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고타키 도루 저 [2000년을 싸워도 모르는 한일관계의 진실]이라는 책을 보면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영미관계 같다고 한뒤 한국과 일본은 서구가 문화교류나 동질감이 거의 없던 아시아국가와 아프리카를 통치한 것 과는 다르다.
영미관계에 대립해보면 영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세운 미국이라는 나라가 훗날 영국을 식민지화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제 생각에도 이런 통치는 한-일관계가 유일하며 그러니 한국인의 반감도 특별한 파급효과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중국에게조차도 이런 수모를 겪지 않았는데 이런 인식말이죠.
저자는 일본이 주장했던 임나일본부설은 팔레스타인이 살고있던 땅을 2000년전 자신의 땅이라고 말하며 그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과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임나일본수설은 명분이 없고 역사적으로도 증명할 길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학계에서도 대체적으로 임나일본부설은 부정하고 있구요-.
저자는 동아시아 3국은 중-한-일 관계로 억압의 이양을 해온관계라는 독특한 인식을 하더군요.
-(한국은 중국에게 느끼는 열등감을 일본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으로 이양했다.)
이런 관계를 바꾼 계기가 메이지유신이었다고 말하며
이때부터 새롭게 한일관계는 미-일-한이 추가되었다고 하더군요.
메이지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미국의 페리함대에 당한 굴욕감과 강제개항, 불평등 조약을 즉시 조선에게 강화도조약등으로 그대로 이양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죠.
일본은 미국을 향해 오랜기간 잠재적인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후 패전을 당하는 치욕을 겪으면서 그런성향이 더 두들어졌습니다
예전에 일본의 한 외교대신이 미국의 정치인사에게 미국이 원폭피해에 대해 사과한다면 일본도 다른 아시아 국가에게 사과할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또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은 미국에서 위안부결의안이 통과되면 일본국회도 원폭결의안을 통과시킬거라고 미국에게 압박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미국을 엄연한 전쟁범죄인 원폭가해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범죄는 사과하지 않으면서 도덕선생님처럼 한국에게 전쟁범죄에 대해 사과하기를 강요하는 미국에게 부당함을 느낀 일본인의 인식을 대변하는 압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본이 미국에게 가진 피해의식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자신들의 피해의식이 강하다보니 가해자로 자신들을 인식하기가 힘든것이 지금의 일본입니다.
자신들이 미국에게 사죄를 요구하지 못하는데 한국은 사죄를 당당하게 요구한다.
한국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사과를 요구할 때마다 원폭피해를 미국은 사죄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늘 다른 나라에 머리를 조아린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 미국역시 전쟁범죄를 저질렀는데 일본은 패전국에다가 미국의 영향력아래있기에 언제나 부당함을 감수한다라는 인식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억압된 감정이 야스쿠니신사와 같은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표출되기도 합니다.
한창 야스쿠니신사논란이었을 경우에 일본은 "외부의 압력에 굴하지 말아라","당당히 참배하라"
이게 주요 여론이었습니다.
그리고 우익정당이나 산케이신문과 같은 극우신문, 정치인-이시하라신타로의 잇단 망언들은 그런 일본인의 감정을 대변해주기도 하죠
한국원폭자배상문제만 해도 한국은 일본에 사죄를 요구하지만,그건 미국이 대신해야 한다.
(물론,일본인피해자의 배상과 함께) 이런 인식이라고 하더군요.
일본 초등학교역사교과서에는 미국은 일본에전쟁피해를 가져다 주었다라는 논조입니다.
일본인은 미국에 대한 피해인식이나 사죄요구를 표면화할수조차 없는 현실에 울분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사죄요구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반응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 미국역시 한-일역사갈등의 원인제공자라는 인식입니다.
-저역시 이관점에는 동의합니다.-물론 일본인의 관점이 아닌 한국인의 관점에서 가쓰라-태프트밀약이나 도쿄전범재판에 피해국인 조선이 참여하지 못한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만과 한국의 식민지역사인식에 관해서 저자는
대만과 한국의 일본에 대한 인식차이를 비교하면서 말하기를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바탕으로 그당시 한일동족론으로 하나의 일본이라는 인식으로 창씨개명같은 경우에도 조선인은 강제적으로 시행한반면
대만인은 그들 스스로가 강제로 시행하도록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적으로 시행하고 강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만과 한국사이의 식민통치를 보면
한글말살과 같은 정책이나 내선일체같은 민족문화말살이라는 정책을 대만에는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한국은 엄연한 왕조국가였고 그왕조를 말살하다시피-고종독살,명성황후시해,영친왕,덕혜옹주 강제결혼, 경복궁을 허문 자리에 세운 조선총독부가 상징하듯이 한국가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주었고
그게 지금까지도 한국인의 집단의식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반면 대만에는 위와같은 것들을 시행할 필요성이 없었죠- 객님의 글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게다가 대만은 해방이후에 장제스의 악명높은 독재로 인해 "일본에는 핵을 떨어뜨리고 대만에는 장제스를 떨어뜨렸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제식민통치보다 더한 고통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자연 일제통치에 대한 향수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이후에도 중공에게 위협받는 상황에서 대만은 경제적으로(oem기지등)도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컸고 일본의 도움이 절실했기 때문에
반일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될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대만은 오히려 일본에게 호감을 사기위해 노력했죠
반면 한국에서는 해방이후 6.25전쟁으로 인한 일본의 경제회생이라든가 일본을 대신해서 죄없는 우리가 분단되었다는 피해의식과 더불어서 해방이후에도 "타도일본","반일전선"을 키워왔죠.
-민족주의적. 반제국주의 규탄적 역사교육도 한 몫했구요.
이런 대만과 한국의 차이를 비교하며 한국인의 역사인식이 잘못되었다고 일본의 보수파들은 말하지만 대만과 한국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