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24년 신파(新派)에서 여배우가 등용될 때까지인 262년간은 일본의 공인극장에서는 여배우를 볼 수 없었다. 그 대신 인기를 독차지한 것은 아름다운 소년의 노래와 춤으로 이뤄지는 이른바 와카슈 가부키(若衆歌舞伎)였다. 그러나 이것도 남색(男色:衆道라고도 하며 동성애)의 유행을 가져오고 그 폐단이 심하였기 때문에 막부는 또다시 전면적인 금지령을 내리게 되었다. 1652년의 일이었다. 오쿠니 가부키와 와카슈 가부키는 이렇게 탄압을 당하고는 나타나지 못하였으나 민중의 요구는 그치기 어려웠으며, 드디어 가부키는 형태를 바꾸어서 재흥, 바로 새로이 '극(劇)'으로서의 출발점에 섰으니, 그것이 '야로 가부키(野郞歌舞伎)'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