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 as Number one
1970년대 일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전후 30여년에 걸친 고도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일본이 최고’라는 일류의식이 널리 퍼졌다. 일본 국민의 90%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인식했다. 주식은 폭등하고 엔화 가치는 무섭게 상승했다.
일본이 미국을 넘어 세계 제1의 경제대국에 오를 것이라고 한 에즈라 포겔의 ‘저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도 이 시기에 나왔다. 책은 일본에서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당시 주일 미국대사는 “일본은 세계의 초(超)대국”이라고 치켜세웠다. 허드슨연구소장인 미래학자 허먼 칸은 “21세기는 일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콜롬비아영화사와 록펠러센터 등 미국의 상징과 같은 기업과 건물이 일본에 잇따라 넘어갔다. 1945년 일본에 상륙한 맥아더가 항복문서를 앞에 두고 “일본인의 정신연령은 12세”라고 했던 충격에서 일본은 비로소 벗어났다.
일본이 신민족주의에 빠져든 것은 바로 세계가 일본의 번영을 칭찬하던 때였다. 일본의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작업이 곳곳에서 진행됐다. 한반도로부터의 문명 전래를 부정하기 위해 일본 역사를 아예 석기시대 이전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1984년 오이타의 한 종유동굴에서 구석기시대 벽화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열도가 술렁였으나, 20년 전 어린이들의 동굴 낙서로 드러났다. 일본이 세계 고대문명과 교류했을 것이란 가설 아래 일본내 피라미드 찾기 소동까지 벌어졌다.
1970~80년대 이런 일본에 대한 자성과 경계의 목소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거의 무시됐다. 일본이 세계1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란 포겔 교수의 예측은 빗나갔다. 미국을 추격하기는커녕 중국에도 밀려났다. 일본이 사들였던 록펠러센터 등은 다시 미국에 돌아갔다. ‘일본이 최고’라는 거품이 꺼진 자리는 한숨과 우울, 갈등으로 채워졌다. 1970년대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가 강렬한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아베 정권이 ‘대국 일본’ 신드롬을 다시 불러내는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뿌리 없는 우월감은 열등감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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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없는 놈들이 하는 행동을 요즘 격하게 느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