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는 기독교에서 구약이 예수를 증거(예언)한다고 가르치는 구절 중 가장 대표적인 이사야서 7장과 53장에 대해서 썼었지요.
이번에는 자잘한 구절들을 가져와보겠습니다.
이번 내용은 서술 방식에 따라 두세 개의 글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사복음서에서 흔히 말하는 '선지자로 기록된 바'와 같이 사건을 서술하고 예언의 성취라고 설명하는 구절들부터 반박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구약의 사건들 중에서 기독교 측에서 예수를 상징한다는 구절들을 가져와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 스스로 구약의 구절들을 상황에 맞게 따라한 내용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사실 이 내용은 쓸지 말지 고민입니다. 이런 류의 사기질은 역사를 통틀어 흔한 경우거든요. 우리나라만 해도 정감록을 들먹이며 '내가 정감록에서 말하는 정도령이다!'라고 주장하며 민란을 일으킨 자들이 많았고, 심지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정감록을 운운하며 사기를 치는 놈들이 존재했으니...근자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모 예언서에 나오는 여왕이라는 소문도 돌았고, 국운이 다하면 숭례문이 불탄다는 정도전의 예언이라는 것도 나돌았고...
마지막으로 쓰려는 글은 이런 식의 수준 낮은 예언 끼워맞추기이기 때문에 굳이 써야 하나? 란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이 글은 기독교에 대해 잘 알고자 하시는 분이나 종교 문제로 갈등하시는 분, 관련지식을 더 쌓고자 하시는 분들을 위해 작성되었음을 미리 고지합니다.
그리고 이젠 이런 글을 써봤자 각자의 입장이 바뀔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웬만해선 반론이 올라오더라도 응하지 않고, 반론 중에서도 논리적으로 합당한 반론에 한해서만 댓글을 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받아들일 마음이 없는 분들은 읽고 기분만 안 좋아질 테니 그냥 읽지 않고 뒤로 돌아가시길 추천합니다.
사복음서 중 마태복음의 예언의 성취란 측면을 강조한 책이니만큼 마태복음을 중심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거론하겠습니다.
1.
마태복음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 구절은 미가서 5장 2절에 있는 내용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 미가 5:2
이 구절만 보면 그럴듯해 보이지요?
하지만 이사야서와 마찬가지로 이 구절 역시 전후의 내용을 보면 예수와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군대여 너는 떼를 모을지어다 그들이 우리를 에워쌌으니 막대기로 이스라엘 재판자의 뺨을 치리로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중략]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 미가 5:1~9
1절을 보면 이스라엘을 대적하는 그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5절에 앗수르 왕이 나오고, 6절에 그가 나와서 우리를 그(앗수르 왕)에게서 건져낸다고 나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이스라엘이 모든 원수들을 진멸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건 예수의 구원사역이 아닙니다. 그저 고대 이스라엘이 주변 열강들을 깨부수고 만국의 위에 군림하겠다는 흔하디 흔한 패전국의 정신승리입니다.우리나라에도 '박씨전'이라는 이런 류의 정신승리 소설이 있죠.
여담으로 베들레헴에 대해 쓰겠습니다.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민족 영웅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집이 있던 곳으로 베들레헴에서 인물이 나온다는 것은 곧 다윗의 자손 중에 걸출한 자가 나와서 국난을 종식시킬 거라는 이스라엘의 흔한 민족전승 클리셰입니다.
그리고 사실 예수는 베들레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간 까닭은 호구조사 때문이라고 나오는데, 고대의 호구조사는 세금과 부역이 목적이기 때문에 현거주지를 대상으로 하지, 본적을 대상으로 하지 않거든요. 이는 로마시대 때도 마찬가지였으며, 만약 그런 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면 엄청난 인구의 대이동이 발생하여 행정상의 엄청난 혼란과 산업의 정체가 일어났을 겁니다. 그 수 많은 인원을 감당할 숙박시설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고요.
2.
마태복음 2:16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는 구절은 호세아에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내었거늘
- 호 11:1
보시다시피 마태복음의 저자는 호세아 11장 1절을 전부 인용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쓰고 싶은 부분만 취사선택했습니다. 이 문장의 시대는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즉 출애굽 때입니다.
1절부터 5절까지 전문을 살펴볼까요?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 호세아 11:1~5
호세아 11장 2절을 보면 출애굽 이후에 히브리인들이 이방신들을 섬기는 내용이 나옵니다. 즉, 이 구절은 예수를 예언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짚는 구절입니다.
