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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4-12 22:38
구약은 예수를 예언하였나? (2)
 글쓴이 : 지청수
조회 : 1,159  

1. 창세기 3장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창세기 3장 1절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 창세기 3:14~15


기독교에서는 '뱀=용=사탄'이라고 하며, 15절의 여자의 후손이 예수라고 합니다. '너(뱀)는 그(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을 사탄이 예수에게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선사하는 것을 예언하는 것이라고 하며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므로써 사탄의 노예(죄에 빠진 모든 인간들)들에게 자유를 주어 사탄에게서 세상 권세를 빼앗을 것을 예언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1장부터 잘 보면 뱀=사탄이란 주장은 어거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뱀은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동물로 나옵니다. 그냥 뱀이란 동물에 사탄이 빙의하거나 사탄이 뱀의 모양으로 하와에게 말을 건 게 아니라, 그냥 뱀이 그 자체로 들짐승 중에서 가장 간교하다고 나옵니다. 두번째는 저주의 대상입니다. 저주는 사탄이 아닌 뱀에게 내려집니다. 그 저주는 14절에 쓰여있듯이 배로 다니고 흙을 먹을 거라고 말하죠. 그리고 이어서 뱀에게 하는 말이 15절, 바로 윗 문단의 그 구절입니다.


15절의 저주 역시 14절과 마찬가지로 뱀 그 자체에게 내려진 것이며, 역사를 통틀어 사람이 뱀의 머리를 밟고, 뱀이 사람의 뒷꿈치를 무는 사건들은 많이 일어났습니다. 밑의 기사들을 보십시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3&aid=0009248169
WHO, "해마다 10만명이 뱀에 물려 사망…보건위기"
 기사입력 2019.05.23. 오후 9:30


https://www.news1.kr/articles/?3421693
지난 8일에는 오후 2시6분쯤 속초시 설악산에서 산행 중이던 김모씨(55)가 뱀에게 왼쪽 발 뒤꿈치를 물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2018-09-10 08:12 송고 | 2018-09-10 08:47 최종수정


두꺼운 등산화를 신고 있어도 이럴진데, 요즘과 같은 발을 다 덮는 신발이 없던 과거에는 뱀에 발을 물려죽는 사고가 더 많았겠죠. 그리스 신화에도 오르페우스의 아내가 죽은 원인도 뱀에 발꿈치를 물렸기 때문이라고 나오지요. 신화에서 차용될 정도로 흔한 사고였다는 겁니다. (신화도 창작물인 만큼 개연성이 중요합니다. 게다가 비현실적인 내용이 많기 때문이 현실적일 때에는 최대한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뱀에게 물려서 죽는 일은 위에서도 보다시피 현재에도 많이 일어납니다.


즉, 자신들의 종교를 정당화하기 위해 남(유대교)의 경전을 가져다 사용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새로운 해석을 덧붙인 거죠. 15절의 저주는 그냥 문맥 그대로 해석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위에도 말했듯이 역사를 통틀어 자주 일어났던 사고입니다. 뱀이 가장 공격하기 쉬운 인체부위가 땅과 가장 가까운 발입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뱀과 가장 가까운 인체부위가 공격받기 가장 쉬운데요, 일반적으로는 햇빛이 잘 들지 않고 눅눅한 땅이나 돌 밑에 살기 때문에 발이나 종아리가 공격받기 쉽습니다. 사실 뱀은 자신이 공격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인간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뱀이 자기 몸보다 큰 동물들도 사냥해 먹는다지만, 사람은 뱀이 먹기엔 너무 커요. 산에서 일어나는 뱀 관련 사고들도 일반적으로 뱀이 있는 걸 모르고 밟는 경우에 생깁니다. 그래서 발꿈치나 종아리 쪽을 많이 물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긴 장화를 신고 다니면 뱀으로부터 물려서 뱀독에 감염될 위험을 많이 낮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뱀 이빨은 원래 가죽을 뚫는 용도이기 때문에 장화를 신는다고 100%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땅꾼들은 뱀을 잡을 때 머리를 제압합니다. 뱀은 토막을 내서 머리만 남아도 수 시간 동안 생존이 가능하며 머리만으로도 계속 공격을 하려고 시도하기 때문에 머리를 제압해야만 잡거나 죽일 수 있습니다. 머리가 잘린 상태라면 뱀이 완전히 죽을 때까지 접근을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몸을 잃어서 탄성도 죽었지만, 근거리는 공격이 가능하거든요.


이처럼 15절도 피상적인 내용만 봐도 현실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굳이 별다른 해석을 붙일 일도 없이 문맥 그대로 봐도 문제가 없는 구절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탄도 문제가 많은 존재입니다. 초기 유대교에서는 사탄이란 개념이 없었습니다. 바빌론 유수기를 거치면서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으로 이원론이 대두하고 신과 악마의 대립구도가 등장하게 되죠. 사족을 붙이면 욥기에서는 아주 어이가 없는 장면이 보입니다. (욥기의 작성연대는 밝혀진 바 없습니다.)


'욥을 보고 사탄이 신에게 내기를 제안합니다.'


별로 이상할 게 없어 보이나요?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엄청 이상한 장면입니다. YHWH(야훼=여호와)는 거룩한 존재이고 절대선이기 때문에 죄와는 일점이라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어로 거룩하다는 단어가 카도쉬(kadosh)로 '구별되다', '잘라낸다'라는 뜻인데, 기독교에서는 죄와 구별된다는 의미로 쓰입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신은 인간의 죄 때문에 인간을 떠납니다. 그런데 그 죄의 근원인 사탄과 대화를 한다고요? 설정붕괴입니다.

(사실 기독교에서는 죄에 대해서 엄청 엄격하기 때문에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신이 인간과 대화하는 구약의 일화들은 전부 말이 안됩니다. 설정충돌이에요. 다만 죄란 것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유대교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일례로 에녹이 의인이어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불려올라갔다는 내용은 기독교적 원죄론에서는 납득하기 힘들어야 정상입니다.)


사탄에 대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 하다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적당히 마무리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2. 창세기 22:1~19


창세기 22장에서는 YHWH가 아브라함에게 밑도 끝도 없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며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고, 아브라함이 자신의 말에 충성을 보이자 시험을 중단하고 제물로 바칠 숫양을 준비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내용이 너무 길어서 원문은 생략하겠습니다.


모든 교단에서 이 구절을 예수의 대속을 의미한다고 설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제가 다니던 교단에서는 그렇게 설명을 했고, 인터넷에서도 그런 내용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①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희생시키려고 했던 것이 하나님 아버지가 독생자 예수를 희생시킨 것을 상징한다.


해당 구절의 내용은 아브라함의 죄나 이삭의 죄, 혹은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니고, YHWH가 아브라함의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한 사건입니다.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한 이유는 아브라함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마저도 YHWH를 위해 포기할 수 있는지 지켜보려는 목적이었다고 나옵니다. (전지전능 아니었어??? 다 안다면서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떠보아야 알 수 있는 거야? 꼭! 그렇게! 다 가져야만! 속이 후련했냐!)


제사를 드리는 목적도 다릅니다. 아브라함은 충성심을 시험받아 아들 이삭을 제물로 죽이려고 한 것이고, YHWH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한 것과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것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독생자 예수 타령하니까 YHWH와 예수 간에 혈연관계가 있어보이는 것이지만, 예수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고 나오고 여기서 파생된 삼위일체 교리에 의하면 더더욱 아브라함-이삭의 부자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부연설명을 하자면, 이 삼위일체 교리는 바이블엔 등장하지 않습니다. 기원후 200년에 테르툴리아누스가 처음 제시한 이론이고, 니케아 공의회에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였던 아타나시우스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 아리우스파를 몰아내고 기독교의 근본교리로 세운 것이 삼위일체 사상입니다.)


