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에 래이라고 쓰인것을 유념히 보시라
손바닥만한 9주의 영토가 바로 한족의 영토였다. 그나마 옹주는 진나라즉 서이족의 영토였고 양주역시 한족의 영토라고 보기도 힘들다
-----------------------------------------------------------------------------------------------
한국과 중국은 고대로부터 오래 마주한 나라답게, 다방면적으로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습니다.
전쟁도 많이 벌였고, 교류도 많았으며, 비슷한 부분도 있고, 다른 점도 있습니다.
중국은 과거에도 지금도 대국입니다. 땅도 크고, 인구도 많죠.민족도 많구요.
어느 한부부만 가지고 답을 내릴수 없는 나라가 중국이고, 다양성이 중국의 특징입니다.
과거에도 현제에도, 중국이 못살때나 잘 살때나 중국은 항상 물량빨이 큰 나라이고
전통적으로 인도와 중국은 아시아의 쌍두마차입니다.
즉, 아시아에서 동네대장 역활을 맡고 있지요.
한국인들은, 전통, 봉건적 개념으로 중국황제가 주변국들에 군림하는걸 인정했고
중국의 권위는 인정하는 편입니다- 이건, 좋다 싫다의 개념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에서 말입니다.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동아시아를 이루는 많은 나라들이 그러했습니다.
따라서, 중국의 우산- 조공체제 아래, 장기적으로 이득을 볼수 있는 실리를 택하였습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체면과 위신을 차리고, 대신 주변에서 띄워준 만큼 베풀어야 하는 역활이죠.
당시 속국의 개념은 지금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으며, 식민지 개념도 아닙니다.
자신이 적은글이니 더 잘아시겠지요
-----------------------------------------------------------------------------------------------
북송때 제작되었다고 알려진 십오국풍지리지도이다. 의무려산을 기준으로 요동과 요서로 나뉘어있다
서이와 회이라고 쓰인것을 주목하시라 산해관이라는 지명이 쓰인것으로 보아 이지도는 명나라때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산해관은 명사를 참고하니 영정하하류에 있었다.이지도는 처음 산해관이 설치될 당시의 지도로 보인다. 의무려산을 기준으로 요서와 요동이 나뉜것을 주목하시라
의무려산을 기준으로 요동군과 요서군이 나뉜것은 바로 전한시대 요동군과 요서군이 심수를 기준으로 나뉘었는데 심수의 상류에 최초의 의무려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명이 동으로 이동되면서 근본원리는 변하지 않았는데 이로써 우리는 당시의 요동군의 정확한 위치와 고구려가 차지한 요동군이 심수까지 였음을 알수 있다.
중국학계도 제장성의 위치가 산둥에서 너무 남쪽이니 그들의 역사지도에 북이라고 기록해두었다. 사실상 제장성북쪽이 한족의 땅이 아님을 인정한 것이다. 북이는 고조선을 뜻하는 것이다. 고조선과 제나라가 싸운기록도 있는데 그럼 두나라가 싸우려면 바로 옆이 경계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전국시대 장성을 쌓은 것은 한족들이 말하는 오랑캐를 막기 위해서이다. 즉 그들의 입장에서 고조선과 흉노 진나라는 전부 오랑캐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경계를 짓기 위해 장성을 쌓았던 것이다.
위장성의 위치를 보라 교묘하게 연장성과 제장성과 연결되는것 같지 않은가? 지금에야 남은 유적을 보고 저렇게 중국학계가 표시하지만 내가 보기에 전국시대에 분명 위장성은 연과 제장성사이바로 옆까지 이어졌을 것이다. 위,연,제가 저렇게 장성을 쌓은것은 누구와 경계를 짓기 위함이겟는가?
북이? 북이란 결국 동이족이란 얘기이다.
희한하게도 최근에 실시된 유전자 조사에서 연,제, 위장성북쪽주민은 한반도인과 유전자가 같다. 왜일까?
그게 무엇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금나라혹은 청나라때문인가?
조선시대 쓰여진 기언이라는 책에도 고조선의 수도 당장경은 지금 유주에 있다고 했다. 즉 북경근처어딘가에 당장경이 있다는 것이다. 조선사람들도 적어도 하북은 고조선땅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조선사람들은 고구려가 하북일대를 점거하고 있었고 가끔 산서성으로 진격했다고 생각하였다. 왜 우리는 고구려를 요하동쪽으로 생각하고 가끔 난하로 진격했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고대사를 이야기함에는 일년 열두달을 토론해도 답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의 글자 한단어 한문장마다 해석이 틀려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화가난건 韓족의 역사를 위하는척 하면서 교묘하게 漢을 우위에 두고 글을 적었다고 봣기 때문입니다 과연 漢이 우위에 있었던적이 그리고 강대했던적이 언제였나는 거죠 漢자체로 강대했던적은 없다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원 청이 漢족이 세워서 강대해진 나라입니까? 아니면 수당명송이 대륙전체를 지배했었나요?왜 자꾸 韓의 역사를 반도에 집어 넣나요?
백제가 망하고 백제 부흥세력이 한반도가 아니라 대륙이란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요
회이란 동이족을 말하며 우이가 바로 백제의 본거지 산둥이었다. 회이역시 당서에 백제가 월주에 닿는다라는 기록이 있듯이 고조선이래로 백제의 땅이었다. 구당서에서 회이가 반란을 일으켜 우이지역에서 나라를 세운 이정기의 제나라와 함께 저항했다고 적고 있다.
신라에 복속된 회이는 견휜이 그곳 무주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다시 힘을 세운게 된다.
