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아」, 1969.7.
2. 한국인의 사상적 병폐
한국인의 사상적 병폐는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가 일제시대에 가졌던, 현재에도 무의식 속에 잠재하는 엽전사상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한국문화, 역사, 한국인의 성격, 일체의 한국에 관한 것의 부정적인 면만을 내세우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한국인은 자치능력이 없다, 우리의 운명은 미ㆍ소에 달렸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운명을 개척할 수 없다, 미국이나 일본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고 이들 나라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들은 게으르고 당파 싸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놈은 할 수 없다, 우리의 조상들은 해 놓은 것이 뭐가 있나, 한국인은 눌러야 말을 들어먹는 족속이니 독재를 해야 한다 등등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사상은 한이 없다. 한국에는 민주전통이 없다, 수학이 없다, 개인주의가 없다, 자아의 각성이 없다 등등 한국에는 없고 외국에는 있다는 생각들의 대부분이 자기말살적인 엽전사상에 유래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견해의 형태는 무한정으로 많지만 그 핵심은 우리들이 아주 못났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한국에 관한 좋은 점은 생각이 되지 않고 나쁜 점만이 눈에 보이는 심리다.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반대의 형태는 좋은 점만 보고 나쁜 점을 보지 않으려는 사고 방식이다. 이것도 극단으로 발전하면 국수주의로 흘러가는데, 이러한 사상은 일본이나 독일 같은 나라에서 길러지는 사상이지 한국의 풍토에는 맞지 않는 사상이다. 우리나라에서 부정적인 것을 드러내지 않고 긍정적인 것을 강조하는 이들은 원래 우리들이 일제의 압박 아래 자존심을 상실하고 너무나 짜부라져 있기 때문에 사기를 돋우어 주기 위해서이다.
한국에는 너무나 자기비하적이고 자기말살적인 사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열등감에 뿌리박은 과대망상적 국수주의적 사상은 대두될 여지가 없고 엽전사상이 핵심이 되어 있다. 이러한 사상은 이조 말기와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하에서 배태된 사상이다. 필자가 주장하는 민족신경증의 증상이며 개인신경증과 같은 증상 형성의 과정을 밟는다.
「한국인의 주체성과 도」(이동식 저, 1989년 일지사) p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