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종교/철학 게시판
 
작성일 : 20-05-06 11:22
내가 지금 여기서 개독을 까는 것도 다 하나님이 시킨 일임
 글쓴이 : 헬로가생
조회 : 1,141  

내가 태어난 걸 누가 계획했을까?
다 알파와 오메가시고 세상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임.
내가 태어나서 이렇게 개독을 깔 걸 하나님은 아셨을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다 아셨음.
그럼 내가 이렇게 태어나 개독을 까는 것도 다 하나님 뜻이고 계획임.
딴지 거는 놈이 있으면 그건 하나님의 계획에 딴지를 거는 것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피곤해 20-05-06 12:17
 
복권 당첨이나 계획할 것이지...
     
태지1 20-05-06 20:04
 
10% 외, 밝히지 않고 먹은 돈, 모인 돈의 쓰임에 관여, 뒤로 받아 먹은 돈 등 말고,
통장에 입금(?)된 돈, 현금이나 물품으로 받는 물품들 그 중에서 현금을 좋아 했을 것 같은데..... 금품 빼고, 입금된 돈+ 직접 받은 현금만.... 년별, 월별로 얼마 받아 먹었었나요? 장부에 안 적어서 모르신다면, 전달 있을 것이고, 전달은 얼마 받았나요? 또 기억이란 것이 있을 것 아닙니까? 최고로는 얼마 정도 벌었습니까?
          
팔상인 20-05-07 12:10
 
관심없다 핫산
풀어헤치기 20-05-07 10:58
 
동의합니다.

저지저능하다는 그 냥반이....
이 모든 현상을
허술하게 만들었을 리가 없다 생각합니다.
제로니모 20-05-08 11:52
 
모든건 태초에 전지자 신에의해 攝理된 거므로
(물론 이건 개신교 주류정통이라는 장로교교리지만)

무튼 만유 위와 아래 모든 건 신의 계획대로 움직일겁니다. ㅎ

헌데 Pantheism 팬다이즘. 일명 범신론.
Pan ( all. 汎, 만물)+theism (theos-ism 신론)
요즘 이게 당기네요.

내가 곧 신이다. 왜냐? 데카르트가 던져준 그 유명한 논리철학 명제를 빌려보면, 내가 존재하지않아 신을 생각하지도 인식하지도 못하는데 신 역시도 존재 의미 아니 정확히는 신의 유무가 별무상관이란거. ㅋ
설령 내가 없고 신이 정말 존재하더라도 신은 의미가 없는 존재이죠.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고로 나를 기준으로 보면, 내가 존재해야만 신도 존재하고 유의미한것이므로 신의 창조자는 나이다. 전지전능 절대주권의 신의 창조자인 나는 그럼 신 위의 신인 존재란건가.

내가 실제 세상 안팎 어디든 존재하지않는데 신이 나와 무슨 상관일까하는 실존철학적 문제를 넌지시 던지고 갑니다 ㅎ

실제로 실존철학자 스피노자도 범신론자였다죠. 아마.
따지고보면 니체도 짜라투스트라에서 인간에게서 신의 대체로 초인적 신적 포텐셜을 기대하고 역설했듯 무신론자라지만 비슷한 의미로 인간 스스로도 신에 필적한 범신적 존재이길 바랬을겁니다.
     
지청수 20-05-08 15:45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셨군요.

저는 cogito ergo sum이 증명가능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주체인 저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면 결국 제로니모님의 생각처럼 제가 신일 수도, 혹은 이 세계의 유일한 생명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과학계에서 수 년 전에 나왔던 '이 세계는 홀로그램'이라는 주장이 흥미롭게 다가오더규요.
          
제로니모 20-05-09 22:52
 
아.. 청수님. 생각난 김에 청수님께 의견을 물어보고픈게.. 

기독교 관점에서 신구교 교리가 대립되는 갭이 크고 쟁점 교리에선 대부분 극단적으로 갈리죠.
이를테면, 종말론, 구원론에서 구원형식에대한 문제라든지.. 그럼에도 신구교가 그나마 하나의 목소릴 내는건 인간론에서 인간의 본성에대한 부분이죠.

동양철학적 용어로 보면 결국 순자의 성악설로 규정될수 있는데,  성 어거스틴이 인간 외부의 우연한 문제에서 찾으려했던 죄성을 인간 내부로 인간 자아 중심적 문제로 바꿨고 그 교리가 종교개혁이후 까지 그대로 이어져왔거든요. 

