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학당 수다승철> KBS프로에서 도올 김용옥선생께서는 동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https://youtu.be/IgiArT4K9IA
요약) 최수운선생께서 수도(기도)를 하는데 하느님이 나타난 것이다.
몸이 춥고 떨리는 중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말씀이 있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리고 물으니
그 말씀이
"하나님이 내마음이 곧 네마음이다".... 이말을 처음에 들었다는 거야
하나님이 믿음의 대상으로 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밖에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다.<도올학당 수다승철>
동학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계기는 1860 경신庚申년 4월 5일 천상문답天上問答 사건이다. 이에 대해 《도원기서道源記書》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 정신이 혼미하고.. 말로 형용하기도 어려울 즈음에, 공중으로부터 완연한 소리가 있어..
공중을 향해 묻기를
“공중에서 들리는 소리는 누구입니까?”하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구물공(勿懼勿恐)하라. 세인(世人)이 위아상제(謂我上帝)어늘 여부지상제야(汝不知上帝耶)아.” 『동경대전』「포덕문」
‘두려워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예로부터 나를 하나님(상제님)이라 불러왔는데, 너는 구도자로서 어찌 상제(하나님)를 모르느냐.’
“너에게 무궁무진한 도를 줄 것이니 닦고 다듬어 글을 지어 사람들을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하여 천하에 밝게 빛나게 하리라.(及汝無窮無窮之道 修而煉之 制其文敎人 正其法布德則 令汝長生 昭然于天下矣<논학문>
“천지가 개벽한 이래 나 역시 공이 없었으므로 세상에 너를 내어 나의 이 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나니 의심하지 말고 또 의심하지 말라!(余亦無功故 生汝世間 敎人此法 勿疑勿疑)” <포덕문>
최수운선생에게는 직접 말씀을 내려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상제님)은 낯선 존재였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라(勿懼勿恐)”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주문(呪文)을 내려주시니 그게 바로 시천주(侍天主)이다.
하나님께서 또 일컬어 말씀하시기를
“너의 전후 길흉화복을 내가 반드시 간섭하게 될 것이다... 네가 이왕에 사람들을 가르치고 포덕을 하니, 나를 위하여 지극히 섬기면 너 역시 장생하게 되어 천하에 빛을 비추게 될 것이다...
너는 삼가서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을 가르치도록 하라.”는 말씀을 내렸다.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을 가르치라는 천명(天命)을 받은 최수운선생은 곧바로 포덕을 하지는 않았다.
최수운선생은 약 1년간 계속해서 수도하며 하나님께 받은 영부 그리는 법, 주문 수행법, 교리 등을 정립한 뒤에 포덕문을 지으면서 포덕(布德)을 펴기 시작했다. 이때 찾아온 이들이 도의 이름을 묻자 “천도天道”라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가르침을 “동학東學”이라고 밝혔다.
동학東學은 동방 조선에서 열린 천도(天道)를 따르고 실천한다는 의미이지 서학(西學)과 단순 대비한 것은 아니다.
최수운선생은 찾아온 이들에게 득도 과정과 하나님의 가르침, 주문 읽는 방법과 수도법을 가르쳐 주었다.
각지에서 도를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6개월 동안 약 3천여 명이 제자가 되었다. 이에 제자들에게 포덕을 명하여, 경주를 넘어 경상도 일대에 널리 동학이 전파되었다.
1863년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삼남 지역을, 계층에 불문하고 널리 퍼지자 유생(儒生)들은 동학을 혹세무민(惑世誣民)하고 그릇된 도로 세상을 어지럽힌다는 좌도난정(左道亂正)으로 몰았다.
1863년 11월 20일 조정은 정운구鄭雲龜를 선전관으로 임명하여 12월 10일 최수운선생과 가족, 제자 23명을 체포하였다. 죄명은 좌도난정지술(左道亂正之術) 잘못된 도를 가르쳐 통치에 혼란을 초래한 죄다.
참형 집행 이전에 최수운선생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등명수상무혐극(燈明水上無嫌隙) 주사고형력유여(柱似枯形力有餘)
비록 나를 죽이려고 없는 죄목을 만들어 씌우려 하지만 혐의를 잡을 틈새가 없다. 결국 너희들 손에 죽지만 나의 가르침은 마른 기둥 같으니 그 힘은 여전히 남아 있으리라는 것이다.
또한 “전 40은 내려니와 후 40은 뉘련가. 천하의 무극대도가 더디도다, 더디도다, 8년이 더디도다.”라고 마지막 말을 남겼다.
자신의 사후死後 8년이 지나 자신에게 천명(天命)을 내리신 하나님께서 직접 이땅에 강세하신다는 것이다.
최수운선생은 1864년 3월 10일 대구 남문 앞 관덕당觀德堂 뜰에서 참형되었다. 순도殉道 당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이날 참형을 집행하는 현장에서는 형졸이 칼로 수운의 목을 내리쳤지만 칼자국도 나지 않는 믿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이에 경상감사 서헌순을 비롯한 관헌들이 놀라움과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최수운선생은 청수(淸水)를 가져오게 하여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올린 후 형리에게 안심하고 베라고 말하고 나니 비로소 목이 베어졌다고 한다.
