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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7-02 16:44
[기타] 우리가 정말 일본의 신화에 영향을 준거 맞나요?
 글쓴이 : 무도홀릭
조회 : 2,558  

단군 신화가 기록으로서 전해진 것은 일연의 『삼국유사』가 가장 오래 된 것이다. 그 후 조선 시대에도 『응제시주』와 같이 단군 신화에 대하여 여러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유학자들은 단군 신화의 내용들이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하여, 고조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단군왕검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였다. 단군과 고조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견해는 20세기 들어 일제 관학자들에 의하여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들의 논거는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단군 신화가 실려 있는 가장 오래 된 기록인 『삼국유사』는 13세기에 씌어진 것으로, 고조선은 기원전 2세기경에 멸망하였으니 그 시간적 차이가 무려 1500여 년을 넘어서는 것이어서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단군 신화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군 신화에 등장하는 환인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산스크리트 어의 '제환인타라(提桓因陀羅:천제(天帝))’에서 차용한 말로서 4세기 이후 불교가 수용된 이후에나 나타날 수 있는 용어라는 점, 그리고 풍백ㆍ우사ㆍ운사 등도 도교적인 용어로서 고조선 시대의 신화에 들어갈 수 없는 용어라는 점이 주된 논거였다. 그래서 단군 신화는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견해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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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에 정사도 아닌 책에 쓰여진 것을 신뢰하진 않던데 일본 사람들은...

고조선의 천손강림신화 정말 일본에 영향 준거 맞나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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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rgeirr 15-07-02 17:01
   
사실 저는 서로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하늘을 숭배하는 신앙은 상당히 널리 퍼져있는 것입니다. 당장 이란인들만 해도 그런 경향이 있었고, 중동쪽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하늘을 숭배한다고 해서 관계가 있다고 하기는 힘들지 않나 합니다.
     
무도홀릭 15-07-02 17:05
   
그럼 일본에 영향을 준 신화는 가야 신화가 유일한거네요. 걍 가야 사람이 이동한거겠죠
          
Centurion 15-07-02 18:01
   
단군신화의 내용

《삼국유사》(三國遺事)[2] 기이(紀異) 제1편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환인(桓因)의 서자 환웅(桓雄)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 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홍익인간[弘益人間])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神市)라고 하니 이로부터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면서 항상 신웅(환웅)에게 빌기를, “원컨대 (모습이) 변화하여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신웅이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기(忌)[5]하였는데 삼칠일(三七日 : 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기하지 않아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그와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항상 신단수 아래서 아이를 가지기를 빌었다. 이에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해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당고(唐高, 요[堯])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平壤城)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朝鮮)이라 칭하였다. 또 도읍을 백악산아사달(白岳山阿斯達)에 옮겼으니 그 곳을 궁홀산(弓忽山) 또는 금며달(今㫆達)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리기 1천 5백 년이었다.
주(周)나라의 호왕(虎王,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阿斯達)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수(壽)가 1천 9백 8세이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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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동국통감 외기》 등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2333년경에[4] 아사달(阿斯達) 또는 평양에 도읍을 두고 조선을 건국하여 1000여 년 동안 다스렸다고 전해지며 단군의 뒤를 이어 기자가 조선을 다스렸다고 한다. 단군은 고조선의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1000여 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렸다고 하는 기록은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이미 단군은 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누대에 걸친 국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5]

《고려사》와 《세종실록 지리지》, 《응제시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단군이 세 아들을 시켜 삼랑성(三朗城)을 쌓고 태자 부루를 파견해 하나라 우임금의 도산회맹에 참석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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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에 대한 기록 실린 역사서는《삼국유사》, 《제왕운기》이다. 고려때 기록이며 그 이전기록에 단군은 보이지 않는다. 고려 이전 기록인《삼국사기》에서는 단군이란 글자는 없지만 '선인 왕검'이란 글자가 보인다.

《제왕운기》에는 단군의 출생과 생애에 대해 약간 다른 기록이 전해진다. 《제왕운기》는 《본기(本記)》를 인용하여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의 손녀와 신단수(神檀樹)의 신이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고 한다. 단군은 고조선을 건국하고 1028년 또는 1038년 또는 1048년[6] 동안 다스리다가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제왕운기》의 단군은 ‘박달나무 단(檀)’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왕검(王儉)이란 글자가 최초로 등장하는 기록은 《삼국사기》의 고구려 동천왕 21년(247년)조이다. 동천왕이 평양으로 천도하였을 때의 기록에 세주로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이 살던 곳(원문,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王之都王險)’으로 등장한다. 인명(人名)으로 왕검이 등장하는 것은 이 기록이 최초이며 일반적으로 이를 단군왕검으로 이해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인명이 아닌 경우 위만이 도읍하였던 고조선의 수도에 왕검 또는 왕험(王險)이 나타나기도 한다. 《삼국사기》에는 선인 왕검에 대한 기록과 함께 선인 왕검이 왕이 되어 도읍한 곳이 왕험이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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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기존에 남아있던 역사서를 바탕으로 썼다는 소립니다.
고려 중기까지 남아있던 삼국시대 당시 역사책을 보고 썻다는 소리겠죠.


1.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紀異) 제1편에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2.제왕운기는 《본기(本記)》를 인용하여
3.《삼국사기》의 고구려 동천왕 21년(247년)조이다. 동천왕이 평양으로 천도하였을 때의 기록에 세주로 ‘평양은 본래 선인(仙人) 왕검이 살던 곳(원문, 平壤者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王之都王險)’으로 등장한다.

즉, 단군조선은 정사에도 실려있고,
그 기록이 지금은 전해지지 않은 옛 사서에 기록되어있었슴..
     
상도실어 15-07-02 18:02
   
고구려는 하늘이 아니라 태양
그래서 광계토 태황이라고 했슴묘
딪이 15-07-02 18:21
   
마부치 카즈오 교수에 의하면 타카마가하라(고천원)가 한국(고령, 거창)에 실존한다고 하고...

일본서기에서도 " 천손이 고천원에서 신라로 갔다 "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고천원에서 주로 활동하던 스사노오와 니니기를 생각해보고, 일본서기가 720년에 완성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백제ㆍ대가야 쪽의 신화가 백제 멸망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것이 그대로 일본의 역사로 흡수되어 '일본서기' 로 발간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 이주갑인상을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그러하고요.

아무튼 연구가 더 필요한 학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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