특히, 개신교의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칼빈주의 교단들의 표준교리서인 기독교강요에서도 결국 인간의 본성은 '전적 타락'(total depravity)로 규정하고 이는 '완악한 본성의 발로'로 생각하게끔하죠. 

근데 갠적으론 인간론에서 인간본성에대한 이런 프로토콜은 근본적 실책으로 생각됩니다. 
인간을 완악한 죄성때문에 전적 타락할 수 밖엔 없었다는 그 전제 선언으로 인해 개신교리는 깡그리 산으로 갔다고 볼수 밖엔 없는데.
이건 칼빈만 알겠지만 성경을 정경으로 해석하고 교리의 핵심인 '구속사적 관점'으로 포교하기위해서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고도 생각됩니다. 

여튼, 갠적으론 인간본성은 선, 악 등 어느 하나로 규정짓지못한다고 봅니다.  그 궁극적 근거는 성경 자체에 설명됐듯 인간을 신의 닮은꼴로 만들었단 것에서 힌트를 얻을수 있거든요.

그게 비단 외형뿐만이 아닌 내면의 형질도 닮았단걸 유추해볼 수 있는데. 인간본성이 악한것으로 출발했다면 신 역시도 악의 신이라는 논리가 성립되죠. 

그러나 신구약 통틀어 야훼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으로 통칭됩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신의 본성이 사랑, 긍휼, 자비의 선의의 신으로만 규정하는거 역시 성급하다고봅니다. 
때론 분노와 파괴, 징벌, 심판의 공포의 하나님으로도 나타나거든요. 

고로 인간 역시 어느 하나의 성격으로 단정 지을순 없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러니 칼빈주의는 애초 인성에대해 심각한 선입견으로 단정짓는 오류를 범했다고 봐요. 

그런 측면에서 지청수님이 생각하는 기독교적 인간본성에대한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팔상인 20-05-08 21:14
 
음. 두 분께서 서양철학 중 특히 근대철학 이후부터
취미로 관심을 가져보시는게 어떨까 합니다

아마도 그 과정중에 발견되는 것들이 적지않은
'흥미'로 연결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제로니모 20-05-09 09:42
 
제가 기독교인으로 성경신학이나 기독신학에 관심을 갖다가 철학에 호기심을 가졌다고 생각하실진 모르나. 기실.. 그 이전 20대초부터 물리학을 공부하며 만물의 본질 archè 찾기에 의문이 시작되어 기웃거리게된거라 칸트의 비평서나 헤겔의 관념철학서 까진 넘 어려워 깊이 있게 보진 못했으나 희랍철학서부터 현대 실증주의, 실존철학까지 전반적으론 수박겉핥기는 했더랬죠 ㅋ  종교와 과학과 땔래야 땔수없는 불가분 관계. 마치 다항함수의 서로다른 근의 관계 같아서리 철학은 제겐 필요악이든 필요선으로든 주관심분야입니다.
               
팔상인 20-05-09 15:41
 
아~ 넵
          
지청수 20-05-09 20:07
 
저 역시 제로니모님과 마찬가지로 대학생 때부터  철학에 관심이 많아서 교양과목으로 철학의 이해, 미학의 이해를 수강하기도 했고, 철학자들의 이론을 쉽게 풀어쓴 책들을 찾아읽기도 했습니다.

(양장본 소피의 세계를 구매하여 완독을 한 적도 있습니다만, 사촌동생이 철학공부한다는 명목으로 빌려간 이후 아직까지 반납을 안하고 있습니다. 몇 년 후에 물어보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함. 그래서 저도 그 동생에게 빌린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꿀꺽했죠.ㅋㅋ)

데카르트 이후 흄과 칸트의 철학도 흥미진진했지만, 이 셋은 뭐랄까... 선대 철학자들의 주장에 대한 논파나 추가설명이 아닌 각기 다른 관점에서 인식론을 전개하였기 때문에 각각의 철학자들의 주장은 철학자 개개인의 철학체계 안에서 종결되더군요.

예를 들어 칸트의 물자체는 데카르트에 의하면 증명불가능한 존재로 남겨질 수 밖에 없지만, 칸트는 이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지 않고 합리론과 경험론을 통합시켜버렸죠.

