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외, 밝히지 않고 먹은 돈, 모인 돈의 쓰임에 관여, 뒤로 받아 먹은 돈 등 말고,
통장에 입금(?)된 돈, 현금이나 물품으로 받는 물품들 그 중에서 현금을 좋아 했을 것 같은데..... 금품 빼고, 입금된 돈+ 직접 받은 현금만.... 년별, 월별로 얼마 받아 먹었었나요? 장부에 안 적어서 모르신다면, 전달 있을 것이고, 전달은 얼마 받았나요? 또 기억이란 것이 있을 것 아닙니까? 최고로는 얼마 정도 벌었습니까?
헌데 Pantheism 팬다이즘. 일명 범신론.
Pan ( all. 汎, 만물)+theism (theos-ism 신론)
요즘 이게 당기네요.
내가 곧 신이다. 왜냐? 데카르트가 던져준 그 유명한 논리철학 명제를 빌려보면, 내가 존재하지않아 신을 생각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데 신 역시도 존재 의미 아니 정확히는 신의 유무가 별무상관이란거. ㅋ
설령 내가 없고 신이 정말 존재하더라도 신은 의미가 없는 존재이죠.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고로 나를 기준으로 보면, 내가 존재해야만 신도 존재하고 유의미한것이므로 신의 창조자는 나이다. 전지전능 절대주권의 신의 창조자인 나는 그럼 신 위의 신인 존재란건가.
내가 실제 세상 안팎 어디든 존재하지않는데 신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하는 실존철학적 문제를 넌지시 던지고 갑니다 ㅎ
실제로 실존철학자 스피노자도 범신론자였다죠. 아마.
따지고보면 니체도 짜라투스트라에서 인간에게서 신의 대체로 초인적 신적 포텐셜을 기대하고 역설했듯 무신론자라지만 비슷한 의미로 인간 스스로도 신에 필적한 범신적 존재이길 바랬을겁니다.
저는 cogito ergo sum이 증명가능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주체인 저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면 결국 제로니모님의 생각처럼 제가 신일 수도, 혹은 이 세계의 유일한 생명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과학계에서 수 년 전에 나왔던 '이 세계는 홀로그램'이라는 주장이 흥미롭게 다가오더규요.
제가 기독교인으로 성경신학이나 기독신학에 관심을 갖다가 철학에 호기심을 가졌다고 생각하실진 모르나. 기실.. 그 이전 20대초부터 물리학을 공부하며 만물의 본질 archè 찾기에 의문이 시작되어 기웃거리게된거라 칸트의 비평서나 헤겔의 관념철학서 까진 넘 어려워 깊이 있게 보진 못했으나 희랍철학서부터 현대 실증주의, 실존철학까지 전반적으론 수박겉핥기는 했더랬죠 ㅋ 종교와 과학과 땔래야 땔수없는 불가분 관계. 마치 다항함수의 서로다른 근의 관계 같아서리 철학은 제겐 필요악이든 필요선으로든 주관심분야입니다.
코히토 에르고 숨의 명제에서 알수 있듯 데카르트 역시 철학자이기전 수학자이자 과학자로서 실체적 진실과 수리적으로 증명된 명제에대해서민 해답을 제시하려했지 사고와 논리연산으로 불가능한 영역에대한 부분에 있어선 그 어떠한 가설과 이론도 충분히 적용시칼 여지를 남겨둔듯 합니다.
그게 어찌보면 그가 고안한 방법적 회의론의 특징이기두하니깐요.
암튼 조선상고사 서문에서 단재선생이 밝혔듯 역사가 아와 비아의 투쟁이고 그 아와 비아의 유전인자가 다시 후대에 이어져 후대의 dna기록이 돌연변이가 생기지않는 이상 비슷한 유형으로 이어지고 투쟁의 결과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않게되어 결국은 역사는 반복된다라는게 어찌보면 생물학적 근거로도 설득력이 있죠. 인간 역사가 그렇듯 인간 사상적 사조 역시도 일정한 주기를 갖고 반복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도 어찌보면 교조적 신본적 헤브라이즘이나 헬레니즘 사상이 온 유럽을 천년 넘게 지배한 결과로 피폐해진 인성회복운동으로 나타난 인문주의적 르네상스와 정확히 댓구를 이루고있거든요.
물론 당연히 인간은 시행착오에서 조금씩 성장하기에 그 반복은 진일보된 경우가 퇴보된 사례보단 많겠지요.
