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5-10-08 00:35
[기타] 김종서 박사님이 주장하시는 부여 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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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풍은 온라인 공간이 주도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에선 검색창에 ‘부여 역사’라는 키워드를 치면 무려 3900여 건의 글이 뜬다. 이같은 사정은 또 다른 포털인 네이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밖에 다음카페 ‘우리역사연구모임’은 부여사에 관한 뜨거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최근 부쩍 가입 회원 수가 늘어 6680여 명 회원에 게시물만 2만90여 건에 이른다.
비단 온라인뿐만이 아니다. 사단법인 참역사문화연구회는 서울 금천구 독산동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10여 명 정규직원을 가동하고 있다. 부여사뿐 아니라 고조선과 고구려, 백제 등 고대사에 관한 연구와 주장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교과서 개정운동까지 펼쳐 눈길을 끈다. 최근 일간지에 ‘교과서 내용이 사실이라면 1억 원을 주겠다’는 파격적 광고를 싣기도 했다. 이 단체는 홈페이지(www.history.or.kr)에 교과서 개정 1000만인 서명운동을 벌여 불과 20여 일 만에 500여 명이 동참하는 성과도 거뒀다. 연구회의 김승태 실장은 “실명제로 운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잖은 결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부여사에 관해 밝혀진 사실과 연구물은 현재 미흡하기 이를 데 없다. 부여사가 고구려 초기사와 겹치며 고조선에서 비롯된 한민족 역사의 주요 고리라는 점에선 아쉬운 대목이다.
국민 역사인식의 시금석이라 할 고교 교과서는 ‘부여는 1세기 초 왕호를 사용해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는 등 발전된 국가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북쪽으로 선비족, 남쪽으로는 고구려와 접해 있다가 3세기 말 선비족의 침략으로 쇠퇴, 결국 고구려에 편입됐다’고 간단히 기술하고 있다.
부여사에 대한 변변한 개설서도 없다. 국사편찬위원회와 한길사 등에서 쓴 ‘한국사’ 통사, 북한에서 출간한 ‘조선전사’의 부여에 관한 부분이 그나마 이해를 돕고 있을 따름. 국내에서 발표된 부여 관련 논문도 30여 편에 불과하다. 송호정·박경철·유태용 교수 정도가 활발한 글을 쓰는 연구자로 꼽힌다. 그렇다면 이같은 무관심에 가까운 역사적 빈곤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는 “문헌이 매우 부족해 고고학적 발굴을 바탕으로 설명해야 하지만 대부분 중국 영토 내에 자리해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 연구자도 10여 명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종 이설도 대두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참역사문화연구회의 김종서 박사가 주장하는 ‘1000년 왕국 부여설’. 현재 알려진 부여사는 중국과 일본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됐다는 주장이다. 그는 부여를 한나라와 대등한 관계를 설정한 뒤 조공까지 받은 대제국으로 묘사하며, 부여가 하북성 북부, 요녕성 북부, 내몽고, 동몽고, 동시베리아의 광활한 지역을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2759
김종서 박사님에 대한 정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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