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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포럼글. 원래는 사진도 있는데 제가 사진을 늘줄 몰라서...링크 누르시면 원본 확인 가능. 걍 사진만 더 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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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무적함대 “아르마다”와 비교하여...
최근 영화 “명량“ 개봉하면서 이순신 장군과 조선수군의 활약이 다시 한 번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완성도에 감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영화가 미처 못다 표현한 이순신장군과 조선수군(이하 이순신함대라 하겠습니다)의 위대한 면모가 많이 있어서 안타깝기도 합니다.
하여 이렇게 기회를 빌어 동시대 대서양을 주름잡던 스페인과 영국의 해군과 비교함으로써 일반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이순신함대의 위용을 묘사해 드리고자 합니다.
다음의 자료는 제가 책을보며 스페인함대와 이순신함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하면서 알게된 사실을 나열한 것입니다. 한 명의 일반인이 책 몇권 읽고 상상-에 가까운 결론을 내린 것에 불과한 하지만, 조선수군과 스페인함대를 비교한 연구는 거의 전무한 점을 감안하시고 호기심 해소 차원에서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1. 이순신함대 vs 스페인 무적함대 - 전력
조선은 16세기 양적/질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상비 해군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통계의 시점 차이는 있으나, 임란당시 조선수군은 전성기 평균 대략 대선(판옥선, 거북선) 약 80여척, 중/소형 함선 40여척, 합계 120여척 규모, 15,000여명의 병력을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숫자가 어떤 숫자인지 감이 잘 안오실텐데요, 동시대 세계최대의 해양제국을 건설한 스페인이 영국을 침공할때 총동원령을 내려서 긁어모은 무적함대 상비군 전력이 25,000명, 함선 130~150척(갤리온급 대선 30여척, 카락등 중형함선 3~40여척, 기타 수송선 소형선 100척 내외)입니다.
당시 유럽평균은….. “none“입니다. 스페인/터키를 제외하곤 아예 해군을 “상비군"으로 거느린 나라가 없었습니다.
지배영토도 좁고, 식민지에서 긁어모은 재화도 없이 15,000명에 전함 120여척을 유지했다는 것은 당시 조선이 임란 발발 전부터 국가적인 사업으로 수군을 육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같은 120~150척 규모라도 스페인은 대양함선들이라 덩치가 커서 총 배수량에 있어서는 조선수군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주력 전투선(다량의 함포를 장착할 수 있는 전함급: 조선의 판옥선/스페인의 갤리온)이 함대내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살펴보면 함선간 전력이 조선수군이 상향 평준화 되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영국은 머… 한심한 수준이어서, 드레이크 때까지만해도 상비군은 없고, 스페인이 처들어온다는 소식에 놀라서 여기저기서 급하게 긁어모은 병력이 8,000여명에 80척(갤리온급 20여척) 선단 규모였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많은 분들이 임란당시 300~500척을 우습게 찍어내던 일본은 뭐냐고 반문 하실텐데요, 당시 일본은 해군, 나아가 재해권장악이라는 개념은 아예 없었고, 모두 육군의 상륙을 위한 수송선단에 불과했습니다. 조선으로 병력수송을 위해 소위 대량생산만했지 전선의 질은 낮아서 판옥선과 부딪히는 족족 가라앉았었죠. 전술또한 훈련받은 장군이 수군제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배좀 가지고있는 다이묘가 일본 “선단"을 이끌던 형국이라 해군 상비군에 비견할만한 조직은 못되었습니다. 굳이 “해군”이라 할만한 숫자를 뽑으면, 와키자카, 도도, 구루지마등이 직속으로 이끌던 가병 및 해적집단이 9,000여명 규모였다고 합니다.
2. 이순신함대 vs 스페인 무적함대 - 화력
스페인 아르마다와 이순신 함대의 화력을 단순히 장착 대포수와 사거리로 비교하기 보단 간단한 통계자료를 통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1588년 스페인제국이 영국침공을 결정하고 동원한 전함은 최대 150여척에 1달간 전 제국을 쥐어짜서 탄약 13만발을 구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 13만발을 가지고 영국해에서 사냥한 드레이크함대의 대형전함이 몇대냐…
맥시멈 20여대 입니다. 1대의 대선급 전함사냥을 위해 무려 6,500발을 사용했다는 얘기입니다. 게다가 이 숫자는 1주일동안 추격에 추격을 거듭하여 사냥한 누계치입니다. 물론 당시 스페인이 수송병력 보호를 위해 견재성 함포사격을 남발했다는 사정있었으나, 기상이 수시로 변화는 바다위에서 원거리의 배를 사격한다는 게 16세기의 기술로 얼마나 힘든지 충분히 설명해 주는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를 기준으로 이순신함대의 화력을 단순 계산해보겟습니다. 이순신함대는 20여번이 넘는 회전 동안 적의 대선을 평균 20~30여대 격침시킨 것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20대씩 20여회면 스페인해군이었다면 400대 격침에, 6500발씩 대략 260만개의 포탄을 사용해야합니다. 당시 일본의 전함이 영국 대선 크기의 ½, 다시 영국 대선의 내구력의 ½ 에 불과하다고 가정해도 여전히 65만발이 필요합니다. (통계자료의 부실성을 회피하고자, 스페인함대의 실적은 최대치로, 이순신 함대의 실적은 최소치로 상상해본 것입니다.)
