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동이족이 만들었다라는 명제는 분명 참이죠.
한자를 동이족이 만들었기 때문에 한자는 우리의 문자이다라는 명제는 거짓인데, 그 거짓인 이유는
한자를 동이족이 만들었기 때문에-라는 전제와 -우리의 문자이다라는 구절의 호응이 불협하기 때문입니다.
이어 말하면,
한자는 우리의 문자이다라는 명제는 참입니다.
물론 이 명제가 참이 되기 위해서는
한자는 현재의 중국, 일본, 대만, 한국 등의 국가와 그 국가의 기간이 되는 역사적 공동체가 이천 년 가까이 공유해오며 일정 시기까지는 각 집단의 유일한 문자로 사용하였으며 고로 제 국가와 국가로 대표되는 공동체 모두에게 연고권이 있다라는 명제가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한자는 현재 중국의 문자이다라는 명제는 참입니다.
그러나
한자는 현재 중국만의 문자이다라는 명제는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한자는 현재 중국 뿐만 아니라 대만, 남한, 일본 등 제 국가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자이기 때문입니다.
한자는 과거 시기 중국의 문자이다라는 명제는 거짓입니다.
왜냐하면 한자의 일부를 개량하여 사용하고 있지만 현재도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한국의 경우 15 세기에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까지 유일한 표기수단, 즉 문자였습니다.
모든 문자 생활과 커뮤니케션에 한자를 표현수단으로 사용했습니다.
또한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도 20세기 초까지 한자는 가장 주도적인 문자였습니다.
일본의 경우
가나의 한계로 인하여, 아니 가나 자체가 한자와 병용해야 하는 특성상 한자는 현재에도 분명한 일본 문자의 중요 구성 요소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자는 19세기와 20세기 초까지
적어도 중국과 한국, 일본 위 삼국의 국제관계에 있어 공용문자이자 공통문자였습니다.
한자의 맥락상황은
알파벳의 경우와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그림문자가 그림문자에서 그 그림체 자체로 표음문자로 사용되다가 페니키아를 위시한 지중해 해상무역 집단들에 의해 간소화 되고
이후 고대 그리스인들이 모음을 창안하여 원시 알파벳이 정리되어 지중해에서 통용되다가
다시 로마를 통해 유럽에 널리 퍼져 각 국가와 민족의 형편에 맞게 그 언어를 표기하는 수단으로
오늘날의 모습을 띠게 되었습니다.
만약 알파벳을 선도하는 영미인들이
알파벳은 우리가 발명한 것이 아니니 우리 문자가 아니다, 라고 하거나 알파벳은 로마의 침략자들이 전해준 것이다, 라고 하거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열등감과 반감을 느껴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보자고 한다면 이것은 참 어리석은 지경이 되겠지요.
슬라브나 라틴, 게르만, 노르만, 앵글로색슨, 심지어 베트남까지
각 언어권이나 국가, 민족의 형편에 맞게 변형 사용하는 알파벳은 어디까지나 그 집단의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문자가 아니다라는 명제는 참으로 어리석고 위험한 모순을 담고 있는 거짓 명제가 분명합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한자의 시원은 은(상)의 갑골문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 사용하는 한자의 모양과는 다르지만
글자를 대조하여 보면 은의 갑골문이 현 한자의 기원인 것은 틀림 없어 보입니다.
엄연한 사실로, 은은 동이족의 국가이자 정치/경제/문화 단일체였습니다.
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화하족에 반하는 것으로 시작한 것으로
단순하게 방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원의 정치영역에 속하지 않으며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동쪽의 제 종족을 동이라 통칭한 것이죠.
팩트는
화하족과 다른 종족이며
혈통은 차치하더라도
동일한 문화적 속성을 공유하는 제 집단으로서
처음에는 산동과 화북, 그리고 그 사이의 이질적 집단을 가리키는 것에서 나중에는 점차
중국의 동부해안과 산동, 화북, 요서, 요동, 만주, 한반도, 일본열도 등지로 광범위하게 확대됩니다.
