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동아시아 게시판
 
작성일 : 14-12-11 16:55
[기타] 신라시대 경제력이 어땠나요
 글쓴이 : 키큰게좋아
조회 : 3,797  

신라.jpg

 
가끔 어떤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한반도 최전성기가 지금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던데
 
신라시대 경제력은 동시대 서양 포함 다른 국가에 비해 어땠는지 알 수 있나요?
 
사진이 서라벌 복원도라던데 ㅎㄷㄷ한것같은데
 
 
신라는 무역도 엄청 많이했던걸로 아는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굿잡스 14-12-11 17:45
   
신라가 매소성 전투에서 당군 20만을 격파하고 백제와 고구려 일부 지역을

먹게 되면서 최대전성기를 구가하게 되죠. 남북국시대 발해의 직접 지배지가 고구려 전성기

때보다 더 넓게 확장되지만 경제력과 인구력으로 봤을때는 신라와 마냥 대적하기는 쉽지 않았던

상황입니다.(고구려때야 남부의 동서가 쪼개져 고구려가 유리했지만)

그만큼 신라는 이후 서토와 왜 그리고 동남아등의 해상무역의 활로를 확보함으로써

동북아 해상 무역을 장악하게 되고 노른자위 곡창지대까지 먹게 됨으로써 상당한 경제력과 문화적

융성함을 보이게 되죠.(이때 신라는 서서로 태왕으로 자처합니다. 그기에 당의

말도 형식적으로 어쩌고 할뿐 생까버리는 식이였고)

이때문에 실제 삼국유사를 보면 로마의 과장된 100만이 아니라 18만호에 이를 정도의 실질적

100만의 국제적 거대 4대 도시중 하나였고(실제 당시 유럽 최대 도시라는 로마보다 더 큰

도시규모가 신라의 서라벌임) 발굴된 유적을 보면 이미 이때 인도와 도로 구분에

각집마다 우물과 슟으로 밥을 해먹고 집집마다 기와로 덮혀 있어 비가 와도 처마를 따라 걷다

보면 비에 젖지 않는다는 기록이나 금기와등 화려함의 사치와 융성함이 곳곳에 보입니다.

이외에도 아랍상인들이 동방의 이상향으로 기록했던 곳이 신라였죠.

그리고 이 신라의 서라벌은 이후 고려가 전쟁없이 흡수하면서 고려의 4경 중의 하나인

동경으로 자리합니다.(수도인 100급의 대도시 개경(개성)과 거의 동급으로

중시했던 서경(평양) 및 남경(서울))
     
키큰게좋아 14-12-11 18:32
   
오호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실제로 현대방식 gdp로 환산해보면 엄청 높게 나올듯하네요..
          
굿잡스 14-12-11 18:54
   
여기서 보면 신라를 정치적 혹은 지역적 이유로써 편협하게 까는 사람도 가끔

있지만 중세 고려의 화려한 귀족문화의 토대는 다름 아닌 이런 신라의

융성과 발전된 문화에서 기반한 것들입니다.

무엇보다 일본의 요시오카 간스케씨같은 학자는

고려(高麗)하면 나오는 고려자기의 기술이 이미 9세기 전반 동북아 해상무역을

장악하고 있던 장보고시대에 월주요의 기술이 전수되어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논문을 낸바 있습니다. 이후 고려때와서 더욱 발전하면서 우리나라 특유의 상감기법

과 당시 송나라에서는 유약에 묻혀 내부의 색이나 무늬가 묻혀버렸던 부분까지

극복해내면서 이게 고려비색으로 송군주도 고려자기를 극찬하고 구입하면서

천하의 비색으로 독보적 기술력을 앞세워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하게 된 것

이죠.

