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 고구려 관리가 썼던 새깃달린 고깔.. 이벽화를 다들 한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고구려하면 절풍. 절풍하면 고구려의 이미지인데 사실 이 절풍 내지 고깔은 고구려사람만 썼던게
아니고 고조선에서 갈라진 모든 나라들은 다들 이 절풍을 썼습니다.
다시말해, 절풍은 우리민족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어 우리민족의 풍습에 대하여 기록한
옛 중국사서들을 보면 항상 이 절풍에 대한 묘사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남제서 고구려관련 기록에는, 이 절풍이 삼국시대부터 썼던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우리민족들이 애용해왔던 모자임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부여에서 갈라진 고구려뿐만 아니라 신라 가야 심지어 마한에 이르기까지
모두 절풍형 고깔을 썼다면 결국 절풍, 고깔의 뿌리는 만주와 한반도 모두를 아우를수 있는
고조선에 있다고 짐작할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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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제서 동남이열전 고구려편
고려인(高(구[句)]麗人)의 습속은 좁은 바지를 입고, 관(冠)으로는 일량(一梁)의 절풍(折風)을 쓰는데, 이를 책(幘)이라 한다.
오경(五經)을 읽을 줄 안다.
고구려의 사신이 국도(國都)에 있을 때 중서랑(中書郞) 왕융(王融)이 희롱하기를,
“입은 것이 적합하지 않는 것은 몸의 재앙이라는 말이 있는데, 머리 위에 얹혀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고 하니,
고구려 사신이 “이것은 바로 옛날 고깔(변弁)의 잔영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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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창녕 발굴 가야의 금동관모 열라 특이하고 제대로 복원하면
졸라 멋있을것임.
백제 금동관모
찌그러져 있는데 출토당시의 것을 찍은 사진
가야 양식의 금동관모
위의 아무런 새장식이 없는 금동관모와 이 새장식을 조립해서 썼음. 조립된 모습을
각자 상상해보시길.
맨아래사진은 문제의 전라도 영산강 유역의 신촌리 출토 금동관으로
여기도 절풍형 관모가 등장합니다.
이 사진들은 고구려가 아닌 신라 가야 백제의 절풍(고깔)형 금동관모들입니다.
고구려부터 한반도 남부의 모든 나라들의 지배계급들은 금속제 절풍에 금속제 장식날개를 달아
자신들의 신분을 과시했던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절풍형 관모는 오로지 우리민족에게만 나타나는 문화양식이었습니다.
우리민족이 바다건너 왜로 건너간 이후에도 5~7세기 섬나라 지배자의 고분에서는
백제 가야 영산강 유역 양식의 금동관모들과 여러 한반도계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죠.
얼마전 kbs 역사스페셜 대성동고분군의 진실 편에서
대성동 고분군의 주인공인 임나가라가 선비족이 아닌 부여에서 내려왔을 것으로 암시하는 내용을
내보낸바 있는데..
가야가 부여에서 출자된 만큼 이러한 절풍형 금동관모를 썼던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제가 이글을 쓴 이유는
요새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신라의 절풍형 금동관모도 등장하던데
우리민족 고유의 이 절풍형 관모를 대한민국의 이미지로 격상시키면 어떨까 싶어서 말입니다.
세계제일의 아름다운 금관이라고 해도 손색없는 신라금관 그리고 백제금관 고구려 금관,
삼한 모두 썼던 절풍, 고구려의 철갑기병 등등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해외에 알리는데 요긴하게 쓰일만한게
상당히 많은데 아직 거의 알려지지 못한게 아쉽습니다.
중국은 황비홍 머리 ㅋㅋㅋ 왜놈은 문어대가리 한국은 상투머리에 상투를 장식하기 위해서쓰는
절풍과 금동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