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상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불교용어사전(교보문고)불교용어 한영사전등등의 힘을 빌려서 이해해야하는
문제점이 항상 대두됩니다
이러한 원인은 두가지 팔만사천 법문번역이 혼재하며 생긴탓인데
빨리어와 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문음가만 차용한 버전은
단어자체가 생경하며 사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또하나는 빨리어와 산스크리트어 음가보다는 뜻을 중점으로 번역한 버전인데
좀더 이해하기 쉽지만
이역시 당나라 시대 고대한문이어서 접근성이 떨어지며
한글판 팔만사천 법문 번역이 시도 되어오고 있지만
순우리말을 사용했을때의 본뜻의 왜곡문제로 인해 완전한 우리말 번역은 아직은
요원합니다
아무튼 불교전문용어로 가득한 불교사상은 접근성의 문제점 안고 있으므로
사전적 지식이 필요한 학문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아래에는 불교사상의 전개과정을 이해하기 편하게
요약식 다이제스트식으로 잘 정리해논 글이 있어 발췌해서 올려봅니다
(팔만사천경전 축약본이 아니라 - 불교사상전개의 축약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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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교학체계는 크게 연기론(緣起論)과 실상론(實相論) 두 가지 체계로 나눈다.
부처님의 팔만사천의 가르침 중에서 <법화경> 이전의 경전은 바로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를 연기론으로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 세계가 우리가 경험하고 숨 쉬고 머물고 있는 곳이다. 즉, 유위법(有爲法)의 현실세계이다.
이 현실세계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생멸한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끝없이 생주이멸하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행무상이요, 제법무아이며, 일체개고의 연기 법칙이 적용되는 유위세계라는 말이다.
그런데 실상론(實相論)에 이르면,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이 세계는 생의 윤회가 끊이지 않는 그런 세계이지만 이것은 허상이고,
이슬 같고 번개 같고 물거품 같고 꿈과 같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헛된 아상(我相)의 소견으로부터 벗어나 ‘참존재’의 세계인 실상을 논한다.
따라서 <법화경>에 오면 진리의 요체가 제법실상(諸法實相)으로 바뀐다.
즉, 실상론이 제법실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 제법실상이야말로 바로 진리의 궁극이요, 당체이며,
부처님 가르침의 골수라는 것이다.
이러한 제법실상을 등지고 인과율(因果律)로 엮여진 우리의 현실은
꿈과 같으며, 이슬과 같고, 환상에 불과한 가상(假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연기론과 실상론의 개요를 살펴보자.
(1) 연기론(緣起論)
연기론(緣起論)이란 우주와 인생의 여러 모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교의이다.
즉, 우주만유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불교에서는 연기론으로 설명한다.
만물이 생겨나고 발전하는 원인은 만물 그 자체 안에서 행해지는 인과법칙의 원리에 의거한다는 말이다.
이 인과의 이치를 인연(因緣)이라고 하는데,
인연에 의해 생기발전(生起發展)한다는 뜻에서 연기(緣起)라고 한다.
따라서 연기론이란, 현상계(現象界)에 대한 시간적 측면으로서
만유의 생성발전 법칙, 만물 자체의 원리에 관한 것,
인연생기(因緣生起)의 법칙에 의한 질서,
우주만유의 상호연관구조, 생성 소멸케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규명하는 것이다.
즉, 우주의 모든 현상은 신(神)과 같은 절대자의 뜻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주만유가 각기 서로 관계하고 서로 의지하고 서로 작용해서 생성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연기론은 불교의 중심적 가르침으로,
붓다께서 수행을 통해 증득한 내용도 바로 연기의 진리였다.
그런데 불교의 역사상 연기론은 그것을 바라보는 입장에 따라 그 이해하는 깊이나 내용이 달라져왔다.
그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자.
① 업감연기론(業感緣起론) - <구사론(俱舍論)>의 주된 교의임.
업감연기론이란 만유가 인연의 원리에 의해 서로 인(因:근본원인)과 연(緣:보조원인)이 되면서
나고 이루어지고 발전한다는 것으로,
그 연기의 주체가 바로 업(業)이라는 것이다.
