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역사쪽 선생님이 그런말을 한건 아니겠죠? 그럼 나가린데...
봉건제도란게 왕을 정점으로 친족이나 수하들에게 봉토를 나눠다스리게 하고 충성을 받는 제도인데 정확한 봉건제도는 아닐지라도 우리나라도 고려시대는 100%는 아닐지라도 봉건시대라고 할수 있죠.
중앙정부에서 지방관을 파견하지않는 지역이 파견하는 지역보다 많았고 그 지방은 호족이 다스렸습니다.
고려란 나라자체가 호족들의 연합체인지라 호족들의 땅을 함부로 빼앗았다가는 반란이 일어날 위험이 있었죠.
신라-상수리제도 고려-기인제도 아시죠? 지방호족 자제를 수도로 데려와 교육을 시키지만 실제로 인질인거.
지방반란을 견제하는 제도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모든 지역에 지방관이 파견됩니다.
봉건주의.봉건시대의. 구성원을.간략적으로 영지.영지민.영주 식으로 해석하셨던게 아닐까요?
지역유지인. 계급상류층이나.토호.호족.양반들은. 서양의 영지와 흡사한 장원이란 개념의 재산을 바탕으로.
재력축적이라든지. 세습의 배경이 가능했을거라 생각하는편이라.
이름만 달리할뿐. 봉건제도는 상당한 역사를 한반도에서도 보여준듯 싶네요.
애초에 삼국시대의 국가들자체도 중앙집권되었다고해도 조선시대처럼 그렇진 않았죠
그리고 고려시대의 경우엔 나중에 12목을 파견했죠. 성종시대 되서야 겨우 가장 큰 지방단위에 지방관 파견이 시작된겁니다. 그 전까지는 지방관도 없었고 세금도 그냥 매해 지방돌면서 공물받는 형식이였구요.
그거 선생이 멍청한거고,,,식민사학의 대표적 논리?입니다... 애초 자본론것을 일본이 채용해서 허접하게 만든건데 일본은 다이묘시대가 있었지만 한국은 봉건시대가 없었으므로 역사발전의 단계가 빠진 열등한 나라다...고 세뇌시키기 위해 퍼트린걸 충실히 읇조리는겁니다.
일본전국시대 원조가 한국입니다. 담로제란게. 애초 부여계의 풍습으로 일본으로 삼한내 소국들이 경쟁적으로 건너가게 된게 그 연유임... 원래 촌동네로 갈수록 오리지날리티에 대한 열등감이 크기에... 내가 원조다.. 아니다 내가 원조다... 이래서 계속 남아서 영주..전국시대까지 남게된것.
그제도가 19세기 후반까지 남아있는 일본이 자본론상. 오히려 역사발전단계에서 열등한것.
왜? 정작 유럽생산국은 별반응없지만... 아시아, 북미로 올수록 서로에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명품에 환장한다거나.. 뭐 그런류 심리와 같음
칠지도...에서 왜 왕자가 철교역권의 상징인 칼을 줬느냐... 그것도 그 흔적임...답은 왕이라 칭할수 없기때문. 왜? 소국들의 왕이라 칭할려면 그 여왕족과 결혼을 해야되는데 그걸 못했기때문에 실제는 왕이라도 왕을 칭할수 있는게 아님. 그래서 왕자로 칭하는.. 여러나라가 존재했단말. 삼국은 맨나중까지 살아남은 나라일뿐
한국에서 아직도 식민사학이 인정을 안하지만 그 흔적은... 우리가 아는것에도 발견됨... 의자왕 3천궁녀가. 의자왕이 정력이 좋아서가 아님.. 그것의 단점.. 전체왕 추인절차가 복잡하기에.. 권위가 없으면 이놈저놈 들고일어난다..를 그런식으로 극복했던것... 고려 왕건이 전국호족과 결혼을 한것도... 같은이유.. 최소 그시대까지는 그전 역사를 알고있던것..
마찬가지 신라와 백제가 결혼동맹을 한것 또한 그전에 분명히 어떤 관행이 있었기에 가능.
중국에 책봉을 요구하는것도 역시 내부 추인절차가 복잡하기때문에 빠른 권위를 갖기위해 그런식으로 한것... 유럽이라고 어쨌든 형식적으론 신성로마제국 왕이 황제였던것과 근본 속성은 다를봐없슴.
봉건왕조, .. 라는 사전적 의미의 봉건시대는 없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느슨한 봉건영주제도는 고려시대에 조금 있었지요, 그리고 봉건시대라는 게 발전한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왜구논리에 따를 필요는 없지요, 지금도 대한민국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 보세요, 결코 영웅을 허락하는 사회가 아닙니다, 모두가 잘난 사람들이고, 실제로 타국가 사람들괴 비교하면 놀랄만큼 탁월한 민족인 건 맞아요, 이렇게 에너지가 넘치고 자기주장이 강한 국민을 정말 지혜로운 자가 나타나서 힘과 뜻을 결집만 시킨다면 아마 세계도 통일시킬 걸요?
우리나라는 고조선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왕이 병권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조선이전에는 귀족들이 사병을 갖고 있어서 유사시 왕을 중심으로 여러귀족들이 사병들을 모아 싸웠는데
왕은 경비병을 빼고는 이렇다할 병사가 없었습니다.
조선에 들어와서 정도전이 귀족들의 사병을 혁파하는 대신 병권을 대신들에 주는 것으로 경국대전에 못박고
이성계한테 충성을 했던 것입니다. 왕이 병권이 없다보니까 우리나라 왕들은 책임만 있고 실질적 권력은 없는
불쌍한 왕들이었습니다. 나라를 힘이 아닌 철학과 명분으로 통치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