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준어법 / 표준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 천주교 측의 용어를 주로 사용합니다. 필요에 따라 개신교 측 고유 용어를 사용하거나 병기합니다.
1. 들어가며
1947년 이후 출토된 사해사본은 구약 성경 연구에 있어 매우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자료이다. 특히 정경 문제와 관련하여 쿰란 사본의 증거들은 그 전에는 알지 못했던 매우 흥미로운 사실들을 제공한다.
사해사본을 통해 사람들은 성경에 대한 기존의 몇가지 의문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2차 성전시대의 유다이즘에 표준이 되는 성경 목록이 존재하였는가?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쿰란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정경은 현재의 유대교와 개신교, 천주교, 정교회가 각각 가지는 구약 목록과 어떤 것이 같고 어떤 것이 다른가...? 라는 부분은 예수와 사도시대의 성경을 보다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종교개혁자 깔뱅은 기존의 천주교의 성경 목록을 반대하고 유대교의 타나크를 지지하면서 예수와 사도들, 1세기 초대교회는 타나크 - 마소라 본문 전통의 팔레스타인 정경 전통에 속했고, 2세기 이후에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통해서 이질적인 70인 역의 알렉산드리아 정경 전통이 비로소 초대교회에 유입되었다고 이해하였다. 과연 사해사본은 이에 대해서 어떤 답변을 내놓고 있을까..?
2. 쿰란 사본 발견 이전의 상황
사해사본 발견 이전의 구약학계는 마소라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사마리아 오경과 70인 역의 전승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이론들이 등장하였다. 원형 본문의 존재 하에 다양한 계열의 본문 분화가 이루어졌다는 주장도 있고, 각각의 공동체는 다른 전통의 본문을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한 '알렉산드리아 정경' 전통이 있었고, 여기에서 유대교의 타나크와는 다른 초대교회의 성경이 나왔다는 가설도 있었다.
3. 사해 사본
쿰란에서 나온 구약 사본은 약 220종으로서, 마소라 본문 계열의 알레포 사본이나 레닌그라드 사본보다 시기적으로 약 1000여 년 정도 기록 연대가 앞선다. 그리고 성경학자들은 현재의 타나크 정경 목록이 확정되기 이전의 본문 발전 단계를 사해사본이 반영하고 있다고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쿰란 사본에서는 에스테르(에스더)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구약성경의 사본들이 발견된다. 이에 대해 의견의 대립이 있지만, 통설적 관점에서 에스테르서는 쿰란의 에쎄네파에서는 정경으로서 인정하지 않았다고 이해된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사본들은 특히 유대교의 마소라 본문과 많은 일치를 보이는데, 전체의 40%는 원 마소라 본문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마리아 오경과 일치를 보이는 원 사마리아 본문, 70인역의 대본으로 추정되는 이종 본문도 소수가 있다. 그리고 에쎄네파의 서기관들에 의해 만들어진 고유 전승이 있으며, 이 모든 전승과도 구별되는 중립 본문도 있다.
사해사본 안에서의 이러한 다양한 본문 전통의 혼재는, 쿰란 공동체 성경 전통의 다원성을 지지한다. 하지만 이 중에서 주류가 나중에 유대교의 표준 성경 목록이 되는 원 마소라 계열 본문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즉, 유대교의 내부적인 성경 확정 작업이 이 시기에 어느정도 마무리되어 가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4. 에쎄네파 성경의 구분
쿰란 사본 중에 4QMMT는 특히 에쎄네파의 성경 구분과 관련되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 사본에는 에쎄네 쿰란 공동체의 핵심 사상이 잘 드러나 있으며, 특히 에쎄네 정경 범위와 관련된 핵심적인 힌트를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당신에게 [썼는데] 당신이 모세의 책[과] [예]언자[의 책들], 그리고 다[윗과] 과거 시대[의 사건들]에 대한 이해를 가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에쎄네 쿰란 공동체의 성경 분류 방식을 알 수가 있다. 모세의 책들, 예언자의 책들, 그리고 시편과 역사서의 구분이다.
5. 에쎄네 쿰란 공동체 정경의 기준
쿰란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은 구약 성경이 당시에 완전히 닫히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자료로서 기능한다. 우리가 아는 정형화된 39권의 유대교-개신교 구약성경 목록을 사해사본은 지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종교적 그룹들이 각자의 권위 있는 책의 목록을 가졌다는 점을 사해사본은 지지한다. 에쎄네 쿰란 공동체도 마찬가지이다. 이들도 자신들 나름대로 권위를 인정한 책의 목록을 가졌는데, 이 책들 중에서는 현재의 유대교 타나크 목록에 포함되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들도 있다.
그렇다면 에쎄네 쿰란 공동체는 어떤 책들을 자신들 안에서 특별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정하였는가..? 그 기준은 무엇일까..? 현대의 위대한 성경학자들은 몇가지 원칙을 세워 이를 판단하였다. 첫째, 출토된 사본의 '수'이다. 둘째, '주해서'의 존재 여부이다. 셋째로는 '번역'본의 존재 기준이다. 넷째, 다른 비성서적 사본들에서 해당 문헌의 내용이 정경적 권위를 가지고서 인용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가지고서 우리는 에쎄네 쿰란 공동체의 정경 목록을 추정해 볼 수 있다.