만유는 모두가 자기가 짓는 업이라는 세력이 주체가 돼,
그것을 인으로 하고 다른 연을 만나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업(業)이란 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karma)인데, 하는 짓 - 작위(作爲)나 행동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벌이는 좋은 행위, 나쁜 행위 등
일체의 행위가 하나의 세력으로 잠재했다가 그 자체를 인으로 삼고
다른 연과 결합해 온갖 현상을 낳는다는 것이 업감연기론이다.
② 아뢰야식연기론(阿賴耶識緣起論) - <유식론(唯識論 - 唯識二十論)>의 주된 교의임.
아뢰야식연기론은 업감연기론에 뒤이어 이를 보충하기 위해 일어난 것이다.
즉, 업감연기론에선 만유가 생성하는 연기의 주체를 업(業)이라 하고,
그 업으로 인해 윤회를 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러한 업이 어느 곳에 저장됐다가 생명을 마친 후에도 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인가.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죽은 뒤에도 업력이 연속하기 위해서는 육식(六識)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찾아낸 것이 곧 제8식 아뢰야식이다.
따라서 업감연기론에선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 이렇게 6식밖에 없던 것이
제7 말나식(末那識)과 제8 아뢰야식을 첨가해 총 8식이 되고,
그 제8식 아뢰야식에 모든 업(業)이 업식(業識)으로 저장됐다가 어떤 계기로
다시 업식의 작용에 의해 천변만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③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 - <화엄경(華嚴經)>의 주된 교의임.
화엄학은 7세기 전후에 중국에서 대성한 불교학이다.
이 화엄학의 근본 골자가 바로 법계연기론이다.
우주적 존재들이 우주적 질서로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질서 체계를 법계(法界)라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는 사람을 비롯한 무수한 생명체와
물, 불, 땅, 공기 등 무수한 무생물들이 존재한다.
이런 무수한 존재들은 언뜻 보기에는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는 것이 같지만,
하나하나가 우주적 질서에 의해 체계를 이루고 있다.
그 우주적 질서체계로 조화를 이루는 것을 ‘법(法)’이라 하고, 그런 세계를 ‘법계(法界)’라고 한다.
그리고 법계연기란 ‘법계가 곧 연기한 세계’라는 미묘한 뜻을 나타내고 있으니
그 심오한 뜻의 일단은 네 가지 법계를 살피면 알 수 있다.
네 가지 법계는, 첫째가 사법계, 둘째가 이법계, 셋째가 이사무애법계, 넷째가 사사무애법계이다.
• 사법계(事法界)란,
분별이 있는 중생세계 또는 차별이 있는
현상세계를 말하는 것이니, 꽃과 나무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꽃은 꽃대로 쓸모가 있고 나무는 나무대로 쓸모가 있는 것이니
각각의 쓰임새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
• 이법계(理法界)란,
구별되는 개체 속에 일관되게 내재된 원리, 법칙, 보편적 진리와
같은 것을 드러낸 본체계(本體界)를 말한다.
이치의 세계, 진리의 세계, 평등의 세계, 본연의 자리, 진여의 자리 등 깨달음의 세계를 의미한다.
여러 꽃들이 다 다르지만 모두 한 뿌리에 나온 것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꽃이 없으면 열매도 없고, 씨앗이 없으면 나무가 생기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연결돼 있는 이치를 알면 서로 다른 현상도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란,
현상세계와 본체계(일심, 진여 자리)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걸림 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걸림 없이 서로 연결돼 있는 세계를 말한다.
이치에 걸림이 없어 모든 이치를 통달하는 것이다.
본체계와 현상계가 둘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모든 현상과 진리는 일체불이(一體不二)의 관계에 있다는 세계관이다.
•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란,
개체와 개체마저 상호 떨어질 수 없는 관계 속에서 통합됨을 뜻한다.
무한대 차원의 각 개체들이 한 공간을 공유하면서 서로 방해하지 않으면서 존재한다는 가르침을 말한다.
광대무변한 우주에는 무한대의 차원이 전개돼 있지만 상호간 서로 방해하지도 않고,
방해 받지도 않는다는 가르침이다.
그리하여 제법은 서로서로 용납해 받아들이고 하나가 돼 원융무애한
무진연기(無盡緣起)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화엄의 법계연기(法界緣起)이다.
