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사실 알려주께, 야요이인 자체가 걍 외국인임. 즉 정치집단 형성후의 도래인이라말임. 정치적 충격으로 고향을 떠난거, 지리적으로보나 고고학으로보나 야요이문화의 시초는 코리아임 , 즉 열도는 외국인에의해 초기국가가 성립됨, 그렇다면 열도의 영유권과 고토회복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누구?ㅋㅋㅋ
참고로 원시시대의 인구의 이동과 역사시대의 인구의 이동은 전혀 다른 의미임. 이미 정치집단(국가)를 형성한 기존의 세력들이 더욱 선진화되고 강력한 세력에의해 밀려서 열도로 옮겨감. 호주의 선대가 영국의 범죄자들인 것처럼 열도의 선대는 코리아의 패잔병 세력이라 할 수 있음.즉 열도의 역사는 외국인에의해 형성된 것임.고고학을 보면 답나옴, 물질문화(고고학)가 동일하다는 말은 주민집단이 동일하다는 의미임. 야요이 문화가 한반도에 기초한 문화라는 것을 알면 답나옴.과거일수록 문화는 훨씬 보수적이고 문화의 교류는 지금처럼 단순한 물질의 전파가 아닌 인구의 이동이었음, 결론은 열도는 누구꺼다?
야요이는 단지 토쿄 인근 야요이(彌生)이라는 곳의 패총에서 발견된 토기를 야요이 토기라고 이름을 붙인 것에서 유래한 것임...그리고 그 토기를 쓴 사람은 한반도 남부에서 넘어간 사람들이고...무쉰 양자강에서 큐슈로 이동?
신석시시대인 들의 이동은 보이는 섬을 따라 이동하는 방식이고 수평선이 보이는 곳에서 별을 보고 항해하는 것은 불가능.... 왜인들의 조상이 무슨 폴리네시아 사람처럼 뛰어난 종족으로 착각하는 것 같은데...신석기시대인들이 무슨 양자강에서 큐슈로 이동???
물론 양자강에서 타이완, 유큐를 거쳐 큐슈로는 갈 수는 있지만...양자강에서 제주도로 바로 못 옴...난파되어 흘러흘러 갔다면 모르지만...그 많은 야요인들이 그렇게 갈 수는 없음...
그런 항해술은 지나나 우리 나라도 통일신라시대에 들어서야 가능해졌고...우리 조상들이 제주도를 갈 수 있었던 것도 추자군도가 있어서 가능한거지 그냥 제주해협을 통과해서 제주도로 간 것이 아님...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러 왔다가 돌아가서 서귀포라는 지명이 생겨...마치 제주와 중원의 뱃길이 있었던 것처럼 야그도 하지만...이는 그 당시 전설같은 소리에 불과 ...그런데....무슨 야요인이 양자강 유역의 백월계같은 소리
빙하기 때 황해는 육지였고 한반도는 중국이랑 붙어있었고
큐슈도 한빈도 남부랑 붙어있었음. .당시 황해 육지를 통해서 중국과 동남아에서 한반도와 일본으로 들어온 조몬계 D1b. 그리고 야요이계 O3.O2b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항해술이 가능한 이유는 울산 암격화를 보면 알죠. 고대인들은 가능했어요.. 알래스카 원주민계 알튜섬에사는 부족들도 항해술 벽화가 그려져 있고 이들 조상 말대로 아시아에서 건나왔다고 합니다. 가능했어요. 그리고 양자강과 반도는 가까움. . 향해술이 가능했다면 배타고 올수있음. 일본 사서에 타이보라는 오나라인이 일본으로 옴. 마을도 있고 벽화도 있음. 고대인들은 오히려 항해술이 가능했다고 봅니다.
내말은 유전적으로 볼때는 빙하기때 중국과 동남아에서 O-YDNA가 북부로 이주했다는 애깁니다. .
야요이시대는 한반도인들만 일본으로 이주했다는건 말도 안되고요. 해외 논문에도 나옵니다.
야요이 문화는 기원전 3세기 입니다. 이 당시 중국 대륙 문화는 한반도 보다 더 선진국이였고요
당시에 배를타고 중국에서 올수도 있다는 애기죠. 일본 고대 쌀은 자포니카고 원산지가 양자강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포니카 기원지는 운남성이고요. 자포니카 쌀은 동북아고 동남아 자포니카가 아닌 인디카를 주로 재배 합니다. 야요이는 다양한 이주민 집단이고 오로지 한국인만 해당한다는것도 오류죠. 이미 해외 눈문에도 나와있어요
기원 후까지도 아시아에서는 모든 나라가 연안항로를 따라 항해하였음. 나침반도 없고 시계도 없었던 시절에 무슨 수로 경도를 측정해서 바다를 건너? 위도야 별이나 태양을 기준으로그나마 가능하지만...시계가 없으면 경도는 알 수 없음...왜에서 중국 땅은 동서방향의 경도를 측정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임.
지도로 보면야 양자강이나 제주도, 큐슈 모두 가깝겠지만...실제는 그렇게 가깝지 않음 ...해류의 도움이 없이는 뗏목 같은 것을 타고 서해를 횡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가능하다면 소가 뒷걸음치다가...즉, 해류나 바람의 도움을 받아 또는 난파해서 갈 수도 있게지만....
그리고 소위 롱그레인이라고 하는 자포니카의 기원지가 운남성이라고 누가 주장하는건지? 가장 오래된 탄화볍씨가 한반도에서 발견되어 한반도가 벼의 기원지라는 논문까지도 나와 있는 판에데...댓글이든 뭐든...단편적인 것만을 가지고 일단 주장해 보는건 바람직하지 않음....하기야 님이 아직은 덜 깨인 신석기인인 야요인이라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아니고....반나절 이내 중간 중간 연안이나 섬을 볼 수 있어야 항해가 가능한 연안항해술을 얘기하는 것임...암벽화에 나온 것은 원양항해술을 그려놓은게 아니고 연안에서 고래잡는 것을 그린 것임!!!...
5세기 이후나 오나라 시절에는 바다를 건너는 항해가 가능했던 시기....즉, 장보고가 해상을 장악할 때는 연안항로에서 벗어나 대양(?)을 건너는 항해도 가능한 시기...하지만...이 때도 왜국은 큐슈에서 중원 땅으로 바로 못 가고 신라의 배를 타고 갈 수 밖에 없었음....그래서 '엔닌'이라는 왜국 승려가 장보고에 대해 고마워한 것임
아이누족 mtDNA에 의하면 M7a는 일본인과
아이누족 여성에게서 고빈도로 발견됩니다.
M7a를 제외한 아이누족 D4h.D4.G.Y.N9b는
시베리아 부족하고 관련이 있다는 겁니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D4h와 N9b는 발견되지 않으며
D4h는 아메리칸 원주민 N9b는 니브흐족과 Y는 우데게족에서 높게 발견되는 모계 유전자 입니다.
D4h가 일본에서 발견된건 큰 충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