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사학계는 고조선 문명 발상지라며 지금의 백두산 기슭의 만발자성턴지 뭔지를 거론한다.
참으로 가소롭다.
그 발상은 일본이 조작.이동시킨 지금의 백두산을 고대 환웅천왕이 내려왔다는 태백산 신시 혹은 단군 왕검이 도읍한 아사달.우수하 부근의 임검성.1평양성 지점이라 생각한다는 말이겠다.
하지만 이조선 시기 이익.이중환 등은 조선 땅 지관들의 말이라 하며 조선 강역 모습이 고개를 숙여 중국에 읍하는 모양이라 했고 백두산의 좌향이 해좌사향이라 했다. 즉 한양을 기준하여 백두산 위치가 시계 시침으로 10~12 시 사이 지점이라고 하였고 그 뻗어내린 지맥의 방향이 4~6 시 방향이라 했다. 결국 지금의 중국 요녕성 서쪽 지역에 표시된 지금의 노호산 부근이다.
아래는 이조선 시기의 백두산과 그 서북쪽 지맥이 묘사된 무제 고지도로 영조 26 년(1751) 홍문관에서 비변사의 지도들을 모아 편찬한 <해동지도>에 실린 지도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자료실 싸이트에는 엉뚱하게도 <산해관.심양....>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곳의 백두산은 이조선 시기의 백두산일 뿐이지 왕검조선 시기의 우수하가 흐르는 곳의 산 혹 태백산일 수가 없는 것이다. 왕검조선의 우수하.아사달은 부여가 있었던 부우산 또는 불함산 부근에 있어야 하고 그 부우산에서 동쪽으로 1000 리 뻗은 산의 맥이 중국 정사 <금사>에 기록된 장백산이며 송.요 시기 고지도인 <지리도>에 표시된 장백산.개마대산의 지맥이며 아래에 제시한 추정도와 가칭 <백산대맥도>에 표시된 백산대맥이다.
아래 추정도와 같이 부우산 혹 태백산은 현토.요동 2 개 군을 흐른다는 2100 리 길이 염난수의 발원지 부근이였고 동서 1000 리 뻗어있다는 백산대맥의 서북쪽 끝 지역에 있었고 이조선의 백두산은 그 동남쪽 끝에 있었다.
백산 또는 백산대맥은 정약용의 <강역고/백산보>와 <성경통지><청사고/지리지> 기록과 <성경지여전도>에 정확하게 기록.묘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