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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12-17 13:56
성 프란치스코 이야기
 글쓴이 : 방랑노Zㅐ
조회 : 1,008  

아주 어렷을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모 장로교회를 간 이후
참으로 열심히 성경구절을 외우고 기도하며 
그 교회의 청년부 부회장 자리까지 이릅니다 

어느날 
평소에 흠모하던 예쁜 누나가 심령 부흥회 (당시에 그리 칭했음) 에 같이 가자고 꼬셔서 
따라갑니다 
거기서 커다란 충격을 받습니다 
거품을 흘리며 울부짖는 그 누나와 주변 신자들 
주여!. 할렐루야 ! 믿습니다! 라고 소리 지르며 눈물 흘리고 
동시에 괴성과 방언을 중얼거리는 아비 규환이 소리로 들려옵니다
가만히 눈를 뜨고 바라보니 
입거품을 부글 부글 내며 울부짖는 모습들과
눈빛들이 뒤집혀 돌아가 있엇습니다 
너무나 큰 충격으로 이후로 교회를 가기 싫어졌습니다 
제가 보고 읽고 기도하던 복음 성경말씀에 나오는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마음속 진심으로 믿지 않고 믿습니다! 라고 외치기만하는 가식적 광기적 울부짖음)



이후 오랜 세월이 흘러 
카톨릭을 접하게 됩니다 

거기서 알게된 
성 프란치스코 (1181-1226년)
그의 아주 아주 간략한 일대기를 발췌해 봅니다
 
기독교 신자란? 믿음이 우선인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위에 적은 거품물던 광신도와 아래 적힌 기독교 신자의 차이는 
이글을  끝까지 읽으시는 분들이 스스로 판단하시면 됩니다 

자세한 일대기와 사상을 알고 싶으면 아래 참고자료를 찾아 보시길 바랍니다 
"맨발과 벌거숭이의 성인" 성 프란치스코 ( 그의 이름을 따 샌프란시코라는 도시가 명명됩니다)
촉이 빠르신 분들은 아래 참고자료들의 제목만 봐도 그의 성품을 이해 하실겄입니다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또는 프란체스코)는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아시시에서 부유한 포목상인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Pietro di Bernadone)와 프랑스인 어머니 피카 드 브를레몽(Pica de Bourlemont)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사업차 프랑스에 가 있었고, 어머니는 그에게 요한(Giovanni)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하였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사업상의 이유 등으로 프랑스를 좋아했기 때문에, 아들의 이름을 ‘프랑스 사람’이란 뜻의 프란치스코로 개명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젊은 날을 무모할 정도로 낭비하고 노는 일로 보내다가 기사가 될 꿈을 안고 1202년 아시시와 페루자(Perugia) 간의 전투에 참여했다가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듬해 두 도시 간의 평화조약이 체결되면서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잠시 옛 생활로 돌아가는 듯 보이다가 중병을 앓았고, 병에서 회복한 뒤로는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여전히 기사가 될 꿈을 버리지 못한 그는 1205년에 브리엔네(Brienne) 백작의 군대에 입대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그는 스폴레토(Spoleto)에서 환시와 함께 메시지를 들었는데,
“왜 주인을 섬기지 않고 종을 섬기려느냐? … 집으로 돌아가라. 내가 할 일을 알려주겠다.”라는
내용이었다.
군대에서 나온 그는 1206년 성 베드로 대성당을 순례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나병 환자를 만나 입맞춤을 한 후 삶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가진 것을 나누어주고 자주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날 폐허가 된 산다미아노(San Damiano) 성당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던 중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는 주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고, 아버지의 가게에서 물건을 내다 팔아 성당을 수리하려고 했다. 이를 안 부친은 그를 작은 방에 가둘 정도로 분노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그는 부친과 결별하게 되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의 주교 앞에서 재산 상속권을 포기하길 강요하는 아버지의 뜻에 기꺼이 응하며 입고 있던 옷까지 모두 벗어 아버지에게 넘겨주고 알몸이 되어 가난한 삶을 선택했다.