흄은 데카르트가 강조한 이성을 정념을 정당화하는 매개체로 격하시켰지만, 흄 역시 데카르트의 제1명제를 반박하진 않고 경험론을 전개했지요. 데카르트의 이성을 반박한다기보다는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는 게 옳겠지요?

(이후에도 여러 철학사조가 나왔지만, 그 중에서 실존주의에 푹 빠져지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 중에서도 리오타르나 푸코의 철학도 흥미롭게 봤었고...)

철학은 흔히 세상을 이해하고, 존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철학사조나 철학자들의 공통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 이 세상보다 존재에 대한 궁금증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답을 찾기는 커녕 점점 더 많은 질문들만 쌓여가는 느낌이 듭니다. 굳이 정답을 골라야 한다면 니체의 '아모~르파티~'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나오는 '카르페디엠'이 인생의 답인 것 같습니다.
               
제로니모 20-05-09 22:37
 
역시 논리철학과 관념론에 관심이 많으셨군요.

코히토 에르고 숨의 명제에서 알수 있듯 데카르트 역시 철학자이기전 수학자이자 과학자로서 실체적 진실과 수리적으로 증명된 명제에대해서민 해답을 제시하려했지 사고와 논리연산으로 불가능한 영역에대한 부분에 있어선 그 어떠한 가설과 이론도 충분히 적용시칼 여지를 남겨둔듯 합니다.

그게 어찌보면 그가 고안한 방법적 회의론의 특징이기두하니깐요.

암튼 조선상고사 서문에서 단재선생이 밝혔듯 역사가 아와 비아의 투쟁이고 그 아와 비아의 유전인자가 다시 후대에 이어져 후대의 dna기록이 돌연변이가 생기지않는 이상 비슷한 유형으로 이어지고 투쟁의 결과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않게되어 결국은 역사는 반복된다라는게 어찌보면 생물학적 근거로도 설득력이 있죠. 인간 역사가 그렇듯 인간 사상적 사조 역시도 일정한 주기를 갖고 반복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도 어찌보면 교조적 신본적 헤브라이즘이나 헬레니즘 사상이 온 유럽을 천년 넘게 지배한 결과로 피폐해진 인성회복운동으로 나타난 인문주의적 르네상스와 정확히 댓구를 이루고있거든요.

물론 당연히 인간은 시행착오에서 조금씩 성장하기에 그 반복은 진일보된 경우가 퇴보된 사례보단 많겠지요.

근데 철학과 사회사상의 사조는 교의신학적 견해와는 희한하게도 위상차가 90도를 이루어 진행되고있음을 알게되면 깜짝 놀랄겁니다.

기하학적으로보자면 마치 사인과 코사인 그래프와 같은 위상차로 진행되고있는거죠. ㅋ

※아 90도를 이룬다는 의미는 동시대 기준으로 서로에게 독립되어있단거 보단 서로를 보완하거나 혹은 서로 배치된다는 개념을 뜻합니다.
태지1 20-05-09 15:49
 
제로니모님, 지청수님, 팔상인님....애매하신 것 같은데 뭔 말 하고 싶고, 하는 것인가요?
이해를 못하는데 잘났다 하고 싶고, 아는 것은 그 것이다?
그래서 지금 상태는 있는 것인데 뭐다? 희망을 생각하기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말을 하고... 그렇다고 그래도 그 레벨에서 더 높은 레벨로 존중을 받고 싶다?

사람들에게 계속 할 꺼다...
     
팔상인 20-05-09 16:28
 
관심없다 핫산
          
제로니모 20-05-09 16:49
 
핫산 재밌네요 ㅎ

무하마드 핫산인가요? ㅋ
               
팔상인 20-05-09 17:05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똑바로 서라 핫산"을 모티브 삼아
태지는 '핫산'이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외노자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그의 외노자적 행태를 풍자하려는 의도로 사용합니다

상식적인 대응이 통하질 않으니,
그에게 적절한 응보적인 대응은
현재까진 이것만 반복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평가합니다
그래서 그에겐 오로지 이것만 반복할 생각입니다
                    
제로니모 20-05-09 22:45
 
네 밑에 어떤 글에서 같은 설명을 본듯 합니다. ㅎ

근데 저는 그 대꾸조차 구차니즘이고 또 댓글 하나 다는 자체로 이 인간에겐 왠지 지는 느낌이라. 그냥 무시주의로 냅두게 되네요.

