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은 고대 이래로 그리 강군이 아니었다. 중세무사정권 이후에는 시종일관 전사국가였음에도 그렇다. 이유는 간단하다. 변방에 위치하여 과학기술이 뒤떨어졌고 그런 만큼 무기와 장비가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기습전과 단기전에 강했다. 항상 싸우고 있었으므로 병력 자체는 상시적으로 실전에서 단련된 정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규전에서는 약했다. 663년 나당연합군에 맞선 백제,왜 연합군의 백촌강 전투에서의 패배, 일본 본토 정벌에 나선 몽고군과의 야전에서 겪었던 수세, 고려 장군 최무선,최영,이성계등에게 당한 왜구의 패배, 임진왜란에서 명군 및 권율,이순신에 당한 결정적인 패배들이 그 증거다.
이 전쟁들에서 일본군이 승리한 전투는 언데나 준비가 안 된 적군에 대한 초기의 기습전들이었으며, 패배한 전투는 화력이나 정규전 전술의 열세에 기인한 것이었다. 동북아에서 몽골 초원의 전사들이나 중국과 한국의 농경문치국가의 군사력에 비추어 총체적인 전력은 일본이 가장 뒤떨어졌다.
이것이 역전된 것은 19세기말이다. (중략)
청일전쟁은 정나라 입장에선 외부에서 벌어진 국지전이다. 게다가 이홍장의 북양함대가 버티고 있는 등 아직은 건재한 청군이라 해도 아편전쟁 이후 이미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비틀거리던 군대였다. 반대로 일본군은 당시 첨단의 군사강국이던 영국의 장비들을 갖추었다.(중략) 따라서 청일전쟁을 일본군이 손쉽게 승리할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다.
(중략)
반면 서구제국과의 전투에서는 사실상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흔히 1905년 러일전쟁의 승리를 말한다.승리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전쟁은 청일전쟁같은 승리가 아니다. 청국과 근본적으로 질이 다른 러시아 군대를 상대하느라 일본은 거의 모든 국력을 소진했다. 게다가 러시아의 남진을 막으려는 영국의 전격적인 지원을 받았으며 전비의 절반을 영국 차관에 의존했다. 더욱 운이 좋았던 건 1905년 러시아 본국에서 발발한 민중형명이었다. 일본은 이런 계기들을 기회로 강화를 갈망했다. 미국의 중재들 통해 겨우 전쟁을 멈출수 있었으며 덕분에 만주와 조선에서의 이권을 얻어냈지만 가장 중요한 전쟁 배상금은 한 푼도 받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일본은 강화를 해야 했다. 그만큼 힘에 겨운 전쟁이었고,일본군 전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 전쟁이었다. 이에 대한 일본 국민의 반응은 날카로웠다. 처음엔 승전 축하 물결이 넘실댔지만 배상금을 받아내지 못했다는 강화내용이 전해지자 도쿄에서는 일본 민중사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는 '히비야 대폭동'이 발생했다. 이런점들을 감안하면 일본이 러시아를 이겼다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38~1939년 장고봉 노몬한 전투에서 일본군은 소련군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당한다. 비록 만주 서북지역 몽골 국경에서 벌어진 국지전이고 일본은 서둘러 강화를 체결하여 소리 없이 사건을 덮었지만 이 전투는 일본군의 실제 전력과 차후 태평양 전쟁운명의 전조를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이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이 비유할 수 있다. 근대 이후 일본군의 전력을 단련된 대규모 조폭 수준이라 가정하자. 여기에 비추면 당시의 조선군은 초등학생들 모임이었다. 아예 싸움이 안 된다. 청군은 고등학생 집단 정도라고 할 수 있으므로 대등한 숫자가 싸워서는 청군이 일본군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그러나 1000명의 조폭과 10만명의 고등학생이 붙는 싸움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싸움이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중일전쟁의 진상이다.일본은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반면 서구의 전력은 군용 소총과 중화기로 무장된 기동경찰에 비유할 수 있다. 조폭들이 야전과 시가전을 포함하여 온갖 전투를 벌였지만 기동경ㅊ랄을 이길 수는 없다. 러일전쟁처럼 국지전에서 다른 지역 기동 경찰의 후원을 받으며 잠깐 승리할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모조리 궤멸된다. 조폭 특유의 의리나 정신력 따위를 강조해도 소용없다. 그래봤자 손톱 사이에서 이가 부서지듯 샅샅이 죽어나갈 뿐이다. 근대사 전체를 개괄했을때 일본군의 강함이란 이 정도일 뿐이다.
조폭의 비유는 임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뒤에서 논하겠지만 일본 야쿠자를 포함하여 일본의 과거 정치는 물론 현재의 정치도 조폭의 논리와 분리될 수 없다. 일본군을 조폭에 비유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일본 사라지거나,해방되거나-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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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정치,경제 사회 문화 군사등 전반에 대해서 엄청 자세하고 재미있게 다룬 책인데 그중 앞부분쪽에 있는 내용을 간추려봤습니다. 이 책 재밌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