즉, 하나가 곧 여럿이요, 여럿이 곧 하나이며, 하나 속에 온갖 것이 들어 있고,
온갖 것 속에 하나가 들어 있는 것이므로, 크고 작은 것이 서로 융통해서 장애되지 않고,
영겁과 찰나가 다르지 않으며, 유정과 무정이 어긋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이 곧 화엄의 법계연기인 것이다.
④ 진여연기론(眞如緣起론) -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주된 교의임.
아뢰야식연기론에서는 우주만유가 생성 발전하는 연기의 주체가 아뢰야식이라고 했다.
그와 같은 아뢰야식연기론은 생멸 변화하는 것이므로
결국 상대적이고 현상적인 고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주만유의 연기의 주체이고 제1원인이기 위해서는
첫째 생멸 변화하지 않고 상주 불변하는 것이어야 하고,
둘째 실재적인 것이어야 하며,
셋째 현상을 초월한 보편적인 본체(本體)여야 하는 것을 요구하게 됐다.
이러한 논리적인 요청에 의해 항상하고 실재적이며 보편ㆍ절대적인 연기의 주체로
진여(眞如)를 설정해서 설명하는 것이 진여연기론이다.
<대승기신론>에서는 그와 같은 진여란 단적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노여워하고 미워하는 범부들의 중생심(衆生心)이라고 지적한다.
즉, 우리 중생심에는 본바탕(體)으로서의 불변하는 본체인 진여의 측면과,
그 겉모습(相)과 활동(用)으로서의 인연에 따르는 현상인 생멸(生滅)의 측면이 있어
실체는 평등ㆍ불변하는 것이지만, 현상은 차별ㆍ변화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진여가 우주만유를 연기시키는 그 연(緣)을 번뇌 망상이라고 보는 것이 진여연기론의 입장이다.
모든 번뇌의 근본인 무명(無明)이 진여로 하여금 우주만유를 연기시키게 하는 연(緣)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잔잔한 물이 바람이라는 연을 만나 천차만별의 파란을 일으키고
변함이 없는 금이나 흙이 장인의 손길이라는 연을 만나 천태만상의 물건이 되듯이
진여라는 잔잔한 물이 무명이라는 바람을 만나
만유의 현상을 전개한다고 본다.
(2) 실상론(實相論)
실상론(實相論)이란 인생과 우주만물의 바탕이 무엇인가에 대한 교의이다.
본체계(本體界)에 대한 공간적 측면으로서 우주만유가 그것의 속성을 갖게 하는 힘
- 사물의 본성과 본체, 일체존재의 참 모습인 제법실상에 대한 체계를 규명함이다.
‘제법실상(諸法實相)’은 불교의 근본교의를 가리키는 용어의 하나로,
대승불교를 일관하는 근본사상이다.
‘제법(諸法)’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현상까지도, 그리고 그 하나하나가 전부 최고의 경지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
제법 하나하나가 다 있을 자리에 있고,
거기서 제 나름의 존재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따라서 실상론이란 제법실상을 생재(實在)하는 것인가,
거짓으로 있는 가유(假有)인가를 규명함이다.
실상이란 본래성품의 진실한 모양, 허망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체성,
진리의 참모양이라는 말인데, 「무상(無相)ㆍ공(空)」과 같은 개념선상에 있는 말이다.
그리고 실상론(實相論)이란 모든 존재의 본체,
모든 존재의 참다운 이치를 해명하려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우주만유가 시간적으로 생기하고 전개되고 발전하는 것은
신이나 인간 이상의 어떤 존재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제일 원인인 인(因)과 보조 원인인 연(緣)의 화합으로 말미암는 것인데,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는 갖가지 현상은 모두가 인연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들이지만,
그것들의 이면에서 보고 듣고 만질 수 없으면서
능히 수목에 잎이 돋아나게 하고, 꽃이 피어나게 하며,
계절이 변하게 하고, 아무 착오 없이 지구가 공전ㆍ자전을 하게 하며,
이 우주가 흐트러짐 없이 존재하게 하는 변함없고 평등한 이치인 존재의 참모습(實相)은
과연 공간적으로 실제로 있는 것인가
- 실재(實在)하는 것인가,가상의 개념인 가유(假有)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이럴 경우, 과연 무엇이 진짜 존재하는 진유(眞有)이냐 하는 것을 밝히는 것이 바로 실상론이다.
즉, 실상(實相)을 주로 해서 모든 것의 본체를 해명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이다.