   이때부터 성 프란치스코는 허름한 농부의 옷을 입고 본격적으로 ‘가난 부인’을 모시는 통회의 생활을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그의 주위에 모여들어 기도와 노동을 하며 극도의 가난 생활을 실천했다. 1209년 성 프란치스코는 자신들의 생활 양식을 인준해 주길 교황에게 요청했다. 그 회칙이 너무 엄격하다 여긴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는 처음에는 주저했으나 성 프란치스코가 쓰러져 가는 라테라노 대성당을 떠받치고 있는 장면을 꿈에서 본 후 1210년 마침내 구두로 인준해 주었다. 그리고 극도의 가난을 살고자 하는 성 프란치스코와 그의 11명의 동료를 인정하고 그들에게 설교의 사명까지 주었다. 이것이 ‘작은 형제회’, 곧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본부는 오늘날 아시시 교외 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Santa Maria degli Angeli) 안에 있는 포르치운쿨라(Portiuncula) 성당이었다. 이 작고 허름한 성당에서부터 성 프란치스코가 설립한 수도회는 역사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나무로 성장했다. 성 프란치스코와 동료들은 이탈리아 내외를 두루 다니며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통회와 보속의 생활을 단순한 말로 가르쳤다. 그들은 재산과 인간적인 지식 소유를 거부했고 교계 진출 또한 사양하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사제가 아니었고 다만 부제였다고 한다. 그들의 공동체는 날로 지원자가 늘어 여러 곳에 분원이 생겼다. 그만큼 그들의 청빈 생활은 많은 이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1212년 아시시의 명문가 출신인 성녀 클라라(Clara)도 그의 설교에 감명을 받아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가족과 친지들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녀 클라라는 성 프란치스코의 지도를 받아 뜻을 같이하는 몇 명의 자매들과 함께 ‘가난한 자매들의 수도회’(현 클라라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1216년부터 프란치스코회 안에는 새로운 기운이 치솟기 시작해 조직이 강화되면서 발전의 폭이 커졌다. 몇 개의 관구가 형성되었고, 1217년과 1219년의 총회에서는 잉글랜드(England)를 비롯한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견하기로 결의하는 등 참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이 무렵 성 프란치스코는 모슬렘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직접 찾아갈 정도로 선교와 순교의 열정에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1219년에 십자군을 따라 이집트로 갔다가 술탄 알 카밀(Al-Kamil)의 포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이슬람에 대한 선교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한 뒤 이탈리아로 돌아왔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성 프란치스코는 스스로 총장직을 사임하였다. 이 또한 역사에 길이 남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부재중에 몇몇 회원들이 수도회의 회칙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음을 알고, 우고리노(Ugolino) 추기경의 도움으로 회칙을 보완해 1223년 11월 29일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III)에게 인준을 받았다. 1224년 성 프란치스코는 라 베르나(La Verna) 산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며 그 고통에 참여하길 기도하던 중에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자신의 몸에 입었는데, 이것은 최초로 공식 확인된 오상(五傷)이었다. 그리스도의 오상은 은총의 선물이었으나 그의 일생 내내 계속되면서 동시에 심한 육체적 고통도 안겨 주었다. 그는 오상으로 인한 고통 중에도 당나귀를 타고 움브리아 지방을 다니며 계속 복음을 전하다가 기력이 쇠하여지고 눈마저 실명되어 갔다. 그런 고통의 와중에서 그는 이탈리아어로 ‘태양의 찬가’를 지어 외우며 모든 피조물과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1226년 9월 병세가 깊어진 성 프란치스코는 포르치운쿨라로 숙소를 옮겼다. 미리 유서를 작성한 그는 죽음이 다가온 것을 깨닫고 알몸으로 자신을 잿더미 위에 눕혀달라고 했다.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처럼 완전한 가난 중에 임종을 맞이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수사들에게 요한 복음의 주님 수난기를 읽게 한 후 시편 43장을 노래하며 1226년 10월 3일 ‘자매인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의 유해는 다음날 아시시에 있는 산 조르조(San Giorgio) 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프란치스코는 선종 2년도 채 되지 않은 1228년 7월 15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Gregorius IX)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1230년 5월 25일 그의 유해는 엘리아 형제가 그를 기념해 지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지하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지금도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공경은 세계 곳곳에서 활기차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가 세운 제3회 재속 프란치스코 회원들도 다른 재속 회원과 비길 수 없을 정도로 많아져 그의 성덕을 본받고 가난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1979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를 생태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아시시의 가난뱅이 성 프란치스코만큼 교회 안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다시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그는 ‘제2의 그리스도’라고 불리기도 한다.