그렇게 하니 결국 지풀에 한두번 달고 사라지는거 같더라구요.

어그로대처법 상중하책 중 상책이 뭘까 생각해보면 이만한게 없더라구요. ㅋㅋ
                         
팔상인 20-05-10 01:27
 
구차니즘..

이걸 좀 비유를 하자면,
검은 비닐봉투 안에 먹다 남은 닭튀김을 밀봉해서
버리는 것과 비유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먹다 남은 닭 튀김에 살이 남아 있다면
그 살이 부패하면서
구더기들의 먹이가 될 것이지만,

남긴 살이 없다면 구더기의 먹이가 될 게 없어서
구더기의 생존 자체가 성립되지 않겠지요

관심이 없다는 표현은 살이 없다는 것이고,
아예 무시한다면 살이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지요

아예 무시를 당해서 스스로 남은 살이 없다는
판단을 해낼 수 있다면 상식적인 사람일 겁니다

그런데 무시를 당해도 스스로 남은 살이 있을 수도 있다고 기대하며
거기에 매몰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전 그게 태지라고 생각하며,
그 수위에 맞춰서 응보적으로 대응하는게 실효가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그럼 실제로 해봐야겠지요
적어도 종철게 내에서는 아무도 해본 적 없는
입증의 시도로서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 10년 정도 기간을 잡아서 뭔가 작은 변화라도 있고
그것이 개선에 가깝다면 무의미한 시도는 아닐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조차 의미가 없다면 그때가서 제가 반성하겠지만,
적어도 그런 경험조차 없으면서 아는 척을 할 생각은 안생깁니다
                         
제로니모 20-05-10 03:53
 
그렇군요.

관심이 없다는건 살이 없는 무요. 아예 무시해 상대를 살이 있을수 있다고 희망고문하는거는 공으로 불교적 관점으로 바꿔도 될런진 모르겠습니다만은 ㅎ

암튼 제가 의문이 드는건 관심없다란 표현과 무시한다는 표현 혹은 표시를 어떻게 구분해서 상대에게 전달해 나타낼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상대가 나의 글에 댓글을 달아도 저처럼 아무런 대꾸를 하지않는 즉 대댓글을 전혀 달지않는 것이 상대에겐 관심없다로 받아들일지 아님 무시하는걸로 느낄지 그게 의문인거구요.

그렇다고 난 너의 댓글에 관심없다란 말이나 핫산 등의 한 줄 대댓글을 남기는것이 상대가 관심없다로 받아들일지 아님 무시하는걸로 느낄지 그건 결국 상대 태지의 맘에 달린 문제가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ㅋ

물론 아무 댓글을 안남기는게 본인이 착각해서 조금은 자신에게 관심이 있거나 살이 있다고 생각할 여지는 있다고봐요.

근데 같은 이치로 핫산, 꺼져, 관심없어.등으로 의사표현을 하는것 역시 자신의 어그로에 반응한다. 혹은 낚시에 걸린거라 착각해 살이 있다고 생각할수 있지않을지요? ㅎ

암튼 이 문젠 제가 조금 다르게 생각이 들긴합니다.
                         
팔상인 20-05-11 01:54
 
관심이 없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서 기대를 차단하는 것과
관심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서
타인에게는 해도 된다는 가능성을 허용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이걸 그가 보여주면서
그의 내력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뜯어먹을 살코기의 역할을 하게 되었지요

그런 그에게 "관심없다 핫산"을 반복하면서
제가 개인적으로 주목했던 그의 반응은 "싫어함"이었습니다
특히 그 "싫어함" 때문에 응보의 기초를 연상시키는 반응을 드러냈지요

예를 들면 제게 그가 "자신한테 댓글달지 말라"는 반응을 보여주더군요
과거에 제가 그에게 제안했던게
"나한테 댓글달지 말라"는 거였으나 그는 댓글을 달겠다고 했었죠
*이게 참 어이가 없어서 인상적이었고 헬로가생님도 어이없어서 웃던 댓글이 기억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리고 그것은 '왜' 가능할까요?