동호, 예, 맥, 한, 왜, 조선, 숙신(조선-숙신-말갈-여진), 읍루, 거란, 선비 등
그런데
각종 물질고고학, 언어고고학, 언어학, 서지학, 문헌학, 고증학, 인류학 등의 역사적 연구에 의해
읍루를 제외한 위 제 집단이
혈통적, 문화적, 언어적, 신화적 원형을 공유한 같은 계통의 종족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산동, 화북, 요서, 요동, 만주, 한반도, 큐슈를 위시한 열도 등지에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치며 선주하거나 이입된 조상들을 통해 형성됐으며
국가적 연원으로는
고조선, 진, 한, 부여 - 고구려, 동예, 옥저, 마한, 진한, 변한 -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 발해, 신라 및 후삼국, 고려 - 조선 - 일제강점기 - 남북한 의 유래를 가지고 있습니다.
혈통적 연원으로는
조선, 예, 맥, 한, 거란, 말갈, 여진 등 원형은 같으나 이질화된 제 종족이
청동기, 철기, 부여-고구려-신라-백제-가야의 국가체제, 남북국시대와 고려, 조선 등으로
단일한 권역의 정치 및 문화, 경제 공동체를 이루어
최고는 5000여 년 전부터 최근은 700여년 전까지 단일성을 확보하게 됩니다.
자, 다시 한자로 말을 돌리면
갑골문을 통해 한자의 시원을 연 동이족은 액면 그대로 현재의 한국인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은 동이족이 분명하며
현재 그 옛날 한족(화하족)이나 중원에 의해 동이로 통칭되던 제 민족 중에서
현재 국가 단위로 명맥을 유지하여 남아 있는 것은 한국과 일본이 유이합니다.
즉, 우리는 현재 그 옛날 동이족에 대해서 대표성을 지니게 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혈통적으로 현재 중국의 90%를 상회하는 한족에 그 옛날 동이족의 피가 섞여들어갔음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지요.
그러나 한족은 그들과 구분하는 멸칭으로 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니 한족이 동이족을 대표한다는 것은
참으로 말이 안 되는 주장이 되겠지요.
민족을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혈통이 아니라 정체성과 정통성이지요.
민족은 현재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nation이든 ethnic group이든
역사라는 시간을 담보한 종적/횡적 연원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는 단일한 주체성, 타자와 구분되는 정체성을 이르는 것이지요.
우리 민족을 구성한 것이
그 옛날 한족에 의해 동이족이라 불리우던 동북아시아 제 종족이라면,
그리고 그 제 종족의 일부에 의해
한자의 시원이 열렸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자의 시원을 열 때 우리 조상의 일부가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라구요.
물론
이 원시 한자를 표준화하고 개량하여 오늘날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은
중국의 고대 제국인 진과 한을 거치면서지요.
알파벳의 시원은 이집트의 그림문자이고, 그것이 표음문자로 발전한 후에 다시 약식 기호화한 것은 페니키아인들이고, 모음을 창안하여 현 알파벳의 처음을 연것은 그리스인들이나
종국에
오늘날과 같은 알파벳을 전 유럽에 퍼뜨리고 통용시킨 것은 로마제국이지요.
한자에 관해서, 유럽의 그리스나 특히 로마가 한 역할을 중국이 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대제국으로서 선진적인 정치 시스템과 철학,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를 외부로부터 받아들이고 또 저들이 독창적으로 창안하고 발전시켜 이것을 다시 외부 세계로 전파합니다.
그리고 그 운송수단이자 교통수단으로 한자가 사용된 것이죠.
그리하여 한자는 중국이라는 구심점으로 이루어진 동북아세계의 공통이자 공용문자가 된 것입니다.
한자에 대하여
한국인들이 가지는 입장과 태도는 반감 일색입니다.
이게 다 식민지를 거치며 필요 이상으로 고양된 민족의식 때문이지요.
조금이라도 중국이나 일본과 연관이 있으면 결벽증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을 띱니다.
이런 경향은 어느 선까지는 필요하겠으나 도가 지나치면 결국 손해가 아니겠습니까.
전 세계 어느 집단, 어느 민족, 어느 국가를 보더라도
100% 고유한 것은 없습니다.
한자는 한글과 함께
우리 나라, 우리 겨레의 문자가 맞습니다.
물론 한자는 우리만의 문자는 아니지요. 중국, 일본, 대만과 공유하는 문화이자 문자이지요.
그러나 이토록 한자를 거부하게 된다면
결국 한자는 우리 문자가 아닌 게 되어버리고
연고권 또한 주장할 수 없게 되어
우리는 참으로 우스운 곤경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될까봐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