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를 읽는 10대,
공기를 읽지 못하면 이지메
일본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로 'KY'라는 영어 이니셜이 있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그 사람은 KY캐릭터! KY니까 출세를 못하지..."라는 식으로 사용되는 단어다. '공기를 못 읽는(空気を読めない)'이란 말 속에, '공기(Kuki)'와 '못 읽는(Yomenai)'의 이니셜인 K와 Y가 합쳐진 유행어이다.
첨단은 아니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일상용어로 정착돼 젊은이들의 대화중에 자주 등장한다. '공기를 못 읽는다'는 말은 한국식 표현으로 바꾸면, '분위기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식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우울한 분위기인데 혼자서 조크를 던지는 '푼수'스타일을 일컫는 말이다. 유행어의 대부분이 그러하듯, KY란 말의 근원지는 1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층이다. 학교에서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동급생이나 스승을 비하하려 사용하는 말이 KY다.
KY는 세계 최초로 일본에서 탄생한 '변태 문화(?)'를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왕따'로 통하는 집단 따돌림, 즉 이지메를 가리킨다. 최근에 미국 교육현장에서 중점 과제로 떠오른 '괴롭힘(Bullying)'은 물론, 한국 왕따의 원조에 해당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미국에서는 아예 영어로 '이지메(IJIME)'라고까지 부른다. 이지메의 원인은 여러 각도에서 분석된다. 일반적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약하거나 소외된 급우를 선택해, 실험용 쥐처럼 갖고 논다는 것이 이지메의 현황이다. 한국도 서서히 닮아가고 있지만, 반드시 '집단'으로 이뤄지는 것이 일본 이지메의 특징이다. 집단의 논리를 통해, 이지메를 행하는 학생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이지메의 대상이 되는 약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람을 xx까지 몰아가는 이지메지만, 괴롭힌 학생은 잘못외 없다고 생각한다. 괴롭히도록 만든, 공기를 못 읽는 급우에게 책임이 있다는 '황당한 논리'가 그들을 지배한다.
이지메를 원해서가 아니라, 이지메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약한 급우를 공격한다. 유행어 KY를 통해 볼 때, 무언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모두가 인지하는 공기를 놓치면서 외톨이로 전락한다. 공기를 함께 나누지 못한 '죗값(?)'으로 집단 이지메를 당하는 것이다. KY는 일본인의 의식구조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신조어 가운데 하나이다. 잠시 스쳐지나가는 유행어 수준이 아니다. 10대, 나아가 10살 이하 초등학생들의 의식조차 지배하는 일본식 커뮤니케이션의 전형이 KY이다. 한국인 대부분에 해당하는 사항이지만, 도쿄에 아무리 오래 살아도 7만 엔짜리 월세방의 보증인으로 나설 일본인을 구하기 어렵다. 마음을 트고 지낼만한 일본인 친구를 만드는 한국인은 극소수이다. 친하다고 생각해서 얘기를 나누지만, 뭔 가 큰 장애물이 드리워져 있다. 외국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공기의 벽'때문이다.
- 유민호 ( [한국은 일본은 너무 모르고, 일본은 한국을 너무 잘 안다] 일본 내면 풍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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