※ 아리우스파 : 예수는 신의 제1피조물이다. 존재의 시작이 있는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에 영원 전부터 존재한 하나님과는 같은 위격을 가질 수 없다. 다만, 제1피조물로써 창조되었기 때문에 신으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존재이며, 신이 사랑하는 피조물인 인간들과도 태생부터 격이 다르다.


※ 아타나시우스파 :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다른 위격을 가지지만, 이 셋은 태초부터 같이 존재했으며 동일한 본질을 공유하고, 유일한 실체로서 존재한다(삼위일체설).


만약 기독교가 아리우스파의 주장을 따라갔다면 예수를 아들, 가장 사랑하는 창조물이라고 상정하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했던 저 사건과 동일시해도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하지만 삼위일체설에 의거하면 말만 아들이고 실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인 동시에 분신인게 되므로 예수를 이삭에 투영하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삼위일체설에 의하면 차라리 아브라함의 신체 중에서 동그란 두 개와 길고 아름다운 것을 잘라서 제물로 바치라고 했다면 그게 더 예수의 예표에 가까웠을 겁니다.)


여담 : 삼위일체설이 채택된 니케아 공의회 이후에도 예수의 신성과 인성에 대해서 단성론, 이성론으로 둘로 나뉘어서 서로 이단 타령하며 또 싸우게 되는데...



② 준비된 숫양이 이삭을 대신해서 제물로 바쳐졌다.


여기서는 '숫양'이 '이삭(인간)'을 '대신'해서 죽었다는 게 포인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숫양이 '대속제물'로써 죽었다는 관점을 가지고 이 이야기를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상징한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숫양은 '대속' 제물로 잡혀죽은 게 아니라, 그냥 제물로 죽은 겁니다. 아브라함의 죄도, 이삭의 죄도 여기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나오겠지만 가축을 제물로 야훼에게 바치는 것은 너무나도 흔한 유대교의 관습입니다. 제가 누누히 이야기했지만 유대교와 기독교는 무늬만 비슷할 뿐, 세계관부터 모든 것이 다 다른 별개의 종교입니다.


우선 이 대속에 대해서는 나중에 거론할 속죄제 등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3. 창세기 37~47장


꿈쟁이 요셉에 대한 내용입니다. 2번 항목도 그러했지만, 이번 항목 역시 엄청나게 길기 때문에 역시 구절은 생략하겠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야곱의 막내 아들이었던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사서 노예로 팔려갑니다. 거기서 추락에 추락을 거듭하여 아무 죄 없이 감옥에까지 갖히게 되는데, 결국은 탁월한 꿈해몽 능력으로 이집트 파라오의 눈에 들어 총리까지 되고, 대기근으로 인해 곤경에 처한 자기 부모형제들은 물론 이집트와 가나안의 사람들도 먹여살리며 이야기가 끝납니다.


기독교에서는 요셉이 예수의 예표라며 역시 예수를 대입시킵니다. 요셉이 죄 없이 노예가 되고 감옥에 갖힌 것이 예수가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리고 죽음의 고난을 겪은 것과 같고,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것이 예수가 부활하여 이 세상의 구세주가 된 것과 같다고 말이죠.


그런데... 어느 나라건 선한 사람이 정적의 간계로 고난을 받다가 화려하게 부활하는 신화나 설화는 꼭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동명왕, 주몽의 이야기에서 고난을 이기고 왕이 되는 신화가 있고, 페르시아의 건국시조 키루스도,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여러 영웅들도, 로마의 로물루스, 레무스도 역경을 이겨내고 정상에 섭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는 비단 신화나 설화에만 머무는 게 아닙니다. 과거에는 심청전, 춘향전, 흥보전 등에서도 나오고, 현재에도 드라마로 많이 만들어지지요. 심지어 영화는 물론이고 애니메이션에서도 이런 스토리를 가진 작품들이 많습니다. (인어공주, 알라딘, 라이온킹, 그랑죠, 사이버포뮬러, 드래곤볼, 에반겔리온... 에휴 일일이 거론하기도 힘들다.)


아 참, 빼먹을 뻔 했는데, 신화 중에 이런 류의 가장 대표적인 신화가 있습니다. 이집트 신화라고... 선한 신 오시리스가 악신 세트의 계략에 빠져  죽음에 이르고 육신은 14조각으로 토막이 나지만, 그의 아들 호루스가 오시리스의 영을 받아 세트를 물리칩니다. 이후에 오시리스는 부활하여 저승의 왕이 되고, 호루스는 지상의 왕으로 영원히 군림한다고 하죠.


그리고 사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산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죄가 없다고 할 수 없어요. 요셉이 만 17세였던 때(창 37:2)에 아무 생각 없이 자기 꿈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하고 다닙니다. 그런데 꿈의 내용이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 즉 자기 부모와 형제들이 자기에게 절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요셉이 자기 꿈의 속뜻이 뭔지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나와있지 않지만, 나이도 나이이고, 나중에 해몽가로 유명해졌다고 하니 아마도 그 의미를 알았을 가능성이 클 거라고 봅니다.) 즉, 남이 들으면 기분 나쁠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닌 것이 요셉의 잘못입니다. 게다가 자기 형제들의 잘잘못을 고자질까지 합니다. 10세 이전의 아동이라면 이해를 하겠는데, 만 17세나 되서 고자질 하는 건 좀... 기독교측에서는 예수는 아무런 죄가 없이 고난을 당했다고 하는데... 그럴 거면 요셉을 가져다 붙이면 안되는 거 아닌가요?ㅋ


각설하고 간단히 정리합니다. 요셉의 이야기는 그냥 어디에나 있는 흔한 고난극복 성공 스토리입니다. 그런 거에 일일이 예수를 들이대면 세상에 예언이 아닌 게 없을 겁니다.



※ 쉬어가는 페이지, 라이온킹을 바라보는 기독교계의 두 가지 관점


① 라이온킹은 인류의 타락과 구원을 보여주는 영화
https://www.christiantoday.co.kr/news/133799
그리고 최고의 애니메이션으로 평가 받는 월트 디즈니의 <라이온 킹>(1994)이 있다.

광활한 초원의 왕인 무파사, 그리고 그의 아들 심바. 심바는 아버지인 무파사를 이어 초원의 왕이 될 사자지만, 왕이 되고 싶어 했던 삼촌 스카의 거짓말에 속아 무파사를 위험에 빠뜨린다. 결국 무파사는 죽게 되고 죄책을 느낀 심바는 초원을 떠나고 만다.

초원을 떠나 벌레를 먹으며 살아가던 심바는 예언자 원숭이에 의해 자신의 모습을 되찾게 되고, 어둠으로 변해버린 초원은 다시 돌아온 심바에 의해 이전의 평화로운 모습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무파사는 하나님을 뜻하고 심바는 하나님의 아들인 우리 인간을 뜻한다. 인간은 사탄의 유혹으로 죄를 짓고 하나님 곁을 떠나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결국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아름다운 에덴 동산이 회복된다는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② 라이언킹 심바는 예수인 듯
http://www.ebundang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57
혹자는 <라이언 킹>을 통해 성경을 읽을 수 있다고 한다.
사자무리의 왕인 무파사는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고자하는 하나님이며, 스카와 하이에나무리들은 사탄이며 시험에 들어있는 인간들이고, 무파사의 아들 심바는 인간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존재인 예수인 듯하다고 느껴진다는 말이다.