연기론을 현상세계의 모든 존재에 대한 시간적 관찰로 존재의 생성과 전개를 밝히는 이론으로 이해할 경우,
실상론은 모든 존재의 본래 모습을 공간적으로 관찰하는 이론으로서 연기론에 대응한다.
그런데 근래의 불교학에서는 이런 구별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그 이유는 실상론이라 해도 그것은 연기의 이치를 전제하고 성립하므로
연기론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아서 연기론과 구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며,
실체론(實體論)으로 이해될 경우의 실상론은 연기ㆍ무아설에 어긋나고,
고정된 실체를 인정하는 것으로 오해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떻든 실상론에는 삼세실유설, 무상개공론. 유공중도론. 제법실상론 등의 이론이 있다.
① 삼세실유설(三世實有說) - <구사론(俱舍論)>의 주된 교의임.
우주만유를 전개시킨 힘 곧 본체(本體)와 본성(本性)에 대해 공간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실상론이다.
부파불교시대 소승불교에서는 우주만유의 본체는
시간적으로 과거ㆍ현재ㆍ미래의 삼세에 걸쳐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 했다.
이를 삼세실유(三世實有) 법체항유(法體恒有)라 한다.
상좌부에 속하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제법을 다섯으로 분류했다.
• 색법(色法) - 물질적인 것.
• 심법(心法, 心王法) - 마음이 사물을 인식하는 것.
• 심소유법(心所有法) - 마음이 바깥 경계를 인식할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마음작용.
• 불상응법(不相應法) - 마음과 상응하는 법들과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법들의 두 그룹으로 나눌 때,
전자의 그룹은 마음작용(심소법)으로 분류하고
후자의 그룹은 심불상응행법으로 분류한다.
심불상응법은 색(色, 물질)도 아니고 심(心王, 마음)도 아니고 또한 심소(心所, 마음작용)도 아니면서 실재(實在)하는 구체적 법(法)인 것들을 말한다.
• 무위법(無爲法) - 인연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생주이멸(生住異滅)하지 않는 것.
이렇게 오위(五位)로 나누고, 이를 다시 75법으로 나누어(구사론 설),
이 법의 실체가 삼세에 걸쳐 항상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이 삼세실유 법체항유설이다.
② 무상개공론(無相皆空論) - <중론(中論), 백론(百論), 십이문론(十二門論)>의 주된 교의임.
용수(龍樹, 나가르주나)의 중관학(中觀學)에 의해 설일체유부의 법체항유설을 부정하고 나온 설이 무상개공론이다.
이에 주된 논문이 용수의 <중관론>과 <십이문론> 그리고 용수의 제자 제바(提婆, 아리야데바)의 <백론>인데, 이를 삼론이라 한다.
심지어 이 세 논을 의지해 중국 수나라 때 길장(吉藏, 549~623)에 의해 삼론종(三論宗)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진공(眞空)의 이치는 삼론종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용수의 중관사상은 유식사상과 더불어 대승사상의 주류를 이룬 핵심사상이기도 하다.
외도들의 아법구유설(我法俱有說)이나 유부의 아공법유설(我空法有說)을 척파하고, 무소득공의 진공묘유를 설했다.
그리고 이제설(二諦說)을 내세워 유(有)를 속제로 보고 공(空)을 진제로 봤다.
특히 용수는 팔불중도설(八不中道說)을 내세워 종관사상을 더 널리 선양했다.
팔불(八不中道)란 중관론 첫머리에 나오는 구절로
“나는 것도 아니고, 또한 없어지는 것도 아니며, 항상한 것도 아니고, 또한 끊어지는 것도 아니며, 하나인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것도 아니며, 오는 것도 아니고 또한 가는 것도 아니니라(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去).”
이렇게 부정하는 불(不)자 여덟 개로 공의 이치를 천명하면서 진공모유의 이치를 설한 것이 중관사상이다.
③ 유공중도설(有空中道說) - <유식론(唯識論)>의 주된 교의임.
유공중도설은 유식학의 대가였던 세친(世親-天親:Vasubandhu)으로부터 나온 설이다.
천지만물이 비록 심식(心識)이 전변한 가상이기는 하나 엄연히 존재해 생명의 맥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하여 일체법을 공하다고만 주장하는 무상개공론의 주장은 자칫 공의 면만을 부각함으로써
가상(假相)의 현상(現象)에도 진상(眞相)인 실상이 내재해 있다는 것을 망각하기 쉽다.
