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법원은 지난 11일, 일본 정부가 공개를 거부한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일본 측 문서를 일부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한일 인사 11명이 일본 정부에 제기한 문서공개거부처분 취소청구소송 1심에서, 재판부가 원고 측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일본 정부가 한일기본조약 관련 문서를 일부 공개하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비공개된 256건 가운데 117건을 전면 공개하고, 47건은 일부를 공개하도록 명령했다.

이번 재판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듣고자, 이번 재판을 주도한 일본의 시민단체 '한일 회담 문서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모임' 이양수 사무차장에게 전화로 걸어 이번 재판에 대해 물었다.

 

 

▲ 한일회담 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 이양수 사무차장 ©JPNews

참고로, '한일 회담 문서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은, 2005년 한국 정부가 한일회담 관련 문서 약 3만 6천 페이지를 완전히 공개하자, 이에 자극 받은 한일 양국의 시민들이 같은 해 12월에 발족한 단체다. 이들은 2006년 4월 25일, 당시 자민·공명당 연립 정부에 한일회담 문서의 전면공개를 요구했고, 그 이후에도 일본 정부에 직접 정보 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등 줄곧 한일회담 문서 전면 공개를 위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이 단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재일동포인 이양수 사무차장이다. 그는 관련 재판을 돕는 것은 물론, 방대한 양의 일본 측 한일회담 문서의 분석 및 전면 공개된 한국 측 자료와의 대조 작업 등을 홀로 도맡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한일회담 문서와 관해서는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이라고 할 수 있겠다.

Q. 어떤 재판인가?

- "우리가 2006년 4월부터 정부에 한일회담 문서의 전면공개를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일본 측 한일회담 문서가 1차부터 6차까지 6차례에 걸쳐 공개됐다. 약 6만 페이지에 이른다.

1차부터 3차는 문서 약 300건 정도가 공개됐고, 4차부터 6차까지는 1,600건 정도 가 공개됐다. 1차 문서는 전면 공개됐고, 2차는 신문, 잡지 내용이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3차 때 공개된 자료는 불과 약 26건 정도다. 3차의 내용은 4~6차 공개에서 나온 문서와 거의 내용이 겹친다.

문제는 4~6차 때 공개된 1,600건, 총 5만여 페이지에 달하는 문서인데, 이 중 25%, 약 4분의 1이 먹칠되어 있거나, 완전히 비공개였다. 이 자료에 비공개된 부분의 공개를 청구하는 게 이번 소송이다."

▲ 07년 3월 28일 공개된 '부분공개' 자료.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먹칠돼 있어 무슨 내용인지 일본측 자료만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 한일회담문서 전면공개를 요구하는 모임/jpnews

Q. 지난 11일, 약 70%가량의 비공개 문서를 일부, 혹은 전면 공개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번 재판 결과의 의미, 성과는?

- "일본 재판부가 비공개된 서류 전체 382건 가운데 212건을 완전히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56건은 일부 공개하라고 했고, 114건은 그냥 비공개하는 게 마땅하다고 봤다.

또한, 재판 비용 가운데 5분의 3을 국가가, 나머지를 원고 측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건 대단히 놀라운 일이다. 일본 법원이 일본 정부에, 즉 국가가 국가에 배상하라고 판결하는 것은, 일본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이며, 역사적인 일이다. 이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또한, (비공개된 문서에는 위안부, 독도 관련 정보가 있기 때문에)한일 양국 관계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는 일이고, 일본이 얼마나 민주화되어 있느냐를 판가름할 수 있다."

Q. 재판 결과에 대한 소감은?

- "한국, 미국과 달리, 일본에는 인 카메라(In camera) 제도, 즉 비공개 심리 제도가 없다. 그렇다보니 일본 측 한일 회담 문서의 먹칠된 부분 혹은 비공개된 부분을 판사들조차도 보지 못 한다. 판결을 내려야하는 자들이 그 내용을 모른다니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가.

(※ In camera 제도: 비공개 문서를 법원 측만 확인해, 이를 공개할지 결정하는 사실상의 비공개심리를 뜻한다. 미국, 한국은 이 제도를 사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공판 도중, 담당 판사가 "판단하기 어렵다"고 대놓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담당 판사는, 일본 외무성이, 이미 공개된 한국 측 한일회담 문서와 명백히 겹치는 내용조차 비공개 처리한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부자료를 숨기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지만, 이미 공개된 내용을 외무성은 왜 굳이 비공개로 해놓았냐는 것이었다.

담당판사가 공판에서 이 같은 견해를 보이니, 내심 판결 결과가 기대됐다. 그런데 3차 소송이 3년에 걸쳐 진행되다보니 도중에 담당 판사가 바뀌어버렸다.

그래서 업무 인계가 제대로 되길 원했는데, 일본 변호사에게 물으니, 일반적으로 (인계가) 잘 안 된다고 하더라."

Q. 그래서 기대 안 했나?

- "솔직히 기대 안 했다. 일본 법원이 얼마나 썩어빠졌는지 모를 거다.

'일부 공개하라'는 기대밖의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불만족스럽다. 우리는 한일회담 문서 '전면 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비공개된 내용이 무언지도 모르면서 30% 가량은 공개하지 말라고 한 판결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Q. 일본 정부, 항소할까?

- "아마 90~100% 확률로 항소해올 것이다. 이번에 재판비용의 5분의 2를 지불하게 됐는데 재판 비용도 있으니 다소 걱정이다.

일본 민주당은 집권 당시 정권 공약으로, 30년이 지난 외교 문서를 비롯한 행정 문서를 전면 공개한다고 밝혔다. 그래서 민주당에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이는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자민당 정권 때와 다를 바가 없다."

Q. 곧 자민당 정권으로 바뀔 듯하다. 향후 재판에 영향은 없을까?

- "그래도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이며, 삼권분립이 되어있는 나라다.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민주당이나 자민당이나 거기서 거기다. 일본 사람들도 우리도 민주당에게 기대한 게 많았지만, 결국 남은 건 실망뿐이었다."

◆ "일본 정부, 떼 쓰는 어린애만도 못 하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일본 정부에 독도와 관련된 비공개 문서 일부를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일본 외무성은 독도 관련 문서를 비공개한 이유에 대해, 일본 정부가 한국과의 교섭에서 불리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재판부는 비공개해야하는 이유로 보기엔 부족하다고 보았다.

이양수 사무차장은 인터뷰 마지막에 '다케시마는 우리땅'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 있게 독도 관련 문서를 내보이지 못하는 일본 정부의 행태를 '떼 쓰는 어린아이'에 비유하며 맹비판했다.

- "우리는 한일회담 문서 공개를 요구하는 모임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다루는 시민단체는 아니지만, 독도에 관심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이기 때문에 독도에 관한 나름의 판단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판단할 기회를 안 준다. 독도 문제에 대한 판단할 문서 자료를 안 준다.

일본 정부가 하는 짓은 어린애가 '엄마, 저거 사줘'하고 떼 쓰는 것보다 수준이 낮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주장하면서 독도 관련 문헌은 완전히 비공개했다. 독도 관련 문서 자체가 비공개라 문서 제목조차도 알 수 없다. 더구나 문헌 정보, 즉 외무성이 아닌 다른 주체가 만든 문서도 일체 비공개했다.

그 자료들이 공개되면 불리하다는 이유로 비공개하고 있는데, 일본이 말하는 '다케시마는 우리땅'이라는 주장이 불완전하다는 걸 자신들이 증명하고 있는 격이다. 문서도 공개 못하면서 '다케시마는 우리땅'이라고 외치는 건 정말 말이 안 된다. 어린애만도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