③ 라이온킹은 기독교적 우화
https://www.eonline.com/photos/7190/top-10-jesus-inspired-movies/242813
TOP 10 JESUS-INSPIRED MOVIES
10. THE LION KING
Animals flock to behold and bow before the newborn prince in King's majestic opening. Christian allegorical elements—and catchy Elton John songs—abound in Disney's animated tale of cub Simba (Jonathan Taylor Thomas), who triumphs over power-hungry Scar (Jeremy Irons) to claim his rightful place on the throne. Forever and ever, amen.
SNAP/ZUMAPRESS.com


④ 라이온킹은 사탄의 영화
https://m.cafe.daum.net/comelordjesus/AUs8/1996?
예수님을 유다지파의 사자라고 부르는 만큼, 얼핏보기에는 "심바" 라는 어린 사자가 후에 왕이되어 빼앗겼던 왕국을 되찾는 스토리가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악을 멸하고 그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테마를 의미한다고 해석 할 수 있겠지만, 그건 큰 오산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루시퍼를 빛의 신으로 섬기는 어두움의 세력은, 자신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고, 평화를 누리며 잘 살고 있는데,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의 왕국을 빼앗으려한다고 기만하는 것입니다.


⑤ 라이온킹은 뉴에이지 정신이 깃든 반기독교적인 영화
http://m.blog.daum.net/lee_ys/3423043
'라이온 킹'을 생각해 보자. 이 영화의 주제가인 'Circle of Life'(생명의 바퀴)는 제목 자체가 힌두이즘의 원리인 '윤회설'을 의미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뉴에이지 연구가들의 시각이다.


글을 쓰다보니 계속 새로운 게 생각나서 자꾸 주제와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을 하게 되네요. 비슷해보이는 두 가지 사이에서 관련성과 공통성을 추출해내는 능력은 모든 인간이 가진 능력 중 하나이긴 합니다. (구름을 보고 동물을 떠올린다든지, 화성의 바위 사진을 보고 사람 얼굴을 생각해내는 능력) 기독교계 역시 위에서 보는 것처럼 이현령비현령입니다. 조금이라도 좋아보이면 무조건 자기들이 가져다 쓰고, 조금이라도 맘에 안들면 까내리죠. 비슷한 예로 매트릭스도 이런 식으로 기독교적이다, 반기독교적이다 말이 많았습니다.




4. 레위기 4~5장, 6:24~30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제사를 지내는 방법이 다섯 가지가 있었습니다.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
이 중에서 예수와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속죄제(sin offering)와 속건제(trespass offering;guilty offering)입니다. 속죄제와 속건제 모두 죄를 씻을 목적으로 제사지내는 것이지만, 속죄제는 신에게 지은 죄, 속건제는 인간에게 지은 죄의 값을 치루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후자는 인간에게 지은 죄이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변상까지 해줘야 합니다.



1) 우선 속죄제의 제물에 대해서 열거해보겠습니다.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레위기 4:3


"만일 이스라엘 온 회중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으나 스스로 깨닫지 못하다가 그 범한 죄를 깨달으면 회중은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드릴지니 그것을 회막 앞으로 끌어다가"
-레위기 4:13~14


"만일 족장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 그가 범한 죄를 누가 그에게 깨우쳐 주면 그는 흠 없는 숫염소를 예물로 가져다가 그 숫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여호와 앞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을지니 이는 속죄제라"
-레위기 4:22~24


"만일 평민의 한 사람이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는데 그가 범한 죄를 누가 그에게 깨우쳐 주면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요"
-레위기 4:27~29


"그가 만일 어린 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그 속죄제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죄제물로 잡을 것이요"
-레위기 4:32~33


"만일 그의 힘이 어린 양을 바치는 데에 미치지 못하면 그가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여호와께로 가져가되 하나는 속죄제물을 삼고 하나는 번제물을 삼아"
-레위기 5:7


"만일 그의 손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면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고운 가루 십분의 일 에바를 예물로 가져다가 속죄제물로 드리되 이는 속죄제인즉 그 위에 기름을 붓지 말며 유향을 놓지 말고 그것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기념물로 한 움큼을 가져다가 제단 위 여호와의 화제물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속죄제라"
-레위기 5:11~12


"만일 누구든지 여호와의 계명 중 하나를 부지중에 범하여도 허물이라 벌을 당할 것이니 그는 네가 지정한 가치대로 양 떼 중 흠 없는 숫양을 속건제물로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그가 부지중에 범죄한 허물을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
-레위기 5:17~18


뭔가 많쥬?
속죄제는 그냥 계급 순으로, 재산 순으로 제물의 등급이 달라지는 건데요. 속죄제는 위에서부터 수송아지, 숫염소, 암염소, 암양, 산비둘기/집비둘기 새끼, 고운 가루를 제물로 바칩니다. 속건제에 드디어 기독교인들이 바라마지 않는 숫양이 나옵니다.


여기서 특이한 게 하나 있는데요. 바로 고운 가루입니다. 다른 것들은 생명을 도축하여 피를 내는 제물인데, 고운 가루는 생명이 없고 피도 없습니다.



2) 다음으로 볼 것은 제물의 처리 방법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제사장들끼리 바비큐 파티를 합니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속죄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속죄제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니 여호와 앞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그 속죄제 제물을 잡을 것이요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 그것을 먹되 곧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을 것이며"
-레위기 6:25~26


"제사장인 남자는 모두 그것을 먹되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라 그것은 지극히 거룩하니라
속죄제와 속건제는 규례가 같으니 그 제물은 속죄하는 제사장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레위기 7:6~7


레위기 6장 25,26절은 속죄제물의 처리방법, 레위기 7장 6절은 속건제물의 처리방법입니다.
위에서 고운 가루를 이야기하면서 특이한 게 하나 있다고 했는데, 대속제물이란 관점을 버리고, 음식이란 관점에서 보면 답이 간단하게 나옵니다. 제사의 제물은 일종의 벌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화폐 경제가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에는 물물거래가 흔했습니다. 유목민족의 경우에는 가축, 농경민족의 경우에는 곡식으로 세금을 냈습니다. 고대의 화폐라고 해봐야 금화나 은화 정도인데, 이건 액면가치가 너무나도 커서 피지배계층이 거래 용도로 쓸 수 없는 화폐였습니다. (우리나라도 화폐경제가 발달한 이후에도 꽤 오랫동안 조세는 돈이 아니라 쌀로 지급했었죠.) 바이블에서 나오는 세금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십일조인데, 이 십일조 역시 땅에서 난 산출물의 1/10을 내라고 쓰여있습니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죄가 전이된 제물이라면 그것은 부정한 것이어야 하고 더러운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거룩한 것이니 제사장들에게 다 먹으라고 합니다. 심지어 고운 가루는 태워버리면 먹을 수가 없으니까 한 움큼만 태우라고 합니다.
(성직자들의 근손실을 걱정하시는 자애로우신 하나님)



3) 그 다음으로 볼 것은 기독교계에서 대속의 증거라고 하는 안수 절차입니다.


속죄제의 과정 중에는 제물에게 안수를 하는 절차가 있는데, 기독교에서는 사람의 죄를 제물에게 전가시키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레위기 4:4


"회중의 장로들이 여호와 앞에서 그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레위기 4:15


"그 숫염소의 머리에 안수하고 여호와 앞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을지니 이는 속죄제라"
-레위기 4:24


"그가 범한 죄를 누가 그에게 깨우쳐 주면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제물을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잡을 것이요"
-레위기 4:28~29


"그가 만일 어린 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그 속죄제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죄제물로 잡을 것이요"
-레위기 4:32~33



그런데 말입니다. 안수가 대속을 위한 행위라고 하면 아주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비둘기나 고운가루를 바칠 때에는 안수나 그에 준하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숫양을 바치는 속건제에도 안수를 하지 않습니다. 안수를 하지 않고 제사를 지내는데도 레위기에서는 '그가 사함을 받으리라'라고 적혀있습니다.
또한 안수를 받고 인간의 죄를 전가받았다면 그 제물은 부정한 것이어야 하는데, 위에도 설명했지만, 제물들은 거룩하므로 한 점도 남김없이 다 먹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대속의 개념으로 볼 땐 괴리가 발생합니다. 죄가 들어갔는데 거룩하다고??