그는 근본적으로 타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대입하여 상대를 고려하는
'역지사지'의 능력이 현저하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게 결여된 이유는 이로 인한 낭패를 겪어보지 않았거나
그런 경험이 있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망각될만큼
유아적 자기애에 매몰된 시간을 오래보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어느쪽이든 이 추정이 맞다면 역지사지의 역량을 갖추지 않았을 때의
낭패를 다시 겪는 것 부터 시작하는게 유효하겠지요
망각된 쪽이라고 하더라도 낭패를 통해 재생시키면 전보단 나을 겁니다

그렇다면 그 낭패의 구체적인 성질은
이곳이 그에겐 절망에 가까운 불쾌의 연속만이 확고하게 지속될 것임을
그 스스로도 확신할 수 있기에 결국 이곳이 아무런 기대도 발생하지 않아
이곳과의 단절을 선택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그 낭패의 성질로서 유효할 것이지 싶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관심없다 핫산"으로요

그리고 이 대응은 좀 언급되지 않는 핵심적인 요소가 있는데..
신비적 사고관이 수호해내려는 일종의 핵심을
치명적으로 자극하며 신경쓰이게 만드는
무한순환적 감정각인의 이치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건 뭐랄까..
일종의 심리무협이라고 여기시면 대충
유의미하고도 유쾌하게 여기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이걸 자세하게 풀기엔 배경적인 이야기를
제가 좀 많이 해야할테니 이야기를 그쪽으로
전개시키는 것으로는 도망치겠습니다

ps.
늘씬하고 성실하지만 외모는 아주 약간 아쉬운 베트남 아가씨한테
나름 조심스러운 대쉬를 받느라 요새 계속 불성실하게 글을 씁니다
이건 좀 양해바랍니다
                         
제로니모 20-05-11 10:10
 
발상인// 네 태지에대한 분석력이 대단하시네요. ㅎ

엇.. 뷔에트남 처자라닝 ㅎ
좋은 시간되시길! ㅋ
제로니모 20-05-10 03:59
 
태지. 땜에 태지학이 탄생할듯 ㅋㅋ
     
팔상인 20-05-10 14:13
 
보통 비상적인 사람들에게는 원천적인 공통점이 있어보입니다

사람이 누구나 자기애를 갖는 건 당연하지만,
보편적인 자기애나 성숙한 자기애가 아니라
"유아적 자기애"를 갖는다는 점이죠

사실 누구나 어렸을 때 유아적 자기애를 갖고 살다가
세상을 통해 응보적 대가를 치루면서 조금씩 성숙하기 마련인데..
희안하게 그게 너무 안보이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이 게시판에서는 그가 가장 으뜸이지 싶네요
특히 여기저기서 똘짓(?)을 하다보니
그걸로 타인들한테 나름 인정(?)받는다고
여기는 것이지 싶고 이를 자기애의 충족(즉 위안)으로
여기는데 익숙해 보입니다

그러니 그게 아님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것이
효과가 있을 듯 합니다
일종의 감정각인을 새겨주려는 것인데..
기대할 거라곤 제게서 "관심없다 핫산"이란 말만
얻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순수하고 지속적으로 반복시키는 것이 효과가 있으리라 봅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그에겐 어떤 판단보다
감정이 더 강력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의도를 드러내도 별 문제가 없지 싶네요
          
제로니모 20-05-10 16:17
 
아마 태지가 이 종철게 출현 즈음엔 제가 조금 일찍 접했는듯 한데.

이 인간에대한 시각이 애초부터 저랑 조금 다른 측면이 있는거 같긴해요.

팔상인께선 이 인간을 그래도 가르치거나 타이르거나 등 아직도 개선될 여지나 미련을 갖구 대하시는듯 합니다.

제가 오래 팔상인님의 글을 보고 판단하건되. 팔상인님은 점잖으시고 모든 사안에대해 지극히 이성적으로 대처하시는 성격상으로 미뤄볼 땐 아마 충분히 예측된 자세라 생각됩니다.

근데 전 인격과 참을성이 부족해서리.. 아닌다 싶은 인간은 그냥 지금처럼 생까거나 아님 죽을때까지 무는 스탈입니다. ㅎ
보통은 생까는게 대부분이고 죽을때까지 매달리는 경운 거의 없죠.ㅋ
제 인생에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겠지요.

그래서 이런 부류는 그냥 무시하게되더군요.
               
팔상인 20-05-10 21:30
 
음..
예전에 제가 그를 비난하다가
누군가의 신고로 정지를 먹었지요
그러니 같은 대응을 반복하는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고..