그외에 세계최고의 목판 인쇄본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닥종이 즉 동북아에서

우리나라에만 나오는 고도의 외발뜨기 인쇄종이에 특화된 백추지등의 고급종이도

신라에 의해서 탄생된 것입니다. 목판 인쇄술, 닥종이, 고려자기의 토대,

서토에서도 보이지 않는 정밀한 수학을 통해 가능했던 석굴암, 거대 목탑,건축양식

특히나 정밀한 금세공기술등 다방면의 화려한 기술적 진보와 융성이 고려가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거대하고 선진적 도시문명을 낳은 원동력이 된 것이

죠.(무엇보다 국제 해양무역을 통해 이룩한 개방적 사고와 문화는 고려시대에 다

원적 세계관과 활동성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고려 귀족이 얼마나 화려했느냐 하면 당시 고루누각에 화려한

기화이초 정원의 기록도 그렇지만 로마시대 로마 귀족들이 대리석으로 치장

어쩌고 하는데 고려귀족은 금보다 귀했다는 도자기를 아예 청타일로

만들어 실내를 꾸미고 화려하고 번쩍 번쩍한 청자 기와를

얹어서 건물을 지는 호사로운 생활을 했습니다.ㅋ(조선도 임진왜란때 불타기 전

에는 이런 청자기와의 궁성 기록도 나오는.)
               
키큰게좋아 14-12-11 19:13
   
진짜 우리나라 수 많은 문화재가 많은 전란으로 인해 불탄게 너무 아쉽습니다.
진짜 불타지만 않았다면 일본애들 문화재랑은 비교도 안됬을텐데..
요즘 일본놈들 마치 자기네가 동양의 대표격으로 미화질하는거보면 역겨워죽겠습니다.
기모노도 백제한테 얻어간 주제에..
예전부터 굿잡스님 글들과 댓글들 하나하나 일독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굿잡스 14-12-12 12:05
   
글을 정신없이 바로 적다보니 오타들이 ㅋ. (서서로는 스스로, 100급은 100만

급으로 정정ㅋ 지는 짓는. 알아서 봐주시길)
문삼이 14-12-13 15:20
   
신라가 우리나라 정통성을 잇는나라로서 수도는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는건 사실입니다.
다만 그 바탕엔 고구려,백제유민의 피와 땀이 모여있습니다.
기존 신라인구보다 더 많았을걸로 추측되는 현충청,전라 지역의 구백제지역의 곡물생산력이 경주의 부흥바탕이었죠.
한마디로 수도권지역만 잘나가는 형상이죠.
원효대사같은 분들이 백제유민들과 어울려 유랑걸식을 했다는 역사기록, 신라유민이라고 하지만 실제적으론 구백제지역 백성들의 해적들에 대한 침탈에 전혀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죠.
장보고가 나오며 거기에 대응을 했을 뿐입니다. 그후로 그의 계승자들이 여러곳에 출현해 신라의 해상무역을 이끄는 형상이지만 신라자체는 강력한 골품제를 바탕으로한 수도권지역의 경제집중을 보여주죠.
물론 고려도 뭐 비슷하겠죠. 귀족층만 잘나가는...서민들의 삶은 무척곤궁한...
우리가 비웃는 조선이 그래도 백성을 존중하는 시늉이라도 하고 노예도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 주려는 국가라 생각합니다.
무를 가볍게 여기고 농업에만 치중해 국가의 힘이 약해져 망했지만 민중들의 삶은 조선시대가 가장 좋았다고 봅니다. 물론 이것도 국가체제가 문란해지고 자연재해가 오며 망해갔지만서도요. 결국 우리나란 무역으로 먹고 살아야만 하는 국가네요.(뭔..신세한탄인지..ㅋㅋㅋ)
조선처럼 농업몰빵하다가는 자연재해오면 끝이고 고려처럼 무역만 앞세우다간 특권층의 경제력집중만 불러오고.
신라 경제력 물어보신글에 웬 우리나라 한탄글을 쓰고 있네요..ㅋㅋㅋ
워낙 우리나라 물산생산력이 부족해 결국은 무역으로 먹고살아야한다는 결론이네요.ㅋㅋㅋ
     
굿잡스 14-12-13 17:00
   
ㅋㅋ 아래 보니 뭔 송나라는 엄청 띄우더만 울나라는 뭔 부족 어저고 ㅋ.(삼면이 바다에

인구수에 농업쪽 생산에서는 나름 먹고 살던 나라가 물산생산력이 부족했다??)

