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마지막에 올리는 항복문서는 바로 최명길이 작성하고 이를 본 김상헌이 찢어버리고 그것을 최명길이 다시 주워 붙였다는 그 유명한 일화를 가진 국서이다....이로써 병자호란때 청태종과 인조사이에 오고 간 국서 4편과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항복문서...통틀어 다섯편으로 완성...ㅎㅎㅎ
이 다섯편의 국서에서 보듯 정묘호란이나 병자호란은 결코 임진왜란과 같은 성격의 전쟁이 아님.
일어날 필요조차 없는 전쟁이었으며 청태종이 국서에서도 밝혔듯이 가만히 있는 청나라를 등신같은 조선조정이 주제도 모르고 계속 찝쩍거리며 신경을 건드리다 결국 화난 청나라 군대를 스스로 불러들여 조선땅을 다시 병화의 구렁텅이로 빠뜨린 전쟁이었음.
감당할 주제도 능력도 없으면 그런 주제파악이라도 해야 할텐데 그마저도 못해서 결국 나라전체를 전쟁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고 인조 저 등신은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두드리고 세자는 볼모로 보내고 청나라에 붙잡혀 갔다 돌아온 여자들은 몸 더럽혀졌으니 단체목욕이나 시키고 화냥년이란 단어를 한국사에 처음 등장시키고 나중에 돌아온 세자와 그 마누라인 며느리 손자까지 다 죽이고....충신이었던 임경업 장군도 죽이고...ㅎㅎㅎ
조선 국왕은 삼가 글을 대청국 관온인성황제께 올립니다. 저희 작은 나라가 大國에 잘못을 저질러 스스로 병화(兵禍)를 초래해서, 몸이 외로운 성에 들어 위태로움이 조석(朝夕)에 임박하였습니다. 생각으로는 특사(特使)로 하여금 글을 받들어 올려 정성을 전하고 싶었습니다마는 병과(兵戈)에 가로막혀 스스로 통할 길이 없었는데, 어제 황제께서 궁벽한 두메 구석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는 의심과 믿음이 상반(相半)하고 기쁨과 두려움이 엇갈렸습니다.
이제 大國이 옛 맹약을 잊지 않으시고 분명히 가르치고 책망하시니 스스로의 죄를 알겠습니다. 진실로 저희 작은 나라의 심사를 펼 수 있는 때를 얻었는가 합니다.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저희 작은 나라가 정묘년의 결호(結好)를 따른 이래 10여 년 동안 정호(情好)의 돈독함과 예절의 엄숙함은 다만 대국이 아시는 바일 뿐 아니라 실로 하늘도 잘 아시는 바이고, 다만 제가 몹시 어리석어 일을 살피지 못하는 수가 많았을 뿐입니다.
변방 백성의 산삼채취와 공․경(孔耿) 때의 일이 비록 저희 작은 나라의 본심은 아니었으나 의혹을 쌓아온 잘못은 면치 못하겠습니다. 대국의 관대한 용서를 입으면 저희 작은 나라는 진실로 오래 오래 넓으신 도량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봄의 일은 저희 작은 나라가 참으로 그 죄를 사과할 길이 없습니다마는, 이 역시 저희 작은 나라의 신민(臣民)이 식견이 옅고 좁아서 잘못 명의(名義)를 지켜, 마침내 사신이 노여워 바로 돌아가게 하였고 따라온 사람들이 모두 장차 大兵이 올 것이라고 위협하는 바람에 저희 작은 나라의 군신(君臣)은 지나친 염려를 면치 못하고 변경의 신하들을 거듭 훈계했는데, 문장을 짓는 신하가 글을 지을 때 배반하는 말이 많아 대국의 노여움을 범하는 줄 모르고 범했습니다.
