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반야경 288권 中>
36. 착불착상품(着不着相品) ①
그때 구수 선현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승(菩薩乘)에 머무르는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만일 방편 선교(方便善巧) 없이 이 반야바라밀다에 대하여 반야바라밀다라는 생각을 일으키면, 얻을 바 있음[有所得]을 방편으로 삼기 때문에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버리며 멀리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장하고 장하도다. 너의 말과 같느니라. 저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 반야바라밀다의 이름에 집착하고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이것을 버리며 멀리하는 것이니라."
구수 선현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저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 반야바라밀다의 이름에 집착하고 모양에 집착하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현아, 저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이 반야바라밀다의 이름을 취(取)하고 모양을 취하며 이름과 모양을 취한 뒤에는 반야바라밀다에 탐착(耽着)하므로 참 모습의 반야를 증득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저 무리들은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버리며 멀리하는 것이니라."
또 선현아, 보살승에 머무르는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방편 선교 없이 이 반야바라밀다의 이름을 취하고 모양을 취하며, 이름과 모양을 취한 뒤에는 이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고 교만한 마음을 내므로 참 모습의 반야를 증득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저 무리들은 심히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버리며 멀리하는 것이니라.
또 선현아, 보살승에 머무르는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방편 선교가 있고 얻을 바 없음[無所得]을 방편으로 삼으면, 이 반야바라밀다의 이름과 모양을 취하지도 않고 탐착하지도 않고 교만한 마음을 내지도 않으므로 곧 참 모습의 반야를 능히 증득하니,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이들을 이름하여 반야바라밀다를 버리거나 멀리하지 않는 이라고 하느니라."
구수 선현이 이내 부처님께 아뢰었다.
"심히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보살마하살 대중들을 위하여 이 반야바라밀다에 집착하고 집착하지 않는 모양을 잘 열어 보이시고 분별하셨습니다."
그때 구수 사리자가 구수 선현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어떤 것이 집착하고 집착하지 않는 모양입니까?"
선현이 대답하였다.
"사리자여, 보살승에 머무는 모든 선남자와 선여인들이 만일 방편 선교 없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게 되면, 물질에 대하여 공하다고 말하면서 공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집착하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대하여 공하다고 말하면서 공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집착합니다.
또 눈의 영역에 대하여 공하다고 말하면서 공하다는 생각을일으켜 집착하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영역에 대하여 공하다고 말하면서 공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집착합니다.
또 빛깔의 영역에 대하여 공하다고 말하면서 공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집착하며, 소리ㆍ냄새ㆍ맛ㆍ감촉ㆍ법의 영역에 대하여 공하다고 말하면서 공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집착합니다.
또 눈의 경계에 대하여 공하다고 말하면서 공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집착하며, 빛깔의 경계ㆍ안식(眼識)의 경계와 눈의 접촉 및 눈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 대하여 공하다고 말하면서 공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집착합니다.
또 귀의 경계에 대하여 공하다고 말하면서 공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집착하며, 소리의 경계ㆍ이식(耳識)의 경계와 귀의 접촉 및 귀의 접촉이 연이 되어 생긴 모든 느낌에 대하여 공하다고 말하면서 공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집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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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 [오전 3:45] 모든 것을 공(空) 하다고 하면서 공하다는 생각을 일으켜 집착하는 것이 반야를 멀리하는 것이라네요. 공에 대한 집착, 즉 공병이죠. 일체처무심(一切處無心)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심연] [오전 3:47] 방편선교 없이 반야바라밀다에 대해 반야바라밀다라는 생각을 일으키면 얻을 바 있음을 방편으로 삼기 때문에 반야바라밀다에서 멀어진다네요.
방편선교(方便善巧) : 교묘한 수단과 방법.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그 소질에 따라 임시로 행하는 교묘한 수단과 방법. 중생을 깨달음으로 인도하기 위해 교묘한 방법으로 설한 가르침.
[심연] [오전 3:49] 방편선교 없이 한다는게 근기나 수행이 안되는 자들을 얘기하는 것이죠. 불법(佛法)을 잘 알고 있는 존재들은 불법에 대한 앎조차 모두 위에서 내려주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얻을 바 없음(無所得)을 알고 집착하지 않죠.
[심연] [오전 3:50] 열반경에서 반야의 성품은 분별이라 하듯이 반야바라밀의 핵심은 자비를 중심으로 분별력을 닦는 수행인 것인데, 불법을 모르는 존재들은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모르기 때문에 제대로 분별하기 어렵죠. 법등명이 이래서 중요한 것이며, 법등명 없이는 자등명도 없습니다.