근데 철학과 사회사상의 사조는 교의신학적 견해와는 희한하게도 위상차가 90도를 이루어 진행되고있음을 알게되면 깜짝 놀랄겁니다.
기하학적으로보자면 마치 사인과 코사인 그래프와 같은 위상차로 진행되고있는거죠. ㅋ
※아 90도를 이룬다는 의미는 동시대 기준으로 서로에게 독립되어있단거 보단 서로를 보완하거나 혹은 서로 배치된다는 개념을 뜻합니다.
제로니모님, 지청수님, 팔상인님....애매하신 것 같은데 뭔 말 하고 싶고, 하는 것인가요?
이해를 못하는데 잘났다 하고 싶고, 아는 것은 그 것이다?
그래서 지금 상태는 있는 것인데 뭐다? 희망을 생각하기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말을 하고... 그렇다고 그래도 그 레벨에서 더 높은 레벨로 존중을 받고 싶다?
관심이 없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서 기대를 차단하는 것과
관심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타인에게는 해도 된다는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걸 그가 보여주면서
그의 내력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뜯어먹을 살코기의 역할을 하게 되었지요
그런 그에게 "관심없다 핫산"을 반복하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주목했던 그의 반응은 "싫어함"이었습니다
특히 그 "싫어함" 때문에 응보의 기초를 연상시키는 반응을 드러냈지요
예를 들면 제게 그가 "자신한테 댓글달지 말라"는 반응을 보여주더군요
과거에 제가 그에게 제안했던게
"나한테 댓글달지 말라"는 거였으나 그는 댓글을 달겠다고 했었죠
*이게 참 어이가 없어서 인상적이었고 헬로가생님도 어이없어서 웃던 댓글이 기억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그것은 '왜' 가능할까요?
그는 근본적으로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대입하여 상대를 고려하는
'역지사지'의 능력이 현저하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게 결여된 이유는 이로 인한 낭패를 겪어보지 않았거나
그런 경험이 있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망각될만큼
유아적 자기애에 매몰된 시간을 오래보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어느쪽이든 이 추정이 맞다면 역지사지의 역량을 갖추지 않았을 때의
낭패를 다시 겪는 것 부터 시작하는게 유효하겠지요
망각된 쪽이라고 하더라도 낭패를 통해 재생시키면 전보단 나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낭패의 구체적인 성질은
이곳이 그에겐 절망에 가까운 불쾌의 연속만이 확고하게 지속될 것임을
그 스스로도 확신할 수 있기에 결국 이곳이 아무런 기대도 발생하지 않아
이곳과의 단절을 선택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그 낭패의 성질로서 유효할 것이지 싶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관심없다 핫산"으로요
그리고 이 대응은 좀 언급되지 않는 핵심적인 요소가 있는데..
신비적 사고관이 수호해내려는 일종의 핵심을
치명적으로 자극하며 신경쓰이게 만드는
무한순환적 감정각인의 이치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건 뭐랄까..
일종의 심리무협이라고 여기시면 대충
유의미하고도 유쾌하게 여기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걸 자세하게 풀기엔 배경적인 이야기를
제가 좀 많이 해야할테니 이야기를 그쪽으로
전개시키는 것으로는 도망치겠습니다
ps.
늘씬하고 성실하지만 외모는 아주 약간 아쉬운 베트남 아가씨한테
나름 조심스러운 대쉬를 받느라 요새 계속 불성실하게 글을 씁니다
이건 좀 양해바랍니다
당시 제가 의도적으로 계정을 희생한 건 아니고요
제게 악감정을 가진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도 심외무물씨이지 싶은데,
그 사람이 제게 '계정정지'를 행사할 수 있는 강제력이 있는 것처럼
돌아온 제게 나름의 표현을 했었습니다
불가계열의 권위의존적인 사람인 듯 하던데,
그 사람이 종철게에 처음 남긴 글에
제가 명료,정합,입증,인과의 논증기준으로 비판을 한 적 있습니다
그 후부터 제법 히스테리 같은 반응이 나오더군요
그건 아마도 그게 꽤나 상처가 되어서
제게 악감정을 가졌던 것이지 싶더군요
그 후로 제게 피해를 주기 위한 나름의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았나 싶은데..
그게 아마 태지에 대한 댓글이었을테고 기회를 잡았다 싶었지 싶네요
그래도 뭐 어디까지나 추론입니다
구태여 묻지도 않았고요
아무튼 같은 빌미를 줄 필요도 없는 것 같고,
뭐 이런 부분도 고려하는게 낫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