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의 제외하고 정사 관우전에 기록된 관우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 존경받을 만큼 대단한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뭐 실제로 정욱이 '관우,장비는 만인지적이다'라 평한걸로 보아 무력자체는 뛰어났을 것 같습니다만. 단순히 무력만 높다고 명장은 아니지요.
애초에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반동탁 연합군에 참가 자체를 하지 않았으니, 관우가 술이 식기전에 화웅의 목을 베었다는 것도 허구인데다, 실제 관우의 전적은 안량을 벤 것과, 우금의 7로군을 몰살 시킨 것 그나마도 자연재해의 힘을 빌은걸 제외하곤 딱히 눈에 띄는 승리를 찾을 수가 없죠.
“다시 5백 명을 저에게 늘려주시고, 제가 가서 그와 대적하게 하신다면, 관우는 제가 기침하고 침을 뱉음을 듣고, 감히 물을 건너지 못할 것이고, 물을 건너도 저에게 사로잡힐 것이라고 보장합니다.”
송본에선 위 爲 를 시 是 라고 썼다.
노숙이 곧 천 명의 군을 뽑아 감녕에게 더해주니, 감녕이 바로 밤에 갔다. 관우가 이를 듣고, 머무르며 건너지 못하고, 병영을 지으니, 지금은 마침내 이곳을 관우뢰關羽濑라고 지칭한다. -감녕전-
적은 위두(圍頭)에 둔(屯)이 있고 또한 별도로 사총(四塚)에 주둔하고 있었다. 서황은 위두의 둔영을 공격하는 것처럼 양성(揚聲-널리 소문을 퍼뜨림)하고는 은밀히 사총을 공격했다. 관우는 사총이 곧 무너지려 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보기 5천을 이끌고 출전했으나 서황이 이를 들이쳐 패주시키고, 포위망 안까지 깊숙이 추격하여 격파하니 (적군들은) 스스로 면수(沔水)에 투신해 죽기도 했다. -서황전-
관우는 제갈량諸葛亮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초의 재주가 누구와 견줘 비슷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제갈량은 관우가 승부욕이 강함을 알아,
마초의 자는 맹기다.
굳세고 맹렬함이 타인보다 뛰어나, 당대의 준걸로, 경포黥布, 팽월彭越의 동류라, 마땅히 익덕益德과 더불어 나란히 말을 몰아 앞서길 다투나, 다만 염髯의 아주 뛰어남엔 미치지 못합니다.” 관우는 아름다운 수염이 있었기에, 제갈량이 그를 염이라 일렀다. 관우는 편지를 살피곤 크게 기뻐, 손님에게 보여줬다. -관우전-
미방은, 미축麋竺의 동생이다. 장군 부사인傅士仁은 공안公安에 주둔하고 있었다.
평소 모두 관우가 몸소 자신들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싫어했다.
관우가 출진하니, 미방, 사인은 군수품을 보급하나, 모두 서로 돕지 않았다.
오지 여몽전의 주에 인용된 오록吳錄에서 이르길 : 남군성南郡城 안에서 실수로 불을 내, 자못 병장기를 태웠다.
관우가 말하길 “돌아가면 마땅히 이를 다스리겠다.”, 미방, 사인이 모두 두려움을 품고 불안해했다. 이에 손권이 은밀히 미방, 사인을 달랬고,
여몽이 우번虞翻에게 사인을 항복하도록 설득하게 한 것이, 몽전蒙傳의 주에 인용된 오서에 보인다.
미방, 사인이 사람을 보내 손권을 맞이하게 했다. -관우전-
수경 장수주漳水注 : 장수 또한 남으로 임저현의 장향 남쪽을 지난다. 과거 관우가 맥성을 지키다가, 거짓으로 항복하고 달아나, 반장이 그를 이곳에서 참수했다. 장수는 다시 남으로 당양현當陽縣을 지나, 다시 남으로 맥성 동쪽을 지난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관우는 감녕에게 쫄아서 철수하고, 오만하고, 아랫 사람들 관리 못해 뒤통수 맞아 패하고, 최후에는 거짓항복한척 달아나다 최후를 맞이했는데...연의에서 보여준 모습들에 비하면 초라하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