4) 레위기에는 제사로는 해결되지 않는 죄목이 나옵니다.


레위기 18장에는 애굽의 풍속과 가나안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는 명령과 함께 근친상간하지 말라는 명령이 나옵니다. 만약 이런 행위를 할 경우에는 '이 가증한 모든 일을 행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합니다. 속죄의 기회 자체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레위기 20장에는 이방 신(몰렉)을 섬기는 행위, 박수무당 행위, 남색(동성애), 장모, 이모, 고모, 형수, 제수 등 혼인으로 가족된 자와의 동침, 수간 등을 하면 반드시 죽이라고 나와있습니다. 특히 장모와 동침하는 행위는 불살라 죽이라고 죽이는 방법까지 정확히 지적해놨습니다.


기독교의 '거룩'한 신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더러운 죄일진데, 어떤 죄는 대속제물을 통해 죄사함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죄는 가차없이 죽이라고 할까요? 이것 역시 제물이 일종의 벌금이라고 생각하면 한번에 이해가 됩니다. 지금도 사형수나 강력범죄자들에게는 재산형(벌금)을 선고하지 않고 무조건 자유형(사형, 징역, 금고, 구류)을 선고합니다. 그 죄가 벌금형으로 처벌하기엔 너무나도 무겁기 때문이죠.



제사에 대해서 정리하자면, 위와 같은 이유에서 제물은 대속물이 아니라 재산형의 벌금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물론 기독교계에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의 예표라고 주장하는 근거가 하나 사라지는 셈이니까요.




5. 출애굽기 12:1~14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너희는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 달 열흘에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너희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양이나 염소 중에서 취하고
이 달 열나흗날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이스라엘 회중이 그 양을 잡고
그 피를 양을 먹을 집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것으로나 물에 삶아서 먹지 말고 머리와 다리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불사르라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내가 그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애굽의 모든 신을 내가 심판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땅을 칠 때에 그 피가 너희가 사는 집에 있어서 너희를 위하여 표적이 될지라 내가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재앙이 너희에게 내려 멸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로 지킬지니라"


기독교인들이 속죄제와 함께 예수를 상징한다고 주장하는 유월절 어린양 이야기입니다.
사실 유월절 '어린양'은 핵심 포커스를 잘못 맞춘 것이고, 그냥 유월절 규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볼 것은 두 가지입니다. 위에 언급된 유월절 어린양과 문설주에 바르는 피입니다.


① 유월절 어린양


유월절 어린양이 죽은 이유는 히브리인들의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배불리 먹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먹는 음식들과 먹는 방법들을 보면 답이 나옵니다.
히브리인들은 양고기, 혹은 염소고기 이외에 무교병과 쓴나물을 함께 먹으라고 나옵니다.
무교병은 누룩(효모)를 넣지 않고 만드는 빵을 말합니다. 빵의 발효과정을 생략해버리는 거죠.
기독교계에서는 효모를 넣은 빵은 맛있고, 효모를 넣지 않으면 맛이 없다. 그러므로 맛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고 예수의 고난을 간접적으로라도 느껴보라는 의미라고 해석하는데요... 거짓말입니다.
효모를 넣지 않고 발효시키지 않은 밀가루 음식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과자입니다. 그리고 빵과 과자를 맛있게 하는 것은 밀가루와 설탕입니다. 빵을 만들어본 분들은 알겠지만, 설탕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갑니다. 과자 역시 설탕을 엄청 넣지요.


맛 없게 먹으려면 누룩이 아니라 설탕을 뺐어야지요. (중세까지는 설탕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맛을 내기 위해 당근 등을 사용했습니다. 고로 고대에도 설탕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냥 원래부터 맛없게 먹었거나 설탕을 대체할 다른 걸 같이 먹었겠지요.)


누룩 없는 빵을 먹으란 것은 길고 긴 발효시간을 생략하고 빨리 떠날 준비를 하라는 것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근거는 11절에 있습니다. 허리에 띠를 두르고,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차림새는 집 밖을 나서는 전형적인 차림새입니다.


이집트에 내려질 마지막 저주가 끝나자마자 파라오가 잠시나마 마음이 약해져서 히브리인들의 이주를 허락할텐데, 그때 밍기적대지 말고 빨리 이집트를 떠날 수 있게 준비하라는 거라고 해석하는 거 더 타당합니다. 빨리 떠나야 하니까 제대로 조리할 시간도 없을테고, 옷 챙겨입을 시간도 없을테니까요.


그렇다면 쓴나물은 무엇이냐? NIV, KJV에서는 동일하게 bitter herbs로 나옵니다. 허브는 원래 써요. 특히 열대지방으로 갈수록 쓴 맛은 더 강해진다고 합니다. 이걸 먹으려면 물에 데쳐먹거나 말려먹어야 그나마 먹을만합니다. 즉, 이 쓴나물도 시간을 들여 조리하지 말고 먹으란 뜻입니다. 이유는 위와 동일하게 보고 있고요.


이제 다시 양고기를 봅시다. 물에 삶지도 말라고 합니다(9절). 집에서 고기들 많이 해먹으니까 잘 알겠지요? 물에 삶아서 조리하는 것이 구워먹는 것보다 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는 걸 말이죠. 이 역시 위의 음식들과 상통합니다. 시간 지체하지 말고 빨리 먹고 급히 떠날 준비를 하라는 거죠.


또한 양고기는 각 사람이 충분히 먹고 남기지 않을 만큼 잡으라고 나옵니다.
'너희 각자가 어린 양을 잡을지니 각 가족대로 그 식구를 위하여 어린 양을 취하되 그 어린 양에 대하여 식구가 너무 적으면 그 집의 이웃과 함께 사람 수를 따라서 하나를 잡고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에 따라서 너희 어린 양을 계산할 것이며'


왜?? 고기를 배불리 먹어야 먼길 떠나는데 힘이 나지요. 만약 이 어린양이 인간의 죄를 대속한다는 의미였다면 가구당 한 마리, 인당 한 마리 등으로 정하는 것이 더 상징성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각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분량대로 잡으라고 합니다. 이건 양고기의 목적이 상징성이 아니라 식용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줍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갈 점이 있는데, 유월절에 먹는 고기는 양고기로 한정된 게 아닙니다. 양 뿐만 아니라 염소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염소는 그리 좋은 의미가 아니지요. 구원받지 못한 죄인, 심한 경우엔 악마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중략]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태복음 25:31~41


그런데 왜 유월절 음식에 염소가 들어가있을까요? '유월절에 희생되는 동물'이 예수를 상징하는 거라면 더더욱 염소는 있어서는 안되죠. 여기서도 유월절에 잡는 양이나 염소가 특별한 상징물이 아니라 단순한 음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주로 먹는 고기들은 예나 지금이나 정해져있습니다. 소, 말, 돼지, 양, 염소 등이 대표적인데, 말고기는 빨리 상하고, 돼지고기 역시 빨리 상하는 동시에 기생충 문제가 있기 때문에 열대지방에서는 잡아먹기 힘듭니다. 이 둘을 제외한 고기들은 익숙하죠? 바로 위 항목의 속죄제, 속건제의 제물로 쓰이는 동물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소고기는 예나 지금이나 비싸요. 아무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닙니다. 남는 건 양과 염소 밖에 없기 때문에 유월절에 잡아먹으라고 한 겁니다.
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손쉽게 잡아먹을 수 있는 고기가 양고기와 염소고기였기 때문에 유월절에 잡으라고 한 겁니다.