그러나 감히 어찌 일이 신하들에게 나온 것이고 제가 아는 바 아니라고 하겠습니까? 사신을 잡아 가두려 했다는 말은 절대로 없는 일입니다. 어찌 대국의 총명으로도 이러한 점에 의심이 없지 않을 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명나라는 우리와 父子의 나라입니다. 대국의 군사가 여러 번 우리나라에 들어왔지마는 저희 작은 나라는 일찍이 한번도 화살 한 대 마주 대항하지 않아 형제의 맹약을 중히 여기지 아니한 일이 없었는데, 모해하는 말이 어찌 여기에까지 이르렀습니까? 그러나 이 역시 저희 작은 나라의 정성과 믿음이 미흡한데서 대국에 의심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또한 馬장군(마부대를 말함)이 스스로 말하기를, 호의로 왔노라고 하므로 저희 작은 나라는 그 말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가서 이렇게 될 줄이야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아무튼 지난날의 일은 저희 작은 나라가 이미 죄 지은 줄을 알았습니다. 죄가 있으면 치고, 죄를 알면 용서하는 것은 대국이 천심(天心)을 본받아 행하고 만물을 감싸서 용납하는 바입니다. 만약 정묘년 하늘에 맹세한 맹약을 생각하시어, 저희 작은 나라의 백성들의 목숨을 불쌍히 여기시어 저희 작은 나라로 하여금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도모함을 용납하신다면 저희 작은 나라가 마음을 씻어 복종함이 오늘부터 새로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대국이 용서하시지 않으시고 기어코 군사로 추궁하려 하신다면 저희 작은
나라는 도리가 막히고 형세가 다하여 스스로 죽음을 기약할 뿐입니다. 감히 심중을 아뢰어 신중히 지시하고 가르치심을 기다리겠습니다.
열흘 뒤 1월 13일 인조는 다시 국서를 보냄 (1637년 1월 13일)
근자에 저희 작은 나라의 재신(宰臣)이 글을 받들고 군문(軍門)에 가서 품청(稟請)하고 돌아와 말하기를, 황제께서 장차 다음 명령이 있을 것이라고 하여, 저희 작은 나라의 군신은 목을 늘이고 발꿈치를 돋구어 날마다 폐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마는 이제 이미 열흘이 넘도록 잘잘못의 말씀이 없으시므로 힘이 빠지고 정성이 핍박하여 다시 아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직 황제께서는 통찰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작은 나라가 전에 대국의 은혜를 입어 외람되게 형제의 의를 하늘과 땅에 밝혔으니, 비록 국토에는 구분이 있으나 정의(情意)에는 간격이 없어 스스로 자손만대에 끝없는 복이 되리라 했는데 어찌 맹약할 때 마신 쟁반의 피가 미처 마르기도 전에 의심과 틈이 생겨서 위급한 화에 떨어져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줄을 짐작했겠습니까?
그러나 그 유례를 찾아보면 모든 것이 다 저의 천성이 유약하여 잘못을 저지르고, 모든 신하가 어리석어 잘 살피지 못하여 오늘의 일이 있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책망할 뿐 다시 무슨 말이 있겠습니까? 다만 형의 아우에게 대한 생각으로 잘못이 있음을 보면 노하여 꾸짖는 것이 물론 마땅합니다. 그러나 책망이 너무 엄하면 도리어 형제의 의리에 틈이 생길 것이니, 어찌 하늘이 괴이하게 여기실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희 작은 나라는 궁벽한 바다 한 구석에 있어, 오직 시서(詩書)를 일삼고 전쟁을 익히지 않았습니다. 약자가 강자에 복종하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이 떳떳한 이치인데, 어찌 감히 대국과 더불어 서로 겨루려 하겠습니까?
다만 저희는 대대로 명나라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원래 군신의 명분이 정해져 있습니다. 일찍이 임진년의 난에 저희 작은 나라의 존망이 아침저녁에 달려 있을 때, 신종황제(神宗皇帝)께서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여 백성을 물불 속에서 구해 주셨으므로 저희 작은 나라의 백성은 아직까지 마음속 깊이 새겨 지니고 있어, 차라리 대국에 죄를 지을지언정 차마 명나라를 배반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그 은혜가 두터워서 사람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 아닙니다. 진실로 능히 그 백성의 목숨을 구할 수 있고 그 종묘사직의 위급을 구할 수 있는 자라면, 군사를 내어 어려움을 구원하는 것과 군사를 철퇴하여 생존을 도모하게 해주는 것과는 그 일이 비록 다르지마는 그 은혜는 결국 같습니다.
지난해 저희 작은 나라가 어리석고 착각해서 일 처리를 잘못하여 여러 번 대국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입었습니다마는, 오히려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대국의 군사가 오게 하여 군신과 부자가 오래 외로운 성에 있어 군색하기가 또한 심합니다.
