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조선과 청의 경계나 국경을 말할때 빠지지 않는것이 백두산과 압록강과 두만강입니다 그래서 백두산에 대해 글을 적습니다
비류국(沸流國)이 고구려에 항복하였다.
비류국은 비류수(沸流水)의 상류에 있다. 고구려 임금이 사냥하러 갔다가 그 나라에 이르렀는데
을유년 마한 신라 시조 22년 고구려 시조 2년(한 원제 건소 3, B.C. 36)
행인국은 태백산 동남쪽에 있는데, 이때에 이르러 고구려가 신하 오이(烏伊)ㆍ부분노(扶芬奴)를 보내어 그 땅을 취하고 성읍(城邑)을 삼았다.
기축년 마한 신라 시조 26년, 고구려 시조 6년(한 성제 건시(建始) 원년, B.C. 32)
마침 하북성에 태백산이란 지명이 남아있다. 태백산은 단군왕검과 관련된 지명이다. 고구려당시 고구려군은 비류국을 합병한뒤 행인국을 합병했는데 그당시 고구려인들은 태백산을 지금 하북성 령구남쪽으로 본 것이다.중국지리지에는 만성현이 바로 낙랑군일부가 합병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만성현근처가 바로 고대의 낙랑군인 것이다. 또한 보정시를 가리켜 명나라지리지는 한나라때 창려(사마천의 사기에 조선의 왕험성이 있다고 했다)라고 했다. 즉 전부 낙랑군인 것이다. 지금도 만성현근처 서수현에는 수성진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청나라지도에는 그곳이 진장성의 출발점이라고 했다. 고대 기록에 진장성의 출발점은 낙랑군 수성현이다. 즉 명나라때혹은 청나라때 저곳일대를 진장성의 출발점인 낙랑군 일대라고 본 것이다. 지금도 하북성 서수현홈페이지에는 그곳인 고대의 낙랑군이라고 적고 있따. 친일 매국사학계는 중국홈페이지와 중국역사기록을 확인하지 않고 매국노 이병도가 쓴 글을 앵무새처럼 외우기때문에 아무생각이 없는 놈들이다.
묘향산(
妙香山)
부의 동쪽 1백 30리에 있다. 태백산(太伯山)이라고도 하며, 옛 기록에, “그 산에 3백 60채의 암자가 있다.” 하였다. ○ 이색(李穡)의 기문에, “향산(香山)은 압록강 남쪽 기슭 평양부(平壤府)의 북쪽에 있어 요양(遼陽)과 경계하고 있으니 산의 크기가 비길 것이 없으며 장백산에서 갈라진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평안도 영변대도호부
무비지에 실린 조선도이다. 백산이 2개가 존재하는데 한개는 요양근처이고 한개는 회령과 강계의 동쪽에 있다 .그렇다면 조선의 지리지와 비교할때 요양근처의 백산은 태백산혹은 묘향산이라 불렀으며 동쪽에 장백산이 있으며 산맥이 연결되어 있다 볼수 있다.
고구려의 별종(別種)인 말갈의 속말 부락(粟末部落) 걸사 비우(乞四比羽) 및 고구려의 남은 종자와 함께 동쪽으로 달아나, 요수(遼水)를 건너서
태백산(太白山)지금의 백두산(白頭山) 을 지키고 동쪽으로 오루하(奧婁河) 를 막고 벽을 세워 스스로 견고하게 하였다.
동사강목 제4하 경자년 효소왕 9년(당 무후 구시(久視) 원년, 700)
오루하는 청나라기록에 지금 요녕성 심양시 동쪽에 있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신라와 발해의 경계였던 곳이다. 심양시 남쪽 요양시는 발해가 동평부로 하고 말갈의 일파인 불녈부족의 중심지로 삼았다.
북경과 창평현사이에 백두산이라는 지명이 지금도 남아있다. 즉 대조영이 동모산(태백산)아래 나라를 건국하고 상경이라 했는데 그곳이 바로 지금 북경과 창평현사이 거용관일대임을 알수 있다. 또한 다른기록에 주몽이 세운 홀승골성이 바로 대조영이 세운 성과 동일하다는 것이 있는데 주몽역시 부여에서 탈출한후 이곳에 정착했음을 알수 있다. 그래서 대조영역시 그곳에다 성을 쌓고 수도로 정한 것이다.
고구려초기의 태백산과 고구려 말기의 태백산이 위치가 다른 것이다. 또한 고구려말기의 태백산은 원래 동모산이라 불렸고 이후에 백두산이라고도 불린 것이다. 조선초와 고려말에는 묘향산이라고 부른 것이다.그럼 이 백두산(태백산,동모산)의 동쪽 줄기에 있다는 조선지리지의 장백산은 어디일까?
천하고금대총편람도라는 청나라에 패전한 후에 그려진 조선지도이다.
분명히 조선은 금나라의 상경(지금 하얼빈) 회령(발해의 신상경지금 하북성 승덕) 말갈상경(승덕혹은 요하서쪽의 어떤 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그증거가 바로 함경도 장백산이란 기록때문이다. 분명히 백두산과 별개로 그렷다. 그런데 백두산의 위치가 이동해 있다.
즉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영토가 축소되서 지금 베이징근처에 있었던 조선의 백두산(묘향산,동모산,태백산이라고도 불림)은 졸지에 만주일대로 옮겨진 것이다.
영조시대 작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변사인방지도 함경북도 지도이다.
지도에 흑룡강과 백두산 보이는가!!!
지금현재 우리가 두만강과 흑룡강이라 부르는 강이다. 잘보이는가!!!
청나라에 패전한뒤 조선의 백두산은 베이징에서 지금 흑룡강의 남쪽으로 옮겨진다. 그곳은 지금 소흥안령산맥이 있는 곳으로
지금 핑딩산이라고 부른 곳이다. (북한의백두산천지연은 둘레가20리도 안된다)
태조이성계는 합란부 여진족출신으로 장백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라는 기록도 있다
청나라고지도및 중국역사지도는 공통적으로 태조이성계의 발원지 합라를 서요하상류로 표기한다. 주몽의 태백산 대조영의 백두산 이성계의 합라 누르하치의 장백산은 모두 하북과 요녕성서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