뭔 무역 안하면 폐쇄된 나라 어쩌고 쳐까고 뭔 농업 어쩌고 하면 자연 재해?? 현대고

그렇지만 특히나 고대 동서양에서 기본 기상 이변으로 인한 흉작시에 잘먹고 산 나라

있으면 함 나와 보라고 하던지요? ㅋ. 그런 식이면 무슨 해마다 강력한 태풍에 지진에

화산활동에 화산회토에 열도는 안씁이고 서토도 각지역마다 보면 사막화에 혹은 홍수

범람에 대형 메뚜기 떼에 수시로 바뀌는 왕조사와 전란으로 괜히 서토에서 사람을

등급별로 일찍이 인육질이 성행하고 거래되거나 수호지니 뭐니 도적떼들이

들끓는 이야기들이 나오는 줄 아시는지? ㅋ


그리고 님은 신라가 9주 5소경으로 다스린 이야기는 못배우셨나요?(전라도 나주도

남북국시대 승격되어 나온 지명). 그리고 기본 현대고 그렇고 고대에도 수도중심으로

더욱 번성하고 발전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이지 뭔 이게 다른 나라는 특별함?

프랑스 파리라는 도시나 정체성이 무슨 고대에 얼마나 협소했는 줄 아심?(근세까지도).

중세시절까지 장원 어쩌고 쳐하면서 유럽 보통 백성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함

공부나 해보시든지.(근대에도 최선두라는 영국의 일반 시민들은 노동임금노예로

표현될 정도로 공장주들에게 수탈을 당했구만)

확실히 조선시대에 가면 서민정책으로 이전보다 그리고 당시 주변 동북아 어느 나라보다

서민 위주의 인본적 정치와 내치에 힘을 기우린 선진행정과 법치주의 강대국이 조선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님은 왜 장보고 시대에 당에서고 왜들이 해상 도적떼로 들끓었는지

기본 주변 인식이 없군요. 한마디로 당나라가 고구려의 무리한 정복 대외 팽창 이후에

안록산의 난등 절도사의 난에 토번의 외침등 이미 중기에 가면 조정은 유명무실해지고

수십개의 세금도 내지않는 번국들이(대표적 당군주를 두번이나 도망가게 한 고구려 유민

이정기의 제나라등) 들어서면서 조정의 왕권이 약화되자 제대로 해안 치안이 안되면서

동북아 바다가 어지러워졌든 것이고. 그런 시절에 살던 서토인 백성은

퍽 잘먹고 잘살았겠음요?? ㅋ(빈약한 문화와 허술한 도시수준이였던 열도야 각 영주

외에는 왜노들 대다수 삶을 언급하기도 민망하고. 조선 초까지도 전국시대 전란으로

자국민들 노예로 대대적으로 해외에 수출하고 살던 게 왜국상황. 에도시대에도 대다수

대도시의 왜인들 삶을 보면 밀집 허술한 주거 가옥과 불결한 환경으로 인해 전염병과

대화재가 빈번했고.)
          
문삼이 14-12-13 17:14
   
뭔 말을 이리 주저리주저리....결국 내말틀린부분을 지적해 주시지...
좀 요약해서 지적해주시지...
몇년전에 일베에 한번 가서 글을 써봤는데 베충이들이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던데...
               
굿잡스 14-12-13 17:17
   
??본인이 주절주절 아님?? ㅋ 본인 수준의 혼자 글 적는다고 그게 역사가 아닙니다.

한글 이해 안되시면 정독 100번 하시든지 (어디 사료 한줄, 근거 없이 본인 쉰

소리나 나열하군. 그것도 당시 시대적 주변 상황이나 세계사 이해도

없이.)
                    
문삼이 14-12-13 17:22
   
그러니까 내글이 틀린부분이 뭐냐고요?
                    
문삼이 14-12-13 17:28
   
아참 그리고 사료한줄 근거없이 본인쉰소리? ㅋㅋㅋ 장보고가 가상인물임? 원효대사가 백제유민과 유랑걸식하고 돌아다녔다는게 삼국유사에 나오는데 이게좀 헛소리일지도 모르지 사관이 쓴게 아니니까. 그리고 내말이 틀린부분이 뭔지좀 압시다. 나도 공부좀하게...틀린부분좀 지적해주쇼...우리 지식풍부한 굿잡스님...
                    