수운의 나이 41세. 3일간 효수한 뒤에 가족에 시신을 인도하여, 3월 17일 구미산 자락 대릿골 밭머리에 매장하였다.
시천주(侍天主, 천주님이 이땅에 오신다)를 선포하고 다시 개벽의 도래(到來)를 선언한 최수운선생은 이렇게 짧은 공생애를 마쳤다.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선생의 예고대로 1871년 신미辛未년에 동방 조선 땅으로 강세하신 하나님께서는 최수운이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서 진법을 들춰내어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했다고 그 한계를 이렇게 지적하셨다(道典 2편 30장)
14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15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16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17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道典 2:30)
마테오 리치 대성사의 큰 공덕
1 이마두(利瑪竇)는 세계에 많은 공덕을 끼친 사람이라. 현 해원시대에 신명계의 주벽(主壁)이 되나니 이를 아는 자는 마땅히 경홀치 말지어다.
2 그러나 그 공덕을 은미(隱微) 중에 끼쳤으므로 세계는 이를 알지 못하느니라.
3 서양 사람 이마두가 동양에 와서 천국을 건설하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내었으나 쉽게 모든 적폐(積弊)를 고쳐 이상을 실현하기 어려우므로 마침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4 다만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틔워 예로부터 각기 지경(地境)을 지켜 서로 넘나들지 못하던 신명들로 하여금 거침없이 넘나들게 하고
5 그가 죽은 뒤에는 동양의 문명신(文明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천국을 건설하려 하였나니
6 이로부터 지하신(地下神)이 천상에 올라가 모든 기묘한 법을 받아 내려 사람에게 ‘알음귀’를 열어 주어
7 세상의 모든 학술과 정교한 기계를 발명케 하여 천국의 모형을 본떴나니 이것이 바로 현대의 문명이라.
8 서양의 문명이기(文明利器)는 천상 문명을 본받은 것이니라.
하늘의 모든 신성과 부처와 보살이 하소연하므로
9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10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11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12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13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14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15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16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17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道典 2:30)
최수운선생은 퇴계 학통을 이은 아버지에게서 직접 글을 배웠기에 유교적 소양과 지식을 풍부하게 갖춘 인물이었다. 이런 모습들이 《동경대전》에서 보인다. <수덕문>에서 최수운선생은 동학이 유학의 계승자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인격적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직접 깨달을 수 있는 영적 체험이 없던 해월 최시형은 최수운선생의 시천주(侍天主) 신앙을 왜곡하였다.
최시형의 순도 이후 동학의 3대 교주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1861-1922)선생은 1906년 동학을 천도교로 개명하면서 인내천 사상으로 최수운선생의 본래 가르침을 왜곡한 것이다.
동학의 경전, 동경대전을 비롯한 어떤 경전에서도 인내천(人乃天)이란 말은 찾을 수 없다.
최수운선생은 하나님께서 오실 길을 예비했을 뿐 아니라 앞으로 닥칠 후천개벽의 상황을 극복하는 유일한 법방은 인간으로 오시는 하나님을 모시는 길(侍天主)이라고 전했다.
일반적으로 종교의 창시자는 별도로 경전을 직접 집필한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경전 집필은 후대의 몫이었다. 하지만 동학은 드물게도 창시자인 최수운선생이 직접 기록을 남겼다. 이것이 최수운선생의 공생애가 2년 반 정도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교세가 급속하게 확장된 이유일 것이다.
최수운선생은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용담유사龍潭遺(諭)詞』(수운가사水雲歌詞라고도 함)라는 기본 경전을 남겼다.
동학의 창시자 최수운선생의 예고대로 100여년 전, 이땅에 다녀가신 하나님께서 동학의 왜곡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씀하셨다.
道典 5편 233장 9~14절) “천(天)은 천이요 인(人)은 인이니 인내천(人乃天)이 아니니라. 손병희가 ‘아이를 때리는 것(打兒)’을 ‘하늘을 때리는 것(打天)’이라고 이르나 아이를 때리는 것은 아이를 때리는 것이요, 감히 하늘을 때린다고 할 수 없느니라. 하물며 사람의 생사와 화복이 하늘에 달려 있거늘 어찌 하늘을 때린다 하리오.
하늘은 억조창생의 임금(君)이요 억조창생의 아버지(父) 되나니 옛 성현들이 하늘을 모시는 도가 지극히 엄숙하고 지극히 공경스러워 통통속속(洞洞屬屬)하고 수운의 하늘을 모시는 가르침이 지극히 밝고 정성스러웠느니라. 큰 근본(大本)이 어지러워지면 만덕(萬德)이 모두 그르게 되느니라.”(道典 5편 233장)
여기서 우리는 최수운선생의 본래 동학과 지금의 천도교가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