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분들께서도 말씀해주셨지만, 당시 세계적으로 19세기를 전후로하여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입니다. 이렇게 된 것에 대한 배경과 요인은 다양한데. 이 대부분의 배경과 요인이 갖추어지는 건 이미 조선 말과 대한제국 시기에도 스스로 갖추어나가고 있던 부분들이었습니다.
단적으로 의료만 하더라도, 외과적 시술을 극히 제한하던 풍조에서 벗어나 근대 병원이 하나둘 설립되어가고 있었고. 인구 밀집이 높은 도시에서 나타나는 도시질병과 대규모 전염병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대응도 그 기초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이와 연결되어 유아사망율또한 가시적으로 낮아지기 시작하였는데. 이 모든 건 일본과는 무관하게 조선/대한제국이 근대국가에 접어들면서 나타낸 성과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농사에 있어서도. 당대 많은 지식인과 지주들이, 기존의 농법에서 벗어나 서양 학문과 정보를 통한 새로운 농법을 시도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무엇보다 1900년대 초에 등장하게된 질소고정법 등장과 같은 농업혁명으로 농업 생산량이 증대되던 시기였는데. 이건 굳이 일본을 거칠 필요가 없이 우리 지식인이나 지주들도 외국과 교류하면서 충분히 터득할 수 있던 것이었습니다.
일본의 근대개화론의 터무니 없는 점은 조선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정체상태라고 단정짓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일본에 강제합병 당하기 반세기 전부터 느리지만 많은 부분에서 신기술과 인프라의 도입에 적극적이었고, 이전의 학문적 폐쇄성이 무색할 만큼 외국의 학문에 대한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탐구가 있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아니었어도 가속이 붙어서 더 나아갈 것을, 일본이 중간에서 가로채어 자기네들의 업적으로 치장하는 것이니 매우 우스운 것입니다.
가볍게 찾아보기만해도, 철도와 전신주/전화선의 도입과 배치에 고종을 비롯한 조선/대한제국의 정부가 얼마나 많은 투자를 보였으며, 역사적 사건에 묻히긴 했어도 우정국과 같은 근대 행정기구 또한 발 빠르게 도입하였으며, 당대 많은 지식인들이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얼마나 높았는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자기네들이 근대화를 이끌어냈다는 일본놈들은, 이 모든 것들을 다 덮어버리고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니 대화가 되질 않는 것입니다. 흔하게 타인을 깍아내림으로서, 본래 우리도 할 수 있었던 것을 자기네들이 가로채놓고 치적으로 포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해방이 됐을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625에서 결정타 다시 맞고요. 더 이상 뭔 설명이 필요할까요. 일제시대 덕분에 한국은 세계굴지에 거지 국가가 됐습니다. 일본이 아니래도 수명과 인구는 과학이 발달한 근세에 많이 늘어나게 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