문삼이 14-12-13 17:37
   
근데 일반론 펴는것도 일일이 사료한줄 근거제시해야만 되나....내가 말한게 그당시 일반적인 형태라는걸 부정한게 아닌데 내가 신라 비하한글을 썼나?
글들의 형태가 신라는 이러이러한 나라라고해서 모든 신라민들이 그렇게 살아간건 아니다라고 말한게 틀린글이 아닌데 굿잡스는 왜이리 광분하는지...
그래서 내가 고려도 마찬가지라고 본다고 했는데 이게 또 고려 비하가 되나?
참 굿잡스 어렵게 사네....
                         
굿잡스 14-12-13 17:46
   
?? 한글 못읽으세요.(광분이나 한탄은 본인 혼자 많이 하시고 ㅋ)

님은 너무 현시대적 입장에서 고대사를 재단하고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식이면 미래 더욱 진보한 인류들에겐 지금의 당신이나 우리 현대인들은

어처구니 없고 한없이 조잡, 미개하고 한탄스러워 보일 것임)

당연히 모든 게 못마땅해 보이고 한탄스러울 수 밖에요.

그러나 현실에선 시대를 뛰어 넘는 천재들은 간혹 나올 수 있지만 어느

나라, 어느 사회가 시대를 뛰어넘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음.

님이 언급한 원효대사(617∼686)가 어느 시대를 관통한 분입니까?

치열했던 삼국시대와 세계대전급의 어지러웠던 동북아의

혼란기의 고당 전쟁 및 당을 몰아내고 어수선한 때의

남북국시대로 접어드는 초기 시절임.

왜 신라에서 목판 인쇄술이나 활자들이 급급히 증가했나요? 오랜 전쟁으로

인한 피폐된 정신적 갈증을 불교라는 종교에 귀의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했고 그러다보니 인쇄문화등 문화들이 증대됩니다. 물론 조선이나

현대에 비해 일반 백성들의 삶의 간격은 귀족시대와는 다르죠. 괜히 귀족시대

어쩌고 한게 아니니. 그럼 주변 어느 나라 어느 세계사고 그럼 만민이

평등하거나 나름의 높은 부와 사회적 위치를 가졌는가를 본다면

딱히 신라, 고려의 중세적 귀족 문화에 한탄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그들만의 열정과 도전으로 치열하게 살아 왔고

그런 선조의 삶과 역사에 대해 우리가 단순히 한탄 폄하할 필요가 없다는

논지임. (그리고 무슨 조선이 마냥 상업을 등한시 했다는 논조는 뭐임?)


(그리고 현시대 천하의 세계최대 내수 소비시장이라는 미국도 수출입 못하

면 엄청난 가격 폭등에 내수시장 유지 못합니다. 옆 잽이나 짱국 역시도 마

찬가지. 얘들 원자재나 에너지 수입 못하고 제대로 경제나 소비시장이

굴러갈 것 같은가요?)
                         
문삼이 14-12-13 17:54
   
맞아요
전 현시대적 입장에서 고대사 재단하고있는것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라시대나 고려시대를 비하한건 아니죠.
신라시대에 경주인구가 100만이나 되고 고려시대에 엄청난 귀족문화가 형성되고 이런글 숱하게 봤지만 그 밑바탕의 민중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표현하지 않는 우리역사에 대한 아쉬움이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좌뽕에 민중역사쟁이는 아니고요.
다른나라와 비교하지 않고 신라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 이렇게 흘러가는 역사속에서 우리나란 무역에 집중한적도 있고(신라,고려) 무역을 끊고(물론 대외환경의 변화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업생산력에 치중하다 자본축적을 못하고 결국은 일본에 나라를 잃은걸 보고 우리나라가 나아갈방향이 뭘까 그냥 궁금해 끄적거린것뿐이죠.

평소 굿잡스님이 역사적 소견이 대단한건 알고있고요(비아냥 아님) 하지만 그런 역사적 사실속에서 왠지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이 과거에 비교되서 끄적거렸네요.
                         
