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가는 대만, 쫓아오는 美·日… “韓 시스템반도체 육성 시급”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10㎚ 미만 반도체 90% 대만이 공급
5년 후 파운드리, 대만·韓·美·日 4개국 경쟁 구도
日, 기업 연합 내세워 반도체 재건 속도
美, 막대한 지원금으로 세계 기업 역량 확보
韓 K칩스법도 미완… “인재 양성 등 판 새로 짜야”

삼성전자가 지난해 6월 세계 최초로 GAA(Gate-All-Around)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공정 기반의 초도 양산을 시작하면서 3나노 파운드리 양산에 참여한 파운드리사업부, 반도체연구소, 글로벌 제조&인프라 총괄 주역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는 반도체 제조분야에 미국과 일본이 진입하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 경쟁구조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선임연구위원


한국이 세계 1위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를 쫓아가는 와중에 일본과 미국도 파운드리 시장 진출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차세대 반도체 산업에 국가 미래가 달려있다고 여기는 일본과 미국 정부는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며 한국 반도체 산업을 위협하고 있다. 차세대 반도체 선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한국이 더 늦기 전에 파운드리를 포함한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만·한국 2개국 파운드리 구도 3년 안 가”

산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미래전략산업 보고서에서 현재 대만과 한국 위주인 세계 파운드리 시장이 3년 내 대만·한국·미국 경쟁 구도로, 5년 후에는 일본까지 가세한 4개국 경쟁 구도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 공급되는 10㎚(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미만 반도체의 90%가 대만에서 만들어진다. 대만이 전체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한국이 도전하고 있는 형국에서, 미국과 일본이 가세해 세계 반도체 산업 분업 구조가 바뀌게 된다는 얘기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 대만 TSMC가 59%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 뒤를 삼성전자(12%), 대만 UMC(7%), 미국 글로벌파운드리(6%), 중국 SMIC(6%) 등이 따르고 있다. 그중 TSMC와 삼성전자는 현재 3㎚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6월 3㎚ 공정 도입을 선언한 데 이어 최근 TSMC도 3㎚ 양산에 돌입했고, 두 회사 모두 2025년 2㎚ 이하 양산이 목표다.

이처럼 기술력 측면에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TSMC와 견줄만하다는 평이 나오지만, TSMC가 35년간 쌓아온 공정 및 고객 응대 노하우와 수익성 확보 능력 등은 여전히 비교 불가라는 게 업계 전반적인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첨단 공정뿐 아니라 구(舊)공정도 대만이 대부분 점유하고 있고, 고객별 공정도 세분화돼 기존 고객이 쉽게 떠날 수 없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일본 반도체 산업 부활 시동, 미국은 파격 지원

일본은 반도체 산업 재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일본은 정부가 700억엔(약 6650억원)을 지원해 소니, 도요타, 키옥시아 등 일본 대표 기업 8개가 뭉친 첨단 반도체 회사 ‘라피더스’를 설립했다. 이른바 드림팀이라고 불리는 라피더스는 최첨단 반도체만 단기간에 생산하는 전략을 추구하면서 TSMC·삼성전자와 차별화된 경쟁을 벌일 계획이다. 앞으로 5년간 슈퍼컴퓨터와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등에 쓰일 2㎚ 이하 반도체 연구 개발에 몰두하고, 2027년 2㎚ 이하 제품 양산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27년 이후에는 최첨단 파운드리를 일본 내에서 제조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일본은 또 차세대 반도체 제조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TSMC에 4000억엔(약 3조8000억원)을 지원해 일본 내 공장 유치에 성공했다. 반도체 기업 설비 투자의 40%가량을 보조금으로 지원하는 정책으로, TSMC는 이 지원을 받고 2024년 완공을 목표로 구마모토현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 /연합뉴스

반도체 산업을 경제 안보 핵심 축으로 보는 미국은 인텔을 필두로 파운드리 산업을 키워가고 있다. 인텔은 2021년 파운드리 시장에 재진출한 뒤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투자를 늘리는 중이다. 최근 2년 사이 미국 내 파운드리 공장 4개 건설 계획을 내놨고, 내년 3㎚ 양산에 이어 2024년 내 2㎚ 반도체를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미국 정부 지원책도 대규모다. 미국은 자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25% 세액공제를 해주고, 반도체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 등에 520억달러(약 73조원)를 지원한다. 막대한 지원에 삼성전자부터 TSMC, 마이크론 등이 미국에 수백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최신 공정이 적용된 퀄컴이나 애플 칩 제조를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며 “미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따라 ‘메이드 인 아메리카’가 글로벌 업계 기조가 되고 있어 TSMC와 삼성 모두 최신 공정을 미국에 먼저 도입하려 할 것이고, 이 경우 자연스럽게 미국 본토에서 최신 공정 칩 캐파(생산량)가 늘어나게 되는 등 미국 반도체 산업은 선순환 구조를 타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韓, 인재 양성부터 판 새로 짜 시스템반도체 육성해야”

반면 한국의 반도체 산업 육성안은 걸음마 단계다.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 지원법인 ‘K칩스법’ 중 업계에서 가장 시급하다고 보는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개정안(공제율 25%)은 여전히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한국이 지지부진한 사이 세계 각국이 보조금 지원 경쟁을 벌여 앞으로 몇 년간 전 세계에 20개 이상의 파운드리 공장이 새로 들어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각국 정부가 반도체 현지 생산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어, 파운드리 시장은 점차 다양한 지역에 걸쳐 세분화될 것이다”라며 “이제 파운드리 산업은 비용 구조 외에도 특정 국가의 보조금 정책과 현지 콘텐츠에 대한 고객의 요구 사항을 더 많이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국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잃지 않으려면 파운드리를 포함하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 육성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팹리스(Fabless·반도체 설계)부터 후공정(반도체 패키징)까지 이어지는 반도체 생태계를 조성해야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종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메모리 분야 강점을 토대로 팹리스 기업을 과감히 지원하면서 산학 협력을 활성화해 파운드리 성장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중국도 이 분야에서 급격하게 부상할 수 있어 반도체 소부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체계를 확충하는 등 긴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리노 인하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시스템반도체 시장 수요는 무궁무진한데 한국 반도체 교육은 여전히 메모리반도체 위주의 소자 공정 쪽에 쏠려있다”며 “우선 설계 분야에서 대만 미디어텍 같은 경쟁력 있는 기업을 키워야 하고, 그러려면 인재 양성 판부터 컴퓨터 부문을 비롯한 시스템 설계 등에 집중해 새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IT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