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파계사 넘어가는 고갯길은 왕건이 공산 싸움에서 크게 패했다는 데서 유래된 파군(破軍)재
지묘동 뒷산은 '왕건을 살렸다'는 뜻의 왕산(王山)
봉무동에 있는 바위는 왕건이 혼자 앉아 잠시 숨을 골라 머물렀다 해서 독좌암(獨座巖)
불로(不老)동은 왕건이 도망치다 이곳에 이르렀을 때 보니 어른들은 피난 가고 아이들만 남아 있어 붙여진 이름
해안(解顔)동은 왕건이 겨우 위험을 피해 한숨을 돌리고 찌푸린 얼굴을 활짝 편 곳이라는 뜻
한밤중에 달이 중천에 떠 탈출로를 비췄다는 반야월(半夜月)
여기에 이르러 마음을 놓았다는 안심(安心)
병사들에게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고 태만함이 없도록 하라'고 했다는 무태(無怠)
왕건이 숨어 정세를 살폈다는 은적암(隱迹菴)
편안히 쉬어간 절집인 안일사(安逸寺)
신숭겸을 기리는 지묘사가 있다고 해서 지묘동
오랫동안 살았는데도 몰랐던 유래가 참 많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