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와 국가의 역사를 일 개인에 대입해 보자.
누군가 어렸을 때 가난했지만 지금 멋지게 성공했다. 그럼 과거의 고생은 전부 추억이 되고 성공의 장식품이 되는 거 아닐까?
반대로 과거에 재벌있으나 지금은 노숙자에 불과하다. 그럼 과거는 가끔 술마시면서 외치는 "내가 왕년에는!"으로 시작하는 술주정에 불과한 거 아닌가?
과거가 화려한 나라는 한 두 나라가 아니다. 이집트, 그리스, 이탈리아...... 이들이 각 지역에서 그렇게 큰 소리 치면서 과거의 화려한 기억을 민족의 자긍심으로 삼을만큼 강대하게 잘 사나?
고작 300년도 되지 않은 역사를 지닌 미국은 자신의 역사가 부끄러워 숨기면서 살며 민족의 자긍심도 없는 족속이 되었나?
"내가 왕년에" 만큼 추하고 부끄러운 말도 없다. 그런 말 들으면 그냥 개소리로 치부하게 된다. 지금 잘나가면 왕년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국가와 민족은 다른가? 단군조선의 기원이 BC 2333년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BC 5000년, BC8000년에 세계국가를 건설했다? 그 국가가 우리민족의 시원이다? 그래서 자긍심과 호연지기를 느껴야 하는데 식민사학자들이 그걸 다 지워 버렸다? 왜냐하면 이병도를 왕으로 모셔야 하기 때문에?
한민족의 역사를 반도에 가둔 것도 식민사관의 영향이다? 한사군, 특히 낙랑군은 대륙에 있었는데 평양부근의 옮긴 것도 식민사학의 거짓과 기만이다?
이런 주장이 상식적인가? 사실 고조선의 강역이 만주와 대륙을 포함하여 한반도까지라면 그 중 일부인 반도에 한사군이 있었다면 그게 또 무슨 대수인가? 왜 그게 싫어서 이미 발굴된 유물과 유적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야할 큰 일이 되나?
고구려의 강역이 크고 넓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역사가 우리의 역사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사실을 더 과장하고 더 크게 만든다고 우리가 더 위대해질 것도 없다. 당시의 국경개념과 지금의 국경개념은 틀리고 그 강역 역시 계속해서 변했을 것이다.
고조선 역시 마찬가지다. 분명한 것은 BC 2333년이라면 사기에 기록된 하나라 건국년도 BC 2070년경 보다 빠르다. 중국주류역사학에서 얼리터우 유적을 하나라의 역사로 받아들이자는 것도 완전히 인정 받지 못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고조선의 연대를 삼국유사에 기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정하자? 그것이 역사학이다?
물론 대륙일대에서 발견되는 신석기, 청동기 문화가 우리 민족과 연관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본다. 혹은 동북아시아의 공통의 조상들이 만든 문화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민족만의 문화라고 주장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마찬가지로 그것만으로 우리의 역사적 자긍심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서 소수민족 통합정책을 펼치는 것은 유치한 일이다(그러나 동북공정은 사실을 꾸며내자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현재 중국국토 내에서 일어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받아들이자는 작업을 펼치는 것이고 이예 따라 고구려역사의 편입 어쩌고 하는 무리수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륙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무조건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로 받아 오는 것은 유치하지 않은 일일까?
여러번 이야기 했지만 역사는 학문이다. 학문을 왜 학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 민족의 "왕년에"어쩌고 하는 민족적 차원의 큰소리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우리가 일제의 강점에 시달릴 때, 우리 자긍심을 높이고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것은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도 역사를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한 일일까?
우리가 지금도 힘든 세월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왕년에" 어쩌고 저쩌고를 이야기할 만큼 어려운 처지는 아니다. 지금의 우리의 위치는 그 보다 훨씬 잘나가고 있는 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