굿잡스 14-12-13 18:12
   
다른나라와 비교하지 않고 신라시대,고려시대,조선시대 이렇게 흘러가는 역사속에서 우리나란 무역에 집중한적도 있고(신라,고려) 무역을 끊고(물론 대외환경의 변화때문이기도 하지만) 농업생산력에 치중하다 자본축적을 못하고 결국은 일본에 나라를 잃은걸 보고 우리나라가 나아갈방향이 뭘까 그냥 궁금해 끄적거린것뿐이죠.>

님의 댓글을 보니 어느 정도 님의 전체적 취지는 저도

공감합니다만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잽도 자본을

축적해서 울나라 강점한게 전혀 아닙니다. 도리어 기형적 관치 군수위주로

자국 경제가 기울어지자 감당 안되는 상황에서 정한론이 대두된 것임.

그리고 이건 당시 세계최강 영국도 못한 일입니다. 영국도 수백년간 님이

한탄했든 대항해시대에 무역과 중상주의를 통해서 오랜시간 자본을 축적하고

그 사이에 수많은 민중 노동자의 피폐와 희생속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일반

분들이 서구의 너무 백인우월적 시각에서 과학 업적 부각하니 마치 영국이나

서유럽에서 과학의 근간이 나온 듯 착각도 하지만 이것도 중동 수학과 과학,

건축학등에 상당한 공헌을 입은 바 컵니다.)


님의 근대적 시각은 일반분들이 어디 잽극우나 국내 식근론 주장자들의

편협하고 마치 잽은 근대적 자본과 기술력을 완연히 축적하고

대한제국을 강점하고 그래서 지배가 당연하다는 식의 논리적 사고의 연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하군요.

이건 제가 이전에도 누누이 말했지만 잽도 자국의 농업 잉여생산물 즉

농민들의 피를 빨아서 해외 무기와 시설 도입에 열을 올렸고 나아가

러사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당시 세계최강 영,미등의 자본과 기술적 스포터

하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잽의 본격적 공업화도 러일 전쟁 후

고종의 근대적 금융 인프라의 막대한 조세액을 강탈하고 산업화의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식량 부족분을 대대적으로 우리로부터 악랄하게 강탈하고

그외 막대한 자원과 인적 수탈을 기반으로 해서 본격화 된 것입니다.
     
굿잡스 14-12-13 17:07
   
울나라는 이미 삼국시대에 귀족 자제를 위한 고등 교육기관외에도 이미 서민들을 위한 경당

제도가 만들어지고 이후에도 고려, 조선의 서당으로 다시 근현대의 보편적 의무교육으로 이

어져 오면서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 교육제도를 일찍히 이루어 온 나라인건 아심?(서토나 왜

가 이정도 수준을 보였음? ㅋ)



공경들의 저택이 10여리에 뻗쳐있는데,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누각은 봉황이 춤추는 듯 이무기가 기어오르는듯.

서늘한 마루와 따스한 방이 즐비하게 갖춰져 있고, 금벽이 휘황하며 단청이 늘어섰네.

비단으로 기둥싸고 채전으로 땅을 깔고, 온갖 진기한 나무와 이름난 화초들,

봄의 꽃과 여름 열매, 푸른 숲에 붉은 송이, 그윽한 향내 서늘한 그늘이 한껏 곱고 아름다움을 뽑내어오네.

-최자 [삼도부] 중에서-


근자에 사신이 그곳에 가서 물어보고 알았지마는, 임천각(臨川閣)에는 장서가 수만 권에

이르고, 또 청연각(淸燕閣)이 있는데 역시 경(經)ㆍ사(史)ㆍ자(子)ㆍ집(集) 4부의 책으로

채워져 있다 한다.국자감(國子監)을 세우고 유관(儒官)을 선택한 인원이 완벽하게 구비되

어 있었으며, 횡사(黌舍 학교를 말함)를 새로 열어 태학(太學)의 월서계고(月書季考)하는

제도를 퍽 잘 지켜서 제생(諸生)의 등급을 매긴다. 위로는 조정의 관리들이 위의가 우아

하고 문채가 넉넉하며, 아래로는 민간 마을에 경관(經館)과 서사(書社)가 두셋씩 늘어서

있다. 그리하여 그 백성들의 자제로 결혼하지 않은 자들이 무리지어 살면서 스승으로부

터 경서를 배우고, 좀 장성하여서는 벗을 택해 각각 그 부류에 따라 절간에서 강습하고,

아래로 군졸과 어린아이들에 이르기까지도 향선생(鄕先生 자기 고장의 글 가르치는 선생)

에게 글을 배운다. 아아, 훌륭하기도 하구나!