그래서 일체법은 있는 것도 아니요 공한 것도 아니라고 보는
비유비공(非有非空)의 중도설을 내세우게 된 것이다.
이 유공중도설을 내세운 세친은 유식론에서 현상계의 제법을 세 가지 관점에서 보는
삼성설(三性說)을 내세웠다.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 그리고 원성실성의 세 가지이다.
•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이란 인간은 아집(我執)과 법집(法執) 등의 번뇌를 야기하며 생활하는 모습을 설명한 것이다.
즉, 중생은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모든 것을 치우치게 보고 집착한다.
사실은 없는 것인데 착각해서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범부의 망정(妄情)이 풀 섶에 떨어진 노끈을 뱀으로 착각하듯이 가상을 억측으로 두루 계교해서 실상인양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 의타기성(依他起性)은 모든 존재는 고유의 자성이 없이 다른 것을 의지해 존재하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제법이 상주불변하는 고정된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이 의타기성이 비록 실체는 없는 것이지만 변계소집성처럼 주관적 생각을 착각으로 일으키지는 않는다.
풀 섶에 떨어진 노끈 토막을 뱀으로 보지는 않고 노끈이 삼(麻)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유식론에서는 이 의타기성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8가지 비유로 설명했다.
꼭두각시(幻事), 아지랑이(陽炎), 꿈(夢事), 거울에 비친 물체의 모양(鏡像), 빛의 그림자(光影), 메아리(谷響), 물에 비친 달(水月), 그리고 변화(變化)로 비유해서 설명했다.
• 원성실성(圓成實性)은 변계(遍計)의 번뇌는 허구성이고,
의타(依他)의 인연이 집합해 성립된 삼라만상도 일시적 존재(假有)에 불과하며,
오직 진여성(眞如性)만이 영원한 존재이며, 진실 되고 또 만물의 체성(體性)을 설명한 것이라는 말이다.
원성실성은 중생의 망상분별을 떠난 참다운 성품자체를 말한다.
즉, 원만성취가 이루어진 무한 공덕을 갖춘 진여불성(眞如佛性)을 말한다.
원만히 이루어진 진실한 성품이라는 말로서 이는 의타기성에 의해 나타나는 모든 현상의 근본 본체인 진여를 두고 일컫는 말이다.
이 진여는 시간적으로 삼세에 다하고[수궁삼제(竪窮三際)] 공간적으로 시방에 두루한[횡변시방(橫徧十方)] 것이다.
마치 물이 기온에 따라 얼어 고체인 얼음이 되고 증발해 수증기가 되는 등 이슬, 안개, 서리, 비, 구름, 눈 등으로 모양은 달라지지만 물의 본성 수분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④ 제법실상론(諸法實相論) - <법화경(法華經)>의 주된 교의임.
제법실상이란 우주만상의 본질과 참다운 본질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법화경> ‘방편품’에서 말하기를,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이나 삼라만상인 물질을 법(法)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물질들의 각 개체들은 그들만의 고유성과 모양과 질과 맛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따라서 법화사상을 철학적으로 압축한 것이 바로 ‘제법실상(諸法實相)’이다.
즉, 모든 존재는 그 나름대로의 존재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
거대한 지구, 자연, 인간계와 종교계의 진리들이 나름의 질서를 구성하고 있음을 한 마디로 나타낸 말이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불필요한 그 어떠한 존재도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존재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제법실상’은 <법화경>의 중심적인 교설이자, 천태교학의 핵심사상이다.
그리하여 제법실상은 천태대사 지의(智顗, 538~597)가 창립한
중국 천태종의 세계관이자 현상론이기도 하다.
따라서 천태종은 실상론(實相論)의 극치라 하겠다.
현상계의 관찰을 통해 작용을 인지한 것이 연기론이라면
있는 그대로는 보려는 태도를 극대화한 사유가 실상론이 됩니다
따라서 가장 후기불교 사상에 속하는 선불교가
"있는 그대로의 발딛고선 지금 이순간"의통찰을 중시하는 이유이기도합니다
개념이나 내뇌망상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그대로를 보는것
.............여러법문들을 인용해서 축약한 발췌문으로부터 발췌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