당시 조선(따지고 보면 전라남도..)의 공업력이 전체 스페인 제국의 공업력에 2~3배에 달했다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본 수군이 종이배를 타고온대다 하나같이 멍청해서 xx이 취미였다고 판단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앞서 일본 수군을 상비군 수준으로 훈련된 조선수군에 비할바 못된다고 언급하였으나, 언제까지나 당시 –유럽 평균-에 비견하여 그렇다는 것입니다. 일본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란 것은 칠천량 해전에서 자기들이 스스로 입증한 적 있지요)
그렇다면 이순신 함대의 이러한 경이적인 명중률의 원인은…. 1) 평저선인 판옥선이 포격을 하기위해 매우 안정적인 구조이자, 180도제자리 회전으로 포격 리드타임이 매우 짧았다. 2) 화포 및 화약의 성능이최소한 스페인과 견줄만한 수준이었다. 3) 이순신함대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탁월하게 훈련되있었고, 정밀 조준에 필요한 과학적 측량술이 매우 발달되어 있었다. 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과 영국의 대형 전함들의 명중 실적을 살펴보면, 성웅 이순신에 가려진 이순신 “함대"의 진면목이 얼마나 탁월한 것인지 놀라게 됩니다.
1592년 이순신 함대의 압도적인 전투실적은 진실로 지도자의 탁월한 리더십, 뛰어난 함선과 무기, 발전된 기초과학, 진심으로 훈련에 임한 병사.. 이 모든 것중에 단 한가지만 부족했어도 결코 불가능 했을 예견된 기적이었습니다.
3.1 이순신함대 vs 스페인 무적함대 – 전술: 스페인도 학익진을 쓴다???
입산은 달리했어도 정상에선 모두 만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당시 동서양을 대표하는 조선과 스페인 해군은 매우 유사한 진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순신 함대에게 학익진이 있다면 스페인 함대에는 Crescent(초승달) 진이 있었던 것이죠. 초승달진은 서양에서는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이 로마와 싸우면서 최초로 사용했는데, 양 날개에 기동성을 갖춘 강력한 부대를 배치하고 적을 교란, 중군은 두텁게 보강하여 적의 중군을 격파하고 지친 유휴부대를 보호한다는 점에서 학익진과 매우 유사합니다.
초승달진은 기습/기동을 중심으로 하는 보병전투가 확산되며 육전에서는 고전으로 취급되는 전술로 격하되었으나, 대평원이나 다름없는 해상에선 여전히 위력적인 진법으로 통용되었습니다. 스페인 함대는은 초승달진을 영국함대의 함포사격을 견제하기 위해 주력진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학익진이든 초승달진이든 진을 펼치는 핵심은 뛰어난 지휘자와 고도로 훈련된 병사가필요하단 것입니다. 초승달진은 병사운용이 비교적 쉬운 육지에서 조차 “한니발 클라스”의 장군들이 사용하던 진법입니다.
엔진을 가진 현대의 군함들도 바다위에서 열과 횡을 맞추어 행진하는 것은 고도의 운용기술을 요구로 합니다. 그런데 16세기 조선의 바다, 돛대로 바람을 등지고, 노를 저어 전선을 움직이던 시절… 육지가 아닌 바다에서 사람이 아니고 함선을 가지고 그러한 진법을 펼친다는 것은 초인적인 훈련과 지도력의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제로 크레센트대형(초승달진)을 유지하며 폭풍을 뚫고 영국해안으로 침입하는 스페인 함대를 보고 드레이크 제독은 두려움에 떨며 말했습니다. “신의 경지에 이른 함대 운용술이다”고…
3.2 이순신함대 vs 스페인 무적함대 – 전술: 스페인도 학익진을 쓴다???
학익진과 초승달진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겠습니다.
공통점: 타이트한 함선배열, 양날개가 적을 교란, 중군을 두텁게 해 파손된 함선을 보호, 적을 포위섬멸.
차이점: 학익진이=함포사격을 위한 공격형 전술, 스페인의 크레센트진= 철저한 방어를 위한 진형. 파손함선 보호와 백병전유도를 위한 빈틈없는 대형유지가 핵심.