-송나라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 1123년의 내용)-

 

우리나라는 문물과 예악이 흥행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며 장삿배가 연이어 내왕하여서

값진 보배가 날마다 들어오니, 중국과 교통하여도 실제로 소득이 없을 것입니다. 거란과

영구히 절교하지 않을 터이면 송 나라와 교통함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따랐다.
 <고려사절요 문종 12년>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 했는데, 극동에 있어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

-도화견문지(1080년경에 송나라의 곽약허가 지은 책)


왜국의 안습 가옥

http://blog.daum.net/hwang7306/3120654
굿잡스 14-12-13 17:10
   
서토도 그렇지만 특히 왜국은 서양식 벽난로형의 공기 순환

방식도 우리처럼 온돌 구조도 없다보니 일반 백성들은 실내에서 매캐한 연기속에 상당히 불결하고

추위속에서 살았고 이건 왜국의 지배층도 대동소이 했음. 그외 특히나 우리는 각 집마다 담장과 구조자체

가 개인간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게 따로 설계되어 있던 반면에 왜국은 그런 구조도 없이

무엇보다 에도시대 주요 대도시 쿄토, 오사카, 에도(도쿄)등은 허술한 밀집 목재 가옥으로 전

염병과 함께 일본재이사’(日本災異 史)에 따르면 1590년대 이후부터 기록된 소소한 걸 뺀

대형 화재만 779차례나 이를 정도였음.(얼마나 끔찍했는지 알만하죠) . 기와라는 것도 왜국

은 고대에는 워낙 귀해서 나라 헤이안 시대에도 판개궁이라고 왕성 조차도 판자 지붕이

대다수였던게 실상에 에도시대에도 일반 백성은 제대로 꿈도 못꾼 주거였음. 사무라이나 대

상인들 기와라는 것도 보급형 암기와로 우리처럼 암,숫기와의 고급형도 아니였고.


대개 성곽을 쌓을 때 높은 산을 베고 있다. 가끔 언덕이나 산기슭을 나와,
또한 구불구불 둘러 있는 것이 보인다. 큰 것이 날아갈 듯 치첩이 솟아 있고,
작은 것도 우뚝하게 표관이 웅장하다.

환취(황해도 봉산군에 있는 누각)는 날아갈 듯 아름답고, 총수(산 이름)는 구름이 이어졌다.
보산(관<關> 이름)에는 서기가 날아오르고, 금암(관<關> 이름)에는 시내가 통과한다.

[개성은] 봄바람에 술집 깃발이 나부끼고, 달밤에 음악소리 들린다.
그 민물(民物)은 풍성하여 실로 다른 고을에 비길 것이 아니고,
풍기(風氣)는 밀집하니 또한 서경(평양)에 견줄 바가 아니다.

[서울은] 트인 길과 통한 거리는 바르고 곧아서 구부러짐이 없고,
잘라낸 듯한 처마에 우뚝 빛나는 집이다.
모든 집은 높은 담이 있어서 바람과 불을 막고,
방마다 북쪽 창을 뚫어 더위를 피한다.

[서울에는] 종고라는 다락이 있다. 성 안의 네거리에 있는데 매우 높고 크다.

서울 안에 우뚝 솟았고, 길가에 높고 높도다.

시끌벅적 수레와 말 소리가 울리고,  끝없이 어룡 유희가 나온다.

식기는 금, 은, 동, 자를 섞어서 쓰고, 품물(品物)은 바다와 육지의 진기한 것이 고루 많다.

경기 안의 경치로는 한강이 제일이다.
누대는 높아 구름을 막고, 물은 푸르러 거울처럼 비춘다.
나루로는 양화도가 있는데, 물산(物産)이 또한 번성하다.

활은 중국의 제도에 비하면 조금 짧다. 그러나 화살은 매우 잘 나간다.



