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에는 없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가령 백제 같은 경우는 고구려에서 파생된 국가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온조 설화), 고구려랑 한반도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는 입장에서 그걸 굉장한 콤플렉스로 여겨서 고구려와 같은 민족이 아님을 여러차례 강조한 기록이 눈에 띕니다. 자신들은 고구려의 후예가 아니라 부여의 후예라고 강조하려고(즉 고구려와는 형제같은 동등한 사이라는 거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고 왕 씨도 부여 씨로 개명합니다. 서로 같은 민족의 의식이 없었고 아예 부정하려고까지 했죠. 아무래도 500년이나 원수처럼 전쟁한 사이였으니까요 뭐. 지금 남북한도 전쟁은 한 번하고 70년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도 동질성이 없다고, 통일되면 문제가 생길 거라고 걱정이 많은데 오죽할까요.
제 말이 그말인데요. 온조 설화에 따르면 백제 건국세력이 고구려 후예라 고구려에서 파생되었다는 말이 많아서 그걸 싫어했던 백제가 "우리는 고구려에서 나온 나라가 아니라 부여에서 나온 나라이다! 그러니깐 고구려보다 아래가 아니라 동등한 사이이다!!"라고 주장했죠. 아무래도 고구려에서 파생되었다고 하면 뭔가 고구려보다 아래로 보이니까요, 정통성도 없어보이고. 요컨대 고구려 백제 모두 자신들이 부여를 계승한 국가라고 여겼고 그런 식으로 따지면 부여를 부모로 둔 형제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나중에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백제와 고구려 모두의 적이 되었을 때 바로 이 점을 이용해서 "우리는 형제니까 손을 맞잡자"고 핑계(?)를 대며 백제와 친선이 있던 왜, 고구려와 친선이 있던 돌궐까지 끌어들어 남북연합을 결성했던 겁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신라는 당과 연합해 동서 연합을 결성하게 된 거구요.
분명 무슨 수단을 쓰든 살아남았어야 할 이야기지만 결국 독자적인 힘이 아니라 남의 나라 힘을 빌었으니까요. 당시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없었다고는 해도 결론을 따지면 당의 힘을 이용해서 한것이니 후세사람들이 좋게 볼리가 없지요. 결국 신라의 삼국통일에 관한 기록은 지금의 사람들이 자기들 기준에 맞추어 판단하는 것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까요. 누가 옳다고 할 수는 없는 겁니다.
누구는 같은 민족 통수를 쳤다.
누구는 독자적인 힘으로 안하고 외세를 빌었다.
라는 이유로 욕할 수도 있는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