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백제는 부여계지만 가야는 부여계가 아닙니다.
가야 왕족도 신라와 마찬가지로 흉노 계통이에요. 대성동고분에서 나온 동복 등 유물들 때문에 부여계라고 보는 듯 한데, 그건 고조선의 영역안에 있던 부여 이웃 나라 동호나 선비들도 사용하던 물건들이에요.
신라의 경우, 왕족들이 김씨가 아닌 모씨였어요. 귀족들도 모씨였죠. 박제상의 경우 일본 역사서에 모마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그 모씨들이 가야를 거쳐 일본 규슈까지 진출하는데, 여기까지 유물들이 비슷해요...나중에 백제가 일본 본토를 먹으면서 가야계는 규슈에서 머물게 되고요...
그리고 말같지도 않은 말갈계 한강 토착민설은 그만 떠들고 다니세요...
디노님, 흉노계라 하면 구체적으로 어느 종족을 가리키는 겁니까? 흉노는 일개 종족단위가 아니라 오르도스와 화북의 북쪽 초원을 중심으로 중국의 여러 정권에 공세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치적으로 이합집산하며 유목문화를 공유해 어떤 공통의 문화적 동질성을 지닌 여러 종족을 범칭하는 말입니다.
정확히 말씀하셔야죠.
신라가 선비다 가야가 선비다 하는 건 그 유물과 기록등을 토대한 주장인데 당연히 지배층에 한한 것이었고
가야의 경우 알고보니 선비로 여겨졌던 것이 사실은 부여였다는 게 최근 고고학적 연구의 성과잖습니까
가야의 피지배층이 흉노다?
피지배층 얘기하시면서 지배층을 근거로 드시네요?
선비가 흉노입니까?
아니면 흉노 가운데 선비?
개념어를 정확히, 범주어를 정확히 쓰셔야죠
성이 모 씨면 무조건 흉노입니까? 아니면 선비입니까?
흉노에요 선비예요?
일본 열도의 유적 유물을 말씀하시는데
야요이 문화의 주체가
한반도 남부에서 넘어간 한반도인입니다
디노님은 지금 한민족의 시원 종족을
예맥한 세 종족에다 흉노를 추가하는 전례 없는 파격적 주장을 하고 계신거군요?
제대로 된 답은 없고 똑같은 말의 반복이군요...
흉노화된 선비인지, 선비화된 흉노인지 님이 알아보세요...
글고 님은 우리 민족의 범주를 예맥한이라고 해 놓았는데, 예맥이 무슨 뜻인지나 알고 하는 말인가요...흉노가 중국넘들이 비하해서 칭한 말이듯이 예맥도 중국넘들이 우릴 비하해서 말한 욕이에요...뭔 자랑이라고 우리를 예맥이란 말로 단정을 해요..
이보세요
예맥이라는 말이 당시 우리 겨레의 명칭을 한자식으로 음차해 옮길 때 욕설로 바꾼 거 그 거 모를까 봐 저한테 그러시는 거에요?
그럼 예맥한을 예맥한이라고 하지 뭐라고 해요?
제가 한자로 적었습니까?
예맥한을 뭐라고 불러요? 예?
개념어인데 뭐라고 부릅니까요?
에이그
문무왕 비문이니 당나라에서 발견된 공주 비문이니 그거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제가 구분해서 다시 질문 드렸잖아요?
김씨에 한한 것도 아니고 신라를, 가야까지 모두 흉노라고 하신 분이 님 아닙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제가 따졌잖습니까?
예?
가야도 선비계로 보아오다가 부여계로 판명났는데 왜 아직까지 선비계로 보시느냐고 제가 따져 물었잖아요?
열도에서 발견되는 한반도계 유물을 신라계 흉노의 것이다 모씨의 것이다라고 하셔서
아이구 그런 얘기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난생 처음 듣는 얘기라 그게 어떻게 도매급으로 가능한지 물었잖습니까?
민족의 범주에 넣는 것을 내가 결정하는 문제인가요?
신라왕족들이 모씨라는 기록들이 많이 보이니 생각해 봐야할 문제이고...
가야에서 나온 부여계 유물은 동호의 유물이 많이 나오는 요하문명에서도 비슷한 것들이 나오고 있으니...그 또한 생각해 봐야할 문제라는 것이고. 요나라를 세운 거란은 자신들이 고조선의 후예라고 했으니... 좀 더 포괄적으로 고민해 볼 부분들이 많다는 것이지 내가 가야에서 부여계 유물이 안 나왔다고 했나요?