②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피


바로 위 ①항목에서 유월절에 잡는 양이 예수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한 시점에서 사실 이 ②항목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제가 예전에 생각했던 내용을 적어보겠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고 잡설이니 시간이 아까우시거나 긴 글에 피로하신 분들은 스킵하셔도 됩니다.


예전에 제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던 시절에 한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설교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의 신체 중에서 생명을 주관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뇌? 심장? 다 아닙니다. 피입니다. 피가 돌아야 생명이 돌고, 사람이 살 수 있습니다."
이 설교를 듣고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신체의 장기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소중한데, 왜 피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그래서 바이블에서 근거를 찾아봤습니다. 그랬더니 바이블에 이 설교와 관련된 구절이 있더군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레위기 17:11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레위기 17:14


이 구절을 읽고 나서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가 곧 생명을 의미한다면,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피의 의미가 '생명을 보존시켜야 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이에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가 없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이 든 적이 있어서 이 기회에 같이 적어둡니다.




6. 시편 22:16-18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 부분을 기독교계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언한 메시야 예언시이다.' 라고 주석을 달 정도로 예수의 고난을 예언한 시라고 주장합니다.
언듯 볼 때에는 사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처형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라는 부분이 마태복음과 싱크로율이 상당히 높습니다. 역시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①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이 부분을 기독교계에서는 십자가형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여기에서는 '수족을 찔렀다'는 표현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과 저 구절이 십자가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나누어서 글을 쓰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수족을 자르다'라는 말이 있지요? 영어에도 똑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cut hands and feet'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오. 고대부터 죄인의 손발을 자르거나 손발 힘줄을 잘라서 병sin을 만드는 형벌이 널리 존재했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단수형, 월형이 그랬고, 이슬람 문화권에서도 도둑질을 하면 손목을 잘라버렸고, 심지어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단수형이 언급됩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아예 걷지 못하게 오금 바로 위의 햄스트링을 자르는 형벌이 있었습니다.


사서에도 단수형이나 월형으로 처벌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후백제의 장군 중 한 명이 고려에 투항하자 견훤이 그 장군의 가족들을 잡아다가 다리의 힘줄을 잘라버렸고, 고려 무신정권 최충헌은 자기 조카가 자기를 몰아내고 권력을 차지하려하자 조카의 발목 힘줄을 잘라버렸습니다. 병자호란 때 포로로 잡힌 조선인들이 탈출을 시도할 경우 잡아다가 발뒷꿈치뼈를 칼로 도려내버렸습니다. 조선시대 도망노비를 붙잡았을 때에도 도망가지 못하게 발목의 힘줄을 잘라버렸습니다. 이건 좀 어이가 없는데, 질투가 심한 궁녀는 손목을 잘라버렸다고 합니다(질투와 손목이 뭔 상관이라고...). 춘추전국시대의 책사 손빈도 월형을 당하고 앉은뱅이가 되고 이마에는 문신까지 세겨지는 치욕적인 형벌을 받았습니다.


바이블에도 발의 힘줄을 잘라버리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넘겨 주어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그들의 병거를 불사르라 하시니라"
-여호수아 11 :6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사무엘하 8:4


사람이 아니라 말의 발목 힘줄을 잘라버리는 것이지만, 이건 이스라엘 민족이 전쟁을 할 때마다 진멸을 도모하고 씨받이로 쓸 여자를 제외하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다 죽였기 때문에 포로의 발목을 자를 일이 없었겠죠.-_-
(한 가지 의아스러운 것은 분명히 한 족속을 싹 다 죽였다고 했는데, 후대 기록(역시 바이블)에 그 족속이 다시 등장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남)


이렇듯이 사지의 힘줄을 끊는 형벌은 예로부터 시행되어 왔고, 여기서 '수족을 자른다'는 관용어까지 만들어졌기 때문에 위의 구절이 꼭 십자가형만 의미한다고 보긴 힘듭니다. 되려 예수가 당한 십자가형은 수족을 찌르는 형벌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바로 밑에 설명하겠습니다.


기독교계에서는 다윗이 저 시를 쓸 당시에는 십자가형이 없었다며 이 시가 예언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세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다윗의 시라고 쓰여진 시들이 진짜 다윗이 쓴 것인가? 보통 다윗의 시라고 쓰여진 것의 원래 표제는 LeDavid(לדוד)입니다. David 앞에 전치사 Le가 붙은 것인데, 이 전치사의 의미가 너무나 다양하게 쓰인다는 게 문제입니다. by, for, about 등의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저 표제의 의미가 다윗에 의한 시(바이블에서 인용된 '다윗이 쓴 시', '다윗의 시')인지, 다윗을 위한 시인지, 다윗에 대한 시인지 사실 지금으로서는 정확히 알 방법이 없습니다. 어떤 논문에서는 Ledavid가 일종의 궁중음악을 뜻하는 고유명사였을 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즉, 저 시가 다윗 시대에 쓰여졌을 것이라는 것은 하나의 가정일 뿐입니다.


두번째, 기독교계의 주장과는 달리 십자가형은 역사가 긴 형벌입니다. 로마 이전에도 페니키아,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카르타고 등지에서 널리 쓰였던 형벌입니다. 다윗이 그가 살던 시대에 주변 강대국들에서 처해졌던 십자가형을 봐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다윗이 십자가형을 알고 있었다면 더더욱 저런 시를 쓰지는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는 것과는 반대로 십자가형은 손바닥에 못을 박지 않기 때문입니다. 손바닥에 못을 박으면 손거죽이 체중을 지탱하지 못하고 찢어진다고 합니다. 죄인이 십자가에서 떨어지는 사태가 일어나기 때문에 밧줄로 손목을 묶거나 팔뚝에 못을 박았다고 합니다.


1968년 이스라엘에서 한 유골이 발견됩니다. 이 남자의 이름은 요하난. 그의 무덤 양식은 1세기에 유행했던 양식인 것으로 그가 예수와 비슷한 시대에 살다 간 사람으로 추정되고, 그의 뒤꿈치뼈에 커다란 쇠못이 박혀있는 것을 보고 그가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십자가형으로 죽은 사람의 유골이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에 요하난의 유골은 큰 이슈를 끌었습니다. 그의 유골은 팔뚝, 정확히는 손목 부근의 뼈가 상해 있었고, 발꿈치뼈에 박힌 채 뼈와 일체가 된 쇠못으로 미루어 십자가형의 대략적인 처형방법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즉, 다윗이 십자가형을 직접 봤거나 환상을 통해 봤다면 '수족을 찔렀다(pierced my hands and my feet)'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마도 pierced my arms and my feet이라고 썼겠죠.


셋째, 16절의 전후구절을 보면 예수의 처형 장면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냥 시 전체가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봐야 합니다.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시편 22:12~21


골고다 언덕에는 황소도 거친 소도 없었고(개는 있었을 수도...), 십자가형이 모든 뼈를 어그러뜨리는 형벌도 아니고, 모든 뼈를 셀 수 있다고 생각될만큼 육신을 찢어발기지도 않습니다. 그냥 저 구절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은유적인 표현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 있습니다. 은유로 본다면 절망적인 상황을 아주 잘 묘사한 시입니다. 특히나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란 부분은 땅바닥에 쓰러지는 모습을 아주 잘 묘사한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시의 마지막은 '내 생명을 구해달라'는 요청이 마지막에 응답을 받고 자신이 구원받는 것으로 마감을 합니다. 예수는 십자가 위에서 죽지 않았던가요?