[심연] [오전 3:51] <<대반열반경 中>>
지혜의 성품은 분별하는 것이거늘, 이 사람은 여래가 항상한지 무상한지를 분별하지 못하며, 여래는 이 열반경에서 말하기를 '여래가 곧 해탈이요, 해탈이 곧 여래며, 여래가 곧 열반이요, 열반이 곧 해탈이라' 하였거늘, 이런 이치를 능히 분별하지 못하느니라. 범행(梵行)이 곧 여래요, 여래가 곧 자비희사(慈悲喜捨)요, 자비희사가 곧 해탈이요, 해탈이 곧 열반이요, 열반이 곧 자비희사라 하였거늘, 이런 이치를 분별하지 못하나니, 그러므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하였다 이름하느니라.
[심연] [오전 3:51] <<비화경 中>>
"이 도(道)는 잘 선택함이니 반야(般若:지혜) 바라밀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 도(道)는 도적이 없나니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접촉을 분별하기 때문이며, 이 도(道)는 마귀[魔]를 부수는 것이니 5음(陰)ㆍ12입(入)ㆍ18계(界)를 잘 분별하기 때문입니다."
[심연] [오전 4:53] 위 열반경 대목에 자비희사가 곧 해탈이라고 하는군요. 해탈이 참 자유인데, 참된 자유가 자비희사라는 것이죠. 사랑과 자비만이 영원한 자유라고 글을 올린 적이 있죠. 사랑과 자비가 영원한 자유를 얻게 해주며, 여래에 이르는 길입니다.
[심연] [오전 5:44] 대반야경에 저렇게 공에 집착 말라고 나오는데도, 대반야경의 핵심을 공으로 확정하고 대승의 핵심 사상을 공이라고 퍼트린 자들은 그 업이 많기 때문에 저런 대목들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확실하게 구분 지어서 대승의 핵심 사상은 자비이며, 대승에서 경계해야 할 마장이 공(空)입니다. 이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심연] [오전 11:03] <대반야경 中>
다시 교시가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다른 유정에게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힘쓰게 하고 기뻐하게 하려면, 마땅히 여실(如實)한 모습의 뜻으로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힘쓰게 하고 기뻐하게 해야 하느니라.
또 이와 같이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힘쓰게 하고 기뻐하게 해야 하니, 이른 바 보시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나는 보시를 행한다'고 분별하지 말아야 하고, 정계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나는 정계를 지킨다'고 분별하지 말아야 하고, 안인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나는 안인을 닦는다'고 분별하지 말아야 하고, 정진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나는 정진한다'고 분별하지 말아야 하고, 정려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나는 정려에 든다'고 분별하지 말아야 하며,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에는 '나는 지혜를 익힌다'고 분별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심연] [오전 11:17] 구경각 이전인 등각까지도 미세망상이 있어서 이런 식의 생각은 항상 들기 때문에 보시했다는 생각이 들거나 들지 않거나, 보시했다고 분별하거나 하지 않거나 양쪽 다 의미가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진리 추구를 위해 법보시를 하는 마음이 더 앞서기 때문입니다. 다만 보시했다고 분별하거나 생각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는 불법에 어긋나므로 그 업보를 받게 되지만 그냥 받으면 됩니다.
[유전] [오전 11:21] 등각 다음이 정각인데 정각은 바른 깨달음이라는 뜻이니 그 이전의 경지인 등각에서 미세망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죠. 게다가 사실을 알고 보면 정각에 들어도 항상 마구니 생각이 드는 것은 그 마구니가 손님이고 중생이기 때문에 중생의 생각을 들어주는 것으로 다만 정각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아주되 일시적일 뿐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심연] [오전 11:21] <대반야경 中> 다시 사리자여, 먼저 물었던,'어떤 것이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집착하지 않는 모양이냐?'고 하면, 사리자여,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방편 선교가 있으면, 물질에 대해서 공하다거나 공하지 않다거나 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느낌ㆍ생각ㆍ지어감ㆍ의식에 대해서도 공하다거나 공하지 않다거나 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또 눈의 영역에 대해서 공하다거나 공하지 않다거나 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며, 귀ㆍ코ㆍ혀ㆍ몸ㆍ뜻의 영역에 대해서 공하다거나 공하지 않다거나 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심연] [오전 11:22] 공하거나 공하지 않거나 양쪽 다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유전] [오전 11:23] 망상이든 미세망상이든 집착하지 않고 그대로 행하다 보면 그런 모든 망상과 미세망상이 저절로 소멸되는 경지가 정각입니다.
[심연] [오전 11:23] "다시 교시가여, 만일 보살마하살이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깨달음을 다른 유정에게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힘쓰게 하고 기뻐하게 하려면, 마땅히 여실(如實)한 모습의 뜻으로 보여 주고 가르쳐 주고 힘쓰게 하고 기뻐하게 해야 하느니라."
[심연] [오전 11:23] 그래서 처음 이 구절이 중요한 구절인듯 하네요.
[유전] [오전 11:24] 여실지견이란 것이 실상 즉 제법실상을 뜻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