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연합군의 일본침공 당시 큐슈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는 것은 완전히 과장된
표현이군요!...^^
큐슈 북부해안일대가 털린 것을 가지고...큐슈 전체로 보아도 일부분이라고 할만한데..^^
그리고 남궁동자님 말씀대로 남들이 쉽게 다 만드는 조총을 조선은 왜 도입한지 상당기간 흉내만
낼 뿐이고.....
임란 이후로도 100년 이상이나 중앙군인 5군영의 정예병들이 쓰는 정교하고 내구성이 뛰어난 조총은 정작 일본에서 수입해서 썼을까요...???^^
물론 바로 위의 표현은 반어법이고 16~17세기 적어도 동아시아에서의 조총을 자체제작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지역에서는 상당한 기술력의 기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본,조선보다 조총을 일찍 접했던 동남아, 중남부아프리카해안 또는 아메리카대륙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조선지역보다 한참 늦은 뒤에나 조총을 제작할 수 있게 되거나, 아예
최후까지 수입에 의존했을만큼... 제대로 된 조총을 어느정도 대규모로 제작한다는 것은
제철기술을 비롯한 여타 기술들이 어느정도 기반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조선의 기술적인 잠재력도 결코 낮지않다 하겠지만, 그보다도 더욱 정교한 제철기술을 비롯하여 제반기술을 지니고 있던 쪽은 일본이었습니다!
이미 세종12(1429)년에 일본의 시장제도, 화폐경제가 조선보다 뛰어나다는 통신사 박서생의 보고도 그렇고 조총이나 도검등 금속 병기 생산기술이 조선을 압도한건 말씀하신대로 이미 알려진 사실이지요.
이를 근거로 이때 조선의 상공업 전반적 수준이 일본보다 뒤쳐졌다는 견해도 있는데, 동시대 조선 입장에서 보자면 의학, 농학, 역학이 발달하고 시계, 인쇄술, 도자기, 조선등의 분야에서 일본보다 높은 학문, 기술적 수준을 보여주었습니다.
문치주의를 표방했던 조선과 군국주의로 나아가며 전쟁에 도움이 되는 상공업이 발달했던 일본....
즉 서로 우수했던 분야가 달랐을 뿐이지요.
적어도 근세, 근대에 이르러선 누가 더 우월했나 따지는건 별 의미가 없는듯 합니다.
다만 그 발달된 기술로 우리를 침략해서 고통을 주었다는 분노만 남았을 뿐이지요.
모자란 도적이던, 뛰어난 도적이던 간에 도적은 도적이라 생각합니다.
흠 요건 좀 회의적인게 남송군은 제대로 상륙도 못했거니와 (항해를 잘못한걸로 아는데요) 설령 했어도 약해빠진 농기군 무장 남송군이고...
정작 제대로 싸움한 고려, 몽골 연합군수는 몽골이. 고려를 쳐들어올때 군사수와 비슷하고 (3만 정도?) 그마저도 수차례 쳐들어온 몽골을 막아야했던 고려에 비해 일본은 2번밖에 상대할 팔요가 없었으니...흠..뭐 저도 당시 일본 국력이 무슨 기존 선입견처럼 약해빠졌을거란 생극은 안하지만 어째 약간 일본을 고려 상위로 두는 뉘앙스는 제가 오해한걸지도 모르지만 좀 화의적이네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