②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확실히 사복음서에는 로마군병들이 예수의 옷을 나눠가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마태복음 27:35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마가복음 15:24~25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누가복음 23:34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요한복음 19:23~24



시시비비를 가리기 전에 재미있는 걸 하나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마가복음을 잘 보십시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잘 안보이세요? 다시 한번 잘 보세요.
십자가에 못 박고 옷을 나누어가진 다음에 다시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이것은 사본으로 옮겨적는 과정에서 생긴 실수로 보여집니다. 24절, 25절 둘 중 하나의 구절이 추가삽입된 것이지요. 안그래도 마가복음은 가필한 흔적이 이미 지적된 책인지라 저 부분도 가필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마가복음을 베이스로 쓰여진 책 답게 마가복음의 기록을 그대로 복붙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좀 자세하게 나오고 그 내용은 시편의 내용과 100% 일치합니다. 다른 책들보다 30년이나 지난 90~100년 사이에 쓰여진 책에 50여년 전의 일을 다른 책들보다 더 상사히 기록되어져있습니다.
합리적인 추론을 한다면 요한복음이 공관복음과 시편을 참조해서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복음서의 내용이 후대의 가필이나 시편을 보고 쓴 글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글을 이어가겠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잘 못느끼겠지만 산업혁명 이전에는 옷은 매우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옷장에 가득찬 옷을 보고 오늘은 뭘 입고 가나 고민을 했지만, 옛날엔 옷에 구멍이 나면 기워입고 다닐 정도로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면직물과는 비교도 안되는 옷감이지만 담비로 만들어진 옷은 한벌에 성 한 채를 살 수 있다고도 합니다. 러시아의 영토가 저렇게 넒어진 이유도 러시아 포수들이 담비를 찾아 동으로 동으로 계속 이동한 끝에 동쪽 끝 베링해까지 이동하다가 영토가 넓어졌다고 하죠.(ㅇㄱㄹㅇ) 심지어 시베리아의 담비들을 찾을 수 없자 이동해간 곳이 알레스카이고, 거기서 비버사냥이 유행하게 됩니다. 사냥꾼들이 이렇게 혹한지를 이동하며 담비를 잡으려고 했던 이유도 담비 가죽이 엄청나게 비싼 가격에 팔렸기 때문입니다.
동 시대인 조선시대만 해도 일반 백성들이 군역 대신 군포(베 2필)을 매년 지불했습니다. 비단도 아니고 면화도 아닌데 까짓거 얼마나 비싸겠어? 라고 생각하겠지만, 당시 백성들에게는 저 베 2필도 엄청난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균역법을 실시하면서 2필을 1필로 줄이는 엄청난 개혁을 하게 됩니다.-_-
이런 이유로 의복이 수탈의 대상이 된 겁니다. 중세시대까지는 옷도 전리품으로 수탈의 대상이었죠.


바이블에도 의복의 값어치를 유추할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태복음 5:40


이 부분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않았습니까? 그깟 옷이 뭐길레 고발까지 해? 그것도 외투 뿐만이 아니고 속읏까지 가지려고 고발을 해???
하지만 저 때, 의복이 얼마나 귀한 물건이었는지를 알고 있었다면 전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이유로 병사들이 옷을 가지고 실갱이를 하는 장면은 기원전 9세기 경이나 기원후 1세기 때나 흔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편과 사복음서에서 동일하게 옷을 빼앗는 장면이 나온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이는 흡사 기원전 9세기를 살던 사람이 똥 싸는 것과 기원후 1세기를 살던 사람이 똥 싸는 장면이 같이 기록되었다고 해서 전자가 후자의 예표라고 볼 수 없는 것처럼.


단, 요한복음처럼 세부적인 내용도 동일한 것은 예사롭게 볼 순 없습니다. 다만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요한복음에서 있었던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해서 기록했을 가능성은 적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지 최소 60년 뒤에 쓰여진 책이며, 그 이전에 기록된 복음서들보다 30년 가까이 뒤에 쓰여졌으니까요. 60년은 커녕 20년만 지나도 기억이 잘 안나고, 왜곡됩니다. 30대 이상이신 분 중에 초등학교 졸업식날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시는 분이 있나요? 40대 이상이신 분 중에 고등학교 졸업식날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시는 분이 있습니까? 시간이 지나면 가장 충격적이거나 인상적인 부분만 기억에 편린으로 남습니다. 하지만 요한에게 십자가 처형 장면에서 병사들이 옷을 나누는 장면은 그다지 충격적인 장면이 아닙니다. 자기 스승은 극형을 받고 있고, 스승의 친모는 오열하고 있는데,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병사들의 작태를 인상 깊게 봤을 리도 없고, 그걸 60년 뒤에 떠올렸을 가능성도 '없습니다.'


게다가 요한복음의 저자는 제자 요한이 아닐거라는 설도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요한의 성정이 거칠어서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친히 예수가 붙여줬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복음에 나오는 저자인 '사랑받는 제자'의 성정은 전혀 난폭하지 않고 여성적입니다. 게다가 요한복음은 고급 그리스어로 쓰여졌고, 당시로서는 수준 높은 그리스 철학을 담고 있는데, 갈릴리의 어부 출신 요한이 그 정도의 교육을 받았을 리도 없기 때문에 저 정도의 교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저자가 요한인지에 대해 의심을 사고 있습니다.
저자가 요한이 아니고 요한의 이름을 빌린 타인이라면 직접 보지 못한 사실을 저렇게 상세히 기록했다는 것은... 조작을 하였거나 다른 문서를 참조했다는 뜻입니다.




7. 시편 2:7~8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기독교인들은 여기서의 아들이 예수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고 써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라는 구절과 상치됩니다. (꼴리면 이단으로 정죄된 아리우스파를 믿고, 예수를 신이 아닌 피조물로 믿으시든가)
그리고 땅 끝까지 준다고 합니다. 전후 구절들을 보면 '아들'과 대립하는 이방 나라와 군왕들이 나옵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종합해볼 때 '아들'은 이사야서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그 자체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8. 창세기 17:19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여기서 말하는 이삭과의 언약이란 바로 이겁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창세기 26:3~4


기독교계에서는 '네 자손'이 예수를 가르키고, 덩달아 창세기 17장의 '그의 후손'도 예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영문을 보면 좀 이상합니다. NIV에는 두 구절 다 desendants 라고 하고, KJV에서는 두 구절 공히 thy seed(your seed)라고 합니다.
※ seed에 대해서 왈가왈부할까봐 영어사전에 나온 뜻도 기록합니다.
6. U 문예체    (한 남자의 모든) 자손


둘 다 복수형입니다. 아! 신이 삼위일체인 것처럼 예수도 분신술을 쓰나?


번역을 제대로 하려고 했으면 '네 자손'이 아니라 '네 자손들'이라고 번역했어야 합니다. 위 두 구절은 네 자손들이 온 땅의 주인이 되고, 만국의 지배자가 되게 해주겠다는 축복입니다. 예수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는 예언이 아닙니다.




9.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의 자손, 다윗의 자손 등등


이런 표현들은 너무나도 자주 나와서 그냥 뭉뚱그려 설명하겠습니다.
이삭의 아들들인 에서의 아들들만 해도 다섯 명이고, 야곱의 아들들만 해도 열두 명입니다. 특히 야곱의 자손들은 출애굽 할 당시에만 엄청나게 뿔어버리죠.
다윗의 자손이요? 다윗은 이스라엘의 증산정왕... 은 아니고 하여튼 엄청 많은 자식들을 생산해냅니다.


