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고딩 국사 지도로 조금만 공부해봐도 아래같은 뻘글이 안나올 것인데.(뭐 익명 불국적들이 넷에서 고귀한 한글을 열심히 남발하는 상황이니)
발해 멸망후 우리 고구려(발해인)사람들이 다 짱국으로 흩어졌다??
(이당시 요서에서 일어난 북방 유목 거란이 요나라를 세우면서 화북지방을
먹고 서토 송나라는 굴욕적 조공으로 벌벌 떨고 있면서 중간에서 대국이 떡
하니 버티고 있던 상황인데 기본적으로 우리 고구려인들이 서토내지로 뭘
흩어졌다임??)
당시 대대적 발해인들의 강제 이동 역시도 저 지도에서 보이듯 동만주
일대로 치우친 발해의 수도인 상경용천부가 이름만 동란국으로 바뀌어
괴뢰국마냥 다스려지다 발해인들의 반란이 거세고 거리가 멀어 다스리기 힘
들다 보니 고구려 시대 수당을 가로 막았던 요동 최대 성곽 중 하나이며 발
해시대에도 영역인 요동성 일대 요양지역으로 발해인들은 대거 이동시켰고
이들 우리 고구려인들은 반요사상으로 금나라가 세워지기 바로 직전까지 흥
요국부터 고영창등이 일어나다 이후 금나라 아골타의 건국 연합세력으로 주
도적으로 활동. 이곳 요양이 금나라의 수도다 보니 뭐 다들 알겠지만
당시 거주하던 수십만의 발해인들은 마치 고려시대 신라의 토착 호족마냥
그래서 금나라 황실과 행정 ,병권 및 도시문명을 좌지하면서 영향력을 과시.
(그외 상경 용천부일대에 반란을 주도하던 나머지 발해 세력들은 이후 올야
성으로 추정되는 곳에 다시 오사국(烏舍國)을 세우는데 이곳 왕은 오사성
부유부 발해염부왕(烏舍城浮渝府渤海琰府王)’ 혹은 ‘발해염부왕’·‘발해왕’
등으로 불렀음)
저기 첫짤의 남북국 시대 우리 발해 지도인데 최근 한러 고고학 탐사를 통해
기존 알고 있던 지배지보다 거의 두배 가까운 그보다 훨씬 윗쪽인 아무르일
때까지 발해의 직접 지배 행정 치소와 무덤, 유물들이 대거 발견되
었죠(두번째 지도상의 트로이츠코예 발해 유적)
향후 더 조사가 이루어지면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는 지역으로 당시 고구려
후기 발해시대에 오면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이미 기존 고구려시대에 간접
지배지역든(세력권 아래 부용세력으로 두던) 북방 흑수말갈지역이고 발해시
대에는 직접지배영역으로 북쪽으로 영역이 확대됨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되
는 상황임.
함(咸), 신(信). 소(蘇), 복(復), 진(辰), 해(海), 동(同), 은(銀), 오(烏), 수(遂), 춘
(春), 태(泰) 등 의 요동 50여 곳 성안에서 해안가에 인접한 곳곳의 주에는 각각 창
고가 있어서 조종법(祖宗 法)에 따라 내어서 새 것으로 바꾸고, 백성들이 임시로
빌리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빌려주고 2푼의 이자를 받았다. 20~30만석 정도는 근
심하지 않았고, 비록 누차에 걸쳐 전쟁이 일어났으나 일찍이 사용하기에 부족했
던 적이 없었다.
- 요사(遼史) 식화지(食貨志)-
[요동은] 편호(編戶)가 수십여만에 이르렀고, 경지도 1000여리가 되었다.
-송사(宋史) 송기전(宋琪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