-명(明)의 동월(董越)이 1488년의 조선을 보고 1490년에 쓴 조선부[朝鮮賦]-


이 나라는 풍요하여 많은 쌀과 보리가 나고, 과일로는 배, 호두, 무화과, 밤, 사과, 잣,
그리고 무진장한 꿀, 약간의 비단, 다량의 면화와 베를 생산하고 있다. 지하자원으로는
금과 은 광산은 적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말과 소, 양질의 노새, 당나귀, 게다가 전 국토에 걸쳐
수많은 호랑이가 서식하고, 그 밖에 갖가지 다양한 동물이 있다. 그들이 만든 공작품은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그들이 솜씨가 좋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사람들은 피부색이 하얗고
건강하고 대식가들이며 힘이 세다. 그들은 터키 인의 활과 같은 작은 활을 매우 잘 다루고,
독을 바른 화살을 사용한다고 한다.

역대의 조선 국왕들은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도시에 큰 궁전을 지었는데,
그곳에 수많은 가신을 거느린 관청이 있었다. 서민들의 집은 대부분 기와지붕이며,
그 밖에는 초가지붕으로 그다지 청결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귀인과 부호들은
결이 고운 식물로 짠, 정교한 장식이 있는 극히 질 좋고 광택이 나는 돗자리를
집안에 깔고 있는데, 일본인이나 일본에 오는 포르투갈 인들은 그것을 매우 진귀하게 여겼다.

우리는 나가사키에서 조선으로부터 들여온 몇 벌의 백의를 보았는데, 그 옷에는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게 공을 들인 자수를 해 놓았다. 그것은 어떤 부분은 짠 것인지
아니면 실과 바늘로 꿰맨 것인지 여간한 시력이 아니고서는 구별이 불가능 할 정도였다.
이상의 내용들이 조선을 여러 차례 방문했던 사람들을 통해 관백의 궁정이
조선에 대해 입수했던 정보의 요약이다.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ois, 1532~1597년)의 일본사(Historia de Japam)-





(5월 3일) 술시(戌時) 조선의 도읍 동대문으로 진입, 거기서 황성(皇城)의 모습을 바라보니 옥

루금전(玉樓■x殿) 늘어선 기와집, 널따란 성벽들의 조형미는 극치에 달하고 수천만 헌(軒)과

늘어선 대문들, 보귀로운 모습은 이루 말로 다할 길이 없다. 그런데도 막아 싸우려는 병사들

은 보이지 않고 대문은 굳게 닫혀 있어 온통 적막하였다. (중략) 내리(內裏) 안으로 들어가 보

니 궁전은 텅 비었고 사대문은 제멋대로 열려있었다. 그제야 전각을 자세히 살펴보니 궁궐

은 구름위에 솟아있고 누대는 찬란한 빛을 발하여 그 아름다운 모습은 진궁(秦宮)의 장려함

을 방불케 하더라. (중략) 후궁(後宮)에는 화장품 향기가 감돌고 산호의 대상(臺上)에는 화려

한 거울이 덧없이 남아있다. 난 향기는 전각 밖까지 풍기고 사람 살던 자취도 그렇거니와 하

염없는 구슬로 장식한 침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건물마다 문이 열려 있고 궁문을 지키

는 자 없으니 어디를 보아도 처량하기 짝이 없다. 그토록 용맹한 고니시도 천자(天子)의 옥좌

(玉座)에 절을 하고 신성하고 고아한 분위기에 휩싸여 두 눈에 눈물이 괴니 소오스시마, 아리

마, 오무라도 따라 눈물을 흘리었다.

-에도시대의 문헌 "조선정벌기 (朝鮮征伐記)"에서-



조선의 5궁 규모.

경복궁 +창덕궁 +경희궁+창경궁+경운궁(본래는 연계된 구조임.)

43만㎡+ 43만㎡+ 23만㎡ +21만㎡+6만㎡ (아래 단위는 생략)
=136만㎡
 
 
자금성 면적
72만㎡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EastAsia&wr_id=50733&sca=&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C%97%90%EB%8F%84+%EC%A0%95%EB%B2%8C%EA%B8%B0&sop=and
굿잡스 14-12-13 17:13
   
개성의] 여염집은 만 정(井)이나 되고 곡물은 백 전(廛)이 된다.

(중략) 봄바람에 술집 깃발이 펄럭이고 달 밝은 밤에 피리 소리 들린다.

민물(民物)은 풍성하여 실로 다른 고을에 비길 것이 아니고, 풍기(風氣)도 밀집하여 서경

(西京, 평양)이 견줄 바가 아니다.