"다윗이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둘째는 다니엘이라 갈멜 여인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넷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소생이요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 여섯은 헤브론에서 낳았더라 다윗이 거기서 칠 년 육 개월 다스렸고 또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다스렸으며
예루살렘에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러하니 시므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네 사람은 다 암미엘의 딸 밧수아의 소생이요
또 입할과 엘리사마와 엘리벨렛과
노가와 네벡과 야비아와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 아홉 사람은
다 다윗의 아들이요 그들의 누이는 다말이며 이 외에 또 소실의 아들이 있었더라"
-역대상 3:1~9


다윗이 낳은 아들들은 헤브롯에서 낳은 6명 + 예루살렘에서 낳은 13명 = 총 19명


다윗만 해도 이렇게 많은 자식을 남겼는데, 기록상 1000년 후인 기원 원년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자손이 있었을까요?


(내가 인심 써줘서 암논과 압살롬은 빼준다. 암논은 자기 이복누이이자 압살롬의 친여동생인 다말을 겁탈한 죄로 압살롬에게 죽고, 압살롬은 왕이 되려는 마음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다윗의 군사들에게 살해당함. 콩가루 집안... 이 둘은 죽기 전에 자식을 남기고 죽었는지, 남기지 못하고 죽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게다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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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청수 20-04-12 22:40
 
본문에 글이 다 써지지 않고 끝부분이 조금 잘려서 댓글로 이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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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좌에 오른 아들이 솔로몬...
솔로몬의 아들들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부인이 700명, 후궁이 300명이라고 하니, 이 말이 맞다면 여기서도 자손들이 엄청 뿔었겠지요.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자손이 '예수'를 특정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중산정왕의 자손 유비처럼 수 많은 왕실의 자손들 중에 한 명이라도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부활시켜주길 바라는 게 구약 곳곳에 나오는 바램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이런 바램을 예수를 예언하는 징표로 써먹고 있지요.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당해있다."
     
바다99 20-04-14 14:13
 
그런데 이런 글을 왜 올리는지가 궁금하네요

수많은 글을 올리신 것 같은데 이런 전문적인 내용까지 알려면 신학교도 다녔고 상당히 공부를 하신 것 같은데 기독교가 주장하는 것들이 틀렸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 올리나요? 그래서 진리는 다른 곳에 있고 기독교에는 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올리는건가요?

아니면 기독교에만 진리가 있는 게 아니고, 다른 종교도 진리가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것인가요?
          
지청수 20-04-14 20:38
 
몇몇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의 교리가 맞다고 주장할 때마다 제가 아는 선에서 반박글을 쓰는 것 뿐입니다.
이번 글도 구약에는 예수를 예언하는 구절들이 많다는 주장들이 몇 번 올라와서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고자 썼습니다.

결론적으로 기독교가 주장하는 것들이 틀렸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입니다. 다른 종교는 제가 남들에게 교리를 풀어서 설명할 정도로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종교와 관련해서 남들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기독교는 진리가 아니다.' 딱 이 하나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진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올 때마다 반박글을 쓰는 겁니다.
               
바다99 20-04-15 03:50
 
본인이 진리를 추구하는데 관심이 있다면, 그 시간에 진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는 것이 낫지 않나요? 왜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과 논쟁을 하시나요? 그건 시간 낭비 일 것 같은데.

글을 쓰신 것 보니까 댓글 정도가 아니라 장문의 글을 쓰셨던데, 그냥 자기 생각을 쓴 게 아니라 상당한 시간을 들여서 공부한 내용을 쓰신 것 같더라구요. 본인이 진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면 모르겠는데, 반박을 위해서 그런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이 시간 낭비 아닌가요?

본인이 진리를 찾는데 관심이 없다면, 더더욱 시간 낭비 일 것 같구요.
                    
헬로가생 20-04-15 05:22
 
제가 볼 땐 님 댓글이 더 시간낭비임.
적어도 지청수 님의 글엔 진리추구에 대한 노력이 있음.
누구 맘대로 기독교인과의 논쟁이 진리추구와는 상관 없는 시간낭비라 생각하시나요?
제대로 된 논쟁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시나요?
기독교만 공부해야 하는 게 아니라 타종교도 다 공부해야하고 역사, 문학, 언어학까지 공부해야함.

반기독교적 글이 그저 반박을 위해 쓰여진 거라 생각하신다면 큰 오해임.
진리란 무슨 신을 믿거나 세상의 이치를 깨닳는 것만이 아님.
세상을 좀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악과 맞서 싸우는 것도 진리추구임.
                    
확증편향 20-04-15 05:33
 
나는 각자의 진리가 있다고 생각함.
자신의 진리가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진리도 존중하며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함.
격투기로 예를들면 어떤 이가 강해지기 위해서 혼자 산에 틀어박혀서 수십 년 돌이나 때리면서 밖으로 기어나와서 내가 세계최강자라고 설치는걸 보면 사람들은 다들 손가락질하며 정신나간사람이라 할거임.
왜냐하면 현대에는 이미 그래플링에는 주짓수, 유도, 레슬링 타격기에는 복싱, 무에타이 등의 체계적이고 효율적이고 1종과 2종 종합 등의 격투기에서 공인된 무술들이 존재함.
차라리 산에 박혀 돌이나 나무와 같은 것 들을 발로차면서 밖으로 안기어나오면 그냥 존중해줄 순 있을거임.
저게 그 사람의 행복이라면 그 누구도 질타할 수 없다고 생각함.
굳이 기어나와서 자기들이 진리라며 설치는 맹신도들이 있음.
그들에게 사람을 상대하는 것과 무생물과 식물을 상대하는 것이 다름을 가르쳐주는 것이 나는 왜 시간 낭비인지 모르겠음.
                    
지청수 20-04-15 08:19
 
개인주의 사상에 따른다면 나만 알면 족한 것이고, 남들은 신경 쓸 필요도 없겠죠. 남들을 신경 쓰는 그 자체가 개인주의적 입장에서는 시간낭비, 정력낭비일 겁니다.
하지만 이타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내가 가진 편린의 지식이라도 남들에게 공유해주는 것이 더 생산적인 일입니다.



사실 저도 본문글을 나흘 동안 틈틈이 써서 올린 건데, 시간 아깝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라고 글을 써서 올린 것입니다.

열심히 근력운동하고 몸 만들어서 자기만족하는 것도 좋고, 격투기를 익혀서 남들이 함부로 못 덤비게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 힘으로 범죄자 잡고, 남을 돕는다면 더욱 바람직하겠죠.

1부의 초반부에 이 글의 예상 독자들을 특정한 내용이 있는데, 거기에 대략적인 내용이 다 나옵니다.

"더불어 이 글은 기독교에 대해 잘 알고자 하시는 분이나 종교 문제로 갈등하시는 분, 관련지식을 더 쌓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작성되었음을 미리 고지합니다.

그리고 이젠 이런 글을 써봤자 각자의 입장이 바뀔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웬만해선 반론이 올라오더라도 응하지 않고, 반론 중에서도 논리적으로 합당한 반론에 한해서만 댓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분들은 읽고 기분만 안 좋아질 테니 그냥 읽지 않고 뒤로 돌아가시길 추천합니다."