진실로 이때 있어서 대국이 마음을 돌이키시어 저희가 잘못을 버리고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허락하셔서 종묘사직을 보존하고 오래 오래 대국을 받들게 하신다면, 저희 작은 나라의 군신들은 감격하여 장차 마음에 깊이 새겨 받들어 자손 영원한 세월에 이르도록 잊지 않을 것이요, 천하가 이를 들으면 또한 대국의 위엄과 신망에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을 것입니다. 이는 대국이 한꺼번에 큰 은혜를 동토(凍土)에 맺고, 넓은 명예를 만국에 베푸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오직 한때의 생각을 시원하게 하시고자 끝내 병력으로써 형제의 은혜를 상하고,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길을 막아 여러 나라의 소망을 끊으신다면 그것은 또한 대국으로서도 장구한 계책이 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황제의 고명(高明)하심으로 어찌 이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가을이 되면 만물이 죽고 봄이 오면 소생하는 것이 천지의 도리요, 약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망하는 자를 구원하는 것이 패왕(覇王)의 사업입니다. 이제 황제께서는 영무(英武)한 방략으로 모든 나라를 무마 안정시키신 다음, 새로이 대호(大號)를 세우시고 관온인성(寬溫仁聖) 넉 자를 내세우셨습니다. 이는 장차 천지의 도리를 본받으시어 패왕의 사업을 회복하려 하심이니, 저희 작은 나라와 같이 전의 허물을 고치고 넓으신 비호를 받고자 하는 자는 버림받지 않을 줄 믿고, 이에 구구한 말씀을 드려 명령을 내리시기를 청합니다.
청태종이 두번째 국서를 보냄 (1637년 1월 17일)
최명길이 작성한 항복문서 (1637년 1월 18일)
조선 국왕 이종(李倧)은 엎드려 대청국 관온인성황제께 글을 올립니다.
엎드려 밝으신 뜻을 받자오니 간곡하신 타이름을 내리셨습니다. 그 책망하심이 엄하신 것은 곧 가르치심이 지극하심입니다. 추상(秋霜)같이 매운 가운데 봄날이 소생하는 뜻이 들어 있어, 엎드려 읽고는 황송하고 감격(惶感)하여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대국의 위엄과 덕이 널리 미쳐서 모든 번방(藩邦)이 입을 모아 하늘과 사람이 귀의(歸依)하여, 크신 명령이 바야흐로 새로운데, 저희 작은 나라는 10년 형제의 나라로서 도리어 흥운(興運)의 시초에 죄를 지었습니다. 마음에 반성하여 후회해도 미치지 못하는 뉘우침이 있습니다.
지금의 소원은 다만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어 지난 날의 습관을 깨끗이 씻고, 온 나라를 들어 다른 모든 번방(藩邦)과 같이 명을 쫓고자 할 뿐입니다. 진실로 뜻을 굽이시어 위급을 안전하게 하심을 입어 스스로 새로워짐을 허락하신다면 문서와 절차에 응당 행할 의식이 있을 것이니, 그렇게 행하겠습니다.
오늘에 있어서 출성(出城)하라시는 명령은 실로 어질고 죄를 감싸주시려는 뜻에서 나온 것이지마는, 그러나 아직 겹겹이 둘러싼 포위가 풀리지 않았고 황제의 노여움이 대단하시어, 여기 있어도 죽고 성을 나가도 역시 죽을 것이므로, 용기(龍旗)를 멀거니 바라보고 자결하고 싶을 뿐이니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옛날 사람의 말에 ‘성 위에서 천자를 뵙는 자는 예를 그만둘 수 없고 병위(兵威) 역시 두렵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 작은 나라의 소원은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으니, 이는 아뢸 말씀을 다 아뢴 것입니다. 이는 깨달아 경계함이요 마음을 기울여 귀순함입니다.
황제께서는 바야흐로 천지의 모든 생물까지도 마음에 두시는데, 저희 작은 나라가 온전하게 살아 후하신 보양(保養)가운데 듦이 어찌 부당하겠습니까? 삼가 생각하건대, 황제의 덕이 하늘과 같아 반드시 불쌍히 여겨 용서하실 것이라 감히 진정을 토로합니다. 삼가 은혜로운 말씀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