미련이라기 보단
제가 예전에 이런 글을 썼었지요
http://www.gasengi.com/main/board.php?bo_table=religion&wr_id=37248&sca=&sfl=wr_name%2C1&stx=%EB%B0%9C%EC%83%81%EC%9D%B8&sop=and

이 글에 대한 작업의 연장선으로 보시는게
제 의도와 연결고리를 가질 겁니다
                    
제로니모 20-05-11 03:48
 
훌륭한 글입니다.

맹신자들의 이성적 사유의 방법론으로 심리적 설계를 제시하셨군요.

그럴려면 오랜시간 상대에게 투자를 하거나 아님 본문서 말씀하신대로 감정적 대처법으로 갈수 밖엔 없다는거군요.

그래서 계정을 희생하신거군요 ㅎ
나뿐 떼치!
                         
팔상인 20-05-12 01:48
 
당시 제가 의도적으로 계정을 희생한 건 아니고요
제게 악감정을 가진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아마도 심외무물씨이지 싶은데,
그 사람이 제게 '계정정지'를 행사할 수 있는 강제력이 있는 것처럼
돌아온 제게 나름의 표현을 했었습니다

불가계열의 권위의존적인 사람인 듯 하던데,
그 사람이 종철게에 처음 남긴 글에
제가 명료,정합,입증,인과의 논증기준으로 비판을 한 적 있습니다

그 후부터 제법 히스테리 같은 반응이 나오더군요
그건 아마도 그게 꽤나 상처가 되어서
제게 악감정을 가졌던 것이지 싶더군요
그 후로 제게 피해를 주기 위한 나름의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았나 싶은데..
그게 아마 태지에 대한 댓글이었을테고 기회를 잡았다 싶었지 싶네요
그래도 뭐 어디까지나 추론입니다

구태여 묻지도 않았고요
아무튼 같은 빌미를 줄 필요도 없는 것 같고,
뭐 이런 부분도 고려하는게 낫지 싶습니다
 
 
Total 4,898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종교/철학 게시판 규정 가생이 04-29 44639
4873 마르키온파 (2) 하이시윤 01-28 1080
4872 별 시덥지않은걸로 싸우네 (11) 하이시윤 01-28 868
4871 창세기에는 기록된 창조설화는 2가지 VㅏJㅏZㅣ 01-28 1231
4870 구약을 잘못 인용한 예수 VㅏJㅏZㅣ 01-25 741
4869 창세기 1장의 모순 (33) VㅏJㅏZㅣ 01-22 1125
4868 불교 전문가님들 고견 부탁드립니다. (12) 죤쟐러 01-17 937
4867 넘 수준이 낮아서 나갈란다. (21) 기억의책장 01-15 1063
4866 그래서 예수는 왜 족보가 두 개냐? (4) 마론볼 01-14 853
4865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시고 (5) 기억의책장 01-12 994
4864 유태인이 이집트를 탈출했을때 (5) 기억의책장 01-08 919
4863 역시 수준이..하하 (6) 기억의책장 01-08 956
4862 유대인 과학자 구원 간증 므드셀라 01-08 585
4861 구원은 쉽게 받습니다. (24) 므드셀라 01-05 1040
4860 무지한 사람들 현생에도 안통한다 (12) 기억의책장 01-05 647
4859 "예수님 고난 성경구절에 큰 오류 있다" (11) VㅏJㅏZㅣ 01-04 925
4858 예수의 부정. (8) 개생이 01-03 664
4857 명작 부활 (3) 기억의책장 12-26 1087
4856 예수의 역사적 존재 (10) 기억의책장 12-21 821
4855 성경은 조작일까.. (6) 기억의책장 12-21 1011
4854 우주의 탄생, 창세기 (18) 기억의책장 12-12 906
4853 왜 세상은 지옥일까. 라는 것에 대한 고찰 (12) 기억의책장 11-15 1514
4852 [종철게 가이드] 종철게정신병원 이용안내 (1) 팔상인 11-14 588
4851 아래 윤회에 대한 이야기 (1) 뜨내기 11-13 602
4850 나도 법기가 될 수 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있다! (1) 태지2 11-13 665
4849 개뻥같은 윤회론.,... (7) 맥아더장군 09-15 1708
 1  2  3  4  5  6  7  8  9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