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은 요하문명-홍산문화의 후예로 동아시아 최초의 정착민입니다. 당시에는 모든 인류가 유목민이었다가 정착하여 정착민이 되었으므로 한민족은 유목민이라기 보다는 정착민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기마민족이라는 말은 북방의 유목민과 연결시키기 위해서 나온말인데, 이미 북방에서 요하문명-홍산문화가 시작되어서 정착민으로 설명해도 만주로부터 한반도로 이어지는 문화권이 설명됩니다. 말을 이용했던 것은 이미 정착생활 이전부터 있어왔으므로 정착민의 문화의 일부분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기마민족은 후기까지 유목생활을 했던 몽골족이나 거란족에 더 적합한 단어입니다.
기마민족이라는 말은 몽골처럼 정복의 역사를 펼쳤던 민족의 특성을 내세우기 위한 개념인데 한민족과 개념적으로 적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 개념없이도 몽골족 거란족등의 유목민들과의 유전적 친연성이 이미 밝혀졌기 때문에 동아시아에서 최초의 문명을 일으켰던 민족의 의미로 정착민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봅니다.
본 주제와는 관계없지만 사람들이 잘 혼동하는 것이라 몇자 덧붙이자면
'유목'은 '정주하지 않고 이동하면서 목축한다'는 뜻으로
인류의 농경, 정착생활이 시작된 지 수천년 뒤에야 일정한 지역에서만 (주로 유라시아 초원지대)나타난 독특한 경제패턴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유목 -> 농경 (X) ; 농경, 목축 -> 일부 지역에서 유목 발생 (O))
농경이 도입되기 전 모든 인류가 경험한 단계는 '유목'이 아니라 '수렵채취'입니다.
한반도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암각화 문양들은 몽골 초원에도 비슷한 문양들이 발견되고 있어요...서낭당이나, 솟대문화 등 고대 우리 민족의 정신은 바이칼 호수 주변의 민족들과 바슷한 면이 많아요....그곳에서 이동해 온 민족이기 때문이죠...우리 선조들이 기마민족이었다는 것이지...농경생활로 바뀐 뒤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요..님의 말대로라면 지금 우리 현대인은 농사도 거의 안 짓는데 그럼 농경민족도 아니겠네요...
고대 가야나 신라 고구려의 마갑 같은 것만으로도 기마민족으로 포함시키고 있어요...일본도 말과 관련된 유물들이 발견된 이후로, 자신들은 한반도 혹은 대륙에서 건너 온 기마민족의 후예라고 말하고 있어요...
우리민족 기마민족 맞아요..중국 떼넘들과 동북아시아의 북방의 기마민족들의 문화적 생활모습적 차이가 몇가지 있는데 일단 기마민족들은 남자들도 전부 귀를 뚫고 귀고리를 찹니다..우리나라도 조선시대 선조가 금지시키기 전까지 지위고하 노비부터 귀족,왕족까지 전부 신분에 따라 다양한 귀고리를 찼습니다..임진왜란때 명군이 일본군과의 전투를 피하고 대신에 조선인의 목을베고 일본군의 목을 벴다고 명나라에 전공을 보고했는데 이를 구별하기위해 당시 조선조정에서 구별방법으로 조선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귀고리를 찬다..왜인은 귀고리를 차지 않는다라고 구별방법을 제시했죠..일본넘들이나 한족떼넘들은 귀고리를 차지 않습니다..남자들이..
그리고 바지밑단를 여미는 풍습도 기마민족만이 가진 풍습입니다..우리나라 한복 바지밑단 여미죠..한족떼넘들에겐 이런 풍습없습니다..
만주를 상실하고 기마민족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습니다..당연하죠..가축을 기를 초원을 상실했으니 하지만 그 전통과 풍습은 남아있었죠..
고구려나 부여도 정착생활을 하던 집단과 유목을 하던 집단들이 모두 존재했습니다..
전부 기마민족이지만 한쪽은 기마민족이지만 정착을 선택한 집단 한쪽은 기마민족이면서 유목민족의 삶을 그대로 사는 집단이 고르게 존재했습니다..부여나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인 만주는 유목하고 목축하면서 가축을 기르기엔 적격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