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계 주류에서는 "일본에서는 풍수 수용이 없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풍수의 사회인류학>의 저자 와타나베 요시오 교수는 "헤이안기, 일본에서 '풍수'라고 하는 용어는 아마도 없었을지 모르나 '지리(地理)' '상지(相地)' 등의 용어는 당시에 전해지고 있었다"라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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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나 한반도에서도 '풍수'라는 용어보다는 역사적으로 '지리', '지술', '감여', '상지'가 더 보편적이었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관(地官: 풍수관리) 선발 필수과목인 <청오경>이란 책에서 풍수라는 용어가 처음 언급된다.
"음과 양이 서로 합해지고, 하늘과 땅이 서로 통하면, 내기(內氣)는 생명을 싹 틔우고, 외기(外氣)는 그 형체를 이룬다. 내기와 외기가 서로 의지하는 곳에 풍수(風水)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풍수라는 용어가 책명으로 표지에 쓰인 적은 거의 없다. 최초의 풍수서로 알려진 <청오경>이 나온 뒤 1000여 년이 지난 중국 명나라때 교항(喬項)이 자신의 글 제목에 풍수를 사용한다. 그는 <풍수변(風水辯)>이란 글에서 "이른 바 風이라고 하는 것은 주변 산세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분지와 같은 곳을 말하며, 水라고 하는 것은 수침의 위험이 없는 비교적 주변보다 높은 지대를 말한다."고 설명하면서 "風과 水란 곧 지형을 가리킨다."고 정의하였다.
... 중략.....1564출간 <인자수지자효지리심학통종(人子須知資孝地理心學統宗)> 서선계 서선술.... 이 책은 조선조 중엽 이후에 조선에 유입되었기 때문에 지관 선발과목으로 채택될 수 없었지만, 조선 후기의 지관들, 사대부들, 그리고 풍수 호사가들 사이에서 필독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풍수를 공부하는 한국인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제목에서는 풍수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또한 그 이전이나 이후에 나온 지리서가 수백 권에 이르지만 풍수라는 이름을 적은 것이 거의 없다. 한반도에서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풍수'라는 용어가 주도적 위치를 차지한 것은 일본으로부터의 해방(1945년) 이후다. 우선 고려조의 정사인 <고려사>에서는 풍수 관리 선발 시험과목을'지리업(地理業)'이라 하였고, 그렇게 선발된 관리를 '일관(日官)'이라 불렀다. 고려 지리업의 고시과목에 '풍수'란 용어가 들어간 것이 전혀 없다. 조선조에서도 풍수관리 선발 과목은 '지리학'이었으며 그렇게 선발된 관리를 '지관'이라고 하였다. 종종 천문학교수, 풍수학인, 상지사라는 말로 풍수전문가를 호칭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지관 선발 과목 가운데 <청오경>과 <장서>를 제외하고는 '풍수'는 '지리', '지술', '감여', '상지' 등의 용어보다 훨씬 적게 사용되었다.
조선풍수, 일본을 論하다. 김두규. 드림넷미디어. 64-66. 발췌요약.
다만 예전엔 지리 상지 라는 단어를 썼을뿐
일제강점기 이토 히로부미도 풍수의 대가라는게 함정
현재 일본에서 건물이나 집을 지을때
풍수지리를 적극 활용한다는건 다 아는 사실
수십 수백만의 신을 모시는 어떤 나라보다 미신적인
일본이 일제강점기 풍수지리를 악용한것은 당연함
도로 측량과 전혀 연관이 없는 곳에 풍수 지리학적으로
명당에 해당하는 혈자리에만 죽어라 갖다 박은
일본의 만행을 죽어도 도로 측량이라고 하는데
도로와 전혀 연관이 없는 명당자리 바위에 박힌건 뭐라고 할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풍수에 빠삭한 나라였다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