편적 현상들이죠
태양신 천신..... 선민의식과 더블어.......
그럼 유교에서 하늘은?????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
하늘의 이치(天命)를 따르는 것을 性이라하고
그 性을 따르는 것을 道라 한다......
이런 사상들이 타부적인 샤만,토테미즘을 밀어낸거죠
만약 샤만 토템미즘이 유교보다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교리를 가졌다면(그럴 수 없는걸 알지만) 무당은 오늘날 정당 최고위원이나 적어도 먹사 쯤하고 있었을 겁니다
무가, 오래된 판타지-살아있는 고전문학 교과서
['무가'는 무당이 굿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굿 노래'라고도 한다. '무당'이나 '굿'이라... <단군신화>와 <주몽신화> 같은 건국 신화도 고대 무속신화와의 연관 속에서 형성된 것으로...]
서낭당-네이버케스트
[한국에서 이러한 신목의 원형은 단군 신화에 나오는 신단수(神檀樹)에서 찾을 수... 이 기사에서는 또 이곳에 천군(天君)이라는 무당 혹은 사제가 살았다고 전합니다. 방울과 북은...]
단골-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정의] 호남지역에서 혈통을 따라 세습되는 무당. [내용] ‘단골네’·‘단골에미’... 단골의 어의와 어원에 관하여 일찍이 단골→단군(檀君)→천(天)의 관계를 제시한 견해가 있다.]
호남당골굿-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신앙사전
(무속문화재정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3호(2005) 집필자 송화섭(宋華燮) 신앙 편) 인문과학
[[내용] 호남 지방의 무당은 당골·단골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유형으로는 세습무로 분류된다. 단골의 어원에 대하여 단군, 천군, Tengri에서 나왔다는 고대 제사장의 유래설이 있는가 하면 신단과 신당을 모시는...]
샤머니즘-학습용어 개념사전 어린이백과
[샤먼(무당)이 신의 세계나 악령, 조상신 등과 직접적으로 교류하면서 점을 치거나, 예언, 병 치료 등을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고조선의 단군왕검, 삼한의 천군, 신라의 차차웅 등이 이러한 역할을 했다]
조선무속고
[환웅이나 단군이라는 이름 자체가 무당이라는 뜻이 있으며 그 이름이 마한의 천군(天君)과 신라의 차차웅(次次雄)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아 무속을 외래 기원이 아닌 한국의 자생적이고 독자적인 문화이다]
법제-한국민족문화대백과
[고조선의 단군과 한(韓)의 천군(天君), 신라의 고유한 왕호의 하나인 차차웅(次次雄, 또는 慈充)은 주술사나 무(巫)를 일컫는 말이다. 오늘날의 무당도 이 원시적 샤머니즘의 전통을...]
무교-위키백과
[단군은 특이하게도 무를 집행하는 사람인 무당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단군 왕검에서 왕검은 제정 일치 사회의 제사장, 즉 종교의 우두머리도 뜻하니 틀린 주장은 아니다.]
웅녀-[웅녀 (熊女)는 단군신화에 나오는 단군의 어머니이다. 신화에 따르면 웅녀는 원래 곰으로, 인간이... 일대에서 무당을 가리키는 Kam, Gam이나 고(古) 터키, 몽골, 신라, 일본, 아이누 등에서 신을 의미하는 Kam, Kamui...]
엔타님 귀신을 섬겨 길흉화복을 점치고 굿을 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제사장이라고도합니다.무당이라고 해도 상관없구요.
지금 제사장이라 부르는 신분의 사람들은 후에 그 사상이 메이저종교가 된것이고,
무당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마이너 종교가 된것뿐입니다.
객관적 시선에서 보자면 메이저종교나 마이너 종교나 신이한 일, 길흉화복을 주재하면서 인생을 풀어나가는데 주력한다는 점에서는 똑같은 겁니다.
따라서 제사장이나 무당이나 똑같은 시선으로 볼 수 있어야 객관적인겁니다.
메이저 종교에서 마이너 종교를 폄화하면서 만든 이미지를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객관적인척하시는 모습이 우습군요. 그래서 mymiky님이 '무당이란 이미지에 부정적이신분은 엔타님같다'고 말씀하신겁니다.
"무당이란 말은 옛 속담에서도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될 만큼
왕이나 종교 지도자 같은 신성시되는 사람들을 지칭할만한 호칭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셨죠?
이 말에서 이미 마이너 종교를 천시하고 메이저 종교를 신성시 혹은 추앙하는 선입견을 볼 수 있군요.
또한 단군시대에 메이저종교와 마이너 종교의 차이는 극히 미미했거나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엔타씨가 그렇게도 무당과 다르다고 여기는 기독교의 성인 모세 조차도 산에서 십계명을 받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두고 산수행과 샤먼적인 요소를 찾을 수도 있고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왕이나 종교지도자를 신성시 한다는 말에서 이미 당신은 공정한 시선을 잃은겁니다.
그리고 또한 덧붙이자면 무당들이 섬기는 귀신이랑 단군이 섬겼다는 하늘이나 기독교에서 섬기는 여호와나 다를것 없습니다.
모두 하나같이 그냥 spirit이라고 불리는 것들입니다.
님이 어느 하나는 신성시하고 다른 하나는 천시하기 때문에 혼동이 생기는겁니다.
