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오쓰 사건은 일본의 이중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당시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 2세는 그해 5월 일본에서 칼부림을 당한다.
시가 현 오쓰 시에서 경찰관 쓰다 산조가 휘두른 칼에 머리를 다쳤다.
러시아 황태자를 공격한 '쓰다산조'순사
일본 왕자가 안내하고 철통 같은 경호를 폈는데도 황태자는 속수무책이었다.
느긋하게 관광을 즐기다가 경호 경찰관이 허리에 찬 칼을 갑자기 뽑아 휘둘렀
기 때문이다.
황태자는 인력거에서 급히 뛰어내려 골목길로 달아난 덕에 목숨은 건졌다.
러시아 함대를 이끌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에 일본에 잠시 들렀다가 변
을 당했다. 칼부림이 난 지역 이름을 따 오쓰 사건이라고 부른다.
사건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황실과 정부는 발칵 뒤집힌다.
강대국 러시아가 무력으로 응징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1904년 발발한 러일전쟁이 앞당겨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일본은 근대화 초기 단계여서 러시아와 전쟁할 힘이 없었다.
거액 배상금이나 영토 할양을 요구할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일본은 신속하고 전방위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민·관이 총동원되고 천황까지 합류해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이다.
메이지 천황은 아들 3명을 데리고 황태자가 묶은 호텔로 서둘러 찾아가 머리
를 조아린다.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는 1891년 일본에서 칼
부림을 당한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일사불란하게 사죄 모양새를 갖췄다.
전국 학교가 일제히 휴교에 들어갔다. 강력한 근신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신사나 사원, 교회는 쾌유를 비는 기도를 이어갔다. 니콜라이에게 보낸 문안
전보만 1만 통을 넘었다. 게이오대학 학생들은 프랑스어로 사과편지를 썼다.
일부 지역에서는 작명 때 쓰다'나 '산조'를 넣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했다.
경찰관 쓰다 산조를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오쓰사건을 사죄한다며 자결한 여인)
한 여성은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자진하는 일도 생긴다.
뜬근없이 테러를 당한 황태자 니콜라이 2세
한 사람이 저지른 우발 사건에 온 나라가 호들갑을 떨며 치욕을 자처한 것이
다. 현재 한국인의 여러 문제들 즉 위안부나 징용자 문제에는 오리발을 내미는
것과 전혀 딴판이다.
사건 동기는 단순했다. 천황을 알현하지 않은 채 관광하는 데 화가 나 혼내주
려고 했을 뿐 살해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범인 쓰다를 처형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한반도 침략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가 가장 강경했다.
법률 미비로 사형 선고가 안 되면 계엄령을 내려서 라도 처형하라고 압박했다.
쓰다를 납치해 권총으로 암살하자는 의견도 나왔
다. 러시아도 사형을 강하게 압박했다.
주일 러시아 공사관은 죽이지 않으면 어떤 사태가 날지 모른다고 협박했다.
대법원만 달랐다. 실정법상 살인을 선고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 왕이나 왕족에게 위해를 가한 범죄에만 사형이 가능했다.
계엄령 선포로 재판권을 회수하겠다는 법무부 위협에도 대법원은 잘 버텼다.
결국, 사건 발생 16일 후 살인미수 혐의로 무기징역 판결을 한다.
러시아 반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전쟁은커녕 배상 요구도 하지 않았다.
일본은 13년 뒤 어느정도 힘을 기른, 일본은 러시아의 뒤통수를 친다.
이른바 러일전쟁이다. 1904년 일본이 선전포고도 없이 러시아 극동 함대를 기
습 공격해 전쟁에 돌입한 것이다.
그로인해, 쓰다를 검거할 때 도운 인력거꾼은 러일전쟁을 계기로 날벼락을 맞
는다. 국민 영웅에서 매국노로 바뀌어 집단 괴롭힘 ‘이지매’를 당했다.
이러한 이선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발생한 파나이호 사건에서도 드러난다.
일본 항공대가 민간인을 태운 미국 함정 파나이호를 격침했다.
일본은 중국 군함으로 오인해 실수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도 서둘러 사과하고
배상했다. 일본 함대사령관이 현장에서 사죄하고 본국 정부도 사과성명을 발표
했다. 당시로써는 거액인 221만여 달러를 배상하고 항공대 사령관은 경질했다.
미국도 15년 후 일본으로부터 등에 칼을 맞는다.
1941년 일본 전투기들이, 역시 러시아 때와 마찬가지로, 하와이 진주만 미군기
지를 선전포고도 없이 공격한 것이다.
그런 일본이 또 지금은 돌변했다.
아베 총리는 지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입안에 혀처럼 굴고 있다. 일
본은 미국의 푸들이라는 비판에 귀를 닫은 모양새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에겐 더욱 얄미운 모습만 보이고 있다. 결국 일본에게 대우받
는 길은 국력의 신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듯 해서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