가야도 유물상으로 부여계가 맞습니다.
가야 무덤을 파보면 허황옥 할미 설화와 같은 인도계 유물은 하나도 안나옵니다.
대신 선비계쪽 유물이 나왔었죠.
해서 가야는 선비계로 보았던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비계로 알았던 유물들이 부여계 유물이라고 밝혀졌습니다.
우리나라 학계에서는 선비계와 부여계 유물이 비슷하고 차이점을 몰라
그동안 선비계라고 했던 겁니다.
오히려 중국쪽에서는 부여계 유물을 직접 보면서 연구를 하니 발굴된 가야 유물을 보고
가야는 부여계라는 주장을 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학자들도 이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1988년 경북 울진군 봉평리에서 발견된 「봉평 신라비」는 법흥왕 즉위 11년, 서기 524년에 세운 비석이다. 여기서는 법흥왕을 「牟卽智(모즉지)」로 적고 있으니 牟는 성이요 卽은 이름 智는 존칭이다. <봉평신라비>
모두루의 무덤은 중국 길림성 집안현 태왕향(太王鄕) 하해방촌(下解放村 : 구 下羊魚頭)에 있다. 무덤은
고구려의 전형적인 돌방흙무덤[석실봉토분]이며, 앞방과 널방을 가진 구조이다. 묵서[먹으로 쓴 글]는
널방으로 통하는 앞방의 정면 상단에 두루마기처럼 기다랗게 펼쳐져 쓰여 있다. 글자의 수는 800여 자에
달하며, 이 가운데 판독할 수 있는 글자는 겨우 300 여자에 불과하다. 무덤의 주인공에 대하여 종래에 염
모(冉牟)라고 보는 견해도 있었으나 최근에
일본 최고의 신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의 아버지인 이자나기와 대가야의 왕 이진아시는 분명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일본 신들이 사는 곳을 다카마노하나 즉 고천원이라고 하는데, 옛날 대가야가 있던 경북 고령에 고천원이라는 비석을 일본학자들이 세워놓고 제사를 지내고는 했어요. 하지만 저는 고천원을 그곳으로 보지 않습니다. 고령에서 50km 가량 떨어진 곳에 거창이 있어요. 이곳에는 옛부터 고천원이라는 지명이 내려오고 있어요.
일본신화에 나오는 가시하라도 그 유사한 지명으로 가시 벌이 고천원 부근에 있어요...그리고 소전오존을 상징하는 우두봉도 인근에 있고요...거창이 고령과 멀지않으니 이곳이 일본을 건국한 신들의 고향이라고 보면 맞습니다.
디노님, 흉노와 선비가 섞이게 되는 과정을 직접 찾아보라고 하시는 것을 보니 저에게 설명을 해주기 싫은시다 이 말씀이죠?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우선 그것을 제하고 위의 님의 완고한 견해가 아주 흥미로워서 님의 견해를 중심으로 해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흉노계인 모씨들이 가야지역을 거쳐 일본으로 가서 유물과 유적을 많이 남겼다고 하셨습니다.
---> 님의 개인적 견해입니까?
---> 그렇게 완고하게 말할 정도로 신빙성이 있는 것이라면 님이 연구하신, 혹은 참고하신 자료를 제가 찾아볼 수 있게 도와주시겠습니까?
---> 일본의 고대 시기 한반도계 유물과 유적을 흉노인 모씨들이 남긴 것이라고 송두리째 몰아갈 그 근거가 대체 무엇입니까?
두 번째, 가야도 흉노라고 하시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이미 고고학적 발굴 성과와 학술적 연구의 결과로 그동안 흉노계-정확히 말해 선비계로 보았던 것을 부여계로 확인한 수준인데 아직까지 그 가야를 선비계로 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덧붙여, 위에 가겡이님께 다신 댓글도 그렇고, 저에게 다신 댓글도 그렇고
왜 그렇게 신경질적이고 시비조이신지요?
이곳은 전문가들의 장이 아니라 불특정의 가생이 유저들의 공간입니다. 다른 이들의 발언이 성가시고 가소롭다고 여기는 듯한 어투로 글을 쓰실 만큼 님은 학문적 권위를 갖춘, 말하자면 그 분야의 연구자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