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이상하게 해석하신 분이 계셔서 참고하시라고 원문과 해석, 그리고 조잡하지만 제가 부가설명해봤습니다.
位宮五世孫劉。 위궁의 5세손 유가
위궁(산상왕) 오세손이면 미천왕(재위300-330)이고 밑의 영가 연간과 일치한다. 유라고 한것에서 보면 사유였던 고국원왕 같은데 머 서긍이 외국인이니 착각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서긍이 의도한 건 고구려와 선비모용씨와의 분쟁시기를 알려주는 것 같다.
晉永嘉中。진나라 영가(307-312) 연간에
영가 : 서진 진회제 사마치의 연호
與遼西鮮卑慕容廆隣。요서의 선비족인 모용외와 이웃하였는데
모용외(269-333) : 전연의 기초를 다진 인물로 고구려를 침입하기도 했고(봉상왕), 침입당하기도 했다(미천왕)
廆不能制。모용외도 억제하지 못하였다
모용외 당시 고구려는 미천왕시기로 광개토왕 이전에 최고의 전성기 시절이다. 억제가 문제가 아니라 고구려의 침공을 당했던 시기
康帝建元初。강제 건원 초에
강제[동진 4대왕(재위 342-344)], 건원은 연호, 즉 342년 모용황의 고구려 침공시기
廆子皝帥師伐之。모용외의 아들 모용황이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를 정벌했다
파란만장했던 고국원왕의 수모의 시작
大敗。(고구려가) 크게 패하였다.
다들 아시다시피 고구려는 참패하고, 수도 환도성이 함락돼 미천왕의 유해와 왕모 등 5만여명이 포로로 잡혀갔다. 고구려가 글의 주체라서 생략됬고, 대패라고 한 겁니다. 뒤의 글도 마찬가지로 주어가 고구려죠.
後爲百濟所滅。(고구려는) 뒤에 백제에게 멸망되었다.
주어가 역시 고구려이고 고국원왕이 백제와의 싸움에서 전사한걸 멸망한 걸로 착각했나 봄.
한문 번역본만 짧게 가져와서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고려도경 글의 주체는 고구려이고, 선비 모용씨가 아닙니다. 따라서 백제에 멸망당했다 역시 고구려이고, 이는 글의 작자가 고구려왕이 백제와의 싸움에서 전사한 걸 잠시 고구려가 망했던 걸로 착각할 수도 있는 것이죠.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는 고구려의 정체성을 이은 국가라는 걸 보여주는 중국인의 사료라는 점에서 좋은 자료인데, 이걸 이상하게 왜곡하는 건 삼가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