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다만 그 분이 갖는 의문 중 하나는 대충 짐작이 가는군요.
왜 금나라는 발해인, 고(구)려, (고)조선을 항목에서 빼거나 언급을 회피했을까?
요즘 삼성 이병철 회장의 유산을 상속하기 위해, 이씨 일가에 소송이 진행 중입니다.
꼭 동족이라고, 형제라고 안싸우는게 아니라 더 물고 뜯고 유산을 놓고 다투기 마련이죠.
여진발해동본일가라는 개념은 여진족 지도자 신라인 후예 아골타가 발해인의 협력을 얻고,
그들이 자신의 권력과 지배를 순순히 따라오길 위해 외치는 소리죠.
고구려와 고려, 조선의 언급을 회피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헤게모니를 빼앗기기 싫어하기 때문이죠.
삼한이나 부여, 백제, 신라등은 만주원류고에서 만주족과 비슷한 부류로 언급했는데, 왜 부여에서 갈라져 나와 고구려를 성립하고, 다시 고구려에서 갈라져 간 백제는 언급하는데, 고구려는 뺏느냐?
왜 발해인으로써 거란에 항거했던 대원황제 고영창을 금나라 군대가 죽였느냐..
주인공의 자리, 일인자의 자리는 하나니까요.
발해 유민들의 협력과 복속은 원하지만, 그들이 고구려-발해를 재건하는 것은 두려우니까요.
조선이 고조선의 후예였던 범 동이족 계열의 맹주로 군림하여, 자신의 입지를 뺏기기 싫으니까요.
여진족이 금을 세우고 중원일대를 세운 후에도..
그 때까지 금을 지탱하고, 도운 핵심세력인 발해인들이 신라계 + 여진족으로 뭉쳐진 금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고구려의 후계국가를 재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겠죠.
신라는 같은 동족끼리도, 성골/진골로 나눠서 차별을 하고,
백성들조차도 6두품으로 나눠 철저한 신분제를 유지한 나라입니다.
왕권 다툼조차도 다른 성씨가 아닌, 진골 내의 범위에서만 벌어졌죠.
번동아제님은 형질인류학적으로 남부퉁구스계통(만주에 거주하는 인종)과 한국인이 사실상 혈통상으론 동족이라고 주장하되, 언어적으로는 남부 퉁구스(만주족)과 한국인이 별개라고 말하고 있죠.
아프리카 아메리칸과 아프리카 본토인은 어떨까요?
아메리카 흑인들은 영어 씁니다. 아프리카 본토인은 아프리카 본토어 씁니다.
우리는 같은 인종이 불과 몇백년만에 완전히 다른 언어로 바뀐 걸 목격했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흉노에게 끌려간 동호족 포로들이 모국어 대신 흉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가,
남하해서 한족 문명에 심취해버린 선비족이란 케이스가 있죠.
번동아제라는 분은 아주 세심하고, 아주 섬세한 주장을 하고 싶어하지만..
솔까 역사란게 그렇게 쉽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죠.
불과 어제 저녁에 일어난 범죄사건도 정확한 내용을 녹화라도 하지 않는 이상,
무슨 말이 오가고, 무슨 폭력이 있었고,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 알아내기도 힘듭니다.
그 분은 완벽주의를 추구한다고 보면 될 뿐...
꼭 완벽하게 설명못한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도 비약이지요.
수많은 가설 중에 여기저기 상황에 맞고,
많은 것을 하나로 꿰뚫어 설명가능한 유력한 결론이 사실에 가깝다는 것이 중요한거죠.
그런걸 정론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검증된 사실만 연결해놔도 전체적 그림이 대충 그려집니다.
여진문자는 아직 해독불가상태이고 거란문자를 개량했다고 추측하고 있는 정도인데 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여진문자는 신라문자(이두, 향찰)을 발전시켜 만든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여진족은 본래 신라 왕족 김함보와 그 세력이 함경도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말갈족와 융합하면서 형성된 민족입니다. 신라왕족이 함경도로 이주하면서 당연히 신라문자를 가져갔으므로 이두, 향찰 문자를 계속 사용했고 그것이 발전하여 여진문자라고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금나라가 북송을 정복하면서 만주지역의 금나라 인구를 북경과 산동지역으로 이주시켰는데, 수도를 북경으로 이주시켰으니 지배를 위해서 금나라 인구를 대거 북경과 산동지역으로 이주시킨 것입니다. 이는 청나라때 만주족도 똑같은 정책을 썼습니다. 유럽이 아메리카를 식민지배할 때도 유럽인구를 대거 아메리카대륙의 동부해안지역으로 대거 이주시킨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