5.1 사본의 수
쿰란에서 발견된 성경 문헌의 사본들은 다음과 같다.
창세기(19), 출애굽기/탈출기(17), 레위기(13), 민수기(7), 신명기(30),
여호수아(2), 판관기/사사기(3), 사무엘(4), 열왕기(3), 역대기(1)
이사야(21), 예레미야(6), 에제키엘/에스겔(6)
열두 소선지서(9)
시편(36), 욥기(4), 잠언(2), 룻기(4), 아가서(4), 전도서(2), 다니엘(8), 에즈라 브레켐야(1)
5.2 성서 주해들
5.2.1 성경 각권 주해서
=> 이사야 주해, 미가 주해, 나훔 주해, 하바쿡 주해, 스바니야 주해, 시편 주해, 말라키 외경, 주간 묵시록 주해
5.2.2. 주제적 성서 주해
=> 멜기세덱 미드라쉬 (창세, 레위, 신명, 시편, 이사야, 다니엘), 종말 미드라쉬(사무엘, 시편)
5.3 번역들 (히브리어 -> 그리스어 / 히브리어 -> 아람어)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열두 소선지서, 예레미야의 편지, 에녹 1서 / 레위기, 욥기
5.4 인용들
인용 여부를 살펴보는 비성서적 문헌 : 공동체 규칙서, 다마스커스 문헌, 찬양 시편, 전쟁 두루마리, 11QMelch
1)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인용 => 신명기, 민수기, 이사야, 에제키엘, 말라키, 아모스, 호세아, 레위기, 사무엘
2) 구절 인용 도입시 특정 표현 사용
=> 이사야, 민수기, 예레미야, 출애굽, 아모스, 다니엘, 시편, 즈카르야, 에제키엘, 레위기, 희년서, 잠언, 나훔
6. 쿰란 에쎄네 공동체 정경 목록 정리
앞서 살펴본 쿰란 사해사본을 통해, 우리는 에쎄네파의 정경이 대부분 현재 유대교 타나크 목록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부 문헌의 경우 2경전, 혹은 외경이나 더 나아가 위경에도 속하는 문헌들이 에쎄네파 안에서 정경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음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구약 정경화의 논의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증거를 제공한다.
현재까지의 통설적 사해사본 정경 견해에 따라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인 천주교/정교회의 2경전에 대해 정리를 해보자. 집회서의 경우에는 사해사본에서 출토되었지만, 위의 기준에 따르는 경우 일반적으로 에쎄네 쿰란 공동체 안에서는 권위있는 책으로 인정되지 못했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는 또다른 2경전 문헌인 토비트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에즈라 2서, 지혜서, 마카베오 1~4서, 다니엘서 그리스어 부분, 유딧서는 아예 사본이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쿰란 에쎄네파 공동체 안에서 정경으로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일반적으로 본다. 특히 마카베오서와 유딧서는 친 하스모니아 특성을 가져 에쎄네 쿰란 공동체 안에서 의도적으로 배척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예레미야의 편지의 경우에는 에세네파 안에서 정경성이 인정되었음을 성경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동의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에녹 1서와 희년서인데, 특히 에녹 1서는 출토된 사본도 많고 주해 대상이 되었으며, 비성서적 문헌들에 인기있게 인용되기까지 한 점에서 정경성이 인정된다. 희년서 사본들도 히브리어로 많이 출토되었고, 하느님의 계시로서 소개되며, 권위있는 책으로서 인용된다는 점에서 정경성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에녹 1서와 희년서는 후대 바리사이파 타나크의 목록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은 사해 사본이 통용되던 시기인 기원전 2세기~ 기원 후 1세기 중엽에 아직 유대교 안에서 최종적인 성경의 목록이 마감되지 않았고 정리하는 과정 중에 있었음을 증명한다.
7. 성경 형성의 역사?
사해사본 발견 이후 일부의 성서 학자에 의해 이른 바 '지역 본문' 이론이 등장하여 제법 널리 지지되었다. 팔레스타인, 사마리아, 디아스포라 등 각 지역 유다이즘의 중심지에서 각각의 전통을 반영한 본문들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행된 쿰란 사해사본의 연구는 오히려 이에 대해 비판적인 사실들을 제공한다. 현재까지 이루어진 사해사본의 연구는, 당시 구약 본문 전승의 다원성과 다양성의 혼재를 일반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8. 나오면서.
사해 사본을 통해 우리는 쿰란의 에쎄네 공동체가 유대교의 주류인 바리사이파와 약간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마소라 계열 본문 전통이 주류이기는 하였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전통의 전승들이 혼재되어 통용되었고, 사해 사본의 기록 연대인 기원전 2세기 ~ 기원 후 1세기 중반까지 아직 유대교 내적으로 보편적인 타나크 정경의 최종 마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추정할 수 있다.
특히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받아들여져 명시적으로 인용되었던 정경 문헌에 개신교에서 위경으로 분류되는 에녹 1서와 희년서가 포함되었으며, 예레미야의 편지(와 경전성을 스스로 주장하는 시편 151~155편)를 제외한다면 천주교와 정교회의 2경전 문헌들이 에쎄네 쿰란 공동체 안에서 일반적으로 정경적 권위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도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