1절부터 5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내가 너희를 사랑해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음에도 너희는 나를 배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너희를 돌보았으나, 너희는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너희 이스라엘이 앗수르의 노예가 될 것이다." 라며 이스라엘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예수와는 전~혀 상관이 없죠?!
3.
마태복음 2: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라마가 뭘까요? 이스라엘의 지명입니다. 분명히 헤롯이 아이들을 죽인 곳은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이라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라마가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땅이었을까요?
전혀 아닙니다.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391707&cid=50762&categoryId=51387
베냐민 지파의 성읍 라마 - 예루살렘 북쪽 8㎞ 지점에 위치한 교통 요지. 남북 분열 왕국 시대 북이스라엘 왕 바아사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유다로 가는 이스라엘 주민의 남쪽 이주를 막고 남유다를 견제하기 위해 라마에 성곽을 축성하였다.
[중략]
이곳에는 전통적으로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묘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삼상 10:2).
※참고로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남쪽 10km 밖에 위치한 소도시입니다.
만약 라마가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든다고 한다면 베들레헴의 규모는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최소 남북으로 20km에 달하는 당시로서는 유래가 없을만큼 큰 대도시였습니다.
우선 여기까지 보고 좀 더 들어가봅시다.
이 문제가 되는 구절의 원본은 예레미야 31장 15절입니다. 다음 구절인 16절과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네 울음 소리와 네 눈물을 멈추어라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의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예레미아 31:15~16
15절은 중의적 표현으로 쓰였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남유다가 바빌론에게 멸망당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갈 때, 포로들이 지나간 도시 중 하나가 라마입니다. 또한 야곱의 둘째 부인인 라헬의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한데요, 이 라헬의 자식이 꿈쟁이 요셉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미디안 장사꾼들에게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리고, 야곱과 라헬에게는 들짐승에게 요셉이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지요. 이 때 라헬이 자기의 유일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열했다는 창세기의 일화를 중의적으로 덧댄 겁니다.
16절엔 포로로 잡혀갔던 '그들'이 돌아올 것이라며 위로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도 라마의 통곡하는 소리가 베들레헴 유아살해의 결과가 아니라 600년 전의 역사적 사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이 역사적으로 일어났던 사건의 기록을 예언처럼 둔갑시킨 거지요.
4.
마태복음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아주 골때린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구약(타나크), 탈무드 등을 포함한 모든 문서에서 이 구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사렛이란 지명 자체가 구약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기원후 1세기의 다른 역사 기록물에도 나사렛이란 지명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신학자들은 이 문제로 고심하다가 아래와 같은 가설들을 세웁니다.
① 나사렛은 지명이 아니라 가지(brunch)를 뜻하는 네제르(nezer)가 잘못 번역된 것이다. 이사야서 11자 1절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가 한 가지(nezer)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는 부분에서 다윗의 자손을 강조하기 위해 네제르란 호칭을 쓴 것이 지역명으로 오역이 된 것이다.
② 나자렛은 왕관,혹은 왕관을 쓴 자를 뜻하는 네젤(nezel)이 어원일 것이다. 왕으로 온 예수를 뜻하기 위해 네젤 예수란 표현을 썼던 것이 오역이 된 것이다.
③ 나실인(Nazarite)을 뜻하는 단어로써 선별된 자란 뜻이었는데 지명으로 오역이 된 것이다.
지금으로선 뭐가 정답인지 모릅니다. 하여튼 중요한 것은 23절의 저 구절은 구약이나 기타 유대 전승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5.
마태복음 3:3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구절도 이사야 40:3절에서 일부 차용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 이사야 40:3
두 문장을 잘 보면 품사의 위치가 미묘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자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 후자는 외치는 자의 소리여 ~~~ 광야에서 예비하라. 또한 전자는 세례요한 한 명을 지칭하는데, 후자는 '너희'라며 복수형을 취합니다.
이처럼 두 문장은 주체가 다릅니다. 하지만 이건 다음 문제에 비하면 별 문제가 안됩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세례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고 설교를 하는 자였습니다. 지금이야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지역이 관개농업으로 잘 개간되었지만, 당시로서는 요단강 주변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농사짓기 좋은 땅이었습니다. 고로 요단강에서 설교를 하고 세례를 베푼 세례요한은 광야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 요셉이 실종되었을 당시에 라헬의 아들은 요셉이 유일했고, 이후에 베냐민이 태어납니다. 또한 요셉의 형들은 라헬이 아닌 야곱의 첫째 부인인 레아의 아들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