[그림] 공격과 방어가 모두 용이한 학익진의 구현 – KBS 불멸의 이순신 한산도 대첩의 한 장면
공격: 기동력있는 양날개가 적을 포위 공격하고, 두터운 중군이 적의 중군을 격파
방어: 파손되거나 지친 아군의 함선은 중군 뒤에서 정비 및 휴식을 취할 수 있음
영국함대는 스페인의 초승달진을 깨뜨리고자 수차례 시도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위 사진의 일본군 처럼 중앙으로 뛰어 들었다가 전멸하는 참사를 피하고자 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학익진과 초승달진의 운용 난이도는 과연 어땠을 까요?
스페인의 초승달진은 수송병력 보호를 위한 방어 대형 유지가 목적이었고,
이순신 함대의 학익진은 열세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포위섬멸하기 위한 “공격”이 주목적이었습니다.
대형유지만 필요한 게 아니라, 날개를 폈다 접었다, 뒤로 뺏다 앞으로 갔다, 대포쏘고 한바퀴 돌고 다시 쏘고… 우로돌다 좌로돌다… 물론 선회가 용이안 “판옥선”이 이 진법의 완성을 도우긴 했으나, 진법의 난이도는 여전히 연구? 하는 이로 하여금 경이롭게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드레이크제독이 새처럼 춤추며 대포를 쏴대는 크레센트 진을 봤다면 뭐라 표현할지 참 궁금합니다…ㅎㅎ
참고: 학익진(일자진)의 기본 원리[그림]
20세기 초반까지도 해전은 대포성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적은 수의 함선에 포격을 집중하여 완파 하는 전술이 핵심었습니다.
이를 위해 상대보다 먼저 일렬종대로 늘어서 측면으로 적의 정면을 받는 진을 갖추것이 중요했습니다.(대포가 배의 측면에 달려있으므로) 드레이크가 활약한 시절엔 일자진의 원리가 보급되기 이전이어서, 그냥 달라붙어 서로 쏘아대던 수준으로 파악됩니다.
4. 이순신함대 vs 네덜란드 함대 vs 도고헤이하치로 – 학익진의 진화
첨언하자면 학익진은 이순신 사후 세계의 전술로 다시 한 번 도약하게 됩니다. 1630년대 네덜란드가 다운스 해전에서 스페인함대를 격파했을때 학익진과 유사한 T자 전법을 사용했습니다. 이 후 T자 진은 넓은 바다에서 일렬횡대로 늘어서 종대로 다가오는 적을 격파한다-는 유럽 해군의 표준 전술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는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이 유럽으로 유출? 됐다기 보다는 이순신함대가 함대간 포격 전술을 서양에 비해 수십년 앞서서, 게다가 전후무후한 완성도를 보여주며 해상전투를 선도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약 300년이 흐른 후에는 학익진은 역설적이게도 일본에서 부활합니다. 러-일 전쟁당시 대한해협에서 일본함대는 세계최강으로 꼽히던 러시아 발틱함대를 무찌르고 아시아 최초의 열강으로 도약하게됩니다. 단순전력은 발틱함대의 1/3 수준…
당시 전투를 이끌었던 사람은 도고헤이하치로 제독인대요(일본 10대 무성 중 하나라고…) 그가 발틱함대를 격파할 때 고안한 丁자 전법을 보시면 놀랍도록 학익진과 비슷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도고헤이하치로 제독은 평생에 걸쳐 이순신을 연구하고, 존경했으며, 그 마음을 표현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고 전합니다.
[그림] 도고헤이하치로 제독의 丁자 전법(파란선: 발틱함대 붉은선: 도고함대)
길게 이야기를 풀었는데, 다시한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당시 조선은 세계 최고/최대 수준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 질적/양적인 면에 있어서 조선은 해군 “상비군“을 보유한 몇 안되는 국가였습니다.
2. 이순신 함대의 화력은 스페인 무적함대/영국 드레이크 함대를 앞지르는 실적을 올렸다.
- 전선간 화력이 상향 평준화, 판옥선의 180도 회전 포격, 놀라운 수준의 명중률.
3. 이순신의 함대 운용 능력은 세계 최고였다.
- 세계 해전 전술의 표준으로 진화한 학익진
이순신 장군을 얘기할 때는 조심스럽습니다. 구국의 영웅이면서도 동시에 성역화되어 객관적인 접근이 어렵기도 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작정 이순신함대가 다 이긴다 – 하면 또 국뽕을 맞았다는 얘기를 들을 까봐 겁도 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렸을때 부터 항상궁금해했던, 정말 순진하고 단순했던 그 질문, 이순신함대는 스페인해군/영국함대를 능가할 수 있었을 까? 에 대하여 미약한 사료나마 찾아보고, 스스로 결론의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일반인이 책 몇권 읽어보고 상상-해본 결론으로 학계의 자료가 될만한 것은 못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이 기회를 빌어 –성역화된 이순신-이 아닌, 이순신과 이순신 함대의 -실적-을 살펴봄으로서, 정부나 TV가 가르쳐주지 못하는 이순신의 진면목이 어떤 존재인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다면 크게 보람을 느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