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교과서 도발] 대놓고 왜곡된 영토 교육.. 초등생에게까지 우경화 '세뇌'
열도내 우리 유적 -신롱석산성(神籠石山城:고고이시산성)
사가현(佐賀縣) : 오츠보산성(おつぼ山城, 1.87km)
사가현(佐賀縣) : 쿠마산성(帯隈山城, 2.4km)
후쿠오카현(福岡縣) : 코우라산성(高良山城, 2.8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녀산성(女山城, 3.0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라이산성(雷山城, 2.3km)
후쿠오카현(福岡縣) : 하키성(肥木城, 2.63~3.0km)
후쿠오카현(福岡縣) : 카케노우마성(鹿毛馬城, 2.3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고쇼카다니성(御所ヶ谷城, 2.5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도바루성(唐原城, 2.5km)
후쿠오카현(福岡縣) : 미야지다케성(宮地岳城, 2.5km)
야마구치현(山口縣) : 이와키산성(石城山城, 4.0km)
에히메현(愛媛縣) : 에이누산성(永納山城, 2.8km)
카가와현(香川県) : 키산성(城山城)
오카야마현(岡山縣) : 키노산성(鬼ノ山城, 3.2km)
오카야마현(岡山縣) : 오메구리고메구리산성(大廻小廻山城, 3.0km)
효고현(兵庫縣) : 시로산성(城山城)
평균 2~3km, 최대 4km의 산성.
정주(정착)문명을 가진 외세 신진세력이 이동을 하면 함께 따라가는 것이
다름 아닌 도시와 물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성곽의 흔적들입니다.
고대 로마제국이 갈리아(프랑스)원정을 하면서 이후 영국섬까지 세력을 미치게 되는데
오늘날 영국의 수도인 런던 당시 론디니움부터 영국 명문 축구가인 맨체스터의 체스터는
다름 아닌 로마병영기지를 의미하는 것으로 라틴어의 성곽인 Castra에서 유래.
이외에도 영국에는 랭커스터(Lancaster) ·윈체스터(Winchester) ·체스터(Chester)
·레스터(Leicester) ·글로스터(Gloucester) ·우스터(Worcester) 및
북쪽 스코트족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전체길이가 118㎞에 이르는 로마황제의 이름을
딴 하드리아누스 성벽도 발견됩니다.
마찬가지처럼 우리 선조들의 열도 개척과 정벌과정에서 이런 외세 신진세력의
이동에(우리 선조들의 이동 확장) 따른 자연스러운 그리고 확실한 흔적 역
시 열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상황임.
고대 열도에서 성곽이라는 방어개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배경은 삼국시대 우리 가야 백제 세력들이 서열도
즉 후쿠오카 일대를 근거지로 하면서 본격화됩니다.
열도에 있던 소위 원주 조몬인들은 기본 동열도를
본거지로 에도시대까지 수렵생활을 지속할 정도로 미개했던
종족이였고 열도에서의 본격적 문명은 기원전 3세기경을
전후로 야요인들이라는 고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이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마도와 이끼섬을
징검다리로 후쿠오카에 터를 잡으면서 벼농사와 청동문화를
퍼뜨리게 됩니다.(우리 남부지역의 고인돌이나 청동기 밀집
주거등을 보면 이미 이때 상당한 인구수를 보이는데
신석기시대 세계에서도 가장 이른 고래 포경등 해양 문화까
지 향유하다 보니 늘어난 잉여 인구들에 의해 이런
해양개척 역사가 이른 시기에 이미 본격화)
그리고 이런 가운데 열도에서 나타나는 우리성곽은
전체적으로 3단계의 양상을 거칩니다.
백제가 패망하기 전 삼국시대에 등장하는
일명 조선식 산성(혹은 신롱석산성)과 이후 백제가 패망하자
이를 구원하기 위해 663년 400여척 약 3만에 이르는 열도의 백
제 지원세력이 백촌강에서 전투를 벌리다 신라와 당 연합세력에
캐털리고 나자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열도에 다시금 대대적 산성들이 등장하는데
이게 2차의 백제식 산성입니다.
그리고 이후 우리나라할때 나라헤이안 백제계 유민의
극소수 귀족시대가 열리면서 기존 사찰 위주의 아스카 도시
문명에서 본격적 도성체재가 급격히 등장하고 중소형 위주로
동열도 일대 에조를 방어하기 위한 성곽들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재정 여력등이 여의치 않아서 성곽이 석성이나 토성도
아니고 목책형임 ㅋ(이것만 봐도 삼국시대 이후 남북국시대이고
우리와 열도의 문화나 국력의 역량에서 얼마나 큰 차이가 나는지
알 수 있겠죠. 잽 극우들은 우리의 남북국 시대에 등장하는 열도내
의 풍을 무슨 당풍 어쩌고로 변색,희석시키려고 애써지만 이때에
도 우리 신라 발해의 정치적 문화 영향력이 더 직접적이고 지속
적으로 열도에 미치면서 기본 뼈대의 우리식 성곽들은 여전히 이
어짐. 당연히도 나라 헤이안 시대의 극소수 귀족이 다름아닌 우
리 옷과 언어 문화를 향유하던 우리 백제계나 고구려계 기타 신
라계들이니 )
BC 3세기 ~ AD 2세기경에 산자락에 우리 선조들이
이주하면서 발생한 고지성집락(高地性集落)이 발견되는
데 이 일대에 잽어로 '신이 깃든 돌'이라는 고고이시산
성 즉 신롱석산성도 발견됩니다. 이게 연구가 진행되면서
우리나라식 산성이라고 해서 조선식 산성으로 불리게 된
거죠.
이당시의 미개했던 이런 열악한 열도공간에서도 울 선조
들은 일찍히 저런 수킬로의 산성을 구축해내면서 이후 점
차 후쿠오카를 거점으로 동열도로 세력을 확장.
가야 이후 백제가 본격적으로 열도를 담로체재로 지배하면
서 외치영토로 군림, 문명을 꽃피워 나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