襄州節度使趙匡凝聞帝軍有清口之敗,密附於淮夷。
구오대사 광화원년 898년
양주절도사 조광응이 황제의 군사가 청구에서 패했다고 듣고는 회이에 붙어버렸다.
견휜이 한창 잘나갈때 그가 어디를 침공했는지 알수 있다. 양주는 구오대사에 산남도로 나오는데 아마도 현재의 회수서쪽으로 보인다.
鄂渚再為淮夷所侵,攻圍甚急,杜洪以兵食將盡,繼來乞師
구오대사후량(後梁) 태조(太祖) 개평(
開平) 원년, 거란(契丹) 태조(太祖) 원년, 907
악저에 다시 회이가 침공하여 포위하였다. 두홍이 병사의 식량이 다할때까지 막으며 원병을 호소했다.
王師既集,淮夷毀壁焚郭而遁
구오대사 개평2년 908년
중앙군이 오자 회이가 성벽을 부수고 불지르고는 돌아갔다.
是歲秋,其眾益盛,南通淮夷,朝廷累發州兵討捕,反為賊所敗。陳、潁、蔡三州,大被其毒
구오대사 신사 4년(921), 후량 용덕(龍德) 원년ㆍ거란 신책 6년
새해가을이 오자 그 무리가 점점 강해져서 남쪽으로 회이와 통했다. 조정에서 지방 각 주의 군사를 뽑아 토벌하게 했으나 오히려 패했다. 진 살 영 3주가 큰 피해를 입었다.
진주는 개봉의 남쪽에 있다. 결국 회이즉 견휜의 군대가 개봉에 멀지 않다는 것이다.
尋為楊行密所敗,其地亦入於淮夷
구오대사병인년 효공왕 10년 진훤 15년 궁예 6년(당 애제 천우 3, 906)
양행밀(오나라왕)이 패하여 그 땅이 또 회이에게 들어갔다
최치원이 고구려 백제가 강성할때 병력이 1백만이고 유주 연주 제국 노국 오국 월국을 침략했다고 하는데 그것 말고도 북위의 사신이 고구려를 여행한뒤에 말하길 조조의 위나라때보다 인구가3배나 많다고 했습니다. 생산기술과 의학기술이 비슷한데 1백년 정도의 시간에 인구가 3배로 증가할려면 최소 영토가 2배이상 커졌다고 봐야합니다. 실제로 우리기록은 진나라때 고구려와 백제가 진나라를 침공했다고 나오는데 진나라의 인구가 한나라때에 비해 1/3로 줄어든 것은 위오촉의 전란때문이 아니라 고구려 백제가 땅을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백제의 땅을 100% 얻지 못한 신라가 현의 갯수가 북제와 동일했는데 무려 3백개나 되었습니다. 북제의 인구가 2천만이라고 했으니 백제전성기의 인구가 얼마나 많았을지 추측할수 있습니다. 지금 중국땅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한 요나라가 성의 갯수가 150개였고 발해가 103개였는데 고구려가 176개이니 얼마나 고구려가 요나라보다 더 강성했는지 알수 있습니다
위 연 제 조 초 한 오 월등의 한족국가들은 동이족의 고조선과 서이족의 진 흉노등과 경계를 지으려고 장성을 건축한 것이다.
-----------------------------------------------------------------------------------------------
본조팔도성경합도
개원은 평안도라고 명나라기록에 나와있다. 또한 의주가 대릉하일대이며 합란이북이 쌍성총관부라고 나와잇다. 합란은 압록강상류로 이곳이북이 원나라에 넘어갔다가 태조이성계가 수복하였다. 고려사지리지에 따르면 요하에서 1천수백리 북쪽과 합란에서 동북으로 1천8백리를 태조가 수복한후 나하추를 쫓아 사막까지 진격했다. 즉 고비사막까지 진격한 것이다.
역사를 바로 알자는 것이 고대 영토를 되찾자는것은 아닙니다 역사를 바로 아는것이 올바른 세계관을 가질수 있으며 국력의 밑바탕이 되는겁니다 독도는 대한민국영토이다? 다케시마는 일본영토이다?무엇이 맞는 말입니까? 그리고 그 주장의 근거는 무엇이 됩니까? 독도가 우리 영토란건 우리가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며 다케시마가 일본영토란건 일본 역시 그렇게 교육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올바른 역사교육과 지식과 자료가 명분이 되는 것이며 그 명분이 다른 국가에도 어필할 수 있는 또다른 국력입니다
상식적으로 우리의 삼국(고구려 백제 신라)역사와 고려 조선역사는 漢족의 그 어떤 왕조보다 깁니다 그 장구한 세월을 이 조그만 소국이 꿋꿋이 버텨왔다? 그 대국들이 외세의 침입으로 멸망을 반복하는동안 우리만큼은 꿋꿋이 버텨왔다? 왜 현 국사책에서의 또 여지껏 배운 역사가 틀렸는지는 백여가지도 넘게 글 올릴수 있습니다 차라리 qwer처럼 캐소리만 했다면 픽웃고 말죠 근데 님은 역사를 알고는 있지만 내가 볼댄 매국노 이병도 쪽 역사관을 알고 그것이 진실인것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의구심을 가진 사람들을 선동하죠 조금만 자세히 읽어도 거짓이 아님을 알고 설혹 완전히 믿지를 못하더라도 현 역사교육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며 시정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라는것 까지는 인식할수 있는데 말입니다 어설프게 일부 '환빠'로 지칭하는 그 부류에 절 끼워넣지 마세요 내가 적은 그 어떤 글도 환단고기나 삼선기의 내용을 인용한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