그리고 제사장이라는 말은 제사라는 의식에 국한된다는 인상을 주기 쉽습니다. 수행,귀신을 섬기는 모습(귀신이나 신이나 spirit이라고 동격이라고 이미 말했죠), 점치는 모습 등등의 다양한 모습을 배제시키는듯한 용어라서 꺼려지는군요
차라리 운명을 예측하는 모습, 재앙을 물리치는 행위(제사,굿 모두 이런 행위에 속합니다),영적인 역량강화를 위해 수행하는 모습(계룡산에 무당들이 들어가서 수행하듯이 과거에도 종교지도자들이 수행을 했죠. 모세도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고, 석가모니도 그런 관점에서 숲으로 수행을 떠낫다고 봅니다.) 등등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가 현재는 무당밖에 없군요. 불교용어인 사문이란 말을 쓰기에는(사실 이 용어는 슈라만으로 샤먼과 어원적으로 같습니다.) 수행적인 측면을 너무 강조한 면이 있고 세속과 괴리된 인상을 줍니다.
그런면에서 무당이 더 적합할 수도 있습니다.
댓글을 보니 무당이라는 말에 민감하신 분이 계시내요.
단군역시 제정일치의 사회에서 지금의 무당의 역할을 한겁니다.
그당시 제사장이나 종교의 수장들이 어떤 신을 모셨나를 생각해보면,
샤머니즘을 바탕으로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신앙인 무속신앙일 수 밖에 없죠.
불교사회와 유교사회를 거치면서 그러한 우리 민간신앙이 많이 쇠퇴하고
무속인들을 낮게 바라보게 되었지만, 고대사회에서의
무속인들은 귀족에 버금가는 당시 사회의 주류였습니다.
무당이란 말에 굉장히 민감하신 거 같은데, 제정일치의 사회인 고대사회를
생각하면 민감해하실 필요도 없고, 당시의 샤머니즘에 입각한 무속신앙이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불교와 도교의 영향으로 지금에 이르렀다는 걸
생각하면 무당이라는 말 자체를 그렇게 비하해서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게 그 고대사회의 제사장들이나 종교인들의 맥이 지금에 이어진 것이
바로 무당이라 불리는 무속인들입니다.
단군을 지금의 무당과 비교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그 맥은 같습니다.
단군시대에는 한문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무당이라는 단어도 없었죠
단군은 적어도 1000년 정도 뒤에 만들어진 한자적 표현으로 ,
그시대의 단군은 당구리로 불렸고 단군은 당구리의 가차입니다
무당의 巫자를 파자해보면 ㅡ(하늘)_(땅)사이 인간(人)을 이어주는(ㅣ) 매개자를 의미합니다
즉 현재 무당은 전근대적 미신을 사주하는 사람이지만
한자가 만들어지던 시기는 굉장한 권력을 갖은 사람이었습니다
제 의견은 저~어↑에 있습니다 엔타님이 못보시거나 안보실까봐 개략적인 것만 적습니다
무당이란 단어가 마음에 안드시면 무격이라고 하세요.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당=무격=샤먼=사제=신관 모두 같은 말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당 이란 말을 주로 사용하는 거죠. 다만 불교의 무당=사제를 승려라 부르고, 기독교의 무당=사제를 목사 혹은 신부라고 부르는 겁니다. 무당이란 단어가 그렇게 못마땅 하시면 직접 새로운 단어를 만드셔서 널리 퍼지게 하면 모두 그 단어를 사용하겠죠 그러기 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기독교, 불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 신의 사제는 전부 무당이라고 불리는 겁니다.
그리고 단군이 무당+왕인게 뭐가 이상합니까 초기역사시대의 왕들은 거의다 사제왕입니다. 하늘(신)을 대리하는 무당으로서의 성격과 집단의 지도자인 왕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였죠. 그러다 시대가 흐르면서 무당의 역할은 전문 신관에게 넘어가고 왕의 특성이 강화된겁니다. 이는 딱히 단군만의 특징이 아니라 동서양의 고대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는 말할것도 없거니와 에트루리아 점령이전의 고대 로마의 왕들은 숲의 신을 섬기는 무당의 역할도 하였습니다.
유학자들이 비하하기 위해 쓰던 말을 쓰는게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이해가 안되십니까?
그리고 무당이란 말은 종교지도자의 뜻으로 쓰인적이 없답니다.
목사를 예수나 야훼라 부르지 않는거랑 마찬가지랍니다.
무당 = 목사 = 예수 = 야훼 이런건 논리적 비약이라고 몇번을 얘기한거 같은데...
하아 단군은 신의 자손이지만 신은 아닙니다 단군신회 어디에도 단군신이란 말은 없잖아요?
그에 반해 예수는 신입니다. 적어도 기독교도들에겐 말입니다. 물론 기독경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지만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는 신이라고 정했습니다. 반대파는 모두 죽여버렸고요.
즉 예수는 신으로 취급해주기로 한겁니다. 이건 기독교도들간의 약속이죠. 그런데 우리가 언제 단군왕검이 신이라고 약속을 한적이있나요? 신화에는 단군의 할아버지인 환인, 아버지인 환웅만 신입니다만?
그리고 이게 무당을 쓰면 안되는 이유하고 어떤 상관이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그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