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독자들이 출애굽기나 엑소더스 연관된 영상물을 보면
모세가 히브리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다고 여깁니다.
성경 기록에는 히브리 민족이란 말에 얕보는 뉘앙스가 있다고 보는지,
히브리 민족보다는 이스라엘 민족이란 단어를 더 선호합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지금의 이스라엘 국가를 세운 유태인이라 여깁니다.
‘이스라엘’이란 단어는 ‘엘(El)을 이겼다’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에 대한 얘기는 훗날 자세히 하기로 하고
지금은 히브리 민족에 대해 집중하기로 합니다.
우리의 고정관념 중 하나가,
모세가 히브리라는 단일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것으로 여기는데,
출애굽기 12장 38절을 보면 우리의 고정관념을 수정할만한 구절이 나옵니다.
엑소더스를 시도한 그들이 히브리 단일민족이 아닌 다민족 국가였다는 겁니다.
게다가 시나이 반도에서 내내 굶주림에 모세에게 짜증냈던 사실과는 다르게,
엑소더스한 그들이 양과 소 등 수많은 가축떼를 이끌고 탈출했다는 것입니다.
이전 얘기에서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모세는 국가를 이끌고 운영했다고!
교회 목사처럼 종교단체를 이끈 게 아니고,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을 데리고,
게다가 수많은 가축떼를 동반한 채로
40년동안 시나이 반도에서 몽고 같은 유목민족 국가를 운영한 겁니다.
모세가 시나이 반도에서 40년 동안 이끈 무리는
우리가 알던 히브리민족도 아니고 교주가 이끄는 종교단체도 아니며
원나라가 세워지기 전의 몽골인의 삶과 비슷했던 겁니다.
히브리가 곧 이스라엘 민족이고 그 민족이 현대의 유태인이다, 라는 고정관념,
그 고정관념을 깰 구절은 성경에도 나옵니다.
사무엘상 14장 21절을 보면 히브리와 이스라엘이
전혀 다른 의미라는 걸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4장은 이런 스토리입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단독으로 블레셋을 기습 공격하자
블레셋이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니까
멀리서 지켜보던 사울이 요나단의 뒤를 이어 블레셋을 공격하고
이때 블레셋을 도와주려했던 히브리는 블레셋을 배신하고
사울이 이끄는 이스라엘 편에 붙어서 블레셋을 공격하여
결국 이스라엘이 승리하는 얘기입니다.
히브리가 이스라엘 민족을 뜻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독자의 뒤통수를 때리는 스토리입니다.
1887년 ‘텔 엘아마르나’라는 농촌에서 380여 개의 점토판이 발견됐는데
아케나텐이라는 파라오가 이집트를 지배하던 당시의 외교문서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소위 아마르나 문서라고 불리는 이 점토판은 우리가 쐐기문자라고 알고 있는
아카드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성경 독자들이 아마르나 문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하비루’ 때문입니다.
아마르나 문서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의 도시국가 통치자들이
파라오에게 보내는 외교문서인데 수많은 하비루들이 등장합니다.
하비루 집단은 법률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나라 없는 사람들로 이루어졌으며
하비루 성인 남자들은 호전적인 경향을 갖고 있어서
현지 통치자들에게 용병으로 고용되었습니다.
아마르나 초기 문서를 보면 많은 도시국가 통치자들이 하비루 부대를 고용하여
작은 왕국을 지키고 때론 분쟁 지역을 둘러싼 반목을 해결하는데 이용했습니다.
이집트의 중왕국과 신왕국 시대의 이집트 문헌에는
‘아피루’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집트학자들은 아피루랑 하비루가 같은 말이라고 인정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비루는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일대에서 하층민을 일컫는 말입니다.
현대의 유태인을 일컫는 말이 절대 아니며
핏줄과 상관없이 사회의 하층민을 가리킵니다.
히브리는 하비루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히브리가 하비루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히브리란 민족의 존재가 헷갈리게 된 겁니다.
사무엘상 14장 21절은 민족의 개념으로 쓰인 게 분명한 ‘이스라엘’과
하층민의 의미가 확실한 ‘히브리’를 구분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때까지도 히브리는 민족의 개념으로 확립되지 않았던 겁니다.
히브리를 계급적 용어가 아닌 민족적인 개념으로 혼동하기 때문에,
모세가 히브리를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이야기가
유태인의 설화로 한정되는 착각이 벌어지는 겁니다.
모세는 민족적인 공동체 의식을 지닌 이스라엘 민족을 이끈 게 아니고,
가난한 하층민을 이끈 겁니다.
이 ‘히브리’랑 비슷한 느낌의 단어에 slave가 있습니다.
영어에서 노예를 뜻하는 slave는 중세 라틴어로 슬라브족을 뜻하는 sclavus에서 왔는데
그 이유는 10세기에 오토 1세를 비롯한 서유럽 정복자들에 의해
슬라브족이 중부 유럽에서 노예로 자주 팔렸기 때문입니다.
히브리는 하층민의 의미에서 민족의 의미로 바뀌었지만
slave는 슬라브 민족에서 노예로 의미가 변형된 거니까요.
방향성은 다르지만 비슷한 느낌의 단어라고 할 수 있죠.
오늘의 결론!
모세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그 유태인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한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