-명나라의 문헌, 조선부(朝鮮賦, 1490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집은 모두 기와로 덮었다. 외방(外方)도 그러하다.

오직 초야의 사람만이 모두 초가집이다.

-김성일의 풍속고이(風俗考異, 1590년)-


프랑스인 선교사 마리 다블뤼는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식사량은 1ℓ의 쌀밥으로, 아주 큰 사발을 꽉 채운

다. 양반이나 평민이나 2, 3인분 이상을 쉽게 먹어 치운다. 정말 대식가들이다"고 했다. 1890년대 한양을 찾

은 영국인 여류 여행가 이사벨라 비숍 역시 "조선 사람들은 한 사람이 3, 4인분을 먹어 치우고, 3, 4명이 앉

으면 20~25개의 복숭아와 참외가 없어지는 것이 다반사"
 
 
Total 20,025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공지] 게시물 제목에 성적,욕설등 기재하지 마세요. (11) 가생이 08-20 90935
7821 [기타] 역사왜곡 한민족에 역사를 과잉해석과 왜곡 날조를 … (6) 변방경상도 12-17 1561
7820 [일본] 미즈키 시게루의 종군위안부 만화 (2) 타와리 12-17 10384
7819 [기타] 제가 학교에서 동아시아사를 배웠는데요 (10) 대은하제국 12-16 2103
7818 [기타] 금과 청이 우리역사라는소리는 개짖는소리다. (181) 반인간 12-16 5759
7817 [일본] 일본은 왜 역사를 왜곡하나? / YTN 사이언스 (2) LikeThis 12-16 2109
7816 [기타] 지증왕이 64세가 되도록 장가를 못간이유 (3) 대은하제국 12-16 2711
7815 [기타] 양직공도,왕회도 에서 나오는 왜사신 제대로 고증이 … (28) kiyoke 12-15 4282
7814 [일본] 아베, 장기집권 발판...우경화 '박차' (7) 블루하와이 12-15 1992
7813 [일본] 일본에게는 통한의 대패 미드웨이 해전 (43) 니르 12-14 7539
7812 [일본] 日 오늘 총선...아베 정권 '우향우' 한 번 더 (2) 블루하와이 12-14 2695
7811 [일본] 일본 반응 사이트 가보니 토나오네요 (5) 조석 12-13 4358
7810 [다문화] 영상:외국인노동자 2명이 한국사람 머리를 짓밟아 두… (4) doysglmetp 12-13 4183
7809 [기타] 아편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7) 대은하제국 12-13 1844
7808 [기타] 고구려 존속기간은 1000년? (22) 대은하제국 12-13 5235
7807 [기타] 백제인 '하늘 제사' 지낸 천제단 유적 첫 발견 걍노는님 12-12 4008
7806 [기타] 준가르 제국 대해서 궁금한게 있습니다 (5) 대은하제국 12-12 5615
7805 [중국] 중국의 부정부패.. (6) 휴로이 12-12 3045
7804 [일본] 미국, "우선순위는 한일관계 개선"...일본, "우리 탓 … (11) 블루하와이 12-12 3722
7803 [북한] [펌] 북한의 개혁의지 및 대외관계 (6) 무다무닼ㅋ 12-11 2021
7802 [일본] 일본의 불완전한 중앙집권시대 (2) 덤벨스윙 12-11 2252
7801 [기타] 신라시대 경제력이 어땠나요 (18) 키큰게좋아 12-11 3798
7800 [기타] 송나라가 근대산업혁명을 이룰 수 있는 시스템을 갖… (9) kiyoke 12-11 5211
7799 [기타] 만약에 고려가 금나라를 정벌했다면 어떻게 되었을… (27) 대은하제국 12-11 4929
7798 [기타] 상고한어 질문한 김에, 만다린과 캔토니즈에 대해서 … (11) kiyoke 12-11 3148
7797 [기타] 밑의 상고한어 동영상 보고 의문인게.. (20) kiyoke 12-11 4049
7796 [기타] 어찌 선비족이 한민족에 포함되는지요?? (11) kiyoke 12-11 2703
7795 [기타] 우리는 수렵민족인가요? (8) 대은하제국 12-11 1523
 <  451  452  453  454  455  456  457  458  459  4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