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0-1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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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 대신 가마와 지게를 이용한 조선
그렇다면 조선은 어떠했을까? 1780년 청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온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타는 수레와 싣는 수레는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어서 시급히 연구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레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운반이 어려워서 바닷가 사람들은 지천으로 널려 있는 새우와 정어리를 거름으로 밭에 내지만, 서울에서는 한 움큼에 한 푼이나 주고 사야 되며, 영남지방 아이들은 새우젓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나라가 가난한 것은 국내에 수레가 다니지 못한 까닭이다. 그런데도 사대부들은 수레를 만드는 기술이나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 연구하지 않고, 한갓 글만 읽고 있을 뿐이다.”
박지원의 지적처럼 조선은 수레가 널리 쓰이지 않는 나라였다. 조선에서는 수레 대신 가마와 지게를 사용했다. 한국 특유의 운반 연장인 지게는 무거운 짐을 효과적으로 들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수레만큼 한꺼번에 많은 짐을 옮길 수는 없었다. 따라서 대량 운송은 해상교통 수단인 배에 의지해야 했다. 가마는 양반들은 물론 임금이 행차할 때에 사용된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가마는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된 운송수단의 하나지만, 속도가 느리고, 먼 거리를 가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고생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사람이 들고 이동하기 때문에 타는 사람도 자주 울렁거렸다. 가마는 도로가 없이도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했지만, 교통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보다는 낙후된 상태를 유지하는 원인이 된 도구에 불과했다. | |
조선은 왜 수레를 널리 쓰지 못했는가
조선에서 수레가 활용되지 못한 이유로는 크게 다음의 4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도로가 발전하지 못한 점이다. 한반도는 산과 계곡이 많아 수레를 쓰기에 적당하지 못하다고 하였지만, 박지원은 이것이 변명이라고 비판했다. 수레를 사용하지 않으니 길을 닦지 않은 것이지, 수레만 쓰게 된다면 길은 저절로 닦일 것이라고 본 것이다.
둘째는 수레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은 수레를 사용하지 않으니 수레 제작 기술이 단절되고, 기술이 퇴보했던 것뿐이다. 여기에는 기술자를 우대하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 탓이 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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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지. 조선 후기에 사용되던 것으로, 소나 말이 끄는 짐수레의 일종이다. | |
셋째는 소와 말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 말에 고려는 원나라에게 많은 말들을 빼앗겼다. 원나라에 이어 중원을 장악한 명나라는 고려에서 3만 필의 말을 빼앗아 갔다. 조선도 무려 7만 필을 말을 명나라에 빼앗겼다. 명은 조선이 명나라를 위협할 기병을 육성하는 것을 막고, 자신들이 북방 민족과 싸울 때 필요한 말을 얻기 위해 조선에 과다하게 말을 요구했었다. 그 결과 조선 초기 국영 목장에 4만 필 정도가 있었던 말이 조선 후기인 1870년에는 겨우 5,646필에 불과했다. 소와 말이 부족하므로 수레를 끌 동력원이 없다 보니 조선에서는 수레 사용이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왕실에서도 조선 초기에 수레를 이용하던 것을 차츰 가마 이용으로 바꾸고 말았다.
넷째 정부의 의지가 없었다. 조선은 한성부, 공조, 병조 등 여러 관청에서 도로를 엄격하게 관리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조선은 시간이 갈수록 도로를 수리하지 않았다. 조선은 도로를 만들면 적이 쉽게 쳐들어온다는 소극적인 국방정책과 교통정책을 갖고 있었다. 도로 수리부터 하지 않으니, 수레가 사용될 수 없었던 것은 자명한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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