참고자료

  • 고종희 저, 명화로 읽는 성인전(알고 싶고 닮고 싶은 가톨릭성인 63인) -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서울(한길사), 2014년, 412-436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444-448쪽.
  • 까를로 까렛도 저, 장익 역, 프란치스꼬 저는, 왜관(분도출판사), 2004년.
  • 문형렬 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 서울(성황석두루가서원), 1990년.
  • 성 보나벤뚜라 저, 권숙애 역, 아씨시의 성프란치스코 대전기, 왜관(분도출판사), 2001년.
  • 손연자 저, 김담 그림, 맨발의 성인 프란치스코, 서울(바오로딸), 2008년.
  • 엘루아 르클레르 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꼬 수녀회 역, 가난한 자의 슬기 - 성 프란치스꼬, 왜관(분도출판사), 1992년.
  • 왈터 닉 저, 정은순 역, 위대한 성인들, 왜관(분도출판사), 1991년.
  • 요셉 봐이스마이어 외 저, 전헌호 역, 교회 영성을 빛낸 수도회 창설자: 중세교회 -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프란치스코 수도회', 서울(가톨릭출판사), 2001년, 105-133쪽.
  •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 저, 성 프란치스꼬와 성녀 글라라의 글(개정판), 왜관(분도출판사), 2004년.
  • 작은 형제회 한국관구 편역,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 모음, 서울(프란치스코출판사), 2009년.
  • 제임스 마틴 저, 성찬성 역, 나의 멘토 나의 성인 - ‘그리스도를 위해 바보가 된 이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서울(가톨릭출판사), 2012년, 413-452쪽.
  • 최익철 저, 우표로 보는 교회를 빛낸 분들 - '프란치스코', 서울(으뜸사랑), 2014년, 102-109쪽.
  • 치릴로 테스카롤리 저, 성염 역,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 모든 사람의 형제, 서울(성바오로), 1999년.
  • 토마스 첼라노 저, 프란치스꼬회한국관구 역, 성 프란치스꼬의 생애, 왜관(분도출판사), 2002년.
  • 페르난도 우리베 저, 김이정 역, 당신을 위한 성 프란치스코, 서울(프란치스코출판사), 2013년.
  • 페르디난트 홀뵉 저, 이숙희 역, 성체의 삶을 위한 성체와 성인들 -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 서울(성요셉출판사), 2000년, 87-95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2권 -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6년, 9052-9058쪽.
  • 헤르만 헤세 저, 이재성 역, 성 프란치스코의 생애, 서울(프란치스코출판사), 2014년.
  • 헤수스 알바레스 고메스 저, 강운자 편역, 수도생활 역사 II - '성 프란치스코와 작은 형제들의 수도회', 서울(성바오로), 2002년, 205-242쪽.
  • 호세 호르헤 레트리아 저, 치코 그림, 황경희 역, 제비들의 성 프란치스코, 광주(생활성서사), 2005년.
  • J. 요르겐센 저, 조원영 역,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서울(프란치스코출판사), 2005년.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서울(성바오로), 2002년, 251-253쪽.

성프란치스코 수도회는 한국에도 있습니다 
굉장히 검소한 생활을 하며 
수행 과정이 엄격하고 혹독하고 ( 내탓이요 내탓이요 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해 등짝에 피가 나도록)
피정이라 불리는 명상 수행도 많이 합니다
전세계의 종교철학서적들과  금서까지도 갖추어진 방대한 도서관도 있습니다 
이 수도회의 수사 출신들 중에 어려운 과정을 통과한 검증 된 분들이 신부로 임명됩니다 
 
여전히 한셍인( 문둥병 환자) 들을 위해 
경남 산청의 성심원 
소록도 
그리고 전국의 꽃 동네에 지원을 아끼지 않고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사역과 봉사를 많이 합니다 




이젠 동양사상과 선불교에 심취한 제가
이런글 적을 자격도 없지만 
진정한 기독교 신자의 길은 무었인가 생각해보는 제 체험담이었으므로 적게 되었 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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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바다 19-12-17 22:44
 
저도 예전에 교회와 성당에 나름 열심히 다닌 사람인데 인생이 무엇인지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이런종류의 관심이 붙다 보니까
어느덧 불교신자가 되어 있더군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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