이 종철게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엔 헛된 종교에 빠져서 인생 낭비하는 기독교인들을 '구제'하기 위해 글을 썼지만, 점차 종교에 매몰된 기독교인이 아니라 기독교인에게 현혹되어 아까운 돈과 시간을 낭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거짓된 종교를 일반인들에게 포교하며 정신을 오염시키고,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행위를 하지 않는 선에서 자기들끼리만 교회에 모여서 신앙생활 한다면 저도 딱히 그들이 내세우는 교리를 비판하는 글을 쓰지는 않을 것이고, 쓰지 않겠다고도 공언했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종교에 매몰되어 무슨 말을 해도 바뀌지 않을 사람들이란 걸 이제는 잘 알거든요.
게다가 그들이 종교를 믿는 이유 중 종교 안에서 안정을 찾고, 거짓된 행복이라 할 지라도 행복감을 느끼고 있으니 거기까지는 더 이상 참견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왜 그 거짓된 것을 남에게 전하고 같이 오염시키려고 합니까?
마약이 주는 몽롱한 느낌이 좋다면 아편굴에서 혼자 마약 빨고 끝낼 것이지, 왜 자꾸 주변 사람들도 마약 중독자로 만들려고 해요?
마약 중독자에게 마약 끊으라고 하는 건 피차간 힘든 일이니까 포기한다쳐도 일반인에게 마약을 권하는 것까지 방치하면 안되죠.
북두구진 20-04-12 23:35
 
구약의 야훼와
신약에서 예수가 부르짖은 아버지는 서로 다른 존재임..

개독새끼들이 입에 달고 사는 여호와하나님에서 여호와는 계집에, 질투심쩔고, 잔인하며, 변덕스러운, 변방의 이스라엘이라는 열등민족의 저급신이고

예수가 말한 아버지 하나님은 인류 보편성을 가진 보편신이라 그 위격이 천지차이임.....

그런데 개독 개호로새끼들은 예수를 또 아버지와 동일하다고 족보를 개족보로 만들어버린 패륜을 범했음.

결국 근본없는 개떨거지 종교가 예수교임.
     
지청수 20-04-13 18:26
 
신 뿐만 아니라 세계관, 가치관 등 모든 것이 다릅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가 다른 것보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다릅니다.

그 유대교마저도 고대 중근동의 신화를 베끼고 지들 입맛에 맞게 변개시킨 것이니 어디부터 근본이 없다고 정의내려야 할지...ㅉㅉㅉ

죄다 잡놈들 천지...
풀어헤치기 20-04-13 06:14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삼위일체' 라는 개념 자체가....
생물학에 위배되는 개념인데....
( 족보가 꼬이죠..
  패륜에 해당됩니다.
  그런 패륜 종교도 찾아보기 힘들어요. )

전지전능하다는 그 넘이
왜? 그런 변칙을 만들었는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자의 갈빗대를 떼어서....
  여자를 만들었다는 내용은....
  희대의 사기극이라 생각합니다...

  그걸 믿고 사는 사람들의 지능 또한 의심스럽구요.

  차라리...휴머니즘이 담겨있는....
  '홍익인간' 이 훨씬 진보한 개념이라 생각해요.
.
     
지청수 20-04-13 18:28
 
그 누구도 제대로 이해한 적이 없고, 그 누구도 깔끔하게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교리, 삼위일체!
우주신비 20-04-13 08:15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모두  야훼란 놈을  동일 신으로  믿고 있죠
동일신인데 교리는  틀리고  그리고  서로 이단이네 사이비네  가짜 종교네 하며 비난하고 있고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는 유혈분쟁도 자주 발생하고

개신교는  자기 종교 이외는 모두  가짜종교라고 비난하고

야훼란 놈은  유혈분쟁을 중재하기는 커녕을 오히려 즐기고 있고
     
시주구리 20-04-13 14:12
 
야당 여당이 서로 치고박고 싸워야 국민들에게 이로운 것이지 이들이 협력하면 설마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겠음?
자기들 배를 채우기위해 국민을 속이겠지.

종교가 서로 갈라져서 서로 치고박고 싸워야 대중들에게 이익이지 이들이 협력해서
큰 세력으로 세계를 정복하면 어떻게 되겠음?
우주님은 벌써 단두대에 모가지 날아갔거나 굶주린 사자밥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야훼가 세상사에 관여했으면 적어도 님은 벼락을맞아 오줌똥도 못가리는
반신불수가 되었을것이고
그러니 모두의 이익을 위해서 종교인들 뭉치면 안되고 야훼도 세상에 관여하면 안됨.

마찬가지로 여기 회원들도 아무리 친해도 서로 경쟁하고 비판을 해야함.
칭찬하고 쉴드쳐주고 자기세력 만들어서 다굴짓하면 선량한 회원들에게 불이익임.
물론 나눔이나 봉사활동을 위해 협력하는것은 모두에게 유익이겠고
     
지청수 20-04-13 18:30
 
진짜 야훼가 존재한다면 자기를 믿는다는 신자들끼리 2000년간 피 터지게 싸우는 꼴을 가만히 방치하고 있을까요? 그것이 공의와 선의의 신?

오늘도 에피쿠로스가 1승 쌓고 가네요.
시주구리 20-04-13 13:19
 
푸하하 하  하  하    하
꿩 잡는게 매라더니ㅋㅋ
예전부터 느낀건데 베씨하구 지씨는 저무 공통점이 많아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방식과 성경을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방식이 너무 흡사해
뭔 주장을 할때도 항상 보면 베씨나 지씨나 확실한게 없으니 아리까리 한것들만 잔뜩 가져와서
복잡하게 설명해.
진실은 간단하고 거짓은 복잡하다는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아는데 말이지 하하하

인간은 창의력이 있어서 외부의 정보가 머리에 들어갔으면 자신만의 개성으로 재해석되서
나와야 정상인데 이들은 앵무새들같아ㅋㅋㅋ

푸 하  하  하
정말 웃기는게 이샤야 53장이 뭔 뜻인줄도 모르는 것들이 무슨 기독교인이며 안티냐고요ㅎ

난 성경지식 자랑하는 유대교인과 세상지식 자랑하는 둘이 1:1로 누가 더 헛똑똑인가 진정한승부를
끝까지 봤으면 좋겠는데 불가능 하것지
또 죽이맞는 애들이 떼로 덤벼들테니ㅎㅎㅎ
시주구리 20-04-13 14:09
 
그니까 그걸 어떻게 설명합니까?
아는 사람은 쉽게 한번에 간단히 아는데 모르는사람은 백번을 읽어도 모르니...
나처럼 무식하고 멍청한 인간은 한번읽고 쉽게 깨닫는데 댁같은 똑똑한 훌륭한 지식인들이나 신학자들은 백번을 읽어도 그뜻을 모르니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나름 추측해보면 마음이 가난한자에게는 보이고 마음이 부자인자에게는 보이지않는
형이상학적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합시다.

마음이 부한자가 거듭나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것이 쉽다에서 힌트를 얻을수있지 않을까요?
     
베이컨칩 20-04-13 14:15
 
시주구리님의 말씀이 어느정도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이 둥글다라고 확정짓는 것은 동의할 수 없겠습니다
          
세넓돌많 20-04-15 10:07
 
지구가 둥글지 않으면 어떻게 마젤란이 세계일주를 했으며, 어떻게 현대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겠느냔 말이요ㅋㅋ 혹시 베이컨칩 아조씨는 둥글다는 말과 평평하다는 말의 뜻을 거꾸로 알고 있는건 아닙니꽈? 그렇담 대박인데.. 단지 글자를 몰랐던 정상인일 뿐인거니까
               
풀어헤치기 20-04-15 21:00
 
밀가루로 만들고
향료만 첨rk한 과자를
진짜 베이컨이라 믿고...대화명으로 쓰고 있으니....

대화명의 정체성부터 '거짓'으로 시작하고 있죠...

거짓고기...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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